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52  2024. 03-04.

게시물 상세

 

영원한 출판주의자 범우(汎友) 윤형두 선생

 

 

 

윤세민(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고문)

 

2024. 03-04.


 

필생의 출판주의자 범우(汎友) 윤형두 선생이 지난 연말 12월 3일 홀연히 떠나시며, 영원할 것 같았던 당신의 출판 외길을 멈추셨다. 고인은 한평생 출판의 길을 가면서도 잡지인, 고서가, 수필가, 연구자, 교육자 등으로 폭넓은 행보를 보이셨다. 물론 그 모든 행보는 그의 순전한 ‘책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고인과 필자와의 인연은 출판잡지 전공의 대학원 후배이자 제자로 만난 1991년 봄에 시작되었다. 이후 33년간 고인은 제 삶의 선배요 스승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주셨다. 지금도 ‘윤 교수’보다는 ‘윤 형’이라 다정히 부르시며 곁에 계실 것만 같은데, 홀연히 떠나시니 그 황망함을 이를 수가 없다. 고인의 일생과 책 사랑, 출판관, 그리고 필자와의 특별한 추억을 돌아보며 범우 윤형두 선생을 기리고자 한다.

 

범우사를 설립한 故 윤형두 회장

범우사를 설립한 故 윤형두 회장

 

 

범우 윤형두의 출판 일생

 

범우 윤형두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뒤 1944년 아버지의 고향 여수 앞바다의 돌산으로 와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순천농림학교(현 국립 순천대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하여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학비 문제로 휴학하던 중인 1956년부터 월간 〈신세계〉, 1961년 민주당 당보 〈민주정치〉에서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뒤늦게 1963년 동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66년 그의 출판 인생인 ‘범우사’를 세운다. 〈신세계〉, 〈치계〉(치과계 전문잡지), 〈다리〉 등의 잡지사 주간직을 거치는 가운데 새롭게 단행본 출판을 직접 배우며 출판의 길로 들어선다. 특히, 정치적 암흑기였던 1971년 초에 촉발된 〈다리〉지 필화사건 이후로 그는 본격적인 단행본 출판의 길을 걷게 된다. 마침내 출판인으로서 그의 필생 역작인 ‘범우사’를 창립해, 올곧은 출판의 길을 평생 걸어온 것이다.

 

범우(汎友)는 “친구를 널리 좋아한다.”는 뜻으로, 1967년 12월에 양주동 등 당시의 명사 및 정치인들의 수필을 모은 『사향의 염』을 첫 출판물로 펴냈다. 창립 초기에 김대중의 『내가 걷는 70년대』(1970), 김동길의 『길은 우리 앞에 있다』(1972) 등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당시 사회를 냉철히 비판하는 서적을 펴내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 가급적 많은 서적을 펴내자는 종합 출판을 지향하여 웬만한 동서양의 고전은 모두 출판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6년 『자유에서의 도피』(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를 1권으로 ‘범우사상신서’를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범우에세이문고’, ‘범우생활신서’, ‘범우소설문고’를 펴내기 시작하였다. 1977년에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범우사르비아문고’를 펴내 1988년 150권으로 완간하였다. 이어 1979년 ‘범우오뚜기문고’, 1980년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시리즈, 1985년 ‘범우문고’, 1988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우피닉스문고’, 1990년에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1권으로 ‘범우희곡선’ 시리즈 등을 펴냈다.

 

대표적인 출판물로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1999),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자기로부터의 혁명』(1982),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1999),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1996) 완역판, 제이스 조이스(James Joyce)의 『제임스 조이스 전집』(전 6권, 1989), 천혜봉의 『한국전적인쇄사』(1990) 등이 있다. 범우사의 대표 정기간행물로는 1992년 3월에 창간한 월간 〈책과 인생〉이 있다. 또 범우는 직접 수필가이자 출판연구자로서 『사노라면 잊을 날이』(1987), 『책의 길 나의 길』(1990), 『한 출판인의 자화상』(2019), 『지나온 세월 속의 편린들』(2006)을 비롯한 에세이와 『출판물 유통론』(1994), 『눈으로 보는 책의 역사』(1997), 『한국 출판의 허와 실』(2002), 『한국 출판미디어의 제문제』(2008) 등 출판 관련 연구서 및 저서 20여 권을 내기도 했다.

 

『무소유』,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무소유』,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한편, 범우는 출판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출판인재 양성 및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투척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1991년 당시 1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여 ‘범우출판장학회’를 설립, 해마다 출판인재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오고 있다. 2003년에는 범우출판문화재단을 설립해 우리 출판문화 발전을 위한 든든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그 자신이 출판계의 큰 일꾼으로 나서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한국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출판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출판문화상 네 차례, 대통령 표창, 보관문화훈장,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

 

 

 

범우의 출판관 및 출판론

 

범우의 출판 일생은 철저히 자신의 출판 경험과 철학을 기반으로 하였다. 또 그 밑바닥에는 그의 뚜렷한 ‘출판관 및 출판론’이 자리한다. 여기서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출판인으로서의 믿음과 철학을 입증하는 그의 ‘출판관 및 출판론’은 크게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자전거(自轉車) 출판론’이다. 이는 일본의 저명한 출판학자 시미즈 히데오(淸水英夫)의 이른바 원조 ‘출판 자전거론’을 차용하여 출판 현장에 활용한 것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렇듯이 출판사도 되든 안 되든 계속 책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내지 않으면 서점에 책을 채울 수 없고 결국 출판사도 쓰러진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기식 같은 출판 경영을 ‘자전거 조업’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자전거는 자력으로서 페달을 밟는 ‘자조(自助)’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과수식(果樹式) 출판론’이다. 이것은 과수원을 재배하는 것과 같이 온 정성을 다하여 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과일나무를 몇 년간 정성껏 가꾸어 오랫동안 그 열매를 수확하듯이, 철저한 기획과 제작 과정을 거쳐 수명이 긴 출판물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즉, 장기간에 걸쳐 온갖 정성을 다해 숙성시킨 아이디어를 ‘책’이라는 구체적인 공공의 재화로 탄생시켜 가는 튼튼한 과정과 자세를 강조하는 이론이다. ‘자전거 출판론’이 경영상의 노력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기획과 편집의 노력이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비석식(碑石式: 기념비) 출판론’이다. 수익을 내는 것과는 인연이 멀 수 있으나 기념비적인 출판을 하자는 것이다. 경영적인 성공은 기대하기 어려워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가치가 녹슬지 않는 불후의 명작을 발굴하고 출판하자는 것이다. 즉, 당장의 이익이 아닌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서도 기억되고 향유될 수 있는 고전(古典)이 되리라 예상하고 출판에 임하는 가치 지향의 출판론이다.

 

실히, 그는 이런 출판관 및 출판론에 입각해 자신의 출판 활동을 스스로 실천해 왔다. 그는 출판계에 입문하고 나서 또 책이 귀했던 1960~1970년대까지는 ‘자전거 출판론’ 방식에 따라 출판 활동을 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출판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변함에 따라, 그는 과일을 수확하듯 정성스레 출판하는 ‘과수식 출판론’(1980년대), 그리고 돈벌이는 안 되지만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을 만드는 ‘비석식 출판론’(1990년대 이후)을 주창하며, 또 그대로 이를 자신의 실제 출판과 출판 교육에 이어갔다.

 

이런 원칙 속에서 범우사의 책이 만들어져 왔고, 이것은 우리 출판계의 성장과정과 지향점을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범우의 이런 출판관 및 출판론이야말로 ‘범우사’란 출판사의 오늘을 있게 한 근간이자 존재가치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출판인으로서의 체질화된 이념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절대적 가치의 상징이 되고 있다. 범우의 이 고집스러운 출판론인 ‘자전거 출판론’, ‘과수식 출판론’, ‘비석식 출판론’은 오랜 세월 묵묵히 그의 의지와 열정으로 굳게 추진되어 오늘날 한국 출판계에 우뚝 선 금자탑을 이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운명 전 몇 해 전까지 그는 “이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완급을 조절하며 주위를 살피고, 때로는 느긋하게 옆길로도 빠져 보는 ‘선택적인 자동차 출판론’을 실행해 볼 작정”이라고 말하곤 했다. 범우사의 회장으로 아직 일선에 있던 당시 그는 자신의 ‘선택적 자동차 출판론’을 여유 있게 서서히 가동 중이었다.

 

故 윤형두 회장의 빈소

故 윤형두 회장의 빈소

 

 

범우의 특별한 ‘책 사랑’

 

범우의 ‘출판 일생’, ‘출판관과 출판론’은 그의 순수하고 한결같은 ‘책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이 책을 짓는 저술가요 출판인인 동시에 출판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출판학자로서 책과의 인연을 인생 절대의 만남으로 여기며 책 사랑을 펼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의 미학」이라는 그의 수필에서 보면, 그와 같은 함의가 하나의 명명(命名)으로 선언되고 있다.

 

“책은 역사요 또한 과학이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를 우리에게 선사한 기반이며 원동력이다. 또한 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핏줄 같은 다리다. 오늘도 갓 출간된 신간을 손에 들고 한없는 환희에 잠긴다. 이 책 한 권이 그 얼마나 오랜 잉태 속에서 탄생한 소중한 산물인가. 책은 진주요 에메랄드다. 그리고 세상의 빛이요, 인류의 넋이다.” - 「책의 미학」, 『책의 길 나의 길』(1990), 57~58쪽

 

그러면서, “책은 나에게 있어서 존재다. 책이 없었으면 나는 눈 뜬 장님이 되었을 것이며, 귀먹은 벙어리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단언해 마지않는다. 당연히 그의 좌우명 또한 ‘책’에 고정되어 있다. “책과 더불어 꾸준하게 한 길을” 선택한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는 또 「책은 영원한 친구」 제하의 수필을 통해 책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책 속에는 무한한 진리가 있으며 행복이 있으며 살길이 있다고 하듯, 책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터득하고 즐거움을 맛보며 위안을 얻고 또한 삶을 영위했다. 책과 더불어 50년, 그래서 인생은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배신하거나 앙탈을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책은 자기가 가진 그대로를 인류에게 준다. 언제나 손닿는 곳에 두면 눈으로 다가와 마음에 스민다. 책은 사람들의 오랜 친구며 또한 영원한 친구다.” - 「책은 영원한 친구」, 『책의 길 나의 길』(1990), 220쪽

 

윤형두, 『책의 길 나의 길』

윤형두, 『책의 길 나의 길』

 

 

필자와의 인터뷰 당시, 범우는 자신의 책과의 인연과 사랑을 이렇게 소개했다.

 

“책과 맺은 인연은 나에게 모든 것을 안겨주었습니다. 지식과 재산, 명예와 지조를 지키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나에게 주었습니다. 또 모든 괴로움과 부족함과 외로움을, 책은 그때그때 내 서재와 사무실과 심지어 호주머니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서 사라지게 해 주었죠. 그러한 잡독이랄까 난독하지 않았던들 오늘의 나는 형성되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나야말로 독서의 혜택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되었고, 또 무엇인가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갈증으로 시와 수필도 쓰게 되었습니다. 실로 책은 나에겐 삶이요, 스승이요, 믿음입니다.” - 범우 윤형두

 

 

출판학 연구와 출판학회 발전을 이끌다

 

범우는 출판은 물론 출판의 역사와 상황, 환경 등에 관심을 두었고, 구체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출판 연구자의 길로도 들어선 것이다. 특히, 그의 출판 인생에 최고의 선배이자 스승이라 할 남애(南涯) 안춘근 선생을 만나고부터 범우의 출판 향학과 연구의 열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출판학 연구’를 위해 안춘근 선생을 중심으로 동호인(연구자) 9명이 1969년 출판학회를 출범시킨 이래 오늘날의 한국출판학회와 출판학 연구가 성립되기까지는 범우의 출판학과 출판학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후원이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 한국출판학회가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학회 사단법인체로는 국내 최초로 정식 등록되었는데, 범우는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출판학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약 및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출판시장 개방의 문제와 국제저작권의 문제, 그리고 출판유통의 과학화와 현대화 문제 등 급속히 변모하는 출판 환경의 예민한 현실 문제들을 출판업계는 물론 출판학계의 공동 관심사로 끌어와 함께 고민하게 하였다. 또한 그는 국제 출판학 세미나의 창립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이후, 한·중·일 3국을 순환하며 개최되는 국제 세미나(국제출판학술회의)를 정착시킴으로써 한국의 출판학을 국제화하는 데에 헌신적으로 기여했다. 오늘날 2년에 한 번씩 국가별로 순환해서 개최되고 있는 이 국제출판학술회의는 국가 간의 학술 교류뿐만 아니라 출판 환경에 대한 상호이해와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범우의 삶과 교육의 영향

 

범우 윤형두는 진정한 교육자이기도 하였다. 당신이 그 누구보다도 치열히 임했던 인생 역정과 출판의 경험을 고스란히 후진들에게 교육을 통해 나눠 주곤 했다. 특히 출판기획, 출판경영, 출판유통에 관한 범우 선생의 강의는 후진들에게 값진 교훈이 되었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위시해 동국대학교, 경희대학교,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의 출판 관련 대학원에서 20여 년간 끊임없이 펼친 범우 선생의 출판학 강의는 후진들에게 살아있는 경험이자 교훈으로 아로새겨지곤 했다.

 

특히 가장 오랜 기간 강의에 임했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 전공과정을 거친 200여 명은 그의 대학원 직접 후배로서 특별한 제자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전문 출판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처럼 강단에 서는 교육자들도 적잖게 배출되었다. 교육자로서의 범우는 출판인으로서의 해박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늘 꼼꼼한 강의 준비와 열성적인 교육으로 제자들에게 살아있는 교훈과 감동을 선사하곤 했다. 그 교훈과 감동을 통해 제자들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필자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범우 윤형두 선생과 필자와의 첫 만남은 1991년 3월 초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 전공의 첫 수업이었다. 당시 나는 기독교잡지인 〈빛과소금〉의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출판잡지 관련의 전문적인 학문 연구를 위해 막 입학한 신출내기 대학원생이었다. 그리고 대학원 첫 수업으로 전공과목인 ‘출판유통론’의 초빙교수로 나선 분이 범우 선생이셨던 것이다.

 

후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범우 윤형두 선생과 필자

후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범우 윤형두 선생과 필자

 

 

첫 수업이었던 만큼 범우 선생은 자신과 교과목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신입생에 대한 당부의 말씀, 더불어 우리 수강생들과 정겨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분을 보며, 또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목표를 새삼 곧추세울 수 있었다. 범우 선생이야말로 내가 생각해 왔던 표상의 본이셨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이 돌아가면서 ‘대학원 입학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밝혔는데, 당시 나는 이렇게 발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 수업에서 범우 윤형두 교수님을 뵈온 것은 제게 큰 영광이자 또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윤형두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대학원에 온 목표와 인생 목표가 더욱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윤 교수님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제가 쫓아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첫째, 출판 전공의 연구자 나아가 교수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좋은 책을 발행하는 출판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좋은 책을 쓰는 저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윤형두 교수님을 표상 삼아 열심히 쫓아가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로부터 33년이 흐른 오늘, 나는 감히 범우 선생께 견줄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 쫓아가고 있다고는 자부하고 싶다. 출판을 전공하는 연구자로 교수로, 또한 몇 권의 저서를 갖고 있고 늘 좋은 글과 책을 쓰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범우에게 이런 인상을 받고, 또 범우의 삶과 교육의 영향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 이가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참 고마울 뿐이다. 아마도 범우 윤형두 선생은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책과 더불어 있으리라. 그러면서 이 세상 사람들의 책 사랑을 꾸준히 살펴보시리라.

 

* 이 글은 필자가 고인과의 생전 인터뷰 내용, 그리고 그의 자전적 여러 수필집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윤세민

윤세민 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학과 교수, 한국출판학회 고문

월간 〈빛과소금〉 편집장, 도서출판 두란노 기획홍보실장, KBS/JTBC 시청자위원 및 방송패널, 한국간행물윤리위원, 교육부 국어교과서 심의위원, 서울시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 한국출판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판, 방송, 영화, 문화예술, 자기계발 관련 평론 및 강연 활동을 한다. 저서로 『미디어 문해력의 힘』(유아이북스, 2023), 『열린 소통, 성공 대화』(글로벌콘텐츠, 2023), 『역사와 문화로 읽는 출판과 독서』(시간의물레, 2014), 『한국출판산업사』(한울, 2012), 『미디어원론』(나남, 2003), 『현대출판론』(세계사, 1997) 등이 있다.
zangysm@naver.com

 

출판계 이모저모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