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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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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서점 자생력 키우는 토대 만들겠다" 이종복 서련 회장 인터뷰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2019. 07.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의 새 집행부가 출범했다. 한국서련은 국내 서점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중심 단체로 꼽힌다. 올해로 70년을 맞는 이 단체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종복 한길서적 대표는 그동안 서점계 내부에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주요 전환기에 중책을 맡은 그를 〈출판N〉의 백원근 편집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6월 27일 오후 홍대 앞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카페에서 진행됐다. 2시간이 넘는 내내 이 회장의 목소리는 일관되게 높고 분명했다.

 

백원근: 지난 5월 24일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 신임 회장에 취임하시면서 취임 일성으로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강조하셨는데요. 임진왜란 때 실의에 빠져있던 서애(西厓)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준 글귀로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지요. 서점계를 확 바꿔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이종복 : 지역서점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점의 폐업 시기를 고민하는 서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삶은 행복할 수 있다는데, 지금 서점인들에게는 오늘은 힘들지만 앞으로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 회장직을 맡아서 동료와 선후배 서점인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서점과 관련된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도록 물적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서점을 통한 공공구매를 완전히 정착시키고, 기존 매출로도 수익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두 가지의 큰 과제입니다. 서점인의 자세도, 서점계 밖의 서점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바뀌어야 합니다. 혁신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 정도면 ‘재조산하’가 아닐까요?

 

사실 지역서점은 오랜 기간 학습참고서 중심의 매출 구조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대형 교과서-참고서 출판사가 조직한 총판 경로를 통한 학습참고서 판매를 기반으로 도매상이 공급하는 단행본 판매에 의존해 왔는데요. 유통사들이 각자 서점까지 배송하는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제거해서 ‘거점 배송과 통합 배송’ 방식으로 확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배송비 절감과 물류 효율성을 높여서 서점의 수익이 제고될 수 있습니다.

 

체인형 대형 서점을 제외한 전국 중소 지역서점의 출판유통시장 점유율은 20%대에 불과합니다. 더 이상은 물러설 데가 없습니다. 이제 역발상으로 인터넷서점과 대형 체인서점의 70%대를 공략할 작정입니다.

 

백원근 : ‘서점에 대한 오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이종복 : 예를 들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계신 분들은 진흥원 지원 사업에서 서점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북토큰 제도(청소년 도서 구입 쿠폰의 배포), 도깨비책방(문화예술 유료 관람권과 지역서점 도서 구입 영수증을 책과 무상 교환), 보급형 POS(지역서점 판매정보관리 시스템) 등은 서점만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출판사이고 독자입니다. 서점이 출판물의 전시 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만큼의 대접은 고사하고 출판사들로부터 냉대까지 받고 있습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백원근 : 회장 재임 기간 중에 역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한국서련의 주요 사업,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이종복 :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학교나 도서관 등 지역 내 공공구매에서 지역서점을 필수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것, 이를 뒷받침하는 지역서점 인증제와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의 실효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이것만 잘 해도 지역서점 월평균 임대료에 해당하는 수익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공공구매가 지역의 생활문화 공간인 서점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경우 초중고 교과서 구입을 지역서점을 통해 하는데, 이런 교육 행정상의 개선책도 지역서점 육성의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물류비용을 절감해서 서점 경쟁력을 높이는 재원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출판 물류는 매우 낙후된 방식이어서 출판사 책을 서점에 공급하는 배본 대행사와 도매상이 개별 서점까지 일일이 배송하면서 물류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물류 회사들 간의 정보가 공유되지 않거나 중복 물류 등으로 인해 저효율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효율화시키고 그 재원을 서점으로 돌리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3통(三通), 즉 전산 통합, 브랜드 통합, 물류 통합을 해야 합니다. 근처 서점에 원하는 재고가 있으면 그걸 받으면 되는데 지금은 협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서초구의 6개 서점에서 ‘더 북스’라는 이름으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고, 이를 경험 삼아 전국 확대에 대한 자신감도 있습니다.

 

의욕이 앞서서 많은 일을 벌이기보다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개별 지역서점은 힘이 없을지 몰라도 한국서련이 하면 다릅니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여러 장의 카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잔머리도 쓸 줄 모르고, 패도 오직 하나입니다. 그 카드를 보여드리고 우직하고 일관되게 정진하겠습니다.

 

백원근 : 경기도가 광역지자체에서는 유일하게 지역서점 인증제를 관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인증제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종복 : 물론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경기도는 현장 실사까지 모든 과정을 경기도에서 도맡아서 하고 있어서 다른 지자체들이 쉽게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인증제를 주관하더라도 진성 지역서점(고객 대상의 소매 매장을 갖추고, 출판물 매출 등이 일정 비율 이상인 서점)을 민간의 한국서련과 지역 조합이 확인해주는 방식으로 전국 단위의 일원화된 인증제 시행이 필요합니다.

 

백원근 : 발표하신 취임사에서 감동적인 부분이 ‘자자손손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서점’을 만들자는 구절입니다. 그게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나 동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이종복 : 뭐니 뭐니 해도 서점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되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서점을 하려는 후배나 차세대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거점 배송, 통합 배송’ 이야기도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추진할 작정입니다.

 

백원근 : 완전 도서정가제 확립이 한국서련의 기본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현행 정가제 아래에서 “적극적인 10% 할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신 부분은 이색적입니다. 직접 운영하시는 서점에서도 10% 할인을 하고 계시지요? 공급률 문제도 있어서 쉽지 않은 현실인데요. 이에 대한 서점계 반발은 없나요?

 

이종복 : 현행 도서정가제는 확실한 도서정가제가 아니고 단순한 할인 제한법입니다. 원칙과 법리가 실종되었습니다. 지역서점 활성화 제도가 아닙니다. 15% 직간접 할인이 가능한 인터넷서점만 살라고 하는 제도입니다. 범 출판시장을 아우르는 제도로서 제 기능을 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사실 서점계에서 금기어 중 하나가 ‘할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인식의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구성한 한국서련 임원진은 선배님들의 양보로 50대가 주축입니다만, 지난번 이사조합장 회의 때 광역 조합장 한 분이 “현행 정가제 아래서는 인터넷서점에 맞서는 할인을 해야 서점이 살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했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한국서련 회의석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시장은 정말 냉정합니다. 도서정가제에서 중요한 건 ‘생존 마진’ 문제입니다. 그동안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완전 도서정가제를 지향한다는 한국서련의 기본 입장은 그대로입니다.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현행 제도 아래서는 생존을 위한 타협과 유연성 발휘도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정가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독일식 공시(公示) 시스템을 참조해서 출판사가 자유롭게 재정가를 책정하도록 하고 이를 공시해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말고 모든 도서 판매업체가 일물일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제 서점에서 법이 허용하는 10% 할인을 적극적으로 하며 고객들을 인터넷에 뺏기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할인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단골 고객들을 인터넷에 모두 뺏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유통 비용과 다른 경비를 줄여가며 발악하듯이 해온 생존 영업이었습니다.

 

백원근 : 현재 서점계의 중요한 현안 중 하나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입니다. 지난 1월 동반성장위원회에 지정 신청 이후 복잡한 행정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요. 지정 확정을 낙관하시는지요?

 

이종복 :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도 누군가에는 불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출판계 심정도 압니다. 심의하는 정부 기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적합업종 지정의 의미는 지역서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제도 자체가 서점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서점계의 노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특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백원근 : 기업형 중고서점이 서점 경영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대책이 있을까요?

 

이종복 : ‘알라딘’ 같은 전국 체인형 중고서점 매장들은 오프라인 지역서점들에게 굉장한 위협입니다. 기업형 중고서점 매장 근처의 서점들은 폭탄을 맞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에 앞장을 서야 하는 건 출판계 아닌가요? 기업형 중고서점 사업자에게 새 책을 팔도록 공급하는 건 모순입니다. 서점에 분명한 피해가 있고, 결과적으로 출판사의 신간 판매에도 크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름은 중고서점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영업 형태를 보면 사실상 대여점과 같습니다. 독자가 저렴한 가격에 사서 다시 되팔면 대여료에 해당하는 보증금만 낼 뿐입니다. 대여점 맞지 않습니까? 기업형 중고서점에서의 매매 순환이 증가할수록 새 책은 그만큼 덜 팔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민간 자율협약으로 발행 후 6개월이 지난 책만 판매하도록 하고 있지만 적어도 18개월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새 책을 판매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출판계에 있습니다. 새 책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중고책을 판매하지 않도록 거래 계약을 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출판계는 이행해야 합니다. 서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출판계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정가제와 함께 이런 중고책 문제까지 포괄하는 출판유통진흥법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서 강제력을 갖도록 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백원근 : 각종 도서관의 무료 대출이 서점의 매출과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책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인 도서관과 서점이 상생하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요?

 

이종복 : 공공도서관도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윤독(輪讀)이 아주 일상화되었습니다. 한 학년이 300명이라면 한 반 정원(30명)에 해당하는 필독서를 구입해서 반마다 돌려 읽는 방식의 윤독이 일반적입니다. 교육기관이 앞장서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판사뿐 아니라 저자에게도 큰 손해입니다. 저자들이 아무런 목소리도 안 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 저자 단체가 없는 모양입니다.

 

작년에 납품하는 학교의 사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학년생의 경우 학교에서 한 학기에 700권 정도의 책을 본답니다. 적게 봐도 200권 정도라고 합니다. 금방 읽을 수 있는 그림책 같은 책이 많이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책을 안 보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만, 문제는 책이 그만큼 안 팔린다는 점입니다.

 

지역에서 도서관과 서점이 공생하려면,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반드시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도록 해야 합니다. 도서관과 서점의 선순환 구조가 확대되려면 도서관에서 지역서점을 거점으로 ‘희망 도서 바로 대출제’를 확대하고, 반드시 진성 서점으로 인증된 곳에서 책을 구매하도록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백원근 : 서울시가 문을 연 공영 중고책방 '책보고'가 인기입니다. 혹시 가보셨는지요? ‘책보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종복 : 당연히 가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울시가 해서는 안 될 사업을 공공사업으로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청계천에 문화공간 벨트를 만들어서 중고책방을 지원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공공 영업장을 만들면 그동안 어렵게 유지하던 헌책방들을 모조리 죽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희귀본을 구입하거나 판매하는 공간으로 유지되는 건 좋다고 봅니다만, 지금 같은 방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서도 아니고 일반적인 중고책 매매, 재고도서 판매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 잘 될수록 새 책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서울시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알리딘에 부담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백원근 : 그동안 한국서련 유통위원장으로서 대외적으로 서점계를 대표해서 활동해 오셨습니다. 출판산업과 출판유통 분야의 파트너인 출판계에 할 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출판계에 바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종복 : 출판계는 서점계의 영원한 동지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출판계는 서점계를 진정한 출판유통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형 출판사들 중에서는 틈만 나면 공급률을 내리기는커녕 올리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유통 형평성을 위해서는 2014년 도서정가제 강화 이후 인터넷서점 공급률을 올리고 오프라인 지역서점 공급률은 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지언정 출판사만 살겠다고 공급률을 올리는 곳들이 있어서 강경하게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상품을 대신 진열해서 판매하는 공간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서점들과 상생하는 방법을 출판계에서 찾기 바랍니다. 근래에는 약간의 인식 변화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저녁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이 화두 중 하나인데요. 출판사나 출판유통업체의 경우 대부분이 그게 실현되었습니다만, 서점인들은 아직도 누리지 못하는 꿈입니다. 원인은 공급률 문제가 가장 큽니다. 출판사 공급률을 학습참고서는 5%, 단행본은 2~3%만 낮춰줘도 좋겠습니다.

 

과거 잡지들이 부록으로 경쟁하던 시절에 대형서점에만 부록을 제공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교보문고에서는 〈우먼 센스〉 부록으로 아이스박스를 붙여서 판매하는데, 다른 서점에는 부록을 제공하지 않던 식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인기 베스트셀러를 출판사가 지역서점에 공급해주지 않는 사례도 있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출판사들이 인터넷서점하고만 이벤트하고 인터넷서점에만 굿즈(Goods)를 주면서 지역서점을 소외시키는 일이 상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판매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해서 지역서점을 차별하는 것이지요. 출판산업의 동반자 맞습니까?

 

다만, 서점계에서도 물류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서 출판사들이 거래하고 싶도록 기본부터 갖추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책이든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출판계와 유통업계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출판계, 유통업계, 서점계가 따로 놀지 않고 함께 연계해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함께 죽을 길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백원근 : 단체 연혁을 보면 1949년 8월 7일 전국서적상조합연합회 창립총회를 연 것이 한국서련의 시작인데요. 올해가 마침 70주년입니다. 기념행사나 특별한 기획이 있으신지요?

 

이종복 : 70주년이라는 역사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서련 차원의 공식 행사는 별도로 없습니다. 다만 올해 ‘서점의 날’(11월 11일)에 70주년의 의미를 붙여서 행사를 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몇 해째 하고 있는 ‘서점의 날’ 행사가 무슨 관제 행사처럼 치러지는 것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영세 서점의 서점인들이 행사장에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여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과성 요식 행사가 되지 않고 서점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사가 되도록 고민하겠습니다.

 

‘서점의 날’에 시상식 등을 통해 서점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전국 단위로 대대적인 마케팅을 철저히 해서 독자와 시민들이 ‘서점 가는 날’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서점인과 독자가 기다리는 장을 만들까 전략이 필요합니다. 독자와 서점인을 위한 ‘서점의 날’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 (사진촬영: 김원)

 

백원근 : 서점계에 어떤 계기로 입문하셨고, 서점인으로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요?

 

이종복 : 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아는 분의 소개로 동대문 대학천에 있는 ‘대일도서’라는 도매상에 취직했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는 지역총판을 거쳐서 세광음악출판사에서 영업자로 일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살려서 1994년에 서점을 개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점 매장을 3개 운영하는데, 2개는 수익이 안 나지만 남는 것이 없어도 유지만 되면 계속할 생각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책방이 필요하고 직원들의 생계를 위해서도 서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7평짜리 서점으로 시작해서 7년 동안은 후암동에 있는 ‘명문사’라는 총판에 주간지를 가지러 매주 가기도 했습니다. 소량은 배송해 주지 않았거든요. IMF 구제금융 시기에는 서점을 접으려 했었고, 서점 매장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유지해 왔습니다. 저의 25년 서점 인생은 물질적으로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도 뚜렷하고, 이 길을 후회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백원근 : 서점이 어렵다는데 젊은이들 중심으로 독립서점은 창업 붐입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종복 : 서점계에 입문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개성과 취향이 뚜렷한 독립서점일수록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칫 보트 피플이 되기 쉽습니다. 거품, 신기루 같은 현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멋있어 보이지만 허상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제 판단으로는 현재와 같은 독립서점 모델은 이미 쉽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봅니다. 경쟁력을 갖추고 정상적인 영업을 하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합니다. 한국서련에서도 힘이 되는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백원근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서점ON과 보급형 POS 사업, 그리고 출판산업 주체들이 함께 추진하는 유통통합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잘 되고 있습니까?

 

이종복 : 유통통합시스템은 제가 쉽게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대로 추진되기를 바랍니다. 초기 계획들과 달라지는 부분은 주의해야 합니다.

 

서점ON과 보급형 POS 사업은 꼭 필요합니다. 다만 도서 데이터베이스가 부정확한 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투자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납본 단계에서 1권의 책을 추가로 구입해서 데이터 작업을 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대로 데이터를 만들고, 이 데이터를 민간에서 가져다 쓰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데이터베이스 구축만은 책임 있는 기관에서 구축하여 공공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POS 사업의 경우 기존 프로그램 개발업체가 서점의 특성과 거래 방식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해서 수정은 했습니다만 최종 버전이 나오기 전에 업체에 문제가 생겨서 사업 취지가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서점 정보화와 관련 사업 전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책임 있는 대응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신뢰와 공신력이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백원근 : 마지막으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정부에 대한 바람이나 서점 관련 정책 제언이 있으시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종복 : 서점의 가치, 서점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평가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럴 때 정부 정책도 달라질 것입니다. 서점은 동정이나 적선의 대상이 아닙니다. 출판문화산업의 핵심 구성원이고 서점을 진흥하는 것은 그 수혜자가 서점이나 출판산업에 그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책과 독서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정부나 진흥원의 자세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점계가 왜 구걸을 해야 합니까.

 

서점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식의 진흥 정책을 펴야 합니다. 보여주기식, 선심성, 일회성 정책은 이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정책 제안은 없습니다. 학교나 도서관의 공공구매를 지역서점에서 하는 것이 보편화되도록 제도화에 적극 힘을 보태주고, 유통 물류 시스템이 혁신되도록 합당한 예산과 행정력을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백원근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뜻하신 계획들이 잘 추진되어서 지역서점이 융성하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국출판학회 부회장이며 출판평론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조사〉, 〈독서진흥연차보고서〉 등의 책임연구자를 다년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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