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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7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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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학출판을 알아가는 잔잔한 시간
-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2020. 12.


 

화려하진 않더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을 출간하는 것은 출판업의 사명이다. 대학출판은 오랜 시간 학술·교양서적을 펴내며 그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왔으며, 이는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상업출판과 마찬가지로 대학출판 역시 불황을 피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대학출판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30년간 대학출판부에서 근무하며 사단법인 한국대학출판협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김정규 사무국장이 있다. 대학출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까지,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은 대학출판의 산증인, 김 국장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출판N〉에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국장님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1980년대 중반 출판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즐겁게 일하고 있는 김정규입니다. 아동물, 동양고전, 교양서, 대학교재, 전문학술서, 사전에 이르기까지 편집자로서 폭넓은 장르를 경험했고, 작년부터는 〈KNOU위클리〉(방송대학보) 편집을 맡고 있습니다.
출간 종수로 보자면 대학출판은 출판계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마이너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출판N〉 인터뷰를 통해 대학출판에 대해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하실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방송대 출판문화원에서 오랫동안 일해 오셨는데요, 그곳에서는 주로 어떤 책을 만드나요?

 

 

제가 근무하는 방송대 출판문화원의 경우에는 연간 약 150종의 신간을 내는데, 대부분 대학교재입니다. 방송대는 23개 학과 커리큘럼에 필요한 700여 과목의 교재를 거의 다 자체 개발해서 사용합니다. 그 외에 전문학술서와 교양서 신간 비중은 20% 정도죠. 연매출은 약 130억 원입니다.
방송대 교재 중에는 『중세국어연습』 같은 독특한 것도 있습니다. 불문학과나 농학과 교재는 전국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됩니다. 시장이 좁아 그 분야 전문출판사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았기 때문이죠. 특히 올 1학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전국 30여 개 대학에 방송대 강의를 무상 제공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재 판매량이 전년보다 약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방송대는 원격 평생고등교육기관입니다. 학생 분포가 10대부터 80대까지 이르죠. 다양한 지적 욕구가 산재합니다. 대학교재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보고 패밀리 브랜드(임프린트)를 만들었습니다. 2004년에 교양도서 브랜드 ‘지식의 날개’를, 2006년에 학술도서 브랜드 ‘에피스테메’를 론칭해서 나름대로 도서 목록과 브랜드파워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좌측에서부터 순서대로) 현실적 정의론의 대가 아마르티아 센의 역작 『정의의 아이디어』(지식의날개, 2019),스테디셀러로 4만부가 판매된 토드 휘태커의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지식의날개, 2015),천재 수학자 푸앵 카레의 3부작 중 하나인 『과학과 가설』(에피스테메, 2014), 세계적인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 연구의 결정판, 『작물의 고향』(에피스테메, 2020)


(좌측에서부터 순서대로) 현실적 정의론의 대가 아마르티아 센의 역작 『정의의 아이디어』(지식의날개, 2019),
스테디셀러로 4만부가 판매된 토드 휘태커의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지식의날개, 2015),
천재 수학자 푸앵 카레의 3부작 중 하나인 『과학과 가설』(에피스테메, 2014),
세계적인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 연구의 결정판, 『작물의 고향』(에피스테메, 2020)

 

 

 

출판계에도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는데, 대학출판부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떠한 계기로 대학출판부를 선택하셨나요?

 

 

초기부터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대학출판부로 온 것은 아닙니다. 편집 경력 5년차로 동양고전과 한국학 도서를 내던 출판사에서 근무할 때 이직 기회가 왔어요. 계몽사와 방송대 출판부였죠. 계몽사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아동물 쪽에서는 매우 잘 나가던 곳이었고, 방송대는 제가 그 존재도 잘 몰랐던 곳이었죠. 그런데 소개해 주시는 분이 창작에 관심이 있다는 제 말에, 야근을 덜 하는 대학출판부로 가서 자기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방송대에 와서 보니 일이 많았어요. 서울대 출판부에 의존하던 편집 조직을 독립시키는 과정이었고, 컴퓨터 조판이 시작되던 때라 기술적으로도 격변기였습니다. 거기다가 대학교재와 학술서 편집기술도 새로 배워야 했죠. 야근 많이 했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출판부에서 근무하시며 대학출판부의 발전에 기여하여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하셨는데요.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배울 게 많았어요. 아니, 계속 이어졌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1991년에 방송대 출판부에 입사했는데, 전산사식이 퇴조하면서 컴퓨터 조판이 도입되었습니다. 1994년쯤에 쿽익스프레스3.3과 포토샵3.0을 배웠죠. 교정자가 편집디자인에 눈을 뜨게 됐고, 방송대 교재의 컬러화 작업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 살이 코앞이더라고요.
그때 직업에 대한 권태기가 왔어요. 편집자는 다른 직업에 비해 권태감이 덜하죠. 만드는 책마다 다른 세상을 만나니까요. 그런데 대학교재는 조금 지겹더라고요. 전업을 할까 하다가 공부를 더 해보기로 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5학기 동안 올빼미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해보니 무역학과 출신 편집자가 답답해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이었습니다. 출판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실하게 넓어졌고, 자신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마침 시간강사 자리를 소개받아 한 7~8년 정도 대학 강단에도 섰죠.
답답한 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남의 글만 고치다 보니 내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아동문학 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계셔서 도움을 받아 등단을 했죠. 내 글을 쓰다 보니, 문장의 구조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죠. 이후부터는 필자들이 마감을 안 지켜도 훨씬 너그럽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또한 개인별 문체의 특성에 맞게 교열을 해줬더니 저를 선호하는 필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요약하자면, 직업인으로서 어느 지점에 도달하려면 계속 공부하고 수련을 해야 한다는 거죠.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만, 환경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호기심을 자극해서 동기부여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출판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듯 대학출판부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대학출판의 본령은 학술출판입니다. 소속 대학 교수님들의 연구 업적을 정리하여 출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대학출판부의 책은 학술서가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약 12,000종에 달하던 신간 종수가 2005년을 기점으로 하여 점점 줄고 있고, 출판부서도 통폐합되어 20개 가까이 줄었어요. 직원 수도 10명 이상인 곳이 10%에 불과하고, 4명 이하가 40%를 차지합니다. 행정직원들이 순환 근무하는 조직도 많고요. 한마디로 영세한 거죠.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전문 편집자나 마케터 양성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학 경영자들이 출판부를 수익사업부서로 인식하는 데서 온다고 봐요. 학술서 내서 안 팔리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신간을 못 내는 거죠. 일부 대학이 출판지원금 제도를 두고 있긴 합니다만 역부족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교수들의 개인주의입니다. 팔릴 만한 것은 외부 출판사에서 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소속 대학의 출판부에서 내려고 하죠.
외부환경으로는 대학 및 국공립 도서관의 학술서 구입이 줄고 있다는 겁니다. 아주 결정적이죠. 얼마 전 대한민국학술원이 우수도서 예산을 줄인다는 발표가 났던데, 교육부마저 학술출판에 등을 돌리는 처사라고 봅니다.

 

 

 

위 질문에 이어서 대학출판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대학 경영진의 인식 개선이 급선무이긴 한데, 직원들의 노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지요. 해서 협회 차원에서 몇 가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영세성이라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것으로, 유통과 홍보, 교육에 관한 전략입니다.
1970년대 독일에서, 전문성을 갖춘 소형 출판사들이 거대출판사 위주의 출판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만든 것이 우테베(utb)입니다. 일종의 유통연합 브랜드인데, 지금은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의 중소형 학술출판사 15곳이 참여하고 있고, 독일의 대표적인 학술출판사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대학출판협회가 회원교 27개교의 도서를 모아서 서점이나 기관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형태가 이와 유사한 것입니다. 회원교는 유통관리 업무를 줄일 수 있고, 독자들은 대학출판부 책을 한 곳에서 다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자책 유통도 3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홍보를 위해서는 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우수도서’ 목록을 만들어 언론과 서점, 도서관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시작했으니까 올해가 4년째입니다. 실무자 교육은 대학출판, 학술출판에 최적화된 실무지식 위주로 이루어집니다. 특화된 대학출판인을 양성하겠다는 의도죠. 실무자 격려 차원에서는 매년 ‘올해의 대학출판인상’ 대상자 4~5인을 선정해 포상을 실시합니다.

 

 

 

일반 출판사와는 다르게 대학출판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새로 기획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대학출판인들은 책을 소비콘텐츠로 보지 않고 교육매체, 즉 생산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일반 출판사와 다른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출판에 대한 접근법이 약간 다르죠. 이런 맥락에서 각 대학출판부별로 특색 있는 총서들이 최근 활발하게 출판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대학 부설 연구소나 기관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가톨릭대의 가톨릭신학총서, 경상대의 지앤유 로컬북스, 계명대의 한국학연구총서, 방송대의 아로리총서, 부산대의 영화연구소 학술총서, 서울대의 미국학총서, 연세대의 문학의 기본 개념 시리즈, 영남대의 인문학육성총서, 이화여대의 여성학총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AKS인문총서 등이 있고, 한국외국어대는 어학사전만 수십 종에 이릅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만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협회 차원에서는 일본대학출판협회와 공동으로 가칭 ‘한일교류총서’ 출판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양국 협회 회원교의 우수도서를 저작권료 부담을 줄이면서 상호 번역해서 동북아 관련 학술연구 결과를 교류해 보자는 의도입니다.

 

 

 

대학출판부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 대학이나 정부의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 경영진은 대학출판에 대해 시장 논리로 접근할 게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한 축으로 인식을 하고 이에 대해 적절한 인적, 재정적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대학 또한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로 경영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연구와 인재 양성이라는 고등교육의 핵심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다 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대학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학술출판은 교육부와 문체부 또는 한국연구재단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협력체계를 만든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끝으로 대학출판부가 학교와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길 원하시나요?

 

 

수익성이 없는 학술출판을 상업출판사에 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공공영역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테두리 안에 설치되어 있는 대학출판부가 그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연구재단 저술지원도서 같은 것도 포함할 수 있다면 학술출판 생태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수 있죠. 이러한 바탕 위에서 대학출판부는 연구자의 조력자로서, 연구 결과의 전파자로서, 교육매체 생산자로서 자리매김하여, 고등교육과 출판문화 발전에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사진은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한국대학출판협회 부스.


한국대학출판협회는 일본대학출판부협회와 교류 차원에서 양국에서 열리는 국제도서전에 부스를 열어 전시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진은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한국대학출판협회 부스.

 


삼성동 파르나스호텔 로비에 설치, 개가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출판부 전용 공공도서관.


삼성동 파르나스호텔 로비에 설치, 개가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출판부 전용 공공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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