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3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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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포그래피 미시학; 어리석음의 가치

 

 

 

심우진(〈산돌 한글디자인연구소장〉, 〈도서출판 물고기 대표〉)

 

2019. 01.


 

‘타이포그래피’ 하면 꼼꼼함이 떠오릅니다. 꼬장꼬장하기도 하구요. 글자 크기 하나 바꾸는데도 애먹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게 뭐라고 말이죠. 섬세한 차이가 중요하단 말은 하지 않을게요. 디테일의 의미와 가치를 설파하는 역할도 부담스럽습니다. 이제는 다소 식상하기도 하거니와 그런 가치는 견고하게 들어맞은 뼈대와 함께 말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니까요. 그래서 일상에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짚고 선 땅에 대한 것도 어찌 보면 미시학일 테니까요.

 

둘러보면 글자 없이는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21세기 디지털 혁명 이후 종이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한 것처럼, 디지털 디바이스는 활자 소비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분명 전화기인데, 사람들은 음성 통화보다 메시지 전송에 더욱 익숙한 듯합니다. 인쇄물의 긴 글 읽기와 디지털 기기의 짧은 글 주고받기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활자를 왕성하게 소비합니다. 잠시 옆으로 새서 말씀드리자면, 국내 디지털 활자 개발 회사가 크게 흥한 시기가 있었는데 언제일까요? 21세기의 벽두를 풍미했던 싸이월드와 관련이 깊습니다. 미니홈피에 사용하는 비트맵 방식의 웹폰트의 인기가 대단했죠.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귀엽고 재미나는 활자 그리고 사서 쓰는 활자를 즐기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한글 활자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죠.

 

요즘 활발히 나오는 에모지(emoji : 그림문자를 뜻하는 일본어)나 이모티콘도, 메시지를 빠르게 주고받는 맥락에서 싸이월드 웹폰트와 비슷한 즐거움을 줍니다. 새로움과 변화를 좋아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활자는 끊임없이 빠르게 변모합니다. 사용자가 활자의 모양을 바꿔가며 쓰는 베리어블 폰트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컬러 폰트, 조건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오픈타입 피처 폰트 등 솔직히 따라가기 벅찰 정도입니다.

 


그림 1 _ 네덜란드 활자 개발사 티포텍의 베리어블 폰트 Wind( https://www.typotheque.com/blog/wind_a_layered_typeface_for_optical_illusions )


그림 1 _ 네덜란드 활자 개발사 티포텍의 베리어블 폰트 Wind( https://www.typotheque.com/blog/wind_a_layered_typeface_for_optical_illusions )

 


그림 2 _ 폰트 제작툴 Glyphs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온 컬러 폰트( https://glyphsapp.com )


그림 2 _ 폰트 제작툴 Glyphs 홈페이지 첫 화면에 나온 컬러 폰트( https://glyphsapp.com )

 

앞으로도 활자의 생태는 끊임없이 바뀌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과시하겠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흐름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여러 모습으로 공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죠. 예를 들어 한자에는 다양한 자형이 있는데, 같은 문자를 다르게 쓴 것을 이체자(異體字)라고 합니다.

 


그림 3 _ 명조체 한자의 이체자 모음 사례


그림 3 _ 명조체 한자의 이체자 모음 사례

 

이렇게 ‘같지만 다른’ 성질은 문자의 본질이에요. 손글씨는 쓸 때마다 모양이 달라지죠. 그렇게 여럿이 오래도록 쓰다 보니 모양이 늘어날 수밖에요. 한글도 마찬가집니다. ‘ㅎ’을 쓰는 방식이 얼마나 많습니까. ‘ㅂ’은요. ‘ㄹ’도 만만치 않죠. 숫자도 그렇죠. 각자 8이나 9를 써보라고 하면 모양도 필순도 제각기입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지읒의 모양이 서로 다르죠? 초성의 지읒을 ‘꺾은 지읒’이라고 하고 종성의 지읒을 ‘갈래 지읒’이라고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갈래 지읒을 고전적인 형태, 꺾은 지읒을 캐주얼한 형태라고 할 수 있죠.

 


그림 4 _ sm신명조의 잦


그림 4 _ sm신명조의 잦

 

활자가 등장하면서 여러 모양 중 하나를 골라서 표준으로 삼게 된 것은 근래의 일입니다. KS(Korean Industrial Standards), JIS(Japanese Industrial Standards),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등이 모두 이런 표준화의 결과죠. 여럿보다 뚜렷한 하나를 선호하는 디지털 환경은 표준화를 가속했고 문자의 다양성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으나, 여전히 문자는 하나의 모양으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한자도 한국(K), 중국(C), 일본(J)의 표준 자형(字型)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다양함은 나만의 것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비슷하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심리지요. 물론 서로 같아서 편하고 안심하고 유쾌한 심리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표준과 비표준은 공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5 _ 유니코드가 지정한 한중일 한자 자형과 코드


그림 5 _ 유니코드가 지정한 한중일 한자 자형과 코드

 

 

 

활자는 움직이는 것

 

다양한 모양을 지녔다는 것은 계속 바뀐다는 것이고, 이것은 일종의 움직임입니다. 활자는 움직입니다. 그래서인지 ‘活字’라고 쓰지요. 그런데 움직이는 건 활자뿐이 아닙니다. 나도 움직입니다. 정자세로 눈알만 굴리며 읽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기거나 머리를 긁적이거나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며 읽죠. 신체검사에서 측정하는 것은 정지시력(停止視力)으로 멈춘 사물을 대상으로 가만히 서서 측정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에서 무언가를 볼 때는 내가 움직이거나 사물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둘 다 움직입니다. 움직임에 대한 시력을 동체시력(動體視力)이라고 합니다. 야구선수나 권투선수는 동체시력이 매우 뛰어나야 하겠죠. 운전을 하거나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타이포그래피도 그렇습니다.

 

 

 

글줄 길이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같은 활자를 같은 크기와 간격으로 조판해도 글줄 길이가 달라지면 분위기가 크게 바뀝니다. 종이는 그대로인데 텍스트 영역이 바뀌니, 여백이 차지하는 비율까지 바뀌기 때문이지요. 즉 글줄 길이와 좌우 여백은 반비례합니다. 마찬가지로 행간과 상하 여백은 반비례해요. 여백은 공기처럼 또는 빛처럼, 적으면 답답하거나 어둡고 많으면 공허하거나 눈부시죠. 이렇게 수많은 조판 설정은 결국 움직이는 것이며 우리는 반응합니다. 문제는 서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누군가는 자간에 민감하고 누군가는 행간에 민감하고, 누군가는 민감했다가 안 민감했다가를 쉴 새 없이 번복하고요.

 

 

 

활자의 크기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크기가 바뀌었으니 이것도 움직인 거예요. 그러면 모습이 달라집니다. 출판인에게 익숙한 망점(Halftone)을 예로 들어볼게요. 확대해서 보면 흰색 바탕에 까만 동그라미지만 축소해서 보면 까만 동그라미는 사라지고 회색 바탕이 보입니다. 이 원리로 까만 잉크 하나로도 다양한 회색을 표현하게 됩니다. 뽕밭이 바다가 된 것을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하지요. 까만 동그라미들이 회색 바탕으로 바뀐 것도 못지않습니다.

 


망점

 

같은 활자인데도 크기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이유도 같아요. 크기에 따라 힘도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커서 힘이 셀 때는 분위기를 빠르게 주도하고, 크기가 작아서 힘이 약할 때는 분위기를 은은하게 지지하죠. 72포인트로 주도할 때와 7포인트로 지지할 때의 모습은 매우 다릅니다. 특정 활자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변화무쌍한 세계를 적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활자체를 두 가지 크기로 사용할 때는 몇 포인트와 몇 포인트가 좋을까요? 그에 따른 글줄 길이[행장(行長)]와 글줄 사이[행간(行間)]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쉬운 일이지만 각 요소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활자는 크기별로 자아내는 느낌이 다르며, 같은 이유로 크기별로 어울리는 글줄 길이와 글줄 사이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무슨 활자는 몇 포인트 크기에 글줄 사이를 몇 포인트로 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식의 공식은 큰 의미도 없거니와 항상 좋은 결과를 내지도 않습니다. 결국 디자인이란 움직임에 대한 것인데 움직이지 않고 하던 대로만 하면 계속 좋을 리가 없지요. 항상 같은 디자인만 나오고요. 디자인을 잘 아는 것, 안목이 있는 것, 감각이 좋은 것, 경험이 풍부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들끼리 이상적인 모습을 합의하고 끝까지 잊지 않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큰 사이즈의 활자

 


중간 사이즈의 활자

 


작은 사이즈의 활자

 

(활자 크기, 글줄 사이, 활자 크기 확대 비율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사이트. 위에서부터 차례로 활자 크기 확대 비율을 1.618, 1.414, 1.2로 바꿔보았습니다. 느낌이 많이 달라지죠. 이렇게 수치를 바꿔가며 모두가 원하는 그 느낌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각자 원하는 느낌이 다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가장 힘들 때는 서로의 느낌을 하나의 느낌으로 합의해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때입니다. 출처 gridlover.net)

 

 

 

볼 때마다 다른 것

 

어제와 오늘은 다릅니다. 몸이 피로하면 달달한 것이 당기듯 컨디션에 따라 넉넉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공부를 했고 안 했고, 알고 모르고, 안목이 있고 없고의 문제 말고도 따질 것이 많습니다. 그런 것은 디자이너의 솜씨와 교양을 따지는 기준이지만 결과물은 팀의 솜씨와 교양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하게 한 번에 정하지 말고 여러 번에 걸쳐 확인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본질

 

디자인은 귀찮고 번거롭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른바 ‘퀄리티’의 본질인데 어쩌겠어요. 디자인이 어렵다면 불가능한 방법으로(편한 방법으로) 잘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편하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편함은 만든 이가 추구하는 것이지 디자인이 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쿵후 영화를 보면 오랜 비법을 누군가에게 전수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에 열려 있는지를 봅니다. 궂은일을 시키며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죠. 요즘에는 이런 능력을 인성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번거로움을 기피하는 사람에게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모욕감을 느껴 개선에 이르기 어려우니까요. 꼼꼼하지 못하다, 부지런하지 못하다고 말해도 결과는 비슷할 겁니다. 노력에 대한 냉소가 본질을 가리는 현실에서는 적확한 지적이 쉽지 않습니다. 편하게 지적하려는 자세도 문제지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의 가치를 냉소하며 빠른 결정을 우선하는 분위기는 디자인을 획일화합니다.

 

 

 

결론

 

디자인을 ‘오래도록’ 잘하는 사람이나 집단에는 한 가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우직함이에요. 어리석을 만큼 꾸준하다는 뜻이지요. 영리하고 재주 많은 사람은 잠깐 빛을 보다 말아요. 저는 이런 우직한 사람에게 그래서 무얼 얻느냐고 부동산을 들먹거리며 조롱하는 사람을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디자인은 편하게 잘하려는 어리석음과 불편하게 잘하려는 어리석음의 대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세기의 표준화 흐름은 그간의 무방한 전통을 정리하였으나 여전히 변화무쌍한 문자의 본질은 활자의 세계에서도 이어집니다. 21세기의 활자 기술은 다시 문자의 본질을 가속하는 형국입니다. 하나로 간단히 정리하기보다 오히려 이 흐름을 즐기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타이포그래피는 이렇다, 활자는 이런 것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맥락(이야기)을 타고 그때만의 분위기를 관찰하고 해석하며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너무 추상적인 결론이라면 이렇게 말해볼게요. 가독성이 좋다 나쁘다, 자간이 좁다 넓다는 관습적인(오히려 더욱 추상적인) 표현보다 어떻게 하면 더욱 조화를 이룰지에 대해 나름의 어휘로 소통하는 것이지요. 전문가스러운 용어를 쓰려고 하기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공통의 어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선명한 소통을 이끄는 콘셉트와 방향성이 드러날 테니까요. 모든 과정이 지난할 필요는 없지만 항상 빠름을 추구하면 오히려 느려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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