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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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요시타케 신스케일까?

 

 

 

이명석(문화비평가)

 

2018. 10.


 

일본의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심상찮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한 선으로 아이들의 발랄한 머릿속을 그려낸 책으로 한일 서점가에 놀라운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2013년 『이게 정말 사과일까』로 데뷔한 지 이제 5년. 그 사이에 모에(MOE) 그림책 대상의 1위를 세 차례, 2위를 한 차례 차지했고,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미술상 등을 수상 목록에 추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벗지 말걸 그랬어』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해 세계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8년 6월에 나온 최근작 『오줌이 좀 새었어요』는 일본 발매 1주일 만에 판매고 10만 부를 돌파했다. 한국에서도 그의 모든 작품이 속속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고, 어린이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이 되고 있다.

 

요시타케를 먼저 알린 것은 40세의 늦깎이 데뷔작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비롯해 『이게 정말 나일까』, 『이게 정말 천국일까』로 이어지는 발상 시리즈다. 독자들은 사과라는 과일이 만들어내는 온갖 상상에 동참하고, 로봇에게 자신을 입력하기 위해 스스로를 탐색하고, 할아버지의 노트를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유가 있어요』, 『불만이 있어요』, 『심심해 심심해』 등의 유머 그림책 시리즈는 더욱 폭넓은 독자를 만들어냈다. 특히 『벗지 말걸 그랬어』는 옷이 걸려 벗지도 입지도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넌센스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어른 독자들에게도 특별한 반응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에 연재한 작품들을 묶어낸 『있으려나 서점』,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등을 연이어 내놓으며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한국에서도 요시타케는 또렷한 브랜드가 되고 있다. 그의 유명 작품은 물론, 무명 시절 작품이나 협업 작품들까지 속속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 에세이집 『좁아서 두근두근』, 『결국 못하고 끝난 일』에 이어 원래 자비로 만들었다가 2003년 정식 출간되었던 스케치집 『게다가 뚜껑이 없어』까지 번역되었다. 그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협업한 『아이라서 어른이라서』, 〈레츠〉 시리즈 등도 재발견되고 있고, 후지에 준의 〈착각 탐정단〉 시리즈는 요시타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로 한국 내에 큰 브랜드가 된 마스다 미리의 뒤를 잇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1> 요시타케 신스케 책 모음


〈그림 1〉 요시타케 신스케 책 모음

 

“우리 아이도 이래.” 부모가 서점에서 아이들이 볼 그림책을 고르며 이런 말을 한다면, 출판사와 저자는 흡족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요시타케의 그림책은 여기에 이런 말까지 더하게 한다. “맞아. 나도 어릴 때 그랬지.” 그의 히트작들은 ‘어른을 말려들게 하는 그림책’ 붐을 이루며 새로운 장르를 형성할 기세다.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들까지 곧바로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요시타케는 어린 시절 운동이나 사람 사귀기에 소질이 없는 소극적인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하며 영화에 나오는 공룡, UFO 같은 소품을 만드는 직업을 꿈꾼다. 이어 미술 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데생 시간에 곧바로 교수에게 솜씨가 없다고 야단을 맞았고, 입체 작품 같은 걸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졸업 후 게임회사에 취직했는데 스트레스를 풀려고 작은 스케치 노트에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특장점인 관찰력과 유머 감각을 만들어낸 원천이 된다. 그 스케치를 모아 자비 출판으로 일러스트집을 냈고, 광고 회사의 소품 인형을 만들며 출판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을 병행했다. 그러다 편집자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는다. “직접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처음엔 주저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표현을 그림책에서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설득당한다.

 

요시타케는 도쿄 인근 작은 마을, 어린 시절 부모와 살았던 집에서 부인, 아들 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행동, 심리, 습관 등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육아매체 〈마마픽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10세 이전까지를 ‘마음대로 바보여도 좋은 시간’으로 여긴다. 첫 책을 만들 때 큰아들이 그 나이라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아이가 가진 바보 같은 천연덕과 제멋대로의 상상력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바보 같은 모습이 처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요소가 된다. 내 아이만 저런 건 아니구나.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세계는 뜻밖에 논리적이고 공학적이다. 그는 『이게 정말 나일까』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기계라고 생각하는 상상을 그리고, 〈월간 MOE〉 2017년 4월호에서는 자신의 몸을 로봇에 비유해서 해부도를 그리고 있다. 해부도 아래에는 ‘의지 결정의 프로세스’ 같은 걸 그려놓고 있어, 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데뷔작인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만들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넣어보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사과를 중심으로 모든 방향으로 곁가지를 뻗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를 관찰하며 크기가 달라지면 어떨까, 용도가 달라지면 어떨까, 색이 달라지면 어떨까, 같은 식으로 생각을 펼쳐간다. 그런데 전개는 논리적이지만 디테일은 일상적이다 못해 꼬질꼬질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작가가 오랫동안 스케치북에 그려온 사람들의 특이한 행동들이 그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2018년 4월 〈MOE 40주년 기념 5인전〉에 참여한 대표 그림책 작가 중에서 요시타케는 유일한 남성 작가였다. 그는 초기작 때는 남자 아이의 세계만 그린다는 지적을 받아, 자신도 남자이고 키우는 아이들도 남자 아이라 그렇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여자 아이와 엄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뭐든 될 수 있어』, 딸이 아빠에게 불만을 말하는 『불만이 있어요』를 내놓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가 그림책 작가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희소해진 남성 작가의 입장에서 남자 아이의 머릿속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게 핸디캡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파격적 발상도 그의 가치를 더하게 한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에서는 죽은 할아버지가 천국을 상상해서 써놓은 노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밝고 유머러스한 설정이지만 아주 섬뜩한 장면도 나온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손을 모으고 있다. “할아버지는 어쩌면 죽는 게 무지무지 슬프고, 엄청 무서웠는지도 몰라요.” 그 외로움, 두려움을 천국에 대한 상상으로 지워버리려 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큰 아이는 “지옥의 편이 재미있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 속에 있는 의외의 요소를 저자가 무의식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은 “어쩌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감탄하면서도, 자신들도 자주 그런 공상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 어깨 넘어 책을 보던 어른들도 자신이 어린 시절 엉뚱한 생각에 빠졌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 상상은 주로 어떨 때 이루어지나? 『심심해 심심해』와 같은 상황이다. 아이가 방바닥에 혼자 뒹굴뒹굴하는데 TV도 게임기도 친구도 없을 때다. 요시타케의 책들은 그런 혼자 있는 아이의 마음을 담은 게 많다. 『이게 정말 나일까』의 속표지를 보면 아이가 방과 후에 책가방을 풀다 말고 방바닥에 널브러져 천정을 보는 모습이 나온다. 학교 다니기도 힘들고, 돌아와서 숙제하기도 힘겹다. 이렇게 삶에 지친 상태에서 탈출의 상상력이 기어 나온다.

 

독자들은 피식피식 웃으면서 어떤 안도감을 느낀다. 대충 이렇게 엉뚱하게 생각하고 살아도 괜찮겠네. 옷을 벗지도 입지도 못하는 상태로 지내는 방법도 있네. 요시타케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보통 아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끝내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을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은 비틀거리거나 절망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세계는 이 시대의 아이와 어른들이 공유하는 어떤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대체로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을 긍정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뭔가 좀 이상해 보여도 야단치지 말고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유가 있어요』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코 후비고 다리 떠는 등 엉뚱한 버릇을 버리라고 하자, 아이는 이런저런 창의적인 핑계를 대다가 엄마에게 말한다. “그런데요.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 해버리는 일 없어요?” “글쎄 있겠지? 엄마는 모르겠는데.” 엄마는 그 순간 생각에 잠기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꼰다. 다들 똑같은 거다.

 

오늘날 더욱 정교하고 화려해지는 그림책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요시타케는 느슨한 만화체에 가까운 그림체를 보여준다. 기호적인 표정 묘사, 대사와 지문, 만화적 칸 나눔도 자주 나온다. 어떻게 보면 방만한 그림체로 일상을 표현하는 생화 웹툰과도 통하는 점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머를 담은 어린이 그림책의 정체성을 크게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압도적인 그림 실력이나 섬세하게 감정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과는 다른 방식으로 허허실실하며 독자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깨알 같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다.

 

요시타케는 어른과 아이, 만화와 그림책, 이과적 꼼꼼함과 문과적 방만함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본진은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어른들의 세계도 쉽게 넘어선다. 자신이 누구인지 남에게 알리기를 어려워하는 어른, 생각도 못한 버릇을 가진 어른, 숨어 있기 좋아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과 나누고 싶어 하는 어른… 불완전한 어른들에게 요시타케는 말한다. 우리 모두 자기 안의 아이를 숨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다음엔 뭐가 있으려나 요시타케? 그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주인공의 세대를 바꿔볼 계획이라고 한다. 다양한 연령층, 독자층에 따라서 표현 방법을 달리해볼 생각도 한다. 본격적으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만들어볼 생각도 있다. 그런데 죽음처럼 무거운 걸 다루었느니, 그다음엔 ’시시한 것’도 다루고 싶단다. 그렇게 확장되는 세계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도서 표지 「벗지말걸 그랬어」 일본 원서 もうぬげない


〈그림 2〉 도서 표지 「벗지말걸 그랬어」 일본 원서 もうぬげない

 


<그림 3> 도서표지 「뭐든 될 수 있어」 일본 원서 なつみはなんにでもなれる


〈그림 3〉 도서표지 「뭐든 될 수 있어」 일본 원서 なつみはなんにでもなれる

 


<그림 4> 도서표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일본 원서 ヨチヨチ父


〈그림 4〉 도서표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일본 원서 ヨチヨチ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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