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36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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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출판사 인터뷰]
혜화1117 이현화 대표

“‘웅덩이’를 깊이 파는 출판사가 되고 싶어요”

 

 

 

백창민(북헌터 대표)

 

2022. 9.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1인 출판사 인터뷰]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혜화1117’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출판사가 있다. 한옥에 자리한 혜화1117은 이현화 대표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다. 인문교양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18권을 출간한 이현화 대표는 2권의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 노동자, 동시에 작가이기도 한 이현화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출판사 이름이 외우기 쉽지 않습니다. 출판사 이름에 얽힌 ‘일화’가 있나요? 지금은 바로잡혔지만, 저희 동네도서관에서는 한때 출판사 이름을 ‘혜화0007’로 표기하기도 했습니다.

 

‘혜화114’, ‘혜화119’, ‘혜화112’로 말씀하는 분도 있어요. 심지어 혜화1117에서 책을 출간한 저자 중에도 출판사 이름을 헷갈려 하는 분이 계세요. 저자 분과 우리끼리 얘기할 때는 ‘혜화출판사’라고 편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낯설고 이상한 출판사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혜화1117을 잘 아는 분도 있지만, 모르는 분도 있을 겁니다. 출판사 ‘혜화1117’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인스타그램 혜화1117 계정에 이렇게 썼어요. “책 중심 문화공간 혜화1117. 1936년 지어진 오래된 한옥을 고쳐 지은 곳에서 주로 인문교양·문화예술 분야 책을 만듭니다. 한옥을 고쳐 짓는 과정은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혜화1117, 2019년)로, 작은 출판사를 차린 과정은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유유출판사, 2020년)으로 출간했습니다.” 두 책으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직접 쓰신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의 부제(副題)는 “선수 편집자에서 초짜 대표로”입니다. 창업 3년 무렵에 그 책을 쓰셨고, 이제 창업한 지 만 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초짜’ 딱지를 떼셨나요?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에도 썼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보다 확실히 ‘경험’이 쌓였고, 익숙해진 부분도 있긴 해요. 그러니 아주 초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벽돌 깨기’처럼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3년이 지나면 또 새로운 미션이 주어져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고,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죠. 그러면서 여전히 헤매는 건 헤매고 있으니 ‘초짜’로부터 벗어났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여전히 ‘선수 편집자’이시잖아요.

 

‘선수 편집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몇 년 동안 책을 만들어왔다’는 것도 자꾸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세울 게 ‘세월’밖에 없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요. 그리고 오래 일했다는 것이 편집자로서의 능력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럼에도 지난 세월이 제게 의미가 있는 건, 제가 여전히 제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오랜 시간 책을 만들어 왔는데도 여전히 이 일이 참 좋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1936년 지은 작은 한옥을 수리해서, 이곳에 출판사를 창업했습니다. ‘한옥 수리기’를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로 펴내기도 하셨고요. ‘한옥에 자리한 1인 출판사’라는 ‘스토리’를 먼저 만들고, ‘창업’하신 셈인데요.

 

‘한옥을 짓고 출판사를 만들자’ 이런 스토리를 먼저 만들고 창업을 한 건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전략적으로 시작하진 않았어요. 오래된 한옥을 사게 된 뒤, 이 집에서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출판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계획적으로 했다기보다 뜻하지 않게 ‘사고’처럼 시작한 일이 출판사 창업이에요.

 

혜화1117 출판사의 요람이 된 혜화동 한옥.

혜화1117 출판사의 요람이 된 혜화동 한옥. 한옥을 수리하는 과정은 『나의 집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라는 책으로 탄생했다.

 

 

한옥에서 일과 주거를 함께 하는 ‘직주일체(職住一體)’의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직주일체’ 삶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일과 여가의 ‘경계’가 완전히 해제된 삶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 시간을 갖는다는 경계가 없거든요. 이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이 일이기도 하고, 일이 아니기도 해요. 이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이 그냥 ‘나’죠. 저는 이 상태가 좋아요.

 

‘단점’이라면 직주일체여서라기보다 공간이 작아서 생기는 아쉬움이 있어요. 한옥이 크지 않다 보니, 외부 손님을 만나야 할 때 남편이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거든요.

 

 

 

1인 출판사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1인 출판사를 해서 좋은 점은 ‘제 자신을 긍정하게 됐다는 점’이에요. 직장을 다닐 때는 일에서 한계를 느끼면, 무조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 또는 ‘좌절’이라고 생각했어요. ‘다그치면서 사는 삶’이었죠.

 

1인 출판사를 하면서는, 못하는 건 못하는 대로 저를 받아들이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나’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제가 질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는 한계를 만나도 좌절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나를 더 이상 들볶지 않는 삶이라고 할까요.

 

 

 

1인 출판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주변에 ‘동료가 없다’라는 점이에요. 출판사를 시작한 뒤로 함께 일하는 분들이 더 이상 ‘동료’일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죠.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같이 일한 사람과 ‘함께 걱정’을 하기보다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기에 그 과정에서 ‘연대 책임’을 요구할 수 없어요. 제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죠. ‘대표’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와 책임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2022년 7월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를 출간하면서 18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출간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한 권만 꼽는다면, 어떤 책인가요?

 

모든 책이 각별하지만, 첫 책인 『외국어 전파담』을 꼽지 않을 수 없어요. 이 책은 미국인인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선생이 한국어로 쓴 책이에요. 혜화1117을 세워준 책이고, 저를 살린 책이죠. 매출이 더 큰 책도 있지만, 『외국어 전파담』을 가장 먼저 꼽겠습니다. (웃음)

 

이 책은 제가 이전에 다닌 출판사에서 기획을 했던 책인데,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서 못 만들 수도 있었어요. 회사를 그만둘 때 파우저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저랑 만들고 싶다고 하셔서 이전 출판사와는 출간 계약을 해지했지요. 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그렇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제가 출판사를 차리게 되어 선생님께 출간과 관련해 의논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이현화 씨와 책을 내고 싶다’라고 또 말씀해주셨어요. 물론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그만큼 부담도 컸어요. 크고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도 있었는데, 신생 출판사에 기회를 주신 거니까요.

 

출판사를 시작할 때 『외국어 전파담』, 『내 고양이 박먼지』,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이렇게 원고 세 개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 가운데 어떤 원고를 ‘첫 책’으로 낼지, 주변에 조언을 많이 구했죠. 대부분 『내 고양이 박먼지』가 가장 많이 나갈 거라고 우선순위로 꼽았어요. 하지만 저는 『외국어 전파담』을 ‘첫 책’으로 선택했어요. 안 팔리더라도 어쩐지 혜화1117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책을 첫 책으로 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외국어 전파담』은 많이 팔렸고, 주목도 많이 받았어요. 이 책으로 혜화1117을 알았다는 독자 분들도 많고요. 혜화1117의 물질적 기반과 대외적 이미지를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워주었죠. 파우저 선생님이 주신 신뢰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게 되어, 저로서는 잊을 수 없는 책이에요.

 

혜화1117 첫 책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첫 책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 파우저와 함께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외국어 학습담』을 펴낸 혜화1117은 그의 신작을 준비 중이다.

 

 

혜화1117 출판사의 ‘핵심 독자’는 누구인가요?

 

‘핵심 독자’라기보다 늘 염두에 두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한옥을 고쳐 짓는 동안 그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와 네이버 블로그에 동시 연재했거든요(그걸 바탕으로 다시 쓴 원고로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를 펴냈지요.). 그때부터 ‘응원’해주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이 제가 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을 냈다고 하니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죠. 대형서점에 가서 책도 사주시고, 어떤 분은 난생 처음으로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해봤다고도 하셨어요. 집 짓고 책 만드느라 애썼다고 이런저런 선물도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혜화1117 초창기에는 그분들이 가장 먼저 아셨으면 해서 모든 소식을 네이버 블로그에 먼저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하니까 어떤 분들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그분들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혜화1117 책을 보실 때마다 ‘이 출판사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응원했던 곳인데 꾸준히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책을 만들 때마다 그분들을 늘 떠올리고 있어요. 말하자면 그분들이 바로 혜화1117의 ‘핵심 독자’시죠. 늘 감사한 마음, 간직하고 있어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또는 주위에서 말하는 혜화1117만의 ‘차별적인 경쟁력’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잘 봐주셔서 그렇지, ‘차별적인 경쟁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정말 없어요. 다만 간혹 주변에서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라는 말을 들어요. 그럼 저는 ‘정성을 기울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요’라고 답하곤 해요. (웃음) 사실 웃픈 이야기죠.

 

책을 만들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어요.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으니 다방면으로 ‘홍보’를 위해 애를 쓰긴 하지만,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하는 ‘광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로 내키지도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한 권 한 권 정말 열심히, 정성껏 만들 수밖에 없어요.

 

한편으로는 이 일이 정말 재미가 있어요. 한 번 더 볼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걸 구현해가다 보면 더 맘에 드는 책이 되어가는 게 확실하니까요. 불확실한 가능성에 기대기보다는 확실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출간한 도서가 미술사에 대한 책부터 고양이, 호텔, 동네책방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분야를 ‘전문화’해서 출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인문교양, 문화예술, 에세이(비소설), 이렇게 세 분야를 염두에 뒀어요. 지금은 에세이 분야 출간 비중이 줄었고, 인문교양과 문화예술 분야 중심이 되었죠.

 

인문교양 분야는 ‘도시’, ‘공간’, ‘문화 접점’을 다룬 책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문화예술 분야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근현대 시기를 아우르고 있고요. 처음에 에세이 분야를 염두에 둔 건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기대한 건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획과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출판사를 하면서 ‘웅덩이를 깊이 파면 물은 저절로 고인다’라는 말을 계속 생각해요. 관련 분야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 그 분야의 책들이 꾸준히 이어져요. 어떤 분야와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뤄야겠다고 ‘전략적’으로 사고했다기보다, 하다 보니 길이 길을 만든 것 같아요. 혜화1117은 특히 저자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국내서 위주로 책을 내고 있고,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이나 최열 선생님처럼 한 저자의 책을 두세 권 계속해서 만들고 있으니까요. 두 분 말고도 앞으로의 출간 목록도 거의 다 혜화1117에서 한 권씩 책을 낸 저자분들의 다음 책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많은 분이 혜화1117의 ‘저자 섭외’를 궁금해 하실 듯합니다. 저자는 어떻게 섭외하시나요? 저자 섭외에 대한 대표님만의 ‘영업 비결’을 공개해 주신다면?

 

처음에는 예전에 인연이 있던 저자 분들의 원고로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하는 1인 출판사에서 국내서 원고를 입수하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감사한 일이죠. 앞서 언급한 파우저 선생님, 박정은 작가님(『내 고양이 박먼지』), 최열 선생님(『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세 분이 원고를 내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세 권을 만들었고, 그 후로 11권 정도까지는 예전의 인연에 더해 같은 저자와 두세 권씩 책을 연달아 내는 것으로 이어졌어요. 12권째부터 혜화1117에서 출간한 책을 바탕으로 주위에서 새로운 저자 분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그분들 책을 내기 시작했죠(『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백 년 전 영국, 조선을 만나다』 등). 그러면서도 또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처럼 아주 오래전 인연이 책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어요.

 

‘영업 비결’은 아니지만 책을 만들 때 저자 분들이 괴로울 정도로, 많은 걸 요구하고 모든 걸 의논하는 편이에요. 책을 많이 파는 것에도 관심이 있지만, 저는 책을 통해 저자에게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이 있거든요. 책마다 꿈을 품어요. 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저자가 되기를 바랄 때도 있고, 활동하는 분야에서 대내외적으로 변별력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기를 바랄 때도 있어요.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그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되기를 바라고, 연배가 있는 분들께는 대표작이 되기를 꿈꾸죠.

 

책마다 품은 꿈에 다가가기 위해 이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많이 고민해요. 출판평론가 한미화 선생님 책을 ‘동네책방 탐방기’가 아니라 서점 업계의 깊숙한 이야기를 담은 『동네책방 생존탐구』로 만든 것이나, 한이경 대표님 책을 ‘해외에서 성공한 여성의 스토리’가 아닌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으로 출간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어요. 저자가 가진 것을 통해 책을 만들지만, 그 책을 통해 저자에게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출간된 책이 세상과 어떻게 조응하는지가 제 관심사예요. 그렇다보니 저자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그분들 또한 제가 꿈꾸는 걸 알고 계시니까 책이 나온 뒤에는 고생한 건 잊고 서로 고마운 마음만 남는 것 같아요.

 

 

 

책의 ‘물성’을 살린 ‘고급한 책 만들기’에 능해 보입니다. ‘고급한 책 만들기’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제작비’ 부담이 크지는 않나요?

 

그래서 저희 ‘책값’이 비싼 편이죠. (웃음) 혜화1117은 ‘고정비’가 낮은 편이라 혜화1117의 손익분기 부수도 적긴 합니다. 이 부분이 ‘경쟁력’일 수는 있겠네요.

 

혜화1117이 펴낸 책들.

혜화1117이 펴낸 책들. 2018년부터 한 해 3~4종씩 지금까지 18종을 펴냈다.

 

 

혜화1117의 ‘고정비’가 낮을 수 있는 비결은 뭐죠?

 

우선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사무실 임대료 및 관리비가 없죠. 직원이 없으니 인건비도 없고요. 외주 비용도 거의 없어요. 제작비, 디자인비, 저자 인세가 다입니다.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에도 썼지만, 혜화1117은 창업자금 1천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1천만 원을 다 쓰면 출판사를 접고, 다시 취업할 생각이었죠. 창업 2년차 목표는 회사 통장에 1천만 원을 계속 유지하는 거였어요. 1천만 원은 다음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는 최소 비용이죠. 다행히 1천만 원 잔고는 계속 유지됐어요. 3년차 목표는 2천만 원 잔고 유지였어요. 감사하게도 이 목표도 유지하고 있어요. 3천만 원까지 올리는 것이 다음 목표이긴 합니다. (웃음)

 

월말에 나갈 돈 다 나가고 난 뒤 이 잔고만 유지되면, 저는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한 종 한 종 개별적으로 손익계산을 하기가 오히려 어렵더라고요. 물론 ‘제작비’는 늘 부담이죠. 잔고를 유지하는 선에서 집행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책 만들기 전에 제작 대행사와 늘 상의하고 고민합니다. 그렇다고 책의 퀄리티를 포기하면서까지 제작비를 아끼지는 않아요. 어쩌면 1년에 3~4종을 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혜화1117 책 앞에 실리는 「일러두기」는 일러두기의 ‘교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 뒤에는 책 만든 과정을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싣습니다. 특히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 같은 ‘출간일지’는 다른 출판사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인데요. 책에 ‘출간일지’를 따로 싣는 이유가 있나요?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은 독자들께서 편집자의 역할과 그 존재의 의미를 떠올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저자만이 아니라 편집자의 시간도 함께 쌓여 책이라는 축적물이 탄생하죠. 하지만 편집자의 시간은 휘발되곤 하니, 그 흔적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종의 출간일지를 싣게 되었어요. 아울러 증쇄할 때마다 책이 출간 이후 세상에서 독자들과 만나는 풍경도 보태고 있는데, 그 역시 ‘책의 역사’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이 책을 둘러싼 날들의 풍경」에 대한 저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낯설어 하셨지만 대부분 재미있어 하셨어요. 4~5권 출간된 이후에는 혜화1117의 ‘시그니처’가 됐어요. 딱 한 분이 ‘뺐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집필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어요. 하지만 설득을 했고, 결국 허락해 주셔서 실을 수 있었죠. 책이 나온 뒤 주변에서 재미있어 한다며 오히려 흡족해 하셨어요.

 

 

 

1인 출판사는 ‘협업’ 시스템을 잘 마련해야 할 듯합니다. ‘외주’는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디자이너가 밖에 있고, 제작은 대행사에 맡기고 있어요. 간혹 일러스트나 사진 작업 등을 부탁하는 분들이 있고, 기획부터 교정까지는 제가 합니다.

 

 

 

외주 협력사와 함께 일할 때 ‘원칙’이 있다면요?

 

편집 디자이너와 작성한 계약서에 “서로의 즐거운 노동을 위해 노력한다”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유명한 저자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는 기회 같은, 큰 출판사와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제가 드리지는 못하죠. 그 대신 ‘즐거운 노동’을 위해 노력하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즐거운 노동’이 ‘편안한 노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저랑 일하는 디자이너는 정말 고생이 극심합니다. 늘 고맙죠. 대신 같이 일하면서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같이 작업하고 있는 분은 김명선 씨인데, 저희 책 18권 중 13권을 함께 했어요. 같이 만들어오면서 그분은 디자이너로, 저는 편집자로 각각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지속적으로 쭉 함께 일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작 대행사는 ‘제이오’라는 곳인데, 소개로 만났어요. 출판사 운영 초반에는 한동안 어음으로 제작비를 지급했었죠. 그렇게 하는 거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신생 출판사라 배려해주신 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로부터 배려를 받았다는 걸 깨달았죠. 그 뒤로 잠시 유예 기간이 필요했지만 이후로는 현금으로 지급하기 시작했어요.

 

원칙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만, 저자 분들 인세를 비롯해 디자이너나 다른 작업자들께는 책 출간 즉시 비용을 입금해요. 처음에는 출간 후 다음 달에 지급했는데, 얼마 뒤부터는 ‘출간 즉시 입금’을 원칙으로 삼았어요. 작은 출판사와 일한다고 작업비 문제로 스트레스를 드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아울러 작업비를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올려드리는 것도 제 보람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출판사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죠. 조금 더 안정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이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요.

 

혜화1117 야경.

혜화1117 야경. 1936년에 지어진, 올해로 86년을 맞은 한옥이다.

 

 

혜화1117이 ‘마케팅’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지금은 ‘마케팅 무용론(無用論)’에 빠져 있기도 해요. 뭘 해야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SNS에 책 관련 이야기를 열심히 올려요. 신간이 나오면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온라인서점 담당자들을 열심히 만나고요.

 

저는 동네책방과의 소통을 매우 애틋하게 여기는 편이라서, 새 책이 나오면 동네책방에 표지와 보도자료 등을 첨부한 안내 메일을 먼저 보내요. 300여 군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온라인서점보다 먼저 신간 정보를 보내는 것이 동네책방 분들께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 마음은 이분들께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요. 나름의 존중의 표시인 셈이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동네책방에 저자와의 만남을 제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희 책이 동네책방에서 그리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라 서로 민망할 때도 많아요. (웃음)

 

비용이 드는 광고는 거의 하지 않아요. 서평단을 통한 댓글이나 리뷰도 유도하지 않죠. 그 덕분에 혜화1117 책에 대한 모든 리뷰는 독자 분들이 자발적으로 올리신 것으로 믿고 보셔도 됩니다. 몇 개 없다는 게 아쉽지만요. (웃음) 분야마다 이른바 명망가라는 분들께 책을 보내드리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안면이 없는 분들께 그냥 보내드리는 경우도 거의 없어요. ‘효과가 분명치 않아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들면 고객에게 가닿을 거라는 ‘진정성 마케팅’이 혜화1117 마케팅의 지향일 수도 있겠네요.

 

지향이 없다는 게 정확할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모든 책이 다 많이 팔리는 것이 맞나 싶기도 해요.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을 당신 SNS에 언급해주셨을 땐 정말 깜짝 놀랐어요. 기쁘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이 아닐까 무섭기도 했어요. 로또 당첨이 늘 좋은 결과로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책 한 권을 만들어서 손익분기 부수를 넘기고 조금만 더 팔리면 만족하는 편이에요. 그 정도가 제게는 딱 좋은 것 같아요. 물론 그조차도 결코 쉽지는 않죠.

 

 

 

앞으로도 계속 ‘1인 출판사’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실 건가요? 직원을 뽑는다거나 규모를 키울 계획은 없으신가요?

 

회사 규모를 늘리는 것이 ‘딜레마’이긴 해요. 혼자 일할 때의 평화로움과 고요함, 온전히 책에 집중하고 저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죠. 계산을 해보니까 직원을 한 사람 더 뽑으면 신간 종수를 2배 이상 늘려야 하더라고요. 그러면 제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이 상태로 계속 끌고 갈 수 있느냐 하면 ‘대안’이 필요하긴 해요. 그래서 지난해(2021년) 직원을 뽑아 함께 일하기 위해, 사무실 공간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게 또 쉽지가 않더라고요. 직원을 뽑는다면 편집자일 텐데 사무실을 새로 내거나 지금 이 한옥에서 같이 일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아울러 ‘한 뼘씩 자라는 출판사’를 꿈꾸는 혜화1117의 ‘성장 전략’이 궁금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분야에 집중하다 보면 물이 고이지 않을까요? 저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웅덩이’를 깊이 파는 출판사로 각인되고 싶어요.

 

 

 

많은 출판사가 혜화1117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혜화1117이 눈여겨보는 출판사가 있다면?

 

신생 출판사보다는 ‘푸른역사’를 꼽고 싶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정말 잘 해오셨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시기를 바라고 있어요. 한 사람의 편집자가 자신의 업을 지속해 나가는 최선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는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님의 모습이 귀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출판사 창업 이전에 ‘책방’ 운영을 오랫동안 고려하셨는데요. 그 꿈은 이제 완전히 접으셨나요?

 

한때 책방 운영을 꿈꿨지만, ‘책방’을 하겠다는 꿈은 완전히 접었어요. 제가 꿈꿨던 모습의 책방이 곳곳에 많이 생기기도 해서 더 잘할 자신도 없어요. (웃음)

 

 

 

‘출판’과 ‘집필’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집필할 책도 ‘구상’하고 있나요?

 

내년이면 혜화1117을 시작한 지 만 5년이 되는데, 그동안 제가 겪고 느낀 걸 담아볼까 해요. 만 3년 무렵에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냈는데, 그 책을 읽은 분들 중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넘사벽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창업한 사례다’라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저처럼 편집만 했던 사람이 출판사를 시작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참고하시라는 의미였는데, 어떤 분께는 제 이력이 참고하는 데 방해가 된 것 같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염려로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주 부족하지도 않은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저 역시 불안의 강을 여전히 건너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을 어떻게 해왔는지 구체적으로 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9월 말까지 말과활 아카데미에서 5주 일정으로 출판 관련 강연을 하는데, 그 시간도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듯해요.

 

그동안 펴낸 두 권의 책,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와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 꽤 커요. 2023년 상반기에 새 책을 낸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혜화1117 대표이자 편집자, 작가이기도 한 이현화 대표.

혜화1117 대표이자 편집자, 작가이기도 한 이현화 대표. 2023년에 출간될 세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이 자리를 빌려 혜화1117이 앞으로 선보일 ‘신작’ 라인업을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 민중미술』(가제)은 우리나라 민중미술 분야의 ‘맏아들’ 같은 책이 될 거예요.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의 저자 최지혜 선생님이 준비 중인 『경성 백화점 신장 개업』(가제)은 1920~30년대 ‘가상의 백화점’을 설정해서 당시 실제로 백화점에서 각 층마다 판매했던 물건 중 근대 조선에 새로 들어오기 시작한 일상용품들에 관해 설명하는 박물지 같은 책이에요.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의 도시에 대한 신작도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최초로 이중섭 화가에 대해 쓴 책을 번역해서 낼 예정이에요. 혜화1117의 첫 번째 번역서인 셈이죠.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낸 한이경 대표님 신작도 준비 중이고, 이 밖에도 2024년까지 여러 권의 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현화 대표님이 출간을 ‘꿈꾸는 책’이 있다면요?

 

다른 책의 ‘참고문헌’으로 많이 활용되는 책, 어떤 주제를 ‘총집성(總集成)’한 책, 그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을 가급적 많이 만들고 싶어요.

 

 

 

이 인터뷰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웹진 〈출판N〉에 실릴 예정입니다. 1인 출판사 ‘대표’이자 ‘노동자’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세종도서 선정을 비롯해 여러 지원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는데, 18권을 내는 동안 단 한 권도 선정이 안 됐어요. 왜 그러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웃음) ‘진흥원은 왜 나만 미워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니까요? 혜화1117 출판사에도 ‘관심’ 가져주세요. (웃음)

 

 

 

혜화1117 이현화 대표는 1994년부터 거의 쭉 출판편집자로 살았다. 인문교양서와 문화예술서를 주로 출간하는 여러 출판사에 다니며 관련 분야의 책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2017년 6월 오래되고 낡은 한옥 한 채와 인연이 닿아 이 집에서 출판사를 열기로 결심, 2018년 4월부터 출판사 ‘혜화1117’ 대표가 되었다. 지금은 약 일 년 반 동안 고쳐 지은 한옥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혜화1117을 통해 18권의 책을 펴냈고, 『나의 집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와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을 출간했다.
blueseahy0802@gmail.com
https://www.facebook.com/ehyehwa1117

 

백창민

백창민 북헌터 대표

책을 좋아해 ‘책사냥꾼’이 되었다. 전자책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출판 분야를 넘나들며 일했다. 사서였던 아내와 함께,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와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책생태계를 중심으로 글쓰기, 말하기, 만들기를 하고 있다.
bookhunter72@gmail.com
https://www.facebook.com/book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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