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6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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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책은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것이지만
- 코로나 시대의 독서

 

 

 

박사(북 칼럼니스트)

 

2020. 11.


 

 

2013년부터 책을 싸 짊어지고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책을 낭독했다. [박사의 독야청청-책듣는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럴듯한 행사였으나 짐은 단출하고 자리를 만드는 이나 읽는 이나 듣는 이나 마음 가벼운, 부담 없는 시간이었다. 그 행사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내 마음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다”. 그렇다. 책을 읽으려면 책만 있으면 된다. 성능이 좋은 기계나, 암호가 필요한 인터넷 선이나, 커다란 스크린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산꼭대기, 바닷가, 논밭 한가운데, 길 한복판. 그곳이 어디여도 상관없다. 누워서 봐도 되고 서서 봐도 된다.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책듣는밤]은 다양한 곳에서 열렸다. 강진의 야시장에서는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아 놓은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내 낭독에 귀 기울였다. 청담동의 미장원에서는 거울과 미장원 의자를 양쪽으로 한껏 밀어 놓고 한가운데 앉은 이들을 향해 읽었다. 카페와 서점은 자주 문을 열고 의자를 놓아줬다. 술집에서는 술을 마시며 읽었다. 갤러리에서, 을지로의 낡은 건물 옥상에서, 오래된 역사에서, 작은 정원에서, 옛 동네의 한옥에서, 지하의 농구코트에서, 없어질 뻔했던 공원에서, 천년고찰 절에서…. 사람들은 주로 혼자 와서 내 낭독에 귀 기울이고, 그중 마음을 건드렸던 책 제목을 적어갔다. 조용하고 충만한 날들이었다.

 

날들이었다, 라고 과거형으로 쓸 수밖에 없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말에 첫 회를 시작하여 79회에 이르기까지 규칙적인 듯 불규칙 적인 듯 해왔던 작지만 나름대로 연륜 있는 행사였는데, 조용히 동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은 사람들을 강제로 흐트러뜨리고, 각자 자신의 안전한 공간에 칩거하기를 강요했다. 나는 청중을 잃었고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책듣는밤]뿐이랴. 온갖 낭독행사와 작가와의 대화, 북콘서트가 일시에 멈췄다. 책이 출간되면 당연한 듯 따라오던 행사들이다. 책을 알리고 독자를 불러 모으는 데 가장 유용했던 행사다. 그 모든 행사들이 멈추면서 출판계도 일시 정지되는 듯 보였다. 더불어 각종 독서 모임도 휴업에 들어갔다.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책 읽는 이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졌다.

 

허전했지만 “책은 언제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다”는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칩거 생활은 장점도 있다. 칩거 기간이 길어지면서, 안 읽던 사람들조차 책을 들춰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고나커피에게까지 밀리는 모양새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책을 찾는 양상은 뚜렷해졌다. 모여서 읽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흩어져서 읽었다. 사실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원래 독서는 혼자서 하는 행위니까,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독서도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책은 조용히 팔려 나갔다. 등교하지 못하게 된 아이를 위한 학습서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궁금한 사람을 위한 의학과 과학 관련 책이, 미래가 막막해진 사람에게는 SF 소설이…. 책에서 답을 구해 온 오래된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문제는 나다. 밖에서 낭독할 수 없게 되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유튜브를 만들어보았다. [랜선 책듣는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짧은 글을 하나씩 낭독해서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유튜브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것저것 파도를 타고 찾아가 보게 되었는데… 아니 이렇게 재미있고 유용한 세계가 있었다니! 이전에는 “책에서 몇 줄만 읽으면 알 수 있는 걸 왜 영상으로 오 분씩 보고 있어야 해? 너무 시간 낭비 아니야?” 했던 생각이 “아니 유튜브가 다 설명해 주는데 뭐하러 책을 봐?”로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독목록이 차곡차곡 쌓이고 생활 습관이 조금씩 변했다. 음악 소리도, TV 소리도 없이 오로지 책 읽는 공간이었던 내 방에 소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랜 습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무엇에 관심을 갖던 그것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는 것이 내 첫 번째 순서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빼앗아 간 것은 각종 낭독행사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온라인으로는 전자책을 포함하여 책을 찾는 이가 늘었지만, 오프라인으로 책을 만날 수 있는 서점과 도서관은 코로나19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서관이 문을 닫은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치명적인 일이었다. 내가 도서관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아프게 알게 되었다. 나뿐이겠는가. 보이지는 않지만, 공공 서비스망이 우리 생활을 탄탄하게 받쳐 주고 있었고, 그것이 우리 삶의 수준을 얼마나 높여 주었는지 여실히 알게 된 셈이다.

 

내 독서 생활은 위기에 빠졌다. 유튜브를 기웃거리면서 잃게 된 것은 ‘집중력’이다. 처음에는 좀 짧다 싶었던 10분 남짓의 동영상이 이제는 너무 길게 느껴진다. 책을 잡았다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여전히 책을 자주 잡고 활자를 들여다보려 하고는 있지만 몰입하기는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책듣는밤]에서는 두 시간씩 집중해서 낭독해도 청중과 함께 고요히 몰두할 수 있었는데, 그런 순간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내 뇌는 재편되어 버리는 걸까? 이렇게 독서 근육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다행인 것은, 문을 닫았을 때도 도서관은 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출/반납창구나 그 안에 머물며 책을 읽는 공간은 가다서다를, 아니 열다닫다를 반복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다양한 분투가 벌어진다. 온라인 강의를 기획해서 열고,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궁리한다. 덕분에 참가하게 된 프로그램이 남산도서관의 [고독한 독서가]다. 이런 이벤트가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기념품 욕심에 신청해 봤는데, 결과적으로 꽤 좋은 시간을 보냈다.

 

[고독한 독서가]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하다. [Zoom] 프로그램을 켜놓고 두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이다. 접속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는다. 책을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결과 보고도 없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이후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두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 듯했지만, 그 사이에 한 권의 책을 마저 읽고 새 책을 꺼냈어야 할 만큼 몰입도는 대단했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는 느낌과는 달랐다. 개인적인 행동인 ‘독서’가 어째서 함께 있다는 느낌에 이토록 영향을 받는 것일까?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도 어리둥절했다. 여운은 오래 갔다.

 

[Zoom]을 켜놓고 각자의 집에서 각자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펼쳐놓고 따로 또 함께 술자리를 갖는다는 건 소문으로 들었다.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한 얘기였다. 같이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고육지책 같아서였다. 그러나 같이 있는 듯, 같이 없는 신묘한 상황을 만들어 주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확실히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었다. 함께 없으나 함께 있는 시간. 그것은 강의든, 독서든, 음주든 모두 좋았다. 현실에서 대면하는 것을 대체해 주는 시스템으로써의 [zoom]은 그저 대체품의 자리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상한 방식이지만, 대단한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후에도 종종 나는 지인들과 [zoom]을 열고 같이 독서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는 동안 화면 저편에서는 누군가의 고양이가 지나가고, 혹은 차를 가지러 잠깐 자리를 비우는 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그 시간만큼은 책이 나를 장악한다. 유튜브에는 자기가 공부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 사람도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것일까? 불특정 다수의 청자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공부 효율을 높여주는 것일까? [Zoom]으로나마 함께 하면서 나는 다시 독서 리듬을 찾았다. 책이 나를 가만히 쥐었다가 놓아주는 그 느낌을 온전히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고독한 독서가]로 함께 책을 읽은 후 한 달쯤 뒤,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길래 [고독한 독서가] 완주 기념품을 받아 왔다. 핸드폰 무선 충전기였다. 일부러 의도한 선물은 아니었겠지만, 상자에서 기념품을 꺼내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우리가 서로 접촉하고 있지만 접촉하고 있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책과 나밖에 없는 듯한 그 순간에조차 어디선가 책을 읽고 있는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직접적으로 손을 맞잡지 않는다고 해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손을 잡는 행동이니까.

 

이전에도 고독한 독서방은 오픈채팅의 형식으로 존재해 왔다고 한다. 함께 읽는 시간을 갖는다기보다는, 종종 자신이 읽고 있는 부분을 찍어 올리는 형식으로 지금 책을 읽고 있음을 알리는 방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고 그 방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독한 행위처럼 보이는 독서야말로 사실은 누구보다도 공감할 사람을 찾는 행동인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독서라는 행위 자체는 공감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책을 쓰는 것부터가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독자를 찾기 위해서니까.

 

[고독한 독서가]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나는 ‘독서공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은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외로울 때 책은 어느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그러나 독서는 내 생각보다 더 공간을 많이 타는 행위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행위다.

 

나부터 그랬다. 코로나19 이전, 나는 책을 읽기 위해 카페에 가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바로 나오지 않고 열람실 커다란 책상에 붙어 앉아 책을 읽곤 했다. 카페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러 갔다. 집 밖으로 나설 때마다, 낯선 공간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상상하며 몇 권이나 가방에 넣곤 했다. [책듣는밤]도 책을 빙자한 행사의 자리라기보다는 책을 읽는 또 다른 공간이었다. 굳이 책에 대한 내 느낌을 설명하며 이야기 나누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 읽는 자리에 누군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이 독서하고 있다는 동질감에 충만했다.

 

코로나19는 공공 서비스망의 혜택을 절절하게 느끼게 해준 것만큼이나, 독서가 얼마나 장소를 타는 행위인지, 타인을 필요로 하는 행위인지 알려 주었다. 책만큼이나 탁상용 조명이나 책꽂이 등 독서공간을 위한 도구가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책을 읽는데 공간이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좋은 조명과 편안한 의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독서가 “대화”라는 것은 단지 생각과 의견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체온’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제는 안타깝지만 어쨌든 일상은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책듣는밤]도 새로 생긴 북카페에서 80회를, 오랜 동네의 탁구장에서 81회를 하고 한해를 마감하기로 결정되었다. 언젠가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기대하고 살기에는 너무나 요원한 얘기다. 예전과 다를지 몰라도 또 예전과 비슷하게 우리 삶은 흘러갈 것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얘기하고 책을 권하고 책을 읽어 주고 책을 쓰는 것은 똑같겠지만, 함께 한다는 느낌은 조금 변한 채로 그렇게. 독서의 기쁨은 문득 더 풍부해진 채로 그렇게.

 


책을 읽다 zoom을 통해 잠깐 눈이 마주쳤다.


책을 읽다 zoom을 통해 잠깐 눈이 마주쳤다.


[고독한 독서가] 기념품으로 받은 무선 충전기


[고독한 독서가] 기념품으로 받은 무선 충전기

 

박사(북 칼럼니스트)

각종 신문잡지에 책과 문화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고, 다양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해왔다. 현재 조선일보, 법보신문, 우먼센스, 더 네이버, 미르에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은하철도999_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빈칸책],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백서], [가꾼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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