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41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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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길 - 제1회 한국출판편집자상 수상자 연재 ②]
독자와 함께하는, 독자를 사랑하는 편집자

 

 

 

김세원(길벗출판사 경제경영서실 실장)

 

2023. 03.


 

지난 겨울 영광스러운 한국출판편집자상 시상식에서 저는 조금 낯설어 했던 기억입니다. 함께 수상했던 선배들 모두 인문학술 분야에서 과장 없이 존경스러운 에디터십을 보여준 분들인 데 반해 저만 대중서 분야에서 주로 실용지식을 다뤄온 에디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시상식에서 회사의 선배가 들려준 축사의 한 구절은 저의 마음과 똑같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출판 환경처럼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자질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려는 지사적인 태도와 텍스트를 다루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편집자는 우리 업계에 여전히 필수적인 자원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장이 세분화되고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는 출판 환경에서 ‘책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걸 이해하고 이 상품을 구매하고 읽는 고객이 누구인지 깊이 고민하는 편집자’도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선배의 덕담처럼 ‘꼭 필요한 편집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늘 그렇듯 현실은 기대와 다르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해 온 저의 비결이랄까, 그런 소소한 생각들을 이곳에서 나눠 봅니다.

 

나의 독자는 누구인가

 

올해로 편집자로 살아온 지 2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면서 제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독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편집자 초창기 시절에는 주로 편집을 잘하는 방법, 즉 ‘어떻게(How)’에 초점을 맞춰 일했다면, 이제는 독자가 느끼는 불안과 불편, 혹은 궁금증과 니즈가 무엇인지, 또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 가장 공을 들입니다. 편집자로서 자기 독자를 정확히 규정하고, 그 독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독자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획도 편집도 궁극적으로 ‘독자’를 염두에 둔 활동인 바, 독자와 시장을 잘 알수록 좋은 편집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독자를 이해하고, 가능하면 사랑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상대를 좀 더 알고 싶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듯, 독자를 사랑할수록 독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만족을 안겨줄 수 있겠지요. 저마다 행복과 안정을 찾아, 성장과 발전을 쫓아, 생존을 위해 날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저의 독자들에게 오늘도 사랑을 보냅니다.

 

현재 제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경제경영’인데, 대중의 결핍과 불안 그리고 욕망을 가장 빠르고 예리하게 담아낼 수 있는 분야여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대응하는 전략과 전술도 수시로 바뀌는 데다, 그 와중에 변치 않는 본질까지 포착하려면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따라잡을 뉴스도 많아 정신없지만, 그만큼 지루할 틈 없이 짜릿합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경제경영·자기계발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동료들과 함께 타깃 독자 페르소나를 만들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해와 편견 없이 독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죠. 독자 페르소나를 그리는 작업은, 단순화하면 이런 식입니다. 첫 번째로 독자에 대한 가설을 세웁니다. 예컨대 나의 독자 유형을 ‘주니어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형’, ‘시니어 일잘러형’, ‘월급쟁이 부자형’,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형’, ‘대중교양 추구형’, ‘전문교양 추구형’ 등으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을 표현하는 다양한 키워드를 해시태그 형태로 정리합니다.

 

두 번째는 위의 가설을 증명하거나 수정하는 단계입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성장과 커리어에 관심 있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의 마음과 머릿속을 들여다봅니다. 그들의 하루 일과,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 요즘 고민, 일에 대한 생각, 구독하는 채널과 콘텐츠, 정보를 얻는 방법, 주요 수입원과 가계 수입 규모, 소비 내용과 구매 경로, 책에 대한 관심 여부, 여가 활동, 휴가 계획 등 20여 가지 질문들을 하고 그 내용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에서 독자 페르소나를 만듭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등장인물을 차용하여 가상의 얼굴과 프로필을 만들고, 그 인물의 니즈와 라이프스타일 등을 입체적으로 서술합니다. 이렇게 나의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려봄으로써 기획과 편집 과정에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독자 페르소나는, 우리 자신도 변하듯, 시간과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2~3년을 주기로 수정하고 업데이트합니다.

 

방법은 저마다 다를지언정, 나의 독자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우리 편집자들을 응원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편집자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쉽게 싫증내곤 하는 제가 대학 졸업 후 지금껏 출판 편집자로 살아온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신기한 일입니다. 아마도 함께 작업하는 사람(저자)과 대상(텍스트)이 늘 새롭게 바뀐다는 것이 늘 새로운 흥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감사하게도 성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으니 이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제 인생의 행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성장은 몰입에서 일어나고, 몰입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일어난다고 하죠. 그래서 저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선후배들도 편집자라는 직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자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편집자인 나는 어떤 가치를 생산해낼 것인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기획과 편집을 거친 출판물이 세상과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리고 또한 정말로 중요한 것!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서로서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프로세스를, 나름들의 성과를, 이 모든 노력과 과정을 서로 인정해주고 저 또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의 의미를 알고, 일의 과정 혹은 결과를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요?

 

내가 하는 일과 나의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책들

 

최근 5년여간 제가 집중하고 있는 타깃 독자 또한 자기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성장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일환으로 기획한 책 몇 권을 소개하며 편집자로서 저의 관심과 관점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2019년 출간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박소연, 더퀘스트, 2019)는 당시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 유행을 배경으로 기획했습니다. 번아웃을 경계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자는 니즈가 강할 때였는데, 진정한 균형을 찾는 전략보다는 일과 삶의 분리 혹은 외면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행하다면, 퇴근 후 요가를 한들 그게 진정한 워라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일하는 시간이 불행한데,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카피를 썼고, 일하면서 복잡하고 불필요한 것들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노하우를 담고자 했습니다. 실제 내용도 콘셉트를 잘 반영하는 현실 조언들로 가득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직장과 명함을 떠나 오롯이 한 개인으로서 실력을 쌓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 되는 책도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해외 전문가나 업계 전설로 불릴 법한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좋은 선배로부터 듣는 그런 인사이트 말입니다. 한 예로 『퇴사준비생의 도쿄』(이동진 외, 더퀘스트, 2017)는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 퇴사준비생이 됩니다”라는 부제를 달아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직장인 말고 직업인으로서의 경쟁력을 틈틈이 쌓아가자는 의미를 담고자 했지요. 또, 『믹스(MiX)』(안성은, 더퀘스트, 2022)는 제품도 브랜드도 경쟁자도 너무 많은 포화의 시대에, 자기만의 무기를 만들어내고 생존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차별화”를 부제로 선정했고, 감사하게도 1인 크리에이터나 자영업자, 30~40대 직장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믹스(MiX)』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믹스(MiX)』

 

 

한편, 우리 삶과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올 모멘텀이나 트렌드 변화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2017년에 발견한 유튜브 CBO(Chief Business Officer,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 로버트 킨슬(Robert Kyncl)이 쓴 『유튜브 레볼루션』(로버트 킨슬 외, 신솔잎 옮김, 더퀘스트, 2018)은 원서를 처음 읽었을 때의 흥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원고는 “There’s nothing on TV(이제 TV에는 아무것도 없다)”로 시작했고, 마지막엔 “A Window to the World(세상 밖으로 향하는 창)”라고 끝맺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성공하는 법’ 류의 노하우라기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크리에이터까지 소개하는 다양성이 마음에 와 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쏟는 대상이 변화함을 실감했기에 부제를 ‘시간을 지배하는 압도적 플랫폼’이라 지었습니다.

 

2019년 출간한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새라 케슬러, 김고명 옮김, 더퀘스트, 2019)는 제가 평소 신뢰하던 미국의 온라인 뉴스 미디어 〈쿼츠(Quartz)〉의 부편집장이 오랫동안 긱(Gig) 경제의 명과 암을 취재하며 쓴 책이었습니다. “경제적 자유인가, 불안한 미래인가”라는 부제를 내세워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평생 고용 개념의 기존 일자리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 실리콘밸리가 새롭게 만들어낸 근로 계약 형태인 긱 경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제도나 지원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진보도 혁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긱 경제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부정적인 결과를 예방하는 방법을 비중 있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21년에는 2020년 하반기부터 미국 뉴스 매체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감지되던 NFT 열풍을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한 『NFT 레볼루션』(성소라 외, 더퀘스트, 2021)으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들 사이에 유행하던 가상 자산의 일종인 NFT를 소재로 IP의 주체와 자산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싶었는데, 주식 투자 열풍과 맞닿아 재테크에 열심인 독자들이 구매하며 판매가 크게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때 과열 투자 분위기가 조심스러웠던 기억입니다. 여담이지만, 공저자 세 분의 국적이 한국, 미국, 독일로 각각 달랐던 탓에 의도치 않게 영어 공부를 하면서 기획과 편집을 진행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유튜브 레볼루션』,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NFT 레볼루션』

『유튜브 레볼루션』,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NFT 레볼루션』

 

 

 

편집자로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어느덧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연차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편집자로서 좋은 롤모델도 되고 미래 비전도 제시할 줄 알아야 하는데 가진 능력이 부족하여 조바심이 생기는 게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커다란 변화와 혁신을 이끈 기업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더 편리하고 유익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성장했습니다. 출판 편집자도 관습에서 벗어나 독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경험을 어떤 수단으로 제공해야 만족할지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겁니다.

 

많은 출판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디지털화의 본질 역시 형식(포맷) 이전에 발견성과 접근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과제로만 보이는 디지털화이지만, 그 정의를 단순화하면, 과거 출판사들이 서점과 거래를 했던 B2B 시장으로부터 출판사와 독자가 직접 교류하는 B2C 시장으로의 변화를 곱씹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엔터테인먼트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고, 뉴스와 미디어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독자들이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가 어렵고 지루하고 접근하기에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 방법을 찾고 변화해야겠지요. 이런 치열한 고민과 어설픈 시도들이 기어이 답을 찾을 거라고 믿습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편집자

 

“세원 씨는 일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껴요?” 저자로 연을 맺은 한 스타트업 CEO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저는 함께 작업하는 저자가 출판을 계기로 삶의 전환점을 발견하거나 지평을 확대하게 되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독자들의 일과 삶에 저의 출판물이 중요한 도움을 제공했다는 서평이나 이메일을 접할 때 기쁩니다. 또한 선후배 동료들이 일의 의미를 찾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이 맛에 일하지’ 싶습니다.

 

함께 일하는 안팎의 모든 사람들이 내적·외적 성장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과 정보, 영감을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편집자로 살아가겠습니다.

 

김세원

김세원 길벗출판사 경제경영서실 실장

200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국언론자료간행회에 입사하여 출판계에 입문했다. 이후 거름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편집과 기획, 홍보, 해외 도서 저작권 업무 등을 배웠고, 2012년 흐름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출판물의 품질을 책임지는 역할과 동시에 조직 관리 리더십을 배웠다. 2016년 길벗출판사에 입사, ‘더퀘스트’ 브랜드로 경제경영서를 출간하는 새로운 팀을 론칭했고, 현재는 경제경영·자기계발·인문교양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행본을 출간하는 사업실의 실장을 맡고 있다. 2017년부터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출판연감〉에 경제경영서 시장 분석을 집필하고 있다.
gim@gilbu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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