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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5  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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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인쇄 골목의 애환

 

 

 

조현준(경운대학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

 

2023. 07.


 

구텐베르크에서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까지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발명은 귀족층을 중심으로 필사로 책을 유통하던 당시 유럽에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다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6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그 혜택으로 인해 ‘인쇄’가 된 무언가를 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구텐베르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인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분들은 이른바 ‘인쇄 골목’이라는 곳에서 함께 작업한다.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이 대표적이다. 이 글에서는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은 근대에서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1세기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1906년 1월에 ‘광문사’가 국민 계몽을 위한 서적과 잡지를 출판, 발행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대표적으로 『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의 출판은 국채보상운동을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되었고 일선 사립학교의 교재로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1910년대부터 해방까지는 대구의 인쇄업이 크게 확장되기는 하였으나,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운영되던 인쇄소가 많았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식 인쇄 기술과 자재 공급에 의존했던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근대식 인쇄 시설 도입과 독자적 기술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확장을 이루었다.

 

특히 195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활자 주조기를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68년 경북인쇄소에서 지방 최초로 자동 오프셋 인쇄기 1대와 자동 활자 주조기 3대를 도입하였다. 이때부터 업체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인쇄 작업의 특성상 공정을 집약해 효율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인쇄 골목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제 성장의 고도화와 함께 인쇄업 또한 호황기를 누렸지만, 2000년대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로 보던 정보는 스크린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또한 인쇄 기술자 대부분의 연령대가 60대 이상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인쇄 골목에 각종 재개발 사업이 계획되면서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좌) 제본기와 제본기술자 (우) 1960년대 활판 인쇄기와 1970년대 탁상 인쇄기

(좌) 제본기와 제본기술자
제본기는 제본의 마지막 공정에 필요한 기계로, ‘인쇄의 꽃’이라고 불린다. 제본할 페이지가 정해지면, 그에 맞게 표지를 재단하고 책등과 종이를 풀로 붙여 완성품이 나온다. 작업 전에 책등에 글자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서점에서, 혹은 책장에서 책을 만날 때 책등에 적힌 글자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제본 때문이다.
(우) 1960년대 활판 인쇄기와 1970년대 탁상 인쇄기
대구 남산동 인쇄 전시관에 있는 인쇄기이다. 남산동에서 오랫동안 작업에 사용된 실제 인쇄기를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대신, 화면을 쓸어 올리는 시대

 

책 표지를 감상하고 첫 장을 넘길 때의 그 소리와 냄새를 혹시 좋아하는가? 책에 인쇄된 ‘글자’ 이외에도 책은 우리에게 소리와 냄새로 다가온다. 그래서 책은 눈으로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 그리고 코를 자극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독서의 즐거움은 오감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북적한 지하철이든, 한적한 카페이든, 도서관이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대부분에서 스마트 기기가 책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풍경은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벌써 고리타분한,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을 하느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다. 맞는 이야기이다. 책 또한 전자출판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에는 구텐베르크를 어쩌면 구시대적 산물로, 혹은 시대의 한 단락을 장식하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단락의 가운데 우리는 살고 있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에는 좁은 아스팔트 도로, 오래된 간판과 가로등, 작업을 하다가 중단한 지게차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인쇄 골목의 불야성은 이제 기록으로만 존재하며 조금씩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 스크린의 화면을 쓸어 올리는 만큼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페이지는 넘어가고 있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낮과 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낮과 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중심 골목이다. 낮과 밤이 그리 다르지 않다.

 

 

기록을 찍는 사람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

 

인쇄는 다른 의미로 기록이다. 사소한 전단지부터 두꺼운 책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써 가치가 있으며, 이러한 기록은 삶의 과정이자 세상을 축적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인쇄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각수(刻手,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장인)가, 그 후에는 인쇄 장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정작 기록을 찍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록된 적이 없었다. 더구나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은 100년 가까운 시간이 쌓여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지 않았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쇄 골목 작은 가게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쇄 골목 이거 우짜노….’ 한숨 섞인 푸념이 크게 들려왔고, 그 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인쇄 골목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골목골목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담았고, 그 기록을 조금씩 쌓아가며 익숙해질 때쯤 『기록을 찍는 사람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 』(산지니, 2022)을 통해 기록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그저 지나쳤던 책과 종이 그리고 전단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쇄의 세부적인 공정들을 알 수 있었고, 지류(紙類)에서부터 제책(製冊)과 재단(裁斷)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계와 인쇄 장인의 손길이 들어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의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15세에 인쇄 일을 시작해서 86세 된 지금까지 인쇄소를 떠나지 못하고 계시는 한 어르신은 이렇게 이야기를 전했다.

 

“기억에 남는 일이라…. 기억에 남는 일은 딱히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인쇄 일이 만날 똑같은 일의 반복이거든. 내가 찍어낸 물건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기계를 없애면서 그나마 있던 물건도 싹 다 정리했거든요. 그리고 나는 그 안에 내용 같은 건 잘 몰라요. 인쇄만 했지 잘 몰라. 그래도 생각을 해보면 만날 똑같이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만큼이나 나도 열심히 살았고, 기계가 없으니 나도 그냥 이러고 앉아 있고, 뭐 그렇지요. 모르기는 몰라도 오늘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기억에 많이 남겠네요.”

 

대양인쇄사 외관(좌)과 인터뷰 중인 대양인쇄사 남극채 대표(우)

대양인쇄사 외관(좌)과 인터뷰 중인 대양인쇄사 남극채 대표(우)
15세에 대구 남산동에서 인쇄 일을 시작하여 현재 86세까지 쉼 없이 인쇄만 해온 산증인이다. 지금은 모든 인쇄 기계들을 처분하고 작업을 하던 공간에 나와 지인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 그리고…

 

지금은 종이 냄새와 커피 냄새가 함께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젊은 층에서는 ‘남산동 인쇄 골목’이라는 말 대신 ‘남산동 카페 골목’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인쇄업에 종사하시는 어른들 대부분은 이를 우려하고 낯설게 느끼고 있다. 익숙했던 장소에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며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에게는 서운한 일일 수도 있다. 시대는 늘 이렇게 새로움과 익숙함의 경계에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이 살던 동네가 변한 만큼 자기 자신도 딱 그만큼 변한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변하지 않았던 인쇄 골목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만큼 인쇄 골목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그 변화를 낯설게 느끼고 있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이 낯섦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남산동 인쇄 골목과 관련하여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인쇄 골목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요?’이다. 대답은 충무로 인쇄 골목에 속했던 을지로를 늘 사례로 든다.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는 요즘 이야기하는 ‘뉴트로(‘새로운(new)’과 ‘복고풍(retro)’의 혼성어)’의 대표적인 장소이다. 과거 인쇄 골목의 모습과 현재의 트렌드가 잘 융합된 곳으로 알려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새롭게 떠오르는 관광 명소가 되어 가고 있다. 남산동 인쇄 골목 또한 을지로와 같이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 그러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쇄 골목이 위치한 남산2동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재개발 압력을 받아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동성로라는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번화가가 자리해 있고, 봉산문화거리나 약전 골목, 근대 골목 같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거리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하철 1, 2, 3호선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기에 주거 공간이자 상업 공간, 나아가 문화 공간으로서도 매력적인 곳이다. 인쇄 골목이 자리한 남산2동의 땅값은 나날이 오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상승은 당연히 재개발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되었다. 불과 20년 전, 아니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체감할 수 없던 현실이 이제는 바로 코앞에 도래한 것이다.

 

어쩌면 남산동 인쇄 골목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사업장을 물려주고 싶어도 젊은 사람들이 인쇄업 자체에 진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업체 종사자들의 고령화는 인쇄 골목의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쇄 골목 재개발’이라는 현수막은 인쇄 골목의 소멸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표지처럼 보인다.

 

남산동 행정복지센터 옆에는 인쇄 전시관이 있다. 이곳만 덩그러니 남으면 어떡하지?

 

<남산동 인쇄 골목 미리보기 2022>

〈남산동 인쇄 골목 미리보기 2022〉
남산동 인쇄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선 카페들이 적혀 있다. 카페 대표들이 인쇄를 활용하여 홍보용으로 제작한 인쇄물이다. 카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며, 그만큼 인쇄소는 줄어들고 있다. 남산동 인쇄 골목과 남산동 카페 골목은 현재 공존하고 있다.

 

 

엮다, 묶다, 펼치다 그리고 닫다

 

책은 흩어진 무언가를 하나의 기준으로 엮고 묶는 작업이다. 작가는 그런 고민을 글자로 적는 직업이며, 그 고민의 완성은 글자를 묶음으로써 완성된다. 그렇다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완성된 글은 책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기까지 나름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종이에 글자를 새기고, 그것을 엮고, 묶고 난 이후에야 독자들에게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펼친 책을 닫을 때까지의 시간은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펼치고 닫는 과정은 각 개인의 몫이지만, 책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즉 엮고 묶는 작업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그 과정이 늘 궁금했었고, 책을 펴내는 이번 작업을 통해서 그 과정이 얼마나 많은 전문적 지식과 손길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될 때쯤, 엮고 묶는 작업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더 풀어헤쳐질 수도 있고, 심하게는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엮고 묶는 작업은 가치가 있다. 인쇄되지 않은 기록,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을 거닐어 본다.

 

오랜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 재단소가 기억이 난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내부를 둘러보다 벽에 장식된 글귀가 머릿속을 맴돌아서일까.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성경 구절이었다. 그런데 ‘종의 집이’ 아닌 ‘종이의 집’으로 보인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가게는 재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의 ‘애환(哀歡)’은 어쩌면 ‘환(歡)’에서 ‘애(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재단소 내부 사진

한국재단소 내부 사진
다양한 재단 기계가 돌아가는 가운데 인터뷰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쓸 때 다시 찾아갔지만,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현준

조현준 경운대학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

문학 박사이며, 경운대학교 기초교육학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위한 글쓰기』(배영출판사, 2020), 『기록을 찍는 사람들: 대구 남산동 인쇄 골목』(산지니, 2022)가 있다. 국어학, 한국어교육, 글쓰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jhjun@i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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