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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0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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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어린이 시인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박수경(구미오산초등학교 학생 책쓰기 동아리 ‘소담’ 담당교사)

 

2022. 3.


 

2019년 4월, 구미오산초등학교에는 비밀기지가 생겼다. 그곳은 시를 쓰는 게 궁금한 어린이들이 들어가면 시인이 되는 곳이라고 한다. 그 비밀기지는 2014년부터 근무하는 학교마다 계속 비밀기지를 꾸려왔던, 그리고 아직도 꿈을 꾸며 살아가는 꽁지샘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꽁지샘이 손바닥동시로 소개하는 소담 5기와 꽁지샘

박기성
박기성
네?
네.
네?

이준우
이준우
시는?
다 썼어요.
제 마음속에 있어요.

복준현
복준현
선생님 첫사랑도
글씨를 무척 잘 썼는데.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양승목
양승목
승목아,
태민이라 해서 미안.
이제는 안 그럴게.

1반 이가영
1반 이가영
너는 벌써 다 했지.
어떻게 했을까?
매번 기대하게 돼.

2반 이가영
2반 이가영
동글동글한 눈으로
나를 볼 때면
시를 많이 쓴 거 같아.

김가현
김가현
가현아.
가현아?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김나연
김나연
이건 비밀인데.
선생님은 아직도 가현이랑
나연이가 헷갈려.

김보은
김보은
이름만 같은 게 아니고
귀여운 볼, 웃는 모습도
조카랑 많이 닮았어.

민지윤
민지윤
지윤아. 네 덕분에 웃어.
너만 보면 행복해.
그러니까 얼굴 보여줘.

손재협
손재협
네가 장난을 치면
왜 안 어울리지?
기타 치는 모습 때문인가?

꽁지샘

권정생 작가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쓰게 될 거야.

 

 

 

 

매년 봄이 오면 비밀기지에 들어 올 학생 책쓰기 동아리 어린이들을 모집하는 일을 시작한다. 학생 책쓰기 동아리를 모집하는 가정통신문을 들고 6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시를 쓰는 동아리를 운영한다고 하면 다들 별 반응이 없다. 과학 시간에 그렇게 무섭던 선생님이 하는 동아리라니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내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작가도 만나고 서점 나들이도 간다고 하면 조금 관심을 두다가 책을 보여주면 ‘우와’ 하는 어린이가 생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가정통신문을 나눠주고 3일을 기다리니 열한 장의 신청서가 들어왔다. 이 정도면 딱 좋다. 신청자가 너무 적으면 한 명당 써야 할 작품이 많아져서 부담된다. 그렇다고 신청자가 너무 많으면 우리만의 비밀기지가 소란스러워진다.

 

이제 어린이 시인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 큰 문구점으로 가서 시인들의 마음을 끌 만한 예쁜 시 공책과 필기도구를 사야 한다. 첫 만남에서 ‘와아’ 하는 소리가 나도록 고르고 또 고른다.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공책과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는 볼펜,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 2020년에 나온 소담 4기의 시집! 이제 만날 준비가 다 되었다. 3월 24일!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우리만의 비밀기지


우리만의 비밀기지


>2019, 2020 추억


2019, 2020 추억


3월 24일 첫 만남


3월 24일 첫 만남

 

우리의 비밀기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8시 30분에서 50분까지 문을 연다. 4월에는 시 읽기만 한다. 아직 시를 쓰려면 멀었다. 소담 3기의 『열세 살 내 인생』을 시작으로, 소담 4기의 『코로나19 종소리』를 읽으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어 시집을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만나야 한다. 그러고 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오는 어린이 시로 엮은 잡지인 『올챙이 발가락』을 읽고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낭송한다. 꽁지샘이 보물 1호로 아끼는 시 책장에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골라 마음에 드는 시를 다섯 편 골라 읽고 시선집을 만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시인들이 묻는다. “근데 우리 시는 언제 써요?” 이제 시를 쓸 준비가 되었다. “시 쓰고 싶어? 그럼 한번 써 볼까?”

 

제일 먼저 쓴 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다. 시에 관해 부담을 갖지 않으면서도 시의 특성을 이해하기에 안성맞춤인 활동이다. 그리고 시 제목을 비밀로 해서 써 보는 수수께끼 시 쓰기도 해본다. 주제를 잡아서 시를 쓰는 방법을 익히기에 좋은 방법이다. 서로가 쓴 시를 들려주고 시 제목을 맞히게 하면 자기 작품을 낭송한다는 것도 잊고 제법 진지하게 낭송하고 제목도 잘 맞힌다. 그 다음부터는 이제 어린이 시인들의 판이다. “오늘은 뭐 쓰지?” 질문하면 맛있는 시를 쓰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시를 쓰자, 놀면 시가 잘 써질 것 같다면서 주문이 많아진다. 이렇게 5월을 보내고 나면 이제 첫 만남에 선물한 시 공책에 시가 한 편, 두 편 쌓이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수수께끼 시


수수께끼 시


시로 꾸민 우리만의 비밀기지


시로 꾸민 우리만의 비밀기지

 

여름, 이제부터 어린이 시인들에게는 본격적인 창작의 고통과 만나는 시간이 온다. 처음에는 하루에 세 편도 쓰고, 수업 끝나고 “저, 시 썼어요.” 하고 자랑하던 시인들이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꽁지샘을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가끔은 쓴 시를 읽고 또 읽어도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시 쓸 게 안 떠올라서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만나 자기가 쓴 시를 읽어주고 시를 쓴 친구들을 보며 자극을 받아 시를 쓴다.

 


우리는 소담 5기


우리는 소담 5기


시 공책


시 공책


나의 시 쓰기


나의 시 쓰기

 

7월이 오면 이제 각자가 쓴 시를 다시 읽으며 다듬기 작업을 한다. 먼저 시인들이 쓴 시 중에서 책으로 엮을 작품을 열 편 정도 고르고 꽁지샘과 시 다듬기를 한다. 꽁지샘은 어린이 시인들이 쓴 시를 함께 읽으면서 시에 담긴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때 기분은 어땠는지, 그 순간에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었는지를 물어가며 시에 빠뜨린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이렇게 읽고 다듬기를 여러 차례! 이렇게 해서 시가 완성되면 이제 시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릴 차례다. 예쁘게 나오게 하려면 테두리를 네임펜으로 진하게 그리고 어울리는 색연필로 정성껏 칠해야 한다. 그림 그리는 일이 힘들 만도 한데 시 쓰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라 그런지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만 남았다. 바로 시집 제목 정하기와 표지 작업! 보통 시집 제목은 대표 시 하나를 골라서 정하지만, 올해는 시집 제목을 공모했다. 열한 명의 시인들이 낸 의견 중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우리가 함께 모여 시를 썼던 이곳을 표현한 ‘우리만의 비밀기지’였다. 이렇게 ‘우리만의 비밀기지’는 소담 5기의 시집 제목이 되었다. 그 다음은 표지 작업! 열한 명의 시인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다. 세 명의 어린이가 표지 공모에 작품을 냈고, 그중에 아래의 작품이 책날개에 “표지 그림 복준현”이라는 이름을 넣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 출판사가 우리 시집을 예쁘게 만들어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표지안 1


표지안 1


표지안 2


표지안 2


완성된 표지


완성된 표지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가을에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시를 예쁘게 담았다. 내가 쓴 한 편의 시를 골라 시그림책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주 작은 종이로 인쇄해 유리병에 담기도 하고, 색연필로 곱게 쓴 시로 열쇠고리도 만들었다. 이렇게 놀다 보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만의 비밀기지’가 책이 되어 온다. 책이 나온 날, 우리는 비밀기지에 모여 책을 보며 소리를 지르면서 서로에게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그림책 만들기


시그림책 만들기


시그림책 만들기


시그림책 만들기


시그림책


시그림책

 


시 열쇠고리


시 열쇠고리


시를 품은 쓰레기


시를 품은 쓰레기


인생 시


인생 시

 

그리고 2022년 1월 10일. 도서실에 6학년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모시고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소담 5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면서 손님들이 큰 박수로 응원해주었다. 보통의 행사에는 교장 선생님의 축사만 있지만, 어린이 시인들의 출판기념회에는 친구들의 축사가 있어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능청스러운 어린이 시인들의 시 낭송은 힘든 일상에 지친 손님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하였다. 출판기념회를 마친 다음 날 아침, 전교생에게 시집을 각 교실로 직접 배달하면서 일 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출판기념 선물


출판기념 선물


출판기념회


출판기념회


시집 출판기념 사진


시집 출판기념 사진

 

* 소담 5기 시 쓰기 봄, 여름, 가을, 겨울: https://youtu.be/-waZIxWfxbs
* 소담 5기 2021년 활동 소감: https://youtu.be/9qCdMGtXFx0

 

『우리만의 비밀기지』는 열한 명의 어린이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열세 살 이야기를 담은 어린이 합동시집이다. 꽁지샘은 매년 시집이 출판되면 시집을 읽는 모든 사람이 시를 읽으면서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배움이 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다시 봄이 오면, 중학생이 된 소담 5기는 열네 살의 이야기를 시로 담을까? 구미오산초등학교에는 소담 6기가 ‘우리만의 비밀기지’에 모여 또 시를 쓰겠지.

박수경

 

박수경(구미오산초등학교 학생 책쓰기 동아리 ‘소담’ 담당교사)

박수경 선생님은 청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구미 산동초등학교를 시작으로 22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어요. 동화 작가 홍기 선생님을 동료 교사로 만난 덕분에 삶을 가꾸는 시 쓰기로 책을 엮고 있어요.
tkfkd85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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