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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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 전병석, 우리 곁을 떠나다

 

 

 

박종만(까치 대표)

 

2018. 10.


 

출판계의 “선비” 전병석(田炳晳) 문예출판사 회장이 피안의 먼 여행을 떠난 지도 달포가 훨씬 넘었다. 나는 고인의 부음을 그의 아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전화로 접하고는 한순간 망연자실했다. 게다가 이미 장례식도 치렀다는 것이었다. 고인의 유언을 받들어 바깥에 일체 알리지 않고 가족장으로 모셨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중병의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고인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석 달 전쯤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황망하게 가시다니…….

 

내가 고인을 만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어언 그 교유는 30여 년을 넘는 긴 세월이 되었다. 고인은 사생활에서도, 출판사 경영에서도, 공적인 사회생활에서도 언제나 한결같았다. 시비곡직을 꼭 가려야 할 것 같은 때조차도 양보하고 다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런 태도와 풍모를 “정명(正名)”이라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에 의탁하여 표현하고 싶다.

 

“정명”은 사회적 “이름(名)”과 그것의 실체가 일치하는 것을 뜻한다. 곧 왕은 왕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공직자는 공직자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직책에 부여된 책임과 의무와 권리를 세상의 기대에 응하여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나아가서 부모님이 주신 개인 자신의 “이름(姓名)”에도 정명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정명이 기존 체계 위에서 세워지는 것이라면, 개인적 정명은 개인 스스로가 성장하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서로의 차이점일 것이다. 그의 이름(名과 姓名)이 바로 그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체성(正體性)을 의미한다.

 

출판인 전병석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집안에서도, 출판사 경영에서도, 공적인 사회생활에서도 전병석이라는 이름, 곧 후배와 친구와 선배로서, 지아비와 아버지로서, 문예출판사의 주인이라는 출판인으로서 “정명”의 정체성을 뚜렷이 실현했다. 한마디로 출판인 전병석은 그의 이름만으로써도 당당하고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림 1> 故 전병석 회장


〈그림 1〉 故 전병석 회장

 

고인이 한국 출판과 문화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그가 1960년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선택했던 첫 직장은 이름 있는 큰 회사가 아니라 작은 출판사였다. 그가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은 그가 일제 말기와 조국의 해방과 건국 그리고 한국 전쟁의 격동 속에서 제대로 된 일반도서는 물론이고 변변한 교과서조차 없었던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첫 직장인 한 출판사를 사직하고 자신의 사업으로서의 출판업을 시작한 것은 1966년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남의 밑에서 “국수”를 만들 수 있었던 능력이라면, 혼자 힘만으로써도 “수제비” 정도는 곧장 거뜬히 만들 수 있다는 기개와 소신이 있었던 것이다. 고인은 그의 출판 영역을 우선 출판업의 꽃이자 시장의 주도적인 상품인 문학으로 선택했다. 그의 이러한 정공법은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문학과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그가 상재한 『데미안』,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 『러브 스토리』 등은 출중한 베스트셀러, 나아가서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며, 수많은 청춘남녀의 마음과 정신의 빛이 되어 기본 교양 도서가 되었다.

 

경제적인 토대를 만든 그는 “출판의 꽃”인 문학에 머물지 않고 출판 목록을 확장하여 “출판의 뿌리”인 학술 서적 출판도 지향하게 되었다. 그의 노력은 『한국의 불상』, 『한국 도자사 연구』, 『한국의 전통 건축』, 『조선시대 회화사론』, 『한국미술사』 등을 통해서 결실을 맺었다. 문학 쪽이 번역 위주의 단기 작업이었다면, 학술 쪽은 출판 계약에서 상재까지 5~6년이 걸리는 각고의 작업이었다. 이 역시 일정한 성공을 거두어 한국 학술서적 출판의 주춧돌을 놓은 데에 자기 몫을 할 수 있었다, “책에 대한 배고픔” 속에서 시작된 고인의 출판 인생 60여 년은 출판인 정명의 이정표였고 당대 출판인의 한 모범이 되었다. 나의 출판 인생 40여 년도 고인과의 30여 년 소통의 은혜를 누리며 나름대로 보람 있는 출판을 영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동트는 초추의 새벽의 빛을 바라보며, 나는 고인이 진력한 지혜와 성심과 노고가 더욱 아름답고 튼튼한 한국 문화와 출판의 미래를 담보하는 데에 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가 평생에 그린 마음과 정신의 지도는 수많은 학교들과 집들의 서가에서 내일도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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