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2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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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라면 킹스맨처럼 ? 초짜 1인 서점/출판사 분투기

 

 

 

박우현(지역 밀착형 동네서점 우주소년 운영자)

 

2018. 12.


 

경쟁 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결국 자식 세대까지 이어졌다. 딸아이가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대입만 바라보는 입시 교육을 개선하지 못하고 자식에게까지 물려준 자괴감이 밀려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향한 분노와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계속 이런 세계에서 버티다간 몸과 마음이 망가질 게 뻔했다. 출구가 필요했다.

 

“그래, 교육 망명을 하는 거야!”

 

그리고 마침 기회가 왔다. 딸아이가 경기도에 있는 한 대안학교에 합격한 것이다. 이 학교는 여타 대안학교처럼 기숙형 학교가 아니라 통학을 원칙으로 한다. 다시 말해, 딸아이가 학교에 다니려면 가족이 이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망명을 떠났다. 이곳 학교는 마을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겼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학교는 지역과 연대를 지향했다. 학교 안에서만 대안적 삶을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그렇다 보니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마을 활동 모임이 존재했다. 인문학 공부 모임부터 생활 협동조합은 물론 각종 동호회까지 활발했다. 이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 새로운 망명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선은 서울에 있는 사무실 겸 작업실을 이전했는데 임대료는 서울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공간은 더욱 넓어졌다. 넓어진 작업실 공간 한쪽을 마을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활 커피교실과 독서 모임을 열었고, 독립영화 공동체 상영을 주최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작업실은 자연스럽게 ‘동네서점 우주소년’이 되었고,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서점을 열게 된 계기의 전모는 바로 이렇다. 다소 장황하지만 우주소년의 성격과 정체성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다.

 


사진 1 _ 서점 외부 전경(우주소년 제공)


사진 1 _ 서점 외부 전경(우주소년 제공)

 

애초부터 서점의 책 판매 수익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우주소년은 지금껏 수익보다는 가치 지향의 운영을 해왔다. 우주소년은 ‘공론의 공간’ 역할을 하면서 마을의 여러 공동체와 협업을 하기도 한다. 마을 학교 선생님과 청소년을 위한 덴마크형 자유학교라 할 수 있는 ‘열일곱 인생학교’를 운영해왔고, 마을 역사와 지리를 탐구하는 모임을 개설하여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한다. 때로는 재즈를 함께 들으며 맥주 파티를 열기도 하고, 마을 팟캐스트를 기획해 동네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괴리감을 없애 마을 공동체 회복에 앞장서기도 했다.

 

2016년에는 마을 학교의 도움으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 2014)의 저자를 초대하여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열었는데 이 일이 인연이 되어 매해 마을 사람과 함께 일본 시골 마을 빵집 탐방을 떠난다. 이쯤 되면 우주소년은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킹스맨 양복점이라 할 수 있겠다. 킹스맨 양복점이 알고 보면 지구를 구하는 요원의 비밀 기지인 것처럼 우주소년도 무늬만 책방이지 알고 보면 마을 콘텐츠 플랫폼 노릇을 한 셈이니까.

 


사진 2 _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와 그의 부인 와타나베 마리코 씨가 운영하는 돗토리 현 시골 마을 빵집 ‘타루마리’에 마을 사람과 함께 방문한 사진.(우주소년 제공)


사진 2 _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와 그의 부인 와타나베 마리코 씨가 운영하는 돗토리 현 시골 마을 빵집 ‘타루마리’에 마을 사람과 함께 방문한 사진.(우주소년 제공)

 

재밌는 건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해 책을 사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보다 이처럼 서점이 마을로 더욱 적극적으로 들어가니 책 판매가 따라온 점이다. 마을의 작은 동네 도서관은 물론 교회 도서관,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독서 모임이나 인문학 강좌에서 책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민 개인도 급한 책이 아니면 인터넷 서점 대신 우주소년을 찾는다.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서점은 구매의 편리성, 할인이나 적립과 같은 혜택이 있지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나의 소비가 나의 동네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동네 경제 생태계의 순환 차원에서 동네서점에서의 책 구매는 매우 중요한 소비자 행동이기도 하다.

 


사진 3 _ 동네 인문지리 탐사 프로젝트 ‘머내여지도’ 모임. 이날은 서울 곳곳을 답사한 『서울 선언』의 저자 김시덕 교수가 함께했다.(우주소년 제공)


사진 3 _ 동네 인문지리 탐사 프로젝트 ‘머내여지도’ 모임. 이날은 서울 곳곳을 답사한 『서울 선언』의 저자 김시덕 교수가 함께했다.(우주소년 제공)

 

책이란 상품의 오묘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적 소비가 지적 생산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자본주의 상품이랄까. 연장선에서 말하자면 우주소년은 이런 연유에서 올해 출판을 시작했다. 공론의 공간이자 창안의 공간이 된 서점이 지역 콘텐츠와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동네서점에서 지역의 청년 에디터를 고용하고,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책을 만들고 지역 청년 영화인과 함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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