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3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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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 운영자가 출판에게

 

 

 

강수희(북스테이 오사랑 대표)

 

2019. 01.


 


사진 1 _ 제주 책방 아베끄


사진 1 _ 제주 책방 아베끄

 

“책, 계산 좀 해주세요!” 책방에 딸린 작은 방에서 하룻밤 묵은 손님이 체크아웃 전, 고심 끝에 고른 책들을 들고서 주인장을 찾습니다. 과연 어떤 책일까, 주인장은 기대가 됩니다. 미닫이 문 하나를 경계로 책방과 숙소 방이 붙어 있는 북스테이다 보니,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밤새 책방의 책들을 독차지했던 손님이 고르고 고른 책. 어떤 책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성상 책방과 북스테이가 위치한 동네는 인기 좋은 관광지입니다. 그래서 무거운 책은 인기가 적습니다. 여기서 ‘무겁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의미와 심리적인 의미.

 

여행하는 이들에게 묵직한 책은 짐이 되기에 주로 얇고 가벼운 책이 선택을 받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심란한 머릿속을 비우려고 떠나온 여행지에서까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혹은 생각이 많아질 ‘무거운’ 책들은 꺼냈다가도 다시 서가에 꽂히게 되는 거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멋진 한 컷을 위한 소품용으로 책을 활용하시는 분들. 느낌 있는 카페에서 바다와 하늘, 커피 한 잔을 배경으로 찍어서 SNS에 ‘힐링’이라는 해시태그와 올리면 누가 봐도 그럴싸한 멋진 여행이 될 테니까요. 여행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예쁜 표지와 현재 여행자의 심경을 담은 제목의 책이 여행지에서 인기가 있는 거겠죠. 이유가 어떻든 선택을 받은 책들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사진 2 _ 북스테이 오사랑


사진 2 _ 북스테이 오사랑

 


사진 3 _ 북스테이 오사랑


사진 3 _ 북스테이 오사랑

 

북스테이와 책방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는 터라 여행자들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책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서운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물론 이런 서운한 마음을 헤아려주려는 듯, 밤새 읽고 구입하려고 고른 책이 책방 주인의 욕심으로 들여놨던, 이른바 ‘안 팔릴 것 같은 책’일 때는 짜릿한 반가움에 손님의 얼굴을 한 번 더 기억해두려고 기억 세포를 총동원해봅니다. ‘안 팔릴 것 같은 책’이 서가에 오래 꽂혀 있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다행스러운 건, 북스테이의 투숙객이라면 밤새 책방의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무거워서 여행지에서 사긴 애매한 책도 밤새 읽고, 맘에 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그 책을 구입할 수도 있겠죠.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장의 여행자에게 적합한 책은 아닐지라도, 바닷 마을 책방에 딸린 작은 방에 묵으면서 영업시간이 끝난 책방에 잠옷 차림으로 읽었던 책이라고 기억하면서 말이죠. 그렇게라도 바닷 마을 작은 책방에선 ‘안 팔릴 것 같은 책’이 주인을 만난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이 없을 거 같아요. 여행지에서 고른 책은 일상에서 골라 읽은 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고른 책’은 꼭 구입한 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서가에 가득한 책들이 뿜어내는 내음 속에서 슬쩍 들춰보려고 집어 들었다가 한눈에 빠져든 그림동화, 여행의 피로 때문에 잠이 쏟아지는 중에도 마지막이 궁금해 읽다 결국 잠이 들어 아침에 마저 읽어야 했던 추리소설, 내 일기장을 훔쳐 놓았나 싶을 정도로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어 오래간만에 꿀잠을 자게 한 연애 에세이까지. 책과 침대, 흔들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이 아늑한 공간에서 읽은 책들은, 시간이 지나며 어떤 내용이었는지 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겁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겠죠.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그 책의 주인공과 결말은 가물거릴지라도 책의 제목과 표지, 적어도 그 책을 읽었던 공간의 공기는 기억에 남을 겁니다.

 

그런 책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흔해 빠진, 너무 식상해서 쓰기도 민망한 ‘힐링’이 아니라 진짜 충전이 되는 치유의 책들. 고전부터 독립출판물들까지, 각자 다른 이유로 충전이 되었을 테니 장르와 작가의 국적과 나이, 성별 불문! 밤새 통잠을 자고 난 듯 개운한 상태로 만들어줄 그런 책.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틸 힘을 주는 책들 말이죠. 그런 책들로 가득한 책방과 북스테이는 충전기가 될 수 있겠네요. 충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충전기 케이블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져, 책을 아끼는 사람들 손에서 읽히는 책들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에서 주인을 찾아가는 상상. 북스테이와 동네 작은 책방들이 유행처럼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고, 트렌디한 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요즘, 행복한 충전기가 되는 상상과 현실 속에서 오늘도 고민을 합니다. ‘어떤 책들을 주문해야 할까’ 하는 고민. 여행자들도 좋아하고, 두께에 상관없이 갖고 싶은 책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주문 도서가 넘쳐버렸습니다. 이것저것 담아 넣은 리스트에서 최종 주문 도서를 걸러냅니다. 밤새 책방의 책들 중 무엇을 살까 골라야 했던 여행자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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