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7 2023. 09.
서울 곳곳을 ‘독서공간’으로 만든 서울도서관의 실험
오지은(한국공공도서관협의회장, 서울도서관장)
2023. 09.
독서가 인류의 삶의 질 향상과 역사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인류 역사의 발전은 다양한 억압 속에서도 시들지 않았던 책과 독서에 대한 열망에 기인한다. 따라서 독서 문화 진흥은 지방자치정부와 공공도서관의 핵심적 임무 중 하나이다.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도서관에 ‘안전한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었고, 이러한 과제에 부응하고자 공공도서관은 두 개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나는 온라인과 비대면 기술을 활용해 풍부한 디지털 콘텐츠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디지털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비좁고 닫힌 좁은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여전히 강력한 대면 활동에 대한 이용자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키는 방향이다. 서울도서관은 이러한 디지털 전환과 열린 공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서비스를 통해 책 읽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서울야외도서관(Seoul Outdoor Library)’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울야외도서관은 앞서 언급한 도서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서관의 ‘공간’을 건축학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건물 밖 열린 공간으로 확장했다. 이는 기존의 건물 속에 갇힌 도서관 개념에서 벗어나 광장으로만 인식되던 도서관 밖의 공간도 도서관 구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획되고 준비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기반을 둔다. 건물 밖 도서관 공간인 자연이나 문화유산 속에서 서울야외도서관의 독서 활동은 야외 공간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다양한 도서관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야외도서관은 서울도서관의 일회성 이벤트나 행사가 아닌 건물 속에 갇혀 있던 도서관 서비스를 건물 밖으로 확대한 서비스이다. 이러한 서울도서관 서비스의 확대와 강화를 통해 외적으로는 서울도서관 이용자인 서울 시민의 도서관 이용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내적으로는 도서관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 정책 개발 역량을 강화하여 서울시 도서관 문화를 혁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현재 서울야외도서관은 두 곳의 공간에서 ‘책읽는서울광장’과 ‘광화문책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책읽는서울광장’과 ‘광화문책마당’의 로고
서울도서관 앞마당인 서울광장에서 운영하는 ‘책읽는서울광장’은 2022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에 시작하여 다양한 독서 비품과 조형물을 비치하고, 서울도서관 사서들이 엄선한 5천 권의 도서와 사서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2022년 한 해 20만 명, 2023년 상반기 동안만 23만 명, 1일 평균 7,384명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서울시의 명소가 되었다.
‘책읽는서울광장’ 홍보 포스터와 시민들이 ‘책읽는서울광장’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들
‘책읽는서울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부응하기 위해 이듬해인 2023년 4월 23일인 세계 책의 날에는 광화문광장의 야외도서관인 ‘광화문책마당’ 서비스를 추가로 기획하여 운영하였다. 서울광장과 달리 보행광장인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라운지와 광화문라운지 등 2개의 실내 거점 도서관 공간과 육조마당, 놀이마당, 해치마당 등 3개의 야외 도서관 공간 총 5개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이곳 역시 사서들이 엄선한 도서 5천 권을 비치하고 사서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상반기에만 총 26만 8,789명, 1일 평균 8,847명이 이용하였다. 2023년 상반기를 결산해보면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에서 운영하는 서울야외도서관을 6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용하였으며, 2023년에는 연간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들이 ‘광화문책마당’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들
현재 서울시에서는 책 읽는 문화 확산을 위해 서울도서관의 서울야외도서관뿐만 아니라 한강사업본부의 ‘책 읽는 한강공원, 북적북적’ 등 다양한 서울야외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서, 공간, 자료로 구성되는 도서관의 3대 요소 중에서 전문적인 사서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제공되기는 어렵더라도,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와 책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서울야외도서관은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도서관 서비스를 시도하였다.
첫째, 개가식 서비스를 뛰어넘어 주제별로 제공되는 사서들의 큐레이션을 누구나 아무런 대출 절차 없이 서가나 책바구니에서 책을 뽑아 이용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열린도서관으로 운영하였다. 도서관의 핵심 자산인 도서가 분실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이용자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처음으로 도입된 서비스이다.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다’라는 속담 등을 내세우며 도서 분실을 걱정했던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도서 분실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서울 시민의 도덕 의식을 확인하는 사례가 되었다.
둘째, 최대한 자연을 만끽하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부대 장비나 시설을 지원한다. 야외에 배치되어 있고 아무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장 중요한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제작된 혁신적인 서가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책을 읽을 마음만 가지고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빈백과 햇빛을 가릴 수 있는 텐트, 양산,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 바닥 깔개와 테이블, 야간 독서 램프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셋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책을 읽거나 학습하는 곳이라는 기존의 도서관 개념을 벗어나 시끌벅적한 도서관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회적 책 읽기,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체험 활동과 놀이 등을 제공한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공적 공간의 사적 점유에 의한 개인 학습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에서 유래된 조용한 도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과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도서관 이용 시간 동안 제공되는 백색 소음으로서의 음악, 이용자 간의 교류와 토론 그리고 집단 놀이와 공동 체험을 통한 커뮤니티의 공공재로서의 새로운 도서관 정립을 추구하고 있다.
넷째, 책뿐만이 아니라 ‘열린 공간’의 의미를 더 확장하여 영화, 공연, 그림, 외국의 다양한 문화 체험 등 닫힌 건물에서는 불가능했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비록 일부는 처음 시도되는 서비스라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것이다. 물론 이용자인 서울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서비스 혁신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어린이 열람실이 없는 서울도서관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어린이 책 큐레이션뿐만 아니라 ‘책읽는서울광장’의 상당한 부분을 어린이들의 놀이와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한다.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 속에서 전문 안전 관리자의 보호 아래 아이들이 맨발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부모는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여섯째, 공연 등 행사에 있어서도 이미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대중적인 스타보다는 아직 대중에게 덜 알려졌거나 스스로 조직하여 활동하는 아마추어 공연단,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공연단 등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한다. 또한 일방적인 공연과 관람을 벗어나 열린 마당에서 부분적이나마 관객도 함께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행사를 제공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책이나 지원 물품 분실 제로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도서관에도 도전한다. 사서나 운영자가 일일이 구체적인 금지 항목을 제시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이용자인 서울 시민 스스로가 (야외)도서관 개념에 걸맞게 흡연 금지, 음주 자제 등은 물론, 쓰레기통이 없어도 이용자가 만든 쓰레기는 스스로 가져가는 쓰레기 제로, 독서 분위기 및 관련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이용자들끼리 서로 배려하는 문화 등을 이끌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축제나 행사와는 다른,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도서관으로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렇듯 서울도서관의 야외도서관 서비스 시도는 기존의 도서관 건물에 갇힌 서비스로는 제공하지 못하던 한계를 극복한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혁신이다. 서울시 곳곳에 책 읽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서울야외도서관 서비스는 서울시 차원의 서비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25개 기초자치단체와 서울시에 소재하는 모든 공공도서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진행할 때 진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통해 서울시 곳곳마다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커뮤니티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책 읽는 문화가 정착될 것을 기대한다.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서비스하며, 지역사회의 핵심 공공재로서 지역사회의 중심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공공도서관은 독서뿐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교류와 지역 정책의 경험을 통해 지역 이용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커뮤니티의 발전을 추구한다. 구체적으로는 공공도서관의 정보, 교육, 문화 등 서비스를 통하여 이용자인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공도서관의 다양한 서비스를 통하여 시민의 질문하는 힘을 배양하여 이를 기반으로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을 갖고, 지역 문제를 도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며, 그 문제 해결 방식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발전을 지원한다. 유네스코(UNESCO)와 국제도서관연맹의 「공공도서관선언문」에서도 지식의 관문 중의 하나로서 공공도서관은 평생에 걸쳐 무엇을 배울 수 있게 하며, 어떤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며, 개인과 사회가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서울야외도서관은 혁신적 서비스를 통하여 서울시 곳곳에 책 읽는 문화를 확산시켜 이러한 공공도서관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더욱더 전문적이고 지속 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위하여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Books are ships which pass through the vast sea of time.
Literacy is a bridge from misery to hope.
오지은 한국공공도서관협의회장, 서울도서관장 공공도서관 현장 전문가로 과거 광진구립도서관 총괄 관장으로 재직 중 다양한 혁신적 시도로 전국도서관평가 대통령상을 3회 수상한 적 있으며, 2022년부터 서울도서관장으로 부임한 후 공공도서관협의회장, 한국도서관협회 이사, 한국문헌정보학회 이사, 한국학술정보협의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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