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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8  20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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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마리아스:
세르반테스의 땅에서 다시 태어난 셰익스피어

 

 

 

송병선(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2022. 11.


 

하비에르 마리아스, 현대 스페인 문학의 대표자

 

현대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가 일흔한 살이 되기 일주일 전인 올해 9월 11일에 폐렴에 걸려 마드리드의 키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6편의 소설을 썼고 5편의 단편집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엘 파이스〉 신문의 칼럼니스트였으며,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를 비롯해 윌리엄 포크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애쉬베리 등의 작품을 스페인어로 옮긴 번역가이기도 했다. 또 그는 자기가 ‘출판인’이라고도 말했는데, 그것은 그가 레돈다 왕국(Reino de Redonda)이라고 명명한 출판사를 운영하며 자신이 항상 관심을 보였던 몇몇 작가들의 책을 출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1990년대에 『새하얀 마음』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를 출판하면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의 제목 ‘새하얀 마음’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2막 2장에서 맥베스 부인이 하는 말이며,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리처드 3세』의 5막 3장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마리아스는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으며, 심지어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똑똑하고 현학적이며 강박적이고 지적이며, 확실한 자기 세계를 갖고 있고, 오만하며 때로는 냉담하고 뻔뻔스러우며 복수심에 불탄다. 그런 심리적 배경 때문에 20세기와 21세기 초의 위대한 소설가가 된 그는 셰익스피어의 양아들, 혹은 “세르반테스의 땅에서 다시 태어난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 러시아어를 비롯한 46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8백만 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마리아스의 작품이 대중성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수치이다. 그리고 스페인 비평상(스페인, 1993), 로물로 가예고스 상(베네수엘라, 1995), 페미나 외국문학상(프랑스, 1996), 더블린 국제문학상(아일랜드, 1997), 넬리 작스 문학상(독일, 1997), 몬델로 문학상(이탈리아,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이탈리아, 2000), 미겔 델리베스 문학상(스페인, 2003), 유럽 문학상(오스트리아, 2011), 노니노 국제문학상(이탈리아, 2011), 포르멘토르 국제문학상(스페인, 2013) 등을 받았다. 2008년 4월에는 스페인 왕립학술원 종신회원이 되었다.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존 쿳시는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유럽 최고의 현대 작가 중의 하나”라고 말했으며, 살만 루슈디는 그를 “위대한 작가”라고 평했다. 또한 W. G. 제발트는 “나는 그의 훌륭한 글과 그의 집념, 그리고 정확성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오르한 파묵 역시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 중에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으뜸”이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독일의 저명한 비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생존 작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이다. 그에 버금가는 생존 작가를 언급하라면, 아마도 가르시아 마르케스밖에는 없을 것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은 외국의 유명 문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고, 스페인보다는 외국의 중요한 문학상을 더 많이 받았다. 이것은 아마도 스페인 내에서 그가 여러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스페인 문화부가 수여하는 ‘국가 소설상’의 수상자로 결정되지만, 그는 국가가 개입한 모든 상은 받지 않겠다면서 그 상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스페인에서 마리아스의 작품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문학 그룹에서 문제를 제기하긴 하지만, 마리아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높이 평가받는 작가 중의 하나였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삶과 작품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1951년에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와 작가이자 번역가인 돌로레스 프랑코의 아들로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마리아스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가 공화주의자로 고발되는 바람에 프랑코 독재 체제 아래에서는 대학에서 강의할 수 없었고, 그래서 미국 대학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고, 영국 문학을 전공했다. 1971년에 그는 파리에서 일 년을 보내고서 첫 번째 소설 『늑대의 영토』를 출간했다. 1983년부터 2년 동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미국 보스턴의 웰즐리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 교수로 강의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귀국해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번역학 교수로 일하면서 창작 활동과 번역 작업을 병행했다.

 

첫 작품부터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당대의 스페인 소설을 신랄하게 비판한 목소리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감지되는데, 그는 불확실한 상황과 심리적으로 복잡한 인물을 등장시켜 작품을 전개하면서, 치밀하고 새로운 문학 형식을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삶에 바탕을 두지만, 문화적 지시물이 많이 등장하고, 그것은 대부분 영어권 문학과 관련된다. 첫 번째 소설 『늑대의 영토』는 미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기릴 뿐만 아니라, 윌리엄 포크너와 허먼 멜빌, S. S. 반 다인에 대한 오마주이다. 이 소설은 당시 스페인 문학의 전통, 즉 사실주의와 지역 색채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스페인이 아닌 외국에 자신의 문화적 혈통을 두고서, 프랑코 정권이 외치던 애국주의와 교훈적이고 투쟁적인 문학을 배척했다.

 

남극대륙 탐사를 다루는 『수평선 횡단』(1973)은 예술적 도발자인 조지프 콘래드와 윌리엄 제임스를 전면에 부각하고, 증언의 의무감에서 해방된 창의력이 문학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을 밝힌다. 이런 관점은 『시간의 군주』(1978)에서도 확인된다. 이 작품은 세 개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 그리고 한 편의 희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작가는 이것을 ‘소설’이라고 정의하면서, 진실과 시간의 의미를 풍부한 창의력으로 통합한다. 『세기』(1983)는 프랑코 독재 정권 이후의 가장 흥미로운 소설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마리아스는 실험적 문체를 유지하면서 한 국가의 부침을 이야기한다. 국가 이름은 언급되지 않으며,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경치 묘사로도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내전 묘사로 볼 때 그곳이 스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엄숙하면서도 해학적인 바로크 문체를 사용하면서 1900년에 태어난 모호한 인물의 운명을 통해 20세기 스페인의 영광과 불행을 비유적으로 반추한다.

 

셰익스피어의 존재가 느껴지는 『모든 영혼』(1989)에서도 부드러운 풍자와 사색적인 문체는 반복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보낸 2년이라는 기간을 회고한다. 이 작품도 좋은 평을 받지만,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새하얀 마음』(1992)에 와서야 진정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를 잡는다. 이 소설에서 자신의 과거를 조사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숨겨져 있어야 할 것이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로 그는 스페인 문학 비평상을 탄다. 그리고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1995)는 텔레비전 극작가로 일하는 빅토르 프란세스의 삶에서 지울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끔찍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마리아스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수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은 로물로 가예고스 국제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국제문학상을 받았다.

 

1998년에 마리아스는 자기 자신을 화자로 등장시키는 『시간의 검은 등』을 출간한다. 그는 이 작품이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그래서 가짜 소설이라고 규정한다. 이후 그는 ‘내일 당신 얼굴’이라는 제목의 3부작을 발표한다. 1부는 2002년에 『열병과 투창』이라는 제목으로, 2부는 2004년에 『춤과 꿈』으로, 3부는 2007년에 『독, 그림자 그리고 작별』로 출간된다. ‘내일 당신 얼굴’은 주로 전쟁의 기억을 다루며, 따라서 스페인 내전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반면에 2011년에 발표한 『사랑에 빠지기』에서는 마드리드가 주요 공간으로 설정되고, 세상의 그 어느 곳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다뤄진다. 2014년에는 두 개의 불행과 하나의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진 『나쁜 것은 이렇게 시작한다』를 출간한다. 이 작품은 한 여자의 불행, 어느 ‘더러운 나라(이 나라는 스페인을 지칭하며, 동시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리고 사색적이고 이기적인 관객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2017년에 마리아스는 『베르타 이슬라』를 발표한다. 이 소설에서 베르타 이슬라는 토마스 네빈손이라는 첩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힘이 없다고 말하며, 대부분 우리의 판단 근거를 의문시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첩보 활동과 관련된 드라마나 첩자라는 직업의 도덕적 판단을 다루지 않고, 대신 부정적인 상태, 즉 기다림과 불확실성, 무의미와 무지, 환멸과 자기기만에 관심을 보인다. 그의 마지막 소설은 2021년에 발표한 『토마스 네빈손』으로, 베르타 이슬라의 남편인 토마스 네빈손의 관점에서 새로운 모험을 이야기한다. 토마스 네빈손은 다시 비밀정보부에서 일하면서 스페인의 북서쪽에 있는 도시로 이동한다. 그의 임무는 10년 전에 ETA(바스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테러 단체)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의 테러에 참여했던 스페인계 아일랜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수단과 목적, 커다란 악을 어느 정도 피해야 하는지, 악을 규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사색하면서, “전체와 무, 치열한 삶과 죽음, 공포와 신앙심 사이에는 거의 거리가 없다.”라고 지적한다. 이외에도 마리아스는 단편집 『여자들이 잠잘 때』(1990)와 『내가 죽을 운명이었을 때』(1996)를 비롯해 신문 칼럼 모음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철학적이고 명상적이며 심오하지만, 풍자와 유머가 담긴 작품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은 대부분 철학적이거나 명상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작중 인물들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서사적 일탈, 즉 말하고 설명하다가 옆길로 새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특징이 마리아스 문학의 변치 않는 신조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그는 뜻하지 않거나 황당한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작중 인물들이 행동하게 한다. 그러고는 가능한 결과, 즉 각자의 행동이 초래할 윤리적 반향을 아주 정밀하게 살핀다. 또한 그는 한 인물의 죽음과 그 결과 그리고 그의 죽음과 공범 관계를 이루는 사건과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비판력이 상실되어 일어나는 것에도 집중한다.

 

그의 작품은 심각하고 진지하며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지만, 작가는 익살과 유머와 풍자를 통해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의 작품처럼 마리아스의 실제 삶에서도 그의 유머러스함을 엿볼 수 있는데, 바로 마리아스가 죽는 날까지 자신이 레돈다 왕국의 왕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돈다 왕국이 무엇일까? 영국의 은행가 매슈 다우디 실은 첫째 아들이자 이후 환상 소설가가 되는 매슈 핍 실이 태어난 해인 1865년에 영국 연방의 앤티가 바부다에 있는 바를로벤투 제도의 무인도, 레돈다 섬을 사서 왕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고 나서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레돈다 왕의 작위를 간원했고, 여왕은 가공의 왕의 칭호를 주었다.

 

이후 작가였던 매슈 핍 실은 군주 칭호를 동료 작가인 존 고스워스에게 넘겨주었고, 고스워스는 작가 존 윈 타이슨에게 양도했는데, 그는 1990년대에 왕위를 포기하면서 모든 권한을 하비에르 마리아스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은 마리아스가 고스워스를 『모든 영혼』의 등장인물로 포함한 것에 대한 포상이었다. 마리아스는 『시간의 검은 등』에서 자기가 어떻게 레돈다 왕국의 왕이 되었는지 설명한다. 그 섬을 통치하도록 선택된 하비에르 1세는 귀족 칭호를 예술과 관련된 여러 사람에게 부여했다. 그렇게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전율’의 공작,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긴 섬’의 공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메갈로폴리스’의 공작, 조지 스타이너는 ‘지로나’의 공작, 움베르토 에코는 ‘전날의 섬’의 공작, 밀란 쿤데라는 ‘아마코드’의 공작 그리고 W.G. 제발트는 ‘현기증’의 공작 작위를 받는다.

 

마리아스가 이 왕국의 왕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사실은 아마도 현실의 불확실성 혹은 믿을 수 없음과 관련해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떤 정보도 직접적이지 않기에 항상 의심의 여지를 남기며, 따라서 진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실은 절대 선명하지 않으며, 다른 수많은 것과 뒤엉켜 있고, 그 어떤 작중 인물에 대해서도 분명한 윤리적 판단을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리아스는 풍자와 해학을 이용해 이런 현실의 불확실성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의 작중 인물은 자기가 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을 추측하고 해석하면서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진지하면서도 가볍게 다룬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유머는 올해 5월에 있었던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의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경우 일어나야만 할 일은 대부분 이미 일어났어요. 난 불평할 수 없어요. 행운아였거든요.” 그는 자기 작품들이 문학사에 남을 것이며, 수많은 도서관과 셀 수도 없이 많은 독자의 상상 속에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덧붙였다. “사후의 명성은 오늘날 아무 의미도 없어요. 수많은 작가가 죽자마자 즉시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니까요.”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전 세계가 슬픔에 빠져 애도하는 걸 보면, 그건 그의 경우가 아닐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송병선

송병선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현재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이, 옮긴 책으로 『픽션들』, 『알레프』, 『거미여인의 키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사랑에 빠지기』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avionsun@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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