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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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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의 오늘과 내일

 

 

 

조성순(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박사)

 

2023. 05.


 

한국 그림책, 역사로 들여다보기

 

세계 그림책 시장에서 한참 늦게 출발한 우리 그림책은 현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 그림책의 성과를 정의하는 근원은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림책 출판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진화의 결과이다. 그림책의 출판은 인쇄 기술의 발달과 그 맥을 함께 한다. 근대 계몽기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아동에게 쉽고 흥미롭게 글을 이해시키기 위해 시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즉, 그림책은 하얀 지면 위에 글과 그림을 인쇄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 태어났고, 인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였다. 이와 함께 ‘어린이의 발견’은 그림책의 발달을 촉진하게 되었다.

 

2023년은 방정환의 〈어린이〉 잡지가 창간되고 ‘어린이해방선언’이라고도 불리는 ‘소년운동의기초조항’이 발표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잡지의 발간은 ‘어린이 독자’의 인식을 확대하였고, 어린이를 위한 서사물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와 함께 1922~1938년까지 시행된 조선교육령에 포함된 ‘유치원규정’은 조선의 현실에서 유년 아동의 교육을 자각하고 유치원 설립 운동과 함께 유년 아동에 관한 관심의 발아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유치원 설립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유치원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그림책의 필요를 절감하고 1920년대 후반에는 이주홍, 정인섭, 홍은성 등이 유년 아동을 위한 회본(繪本, 그림책)의 필요를 주장하였다.

 

1937년 <유년> 잡지에 실린 시그림. 시그림책의 기원이 되었다.

1937년 〈유년〉 잡지에 실린 시그림. 시그림책의 기원이 되었다.

 

 

비록 현대 그림책의 형식을 갖춘 그림책의 출발은 서구에 비해 늦었지만, 우리나라는 1930년대부터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1930년에만 하더라도 좋은 그림책이란 교육적인 것이 주를 이루었고, 현실의 어린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환상적인 요소는 배제되었다. 하지만 불과 1~2년 사이에 좋은 그림책에 대한 논의는 빠른 흐름으로 변화하였고, 1932년에 와서는 그림책은 “예술적”이어야 하며 “다방면”에 있어서 어린이들의 인식을 넓혀주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책의 파라텍스트(para-texte)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1) 그리고 “어린이들이 읽는 책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어른이 보더라도 재미있는 것이니 이런 책을 어린이들에게만 읽힐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보며 재미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으로 그림책 개념의 변화를 보인다.2) 이로 본다면 현대의 그림책의 개념은 서양 그림책의 유입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고민해온 과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그림책은 문학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그림책의 과거를 들여다본다면 문학예술로서의 그림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30년대부터 꾸준히 그림책 장르적인 특징에 관한 논의를 하며 어린이와 소통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왔으며, 1980년대 서구의 그림책을 접하면서 우리 그림책 출판계는 ‘어린이를 위한’ 성찰을 시작하였다. 당시 논의의 대상이었던 그림책은 ‘어린이’가 주요한 독자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어른이 함께’ 읽는 책이라는 이중 독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로 본다면 그림책의 독자를 0~100세로 보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며,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른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 그림책의 독자는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이르고 있었으며, 그림책 내용에서도 교육적인 것은 물론이고 재미와 예술적인 측면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1980년대 이우경 작가의 『해님달님』

 

류재수 작가의 『백두산 이야기』

1980년대 이우경 작가의 『해님달님』(위), 류재수 작가의 『백두산 이야기』(아래)

 

 

2000년대에 들어와서 우리 그림책이 미학적으로 더욱 공고해져 간다는 것은 우리 그림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2020년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수상, 2022년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The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수상은 한국 그림책의 위상을 세계 무대로 옮겨 놓았다. 한국 그림책은 지금도 성장하는 중이다.

 

 

 

백희나·이수지 작가의 어린이들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그림책들의 특징은 작가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어린이와 소통하기 위한 여러 전략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과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현재 우리 그림책의 지형을 잘 보여준다. 아동문학은 기호학적 관점에서 “‘아동코드’와 ‘성인코드’로 이루어진 이중적 코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문학이다.3) 이런 과정에서 본다면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 세대와 소통 가능한 매체라 할 수 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유쾌하게 풀어나가기 위해 동원되는 환상성은 유쾌한 먹을거리와 연결되어 정점을 이룬다. 현실과 환상 세계를 넘나들며 즐기는 놀이 서사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놀이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은 현실에서 균열을 만들어내고 환상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지만, 실컷 놀이를 즐기고 난 후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원점회귀형이다. 그러나 환상의 세계를 경험한 아이는 이전의 아이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놀이를 통해 재현된 세계는 ‘현실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세계여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백희나 작가와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현실을 딛고 단단히 힘을 낼 수 있도록 해준다.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책읽는곰, 2017)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책읽는곰, 2017)

 

 

그림책은 글, 이미지, 물성을 설계하고 구성하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하기에 다양성의 폭이 무한하다. 펼침면 안에서 글과 그림, 제작 방식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글과 그림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다양한 효과를 가져온다. 이수지 작가는 이런 그림책의 물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작가이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놀이를 일정한 공간 안에 확정해 두지 않고, 열어둠으로써 주인공의 놀이에 독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림책의 비텍스트적인 요소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만나는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신나게 ‘놀이’를 즐긴 후에 회귀한다는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놀이’를 재현하는 방식에서는 전혀 다른 시도들이 돋보인다. 이수지 작가의 글자 없는 그림책의 즐거움은 사건 즉, 놀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이미지만으로도 강렬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비텍스트적인 요소들이 문학적인 요소와 결합이 되어 주요 서사를 끌어간다. 이것은 아이들의 놀이와 맞닿아 있는 작가의 의식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플롯을 형성하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와 의사소통의 양식들을 단순히 수용하고 복제하지 않는다.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의미를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림책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의 주된 표현은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공간의 설정과 뒤섞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시공간은 서로 다른 세계임과 동시에 삼차원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시공간의 이동에 더해진 다양한 매체와의 융합에 있다.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비룡소, 2021)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비룡소, 2021)

 

 

오랫동안 그림책의 그림은 윤곽을 그리고 수채화나 잉크로 채색하는 방식이었다. 그림책의 창작 기법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었고,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매체의 독특성을 활용하여 그림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백희나 작가의 독특성은 폴리머 클레이(polymer clay)로 만든 인형을 통한 캐릭터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더해 신비로움을 준다. 1980년대 주요하게 활동했던 이승은 작가의 소창으로 만든 인형 그림책이 한국적인 멋을 더해 주었다면, 백희나 작가의 스컬피 인형은 섬세하고 익살맞은 캐릭터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양한 표정, 쭈글쭈글한 피부와 몸매까지 입체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만의 독특한 매체는 지금 여기의 어린이를 표상으로 한 이야기성과 조화를 이루며 어린이의 세계를 넘나든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림책은 물성을 활용하는 기법이나 그림책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형식이 개성적이고 세계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이루고 있다. 해외 수상작들의 경우 현재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미래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적잖이 내포되어 있어 한동안은 우리 작가들이 세계의 그림책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그림책의 전망은 밝다.

 

 

 

한국 그림책, 내일로 나아가기

 

현재 우리 그림책의 지형을 보면 작가들의 역량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책 작가 한 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기관, 동료 작가, 평론가, 출판사, 무엇보다 독자와 관람객이 협력하는 일이 필요하다.4) 어느 한 분야의 혹은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는 한국 그림책의 미래의 성장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한국 그림책의 출판문화 환경이 풍성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문제에 함께 호흡하는 그림책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그림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없다면 그림책 작가 및 출판문화 환경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한국 그림책의 뚜렷한 현상의 또 하나는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주의 작품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작가의 ‘자기 작품화’ 현상은 어린이 독자의 폭을 좁힌다는 문제를 낳는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Korean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에서는 매달 발표되는 주목 도서와 해마다 발표되는 ‘스페셜멘션’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2022년 KBBY 스페셜멘션 그림책 부문에 선정된 도서 22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을 때, 우리 그림책의 예술성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국제화 교류에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한정하면, 접근성이 낮아진다. 2022년에는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된 해외의 중·고등학교, 한국어학과가 개설된 해외 대학교 도서관을 중심으로 그림책을 보급하고, 보급된 그림책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하여 번역 프로젝트 추진 및 그림책 축제로 연계하는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의 폭이 좁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림책은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와 비텍스트적인 요소 그리고 작가가 가진 아동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해 낸다.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경계에서 한국 그림책의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한 때이다.

 

2022년 한국-프랑스 그림책 축제

2022년 한국-프랑스 그림책 축제

 

 

논픽션 그림책의 경우 이전에는 정보 전달에만 급급한 나머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면을 소홀히 했다면, 최근 출간되는 그림책을 중심으로 문학성을 갖춘 논픽션 그림책을 찾을 수 있다. 논픽션 그림책은 무엇보다 정보의 정확성이 필수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국경』(해랑 그림, 구돌 글, 책읽는곰, 2021)은 ‘국경’이라는 의미를 새로운 관점과 시각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문학적인 글과 예술적인 그림이 만나 ‘국경’의 개념을 넘어 경계를 나눈 국가 간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국경은 종교와 철학, 문화와 예술, 과학과 기술이 만나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수많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국가 간의 다층적인 문제는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재현되는데,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만의 목소리로 ‘국경’의 의미를 확장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그림책의 예술성이 픽션에 제한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논픽션 부문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국경』

『국경』

 

 

끝으로 우리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우리 그림책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우리 작가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 KBBY 작가연구회에서는 작가들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작가 활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과 그림 분야별 작가(an author and an illustrator of children’s books)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자료 수집과 동시에 우리 작가들의 국내외 작품과 활동 정보에 대한 소통과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의 원화를 대상으로 선정하고 전시하는 국제 행사인 BIB(Biennial of Illustration Bratislava)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등의 출품 준비에 있어 기초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외에도 해외에서 한국 작가들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우리 작가들의 이력을 등재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영문판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 영어 사용 국가뿐만 아니라 비영어권에서도 제1, 2외국어로 대부분 영어를 삼고 있어서 가장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고 있으며, 문서의 양도 가장 많다. 때문에 해외에서 우리 작가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우리 작가들의 활동 및 주요 작품을 등재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 KBBY 작가연구회에서 이러한 작업을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결과의 수치는 현저히 낮다. 하나의 단체에서 전담해서 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기관의 지속적인 지원과 작가들과 단체의 협업을 통해 우리 작가들의 활동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1)
「예술적이고도 건전한 것이 제일-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그림책 선택 방법」, 〈동아일보〉, 1932년 2월 27일.
2)
「가정-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조선중앙일보〉, 1936년 9월 3일.
3)
마리아 리콜라예바, 『용의 아이들-아동 문학 이론의 새로운 지평』, 김서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8.
4)
노정민, 「MOKA에서의 그림책, 그림책 작가들을 위한 〈언-프린티드 아이디어〉 전시」, 『자음과모음』, 53호, 157~162쪽.

 

조성순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박사

인하대학교에서 〈한국 그림책 발달 과정 연구 - 삽화에서 그림책으로의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간의 제한성을 넘어서는 소통방식 - 이수지 삼부작 그림책〉으로 제8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한국 그림책의 역사』(청동거울, 2023)가 있다.
judi0509@hanmail.net
https://blog.naver.com/judi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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