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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5  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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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내일을여는책 김완중 대표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보며, 내일을 여는 출판을 지향합니다

 

 

 

백창민(북헌터 대표)

 

2023. 07.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 본고에서 ‘1인 출판사’는 대표 포함 5인 미만의 출판사를 말함.

 

출판사 대부분은 ‘도시’에 있다. 다들 도시에서 출판을 할 때 전라북도 장수 산골에서 당당하게 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있다. 투박한 듯 묵직한 메시지를 책으로 빚어내는 ‘내일을여는책’은 장수에서 어떻게 출판을 하고 있을까? 전라북도 장수로 찾아가 김완중 대표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판인 김완중과 내일을여는책

 

‘내일을여는책’ 출판사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장수에는 2013년 7월 25일에 내려왔어요. 그때는 밭농사 반, 책농사 반을 하려고 내려왔죠. 그런데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해서 반반씩 하면 둘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겠더라고요. ‘밭농사’는 수익이 나지 않아서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책농사’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닐 때도 회사를 그만두면, 시골로 내려가자고 생각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장수댁(김완중 대표의 아내)’이 큰 믿음을 줬어요. 철석같이 믿어주니, 없던 자신감이 생겨서 하게 된 출판사예요. 2013년에 귀촌했으니까 돌아오는 7월 25일이면 꽉 찬 10년이 되네요. 되돌아보면 기적 같습니다. 제 능력에 비해서 10년 동안 망하지 않고 출판을 하고 있는 게 기적이에요. 많은 사람의 도움과 염려 덕분에 출판을 하고 있어요.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 시간이기도 했어요.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보며, 내일을 여는 출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어떻게 지으셨나요?

 

‘내일을여는책’은 제가 처음부터 직접 창업한 출판사가 아니에요(김완중 대표는 내일을여는책의 세 번째 대표다.). 그래서 ‘내 꼴’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지은 캐치프레이즈에요. 책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담는 그릇이잖아요. 그런 역사성을 출판사의 지향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잠을 자려다가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보며, 내일을 여는 출판”이라는 문구가 생각났어요. 그렇게 지은 문구예요. 내일을 열기 위해 중요한 건 오늘이죠.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도 있으니까요.

 

 

 

내일을여는책 창업 전에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17~18년 정도 근무했어요. 그 전에는 수도권에 있는 신문사의 편집기자로 일했고요. 신문사는 여러 번 옮겼어요.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회사에서 잘리기도 했죠. 광대 기질이 있어서 성우가 되려고 CBS 방송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했어요. 성우 과정을 수료할 즈음 한 선배가 편집국장으로 일하던 출판사(창공사)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출판계에 입문하게 되었죠. 나중에 뜨인돌 출판사에서 일한 건 전 출판사 대표님 소개 덕분이었고요.

 

 

 

‘출판은 저널리즘’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신문사에서 일한 경력이 출판을 ‘언론’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작용하신 건가요?

 

그런 영향도 없진 않겠지만,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제가 84학번이거든요. 책, 특히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죠. 그래서인지 책은 메시지를 품어야 하고, 건강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사람마다 출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거예요. 저는 ‘출판은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내일을여는책 김완중 대표(Ⓒ 김완중 대표 페이스북)

내일을여는책 김완중 대표(Ⓒ 김완중 대표 페이스북)

 

 

 

2009년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 ‘마케터상’을 받기도 하셨어요. 나중에는 뜨인돌 출판사에서 상무까지 하셨는데요.

 

‘마케터상’은 제가 마케팅을 잘해서 받은 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 받을 때 수상 소감도 “제가 마케터상을 받음으로써 민폐가 될까봐 걱정이다, 나 같은 사람이 받아서 이 상의 권위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내용으로 말했어요. 뜨인돌 출판사 ‘상무’도 당시 저보다 연차가 많은 사람이 없어서 됐다고 생각해요. 뜨인돌의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창립 멤버라는 생각으로 일하긴 했어요.

 

 

 

마케터로 ‘정년퇴임’이 가능한 분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18년 동안 일한 출판사를 떠나 ‘귀촌’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만둘 때 여러 말이 있긴 했어요. 열매가 무르익으면 떨어지듯,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죠. 뜨인돌 출판사에서 10년 차가 되었을 때 안식월을 한 달 받아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가족여행을 다녀온 다음에 일주일 정도는 나 혼자 있게 해달라고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죠. 그때 전라북도 무주에 있는 폐교(도예원)에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장수를 알게 됐어요. 직장을 그만두면 무주나 장수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회사를 그만두면서 장수로 귀촌했죠.

 

 

 

‘내일을여는책’은 지인의 출판사를 ‘인수’하신 거잖아요. 출판사를 새로 창업할 수도 있는데요. 처음부터 인수를 통해 창업하려고 하셨나요?

 

인수를 통해 창업할 생각은 없었어요. 내일을여는책은 황덕명 대표님이 1993년 5월 창업한 출판사에요. 〈처음처럼〉 같은 격월간 잡지를 내면서 교육에 대한 책을 주로 펴냈죠. 황덕명 대표님이 운영하다가 출판사가 어려워지자, 영업부장을 하던 분과 정병인 씨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출판사를 넘겨받았어요. 내일을여는책 2대 대표가 정병인 씨입니다.

 

정병인 씨는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후배였어요. 여러 해 동안 정 대표가 내일을여는책을 이끌다가 강원도 태백으로 가게 됐죠. 정 대표가 출판 일을 접으면서, 얼떨결에 제가 넘겨받게 됐어요. 기존 출판사를 인수해 창업할 경우 그 출판사 브랜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내일을여는책’ 브랜드 이미지와 방향성은 좋아 보였어요. 참교육 1세대가 만든 교육 전문 출판사였고, 교육공동체를 지향한 곳이죠. 다만 제가 넘겨받을 당시 살아 있는(유통이 가능한) 책이 거의 없었어요. 저자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죠. 그래서 출판사 이름만 살려서 ‘김완중이 하는 출판사’로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모든 기획 방향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내일을여는책 2대 대표였던 정병인 대표(Ⓒ 김완중 대표 페이스북)

내일을여는책 2대 대표였던 고(故) 정병인 대표(Ⓒ 김완중 대표 페이스북)

 

 

 

출판사를 넘겨준 정병인 대표님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정병인 대표는 출판계에서 오래 일하다가 ‘내일을여는책’을 인수해서 독립한 친구예요. 제가 뜨인돌 출판사에서 일할 때부터 친했어요. 동생이고 후배인데,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어요. 제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이 “동선생 병인”이었어요. ‘동생’이자 ‘선생’이었죠. 출판 영업자 모임에서 만났는데, 일주일에 3일은 만나서 술 먹는 사이가 되었죠. 그 인연이 이어져 내일을여는책도 제가 맡게 됐어요.

 

서로 떨어져 지내도 명절이면 먼저 전화를 하는 친구였죠. 2022년 설 연휴 때였어요. 전화가 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에서 30만m² 토사가 붕괴하면서 매몰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봤어요. 느낌이 싸하더라고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1호 사건이었죠. 사고 피해자가 아니기만 빌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정 대표의 조카에게 전화가 왔어요. ‘사고 소식 들었느냐’라는 연락이었어요. 그렇게 사망 소식을 접했어요. 4박 5일 동안 장례를 치렀죠. 사실상 상주(喪主) 노릇을 했어요. 정 대표가 출판 일을 그만둔 지 오래돼서, 주변에 연락할 사람도 저밖에 없었어요. 후배의 상주 노릇이 쉽지 않더라고요. 장수댁과 우리 아이들도 “삼촌, 삼촌” 하면서 따랐던 친구예요.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힘들었어요.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도 한동안 힘들었어요. 오늘의 나를 있도록 한 게 정병인, 그 친구 덕분이거든요.

 

지역출판

 

지역출판사 상당수는 지방에 있더라도 ‘도시’에 있습니다. 내일을여는책은 ‘도시’가 아닌 ‘시골’에 자리한 흔치 않은 출판사입니다. 말 그대로 시골 산촌에 자리한 ‘산골출판사’일 수 있는데요. 전라북도 장수 송학골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귀촌하기 전에 무주에 땅을 사두긴 했어요. 그런데 집을 지으려고 하니까 땅만 있지, 건축할 돈이 없더라고요. 이사 오기 전에 귀농·귀촌을 준비하다가, 장수 ‘송학골마을’ 조성 소식을 접했어요. 무주는 집을 지어야 할 뿐 아니라 수도·전기·도로 같은 기반공사도 해야 했어요. 장수는 기반공사가 끝난 집을 분양받으면 되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무주 땅을 포기하고, 장수 송학골마을로 오게 됐어요. 장수댁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요.

 

 

 

서울과 지역(장수)에서 모두 출판사 경험을 하셨잖아요. ‘지역출판’이 갖는 장점과 단점을 각각 말씀해주세요.

 

‘단점’부터 말할게요. 장수라는 지역이 공간적으로 출판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교류가 제한적이죠. 대면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가 많은데, 그런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어요. 솔직히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저자 섭외만 하더라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으면 ‘당장 만나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장수에서는 그게 쉽지 않거든요.

 

지역출판의 ‘장점’ 역시 뚜렷해요. 서울에 있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을 거예요. 정보라는 게 안 들어도 되는 정보도 있거든요. ‘나만의 생각마당’이 주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는 게 아니거든요. 출판이 몸을 계속 움직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장수에 있으면서 쌓이더라고요. 공간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장수에 오지 않았으면 ‘뻔한 출판’을 했을 거예요. 트렌드에 강할 수 있지만, 트렌드에 매몰될 수도 있어요. 장수에 내려온 덕분에 유행에 끌려가는 출판이 아니라 ‘나만의 출판’을 다지고 구축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었어요.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기 때문에 10년 동안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전라북도 장수에 자리한 내일을여는책. 오른쪽이 별채다.(Ⓒ 백창민)

전라북도 장수에 자리한 내일을여는책. 오른쪽이 별채다.(Ⓒ 백창민)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립니다. 대한민국에 등록된 출판사가 10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그중 서울과 경기도에 80%에 해당하는 8만 개 출판사가 있고요. ‘출판사 창업’을 생각하는 지인이 있다면, 수도권 출판과 지역출판 중 어떤 방식을 권하시나요?

 

제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뭘 어떻게 권하겠어요. (웃음) 다만 출판을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출판을 하느냐에 따라 다를 거예요. 나에게 무엇이 맞는지가 중요하고, 그에 맞는 지역을 선택하는 게 답이겠죠. ‘지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는 출판’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할 거예요. 물론 지역도 중요하긴 합니다. 사람이 환경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지역출판사와 교류나 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역에서 출판을 하지만 몸만 지역에 있지, 솔직히 지역출판을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역출판에 대한 소명 의식이 많지 않았어요. 지역출판사 모임에 대한 소속감도 처음에는 크지 않았죠. 지역출판사끼리 ‘교류’는 하지만, ‘협업’ 수준은 아닌 듯싶어요. ‘교류’ 자체가 ‘협업’일 수 있겠네요. 만나는 것 자체가 좋아요. 어떤 답을 얻지 못해도 공유하기 위해 만나기도 하잖아요.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어려운 일은 어려운 대로 나눌 수 있죠. 지역출판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아요. 솔직히 서울에 있는 출판사는 ‘이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지역출판사는 동료, 이웃 같은 느낌이 들죠.

 

‘한국지역출판연대(한지연)’라는 모임이 있어요. 한지연을 통해 지역출판사를 만나요. ‘실질적 협업’보다 ‘심리적 협업’과 교류를 많이 합니다. 만나면 되게 반가워요. 매년 진행하는 ‘한국지역도서전’ 준비 회의를 위해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나요(2023년 한국지역도서전은 부산 수영구에서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한국지역출판연대’는 지역출판사 대부분을 ‘이사’로 참여시키고 있어요. 회비를 더 걷기 위함이죠. (웃음)

 

 

 

내일을여는책의 출판 키워드 자체가 ‘전국구’이긴 합니다만, 장수나 전라북도 지역 독자와 따로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거의 없어요. 이 동네(송학골마을)에서도 ‘저 양반이 출판사를 한다더라’ 정도만 알 거예요. 장수나 전라북도 지역서점·도서관과의 교류나 협업 역시 못하고 있어요. 제가 내키지 않나 봐요. 지역에서 출판한다고 ‘나대고’ 싶지 않더라고요. 다른 지역에 가서는 열심히 활동하는데, 정작 우리 지역에서는 못하고 있어요. 제가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잘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제가 티내며 활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역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불러주지 않는 점에 대해 섭섭함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웃음) 지역에서 활동을 넓혀가는 건 과제예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맞나 봐요. 동네에 있으면 동네사람과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따로 있잖아요. 동네에서 ‘일 얘기’를 하기 머쓱한 부분이 있어요. 정작 내 책 홍보는 잘 못하겠더라고요. 선전본부장님을 새로 모셨으니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내일을여는책’ 출판사 건물 바로 옆이 자택인가요? 직장과 주거가 하나인 ‘직주일체형’(職住一體形) 생활을 하고 계시는 걸로 보입니다. ‘생활공간’과 ‘업무공간’이 가까우면 장단점이 있을 텐데요. 어떠세요?

 

집과 주변 공간이 출판사이자 사무실이에요. 집 바로 옆에 별채를 하나 마련하긴 했어요. 게스트룸이면서 주점이고, 제가 멍 때리는 곳입니다. 사실 ‘주거공간’ 외에 ‘업무공간’을 따로 마련할 상황도 아니었어요. 상황에 제가 맞춰야 했죠. 봄부터 가을까진 마당에 나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해요. 일상과 업무를 나누기 어렵죠. 출판은 제게 ‘생활’ 그 자체에요. 그래서 공간 역시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일이 많아지는 게 싫어요. 이 나이에 일 벌려서 뭐하겠어요? (웃음) 일을 늘리기보다 줄여나갈 시점이죠.

 

다만 제가 없어도 출판사는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 회사 하나가 폐업하는 게 아니라 저자와 책으로 이어진 ‘네트워크’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출판사는 ‘무형(無形)의 공동체’죠. 그런 출판사를 접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없어도 출판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계획하고 있어요. 앞으로 그런 준비를 해나갈 생각입니다. 송학골 집은 저랑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여기에서 내일을여는책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긴 어려워요. 어떤 공간과 네트워크로 만들어갈지 얼마 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일을여는책이 자리한 장수 송학골마을(Ⓒ 백창민)

내일을여는책이 자리한 장수 송학골마을(Ⓒ 백창민)

 

 

 

인문사회 출판과 출간 도서

 

통일, 북한, 민주화 같은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출판을 하고 계신데요. 인문사회 분야 출판의 매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또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해주세요.

 

제가 출판하고 싶은 책을 낼 뿐이죠. 남들은 매력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저 원래 제 관심사를 책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서 할 뿐이지, 매력을 따질 게 있나요. 저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어렵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제가 잘 모르는 문학이나 실용서는 어려웠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주제로 출판하기 때문에 어려움보다 수월함이 더 많아요.

 

 

 

내일을여는책 ‘독자’는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겠죠. 저와 비슷하게 세상을 보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어찌 보면 ‘같은 울타리’에 있는 분들이죠. 세상사에 대해 같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 그 분들이 ‘우리 독자’예요.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분들과 책으로 소통한다고 생각해요. 출판이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하지만,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역할도 하거든요. 출판사가 던진 메시지에 공명(共鳴)하고, 그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분들이 우리 독자가 될 거예요. 저희 책은 불특정 다수, 많은 사람이 읽을 책은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 독자가 적더라도 저와 함께 호흡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독자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려면 세상에 귀를 열고, 가슴을 열어야 하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출판’일 거예요. 내일을여는책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마당과 사랑방 역할을 할 뿐이죠. 다행인 건 사회적 이슈를 고민하고 행동하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에요.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지탱하는 거겠죠.

 

 

 

뜨인돌 출판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수백만 부 팔린 “노빈손 시리즈”를 만져 보셨잖아요. 내일을여는책은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할 말을 하는’ 출판사를 지향하시는 듯합니다. 맞나요?

 

남들이 그렇게 볼지는 몰라도 ‘할 말을 하는 출판사’ 수준은 아니에요. 저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웃음) 솔직히 제 성에 차진 않아요. 미련이 남긴 하죠. 때로는 제 자신이 비겁해보이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요. 별로 팔리지 않을 책이지만, 책을 내지 않으면 제가 후회할까봐 출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꾸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면 핑계거리가 쌓일 수 있잖아요. 결국 제 자신에 대한 합리화로 이어질 수 있죠. 출판을 할수록 타성에 젖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내일을여는책’은 메시지 중심으로 밀고 나가는 ‘우직함’이 돋보입니다. 대표님은 내일을여는책의 ‘차별성’과 ‘강점’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차별성과 강점? 그런 거 없어요. 저자를 만날 때는 ‘저희는 이런 출판사다, 이런 책을 낸다’라고만 말씀드려요. ‘이러이러한 독자들에게 속 답답한 얘기를 하고 싶다, 작가님이 그 이야기를 풀어 달라’는 식으로 말씀드리죠. 제가 출판했거나 출간하려는 책 기획 리스트를 저자에게 보여드리면, 어떤 출판사인지 알아차리고 함께 해주셨어요. 주변에서 ‘내일을여는책만의 느낌과 향기가 있다’고 얘기는 하세요. 구체적으로 뭐라고 얘기는 안 하시더라고요. 뭐가 있긴 있나 봐요. (웃음)

 

지난 10년 동안 내일을여는책이 출간한 책(Ⓒ 백창민)

지난 10년 동안 내일을여는책이 출간한 책(Ⓒ 백창민)

 

 

 

‘첫 책’은 출판사의 지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안재구 선생의 『끝나지 않은 길(전2권)』(2013)을 첫 책으로 내신 이유가 있나요?

 

출판사를 넘겨받았을 때 원고가 준비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 전부터 안재구 선생의 아들 안영민 기자를 알고 있었는데, 전라북도 장수에 내려가서 출판을 한다고 하니까 안영민 기자가 걱정이 됐나 봐요. ‘우리 아버지 책을 내라’고 권해주더라고요. 심지어 그 원고는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계약금까지 받은 상태였어요. 해당 출판사가 양해를 해줘서 내일을여는책 ‘첫 책’으로 낼 수 있었어요. 계약금도 일시불이 아니라 나눠서 드리기로 하고 냈죠. 책 편집과 디자인의 상당 부분도 안영민 기자가 도움을 줬어요. 주위에서 상을 차려줘서 낸 책이었죠. 이 책을 내면서 내일을여는책 ‘출판 방향’이 잡혔어요. 저에게는 ‘선물’처럼 온 책이에요. 제 꼴을 보고 주위에서 걱정이 많이 됐나 봐요. 책이 만들어져서 제게 왔죠. 내일을여는책의 ‘이정표’ 같은 책입니다. 안재구 선생 책을 계기로 여러 인연이 이어지기도 했어요.

 

 

 

『개성공단 사람들』(김진향 기획, 강승환·이용구·김세라 구성, 2015)은 다른 출판사가 기피할 주제로 3만 부 가까운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이 정도 판매를 예상하셨나요?

 

『개성공단 사람들』이 내일을여는책의 대표도서가 됐죠. 기획 단계에서 이 정도 판매될지는 예상 못했어요. 예상했으면 이 자리에 안 있죠. (웃음) 사실 이 책은 답답해서 낸 책이에요. 우리는 먼 미래의 ‘막연한 통일’을 얘기하곤 하는데, 우리에게는 이미 ‘통일된 공간’이 있었거든요. 그곳이 바로 ‘개성공단’이죠. 개성공단에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정책’이 아닌 남과 북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다루자, 그렇게 출발했어요. 정책이나 정부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논문집이나 학술서 느낌이 났을 거예요. 저는 에세이로 다루고 싶었어요.

 

기획하는 과정에서 카이스트 김진향 교수님과 연결됐어요. 사실 이 책이 많이 팔리는 데 출판사의 역할은 별로 없었어요. 저희는 책을 만드는 역할만 했죠. 김진향 교수님을 비롯해 작가 네 분이 팀을 이뤄서 원고 작업을 했어요. 김진향 교수님이 가장 큰 역할을 하셨죠. 기획이 너무 좋아서 잘 풀렸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저자 분들이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팔아 쓴 책입니다. 책이 책으로 그치지 않고, ‘이야깃거리’가 되었죠. 출판의 역할과 영향, 맛을 느끼게 해준 책이에요.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이혜영, 2020) 책의 기획과 출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광주·전남 편’ 이후 다른 지역 편은 어느 지역을 언제쯤 출간하시나요?

 

이 책은 평소에도 생각해왔던 아이템이에요. 여행을 가면 관광지 위주로 지역을 둘러보잖아요. 하지만 그곳에는 오래된 문화유산뿐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 역사도 있어요. ‘멀지 않은 역사’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창비)가 먼 과거의 유물과 유적을 다룬다면, 『한국 민중항쟁 답사기』는 ‘우리 시대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지역마다 크고 작은 현대사의 사건이 있어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흔적과 역사의 현장을 우리가 가볼 필요가 있죠. 그런 생각으로 기획한 책입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역사를 책으로 만들어보자’가 책의 출발이었어요. 그 역사 안에서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으니까요.

 

‘광주·전남 편’을 역사학자가 썼으면 딱딱했을 거예요. ‘답사기’에 맞는 유연함이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이혜영이라는 좋은 저자를 만날 수 있었어요. 문제는 첫 책이 너무 훌륭하게 나오는 바람에, 다른 지역 편 진행이 어려워졌다는 점이에요.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지역 편이 언제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출간하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어요.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성인’과 ‘어린이’,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출판을 하고 계세요. 내일을여는책을 인수할 때부터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로 독자를 확장할 계획이셨나요?

 

장수에 내려올 때부터 ‘어린이 출판’ 분야를 염두에 뒀어요. 처음부터 어린이 책 출판을 구상했어요. 단, 다른 출판사에서 많이 내는 ‘생활동화’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죠. 틈새시장으로 ‘인문사회동화’를 기획했어요.

 

다른 나라, 특히 유럽의 선진국은 노동조합(노조) 설립을 학교에서 배워요. 우리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노조를 잘 몰라요. ‘아이들이 파란 하늘, 맑은 물만 배워야 할까?’라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인권, 노동, 평화, 학살이 우리 현실이고 역사예요. 그런 주제를 담아내는 동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 일상에서 이런 주제를 피해가지 말고 다루자는 생각이었죠. 단 ‘지식’이 아니라 ‘동화’로 엮어서 전달하려고 했어요.

 

인문사회동화 시리즈 출간이 쉽지는 않았어요. 처음 섭외했던 저자 10명 중 8명이 떨어져나갔어요. 막상 써보니까, 쉽지 않아서 두 손 든 저자가 많았죠. 난감해하던 차에 동화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강다민 작가가 해보겠다고 나섰어요. “내일을여는어린이” 시리즈 첫 책인 『보신탕집 물결이의 비밀』(2014)은 그렇게 출간했습니다. ‘보신탕’은 우리에게 존재하는 ‘현실’이잖아요. 혐오만 할 게 아니라 정면에서 다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내일을여는책 전체 책 중에 어린이 책이 종수로는 ⅓이지만, 매출은 ⅔를 차지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정도 성과를 예상하셨나요? 포지셔닝 전략 차원에서 어린이 책 브랜드도 고려했을 법합니다. 어린이 책을 별도 브랜드로 따로 내지 않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린이 책 분야 매출이 이 정도로 성장할 줄은 예상 못했어요. 시리즈를 열 권 정도 낼 때까지 판매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부터 ‘작은 시장’을 보고 시작했어요. 별도 브랜드로 어린이 책을 내지 않은 이유는 출판에 대해 원대한 꿈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성장’을 생각했다면 임프린트도 고려했겠죠. 앞으로도 별도 브랜드로 책을 낼 생각은 없어요. 그림책 분야를 내보라는 권유도 받았고 유혹도 있었지만, 굳이 저까지 나서서 그림책을 낼 필요가 있나 싶어요. 시장을 따라가지 말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자고 생각 중이에요.

 

 

 

내일을여는책이 출간 예정인 기대작이 있으면 〈출판N〉을 통해 살짝 공개해주시죠.

 

윤미향 의원의 책이 7월에 나와요. 윤미향 의원은 말 그대로 ‘마녀사냥’을 당했어요. ‘위안부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 거의 ‘학살’을 당하다시피 했어요. 윤미향 의원이 가장 힘들어할 때 제안해서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진실’을 책으로 엮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윤미향 의원이 너무 힘들어해서 책을 내지 못했죠. 그 책이 곧 나와요. 법원 판결도 대부분 무죄로 나와서, 7월 안으로 책을 낼 예정이에요. 이런 이슈에 출판사가 침묵하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명감을 가지고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 출판은 ‘시장’에만 눈을 밝히고, ‘메시지’는 내지 않는 듯해요. 팔리는 책 위주로 안전하게 출판을 하려고 하죠. 어떨 때는 ‘출판사가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시장을 누리기만 하는 상황은 아닐까요? 그래서 ‘출판은 언론’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요.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출판계는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어찌 보면 출판도 우리 사회를 망치는 ‘공범’ 중 하나일 수 있어요. 우리는 언론과 출판을 함께 묶어 ‘언론·출판의 자유’를 얘기하잖아요. 언론사만 욕할 게 아니에요. 출판사는 다를까요? ‘기레기’가 아니라 ‘출레기’ 소리가 나올 판이에요. 잘하진 못하더라도 뭔가 하고 있다는 변명거리는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판을 하고 있어요.

 

살아오면서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빚을 졌다는 부채의식이 있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안락하게 지낼 때 엄혹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투쟁의 전선에 설 수는 없지만, 출판으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 출판을 하는 것도 책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출판’을 하고 있는 셈이죠.

 

출판 사업과 책 만들기 과정

 

기획은 주로 대표님이 하시나요? 대표님만의 기획 과정과 저자 섭외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혼자 하다 보니, 제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기획’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가져오는 게 아니잖아요. 기획은 제 생활이에요. 제가 살면서 느끼는 부분, ‘이런 이슈는 책으로 나와야 하지 않나?’라는 걸 기획하려고 해요. 출판이 생활이고, 생활이 출판이죠. 제 생활이 출판이라는 형태로 나올 뿐이에요. 트렌드를 좇지 않아요. ‘내일을여는책’이지만, 오늘에 집중해야 해요. 오늘을 잘 살아야 내일도 열 수 있어요. 기획도 그 과정이죠. 뉴스와 미디어를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책으로 묶어 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해요. 특별한 기획 과정이나 노하우는 없어요.

 

지난 10년 동안 내일을여는책이 출간한 책(Ⓒ 백창민)

내일을여는책 출판사 별채 안. 김완중 대표의 업무공간과 사랑방, 게스트룸으로 사용한다.(Ⓒ 백창민)

 

 

 

소규모 출판사 대표님 중에는 나이 들수록 ‘기획이 어렵다’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계세요. 대표님은 어떠세요?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내 생활, 내 나이에 맞는 기획을 하려고 해요. 왕성하진 않을 수 있어요.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나이가 든다고 기획거리가 없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시장에 맞지 않는 책이 나올 수는 있죠. 나이가 들면 물러설 줄 알아야 해요. 시장과 내 생각이 맞지 않을 때 오는 한계를 저도 느껴요. 주변에서는 이젠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지금도 자신은 없어요. 늘 불안하고 제 스스로 능력 없음을 자주 느껴요. 옆에서 장수댁이 부추길 뿐이에요. (웃음)

 

 

 

편집과 디자인은 ‘외주’를 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주 작업을 맡기는 분들은 장수 가까이에 계시나요? 아니면 수도권에 계신가요?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는 없으세요?

 

편집과 디자인 외주 작업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있어요. 커뮤니케이션 문제, 물론 있죠. 5분이면 해결될 문제가 5일도 가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가 안돼요. 대면으로 단숨에 해결될 문제가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불편함은 있죠. 그런데 제가 출판을 하는 환경이 이러니, 어쩔 수 없죠.

 

 

 

출판사 판권은 이름을 안 쓰거나 쓸 경우 대부분 ‘실명제’잖아요. 판권에 아내 분의 이름을 실명이 아니라 ‘장수댁’이라고 쓰는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장인어른이 아내를 ‘장수댁’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어서, 저도 ‘장수댁’이라 부르게 됐어요. 본인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고요. 판권에 ‘장수댁’이라고 쓴 건 재미로 시작했어요. 아내도 좋아해요. 저희가 전에 함께 했던 ‘내일을여는오미자(내여자)’ 명함에는 ‘실장’이 아니라 ‘실세(實勢)’라고 명함을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실세여서 명함도 ‘실세’라고 팠어요. (웃음) 제 명함도 ‘대표’가 아닌 ‘대표노동자’라고 새겼어요. 제가 내일을여는책에서 출판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에요.

 

 

 

만평과 카툰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홍보 전략도 독특해 보입니다. 최근 선전본부장으로 합류한 김휘승 작가님은 내일을여는책의 그림 작가이기도 하잖아요. ‘가족의 직원화’에 이어 ‘작가의 직원화’가 이뤄지는 듯합니다. 김휘승 작가님이 직원으로 ‘합류’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김휘승 부장은 원래 귀농·귀촌 일을 했어요.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그리기 작업을 권했죠. 3년 전부터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의기투합해서 함께 일하게 됐어요.

 

 

 

내일을여는책은 온라인서점 매출이 대부분이고, 학교와 도서관 납품이 많은 걸로 압니다. 어떻게 책을 유통하고 홍보하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서점 매출과 학교와 도서관 납품이 ‘많은’ 게 아니라 다른 분야 매출이 ‘적은’ 거예요. 그게 요즘 고민이기도 해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숙제처럼 안고 가고 있어요. 송인서적이 부도가 난 다음에는 북센으로 일원화했어요.

 

어린이 책 매출 비중이 높은 이유도 ‘납품’이 많기 때문일 거예요. 납품뿐 아니라 ‘자연 판매’가 늘어나면 좋죠. 서점에서 자연 판매가 늘어나려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들어야 해요. 문제는 이 나이에 열심히 악착같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문제죠. 언제까지 1인 출판사를 할 수는 없으니까, 제가 못하는 부분을 메워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걸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은 또 돈이네요. (웃음)

 

내일을여는책 그림 작가이기도 한 김휘승 선전본부장의 만평(Ⓒ 김휘승 작가)

내일을여는책 그림 작가이기도 한 김휘승 선전본부장의 만평(Ⓒ 김휘승 작가)

 

 

 

내일을여는책을 제외하고 인상적으로 바라보는 출판사가 있다면요? 또 주목하는 출판인이 있다면, 어떤 분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다 인상적이고,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솔직히 말하면, 전에는 몇몇 유명한 출판사를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래 들어서는 그런 게 없어요. 다 부럽고 인상적이에요. 어쩌면 저렇게 좋은 책을 낼까, 전부 다 배워야 할 대상이에요. 저를 제외한 모든 출판사와 출판인이 동경의 대상이죠. 진짜 다들 잘하세요.

 

내일을여는책의 오늘과 내일

 

2020년 연매출이 3억 원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연매출 성장 추이는 어떤가요? 이제는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셨는지 궁금합니다.

 

‘빚’은 아직 남아 있어요. ‘마이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절이 올까 싶어요. 농협 대출을 70살까지 갚아야 해요. 다행히 한 해만 놓고 보면, 연 회전은 되기 시작했어요. 연매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이자와 원금도 착실하게 갚아나가고 있어요. (웃음)

 

 

 

2013년 7월 25일 장수에 귀촌하셨으니까, 올해 귀촌과 창업 10주년을 맞습니다. 귀촌과 출판사 경영 10년을 맞아 ‘자평’을 해주시죠.

 

그런 걸 생각하고 살지 않아요. 저에게는 ‘오늘’밖에 없죠. (웃음) 되돌아보면 기적 같아요. 사람 복이 참 많구나, 느끼며 살고 있어요. 좋은 분들이 주변에 있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려울 때 사심 없이 도와준 분들이 많아요. 그 빚을 갚아야죠. 살림이 풀리면 다는 못 갚아도 평소에 술이라도 더 사고, 술 먹으면 택시비라도 찔러주고 싶습니다. (웃음) 내일을여는책과 10년을 함께 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박수 쳐드리고 싶어요.

 

 

 

새로운 10년을 맞아 어떻게 내일을 열어갈 계획인지 ‘구상’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 제가 출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새로운 10년은 지금부터 고민해야죠. 사람이든 집단이든 내일을여는책을 함께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5년 안에 마련하고 싶어요. 그래야 몇 년 정도 같이 일하면서 손발을 맞춰보고, 홀가분하게 손을 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출판사를 ‘성장’시키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할 것이냐가 제 숙제예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도 ‘지역출판’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지역출판을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지역출판사 입장에서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 없어요. 지역출판인으로서 ‘지역출판 지원 정책’의 존재감을 느끼긴 어려워요. 앓는 소리를 하자면, 지원 사업을 할 때 일정 비율을 할당해서 1인 출판사를 지원하기도 하잖아요. 그와 비슷하게 지역출판사에도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지역출판사에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더 뚝심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장수(長水)에서 장수(長壽)하는 출판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이렇게 말을 많이 쏟아냈는데, 여기서 더 얘기를 하라고 하면… (웃음) 장수에서 지난 10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분께 감사해요. 그 빚을 다 갚진 못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10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출판사의 방향성은 유지하고 싶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내일을여는책’을 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활동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낼 수 없는 책을 제가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빚으로 넘겨드리고 싶진 않거든요. 끝으로 제 ‘꼬라지’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큰 꿈은 없어요. 지금이 좋아요.

 

내일을여는책 ‘대표노동자’를 자처하는 김완중 대표(Ⓒ 백창민)

내일을여는책 ‘대표노동자’를 자처하는 김완중 대표(Ⓒ 백창민)

 

 

 

김완중 대표
1965년생 뱀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스와힐리어과를 졸업하고, 여러 신문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했다. 창공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판계에 입문했다. 뜨인돌 출판사에서 18년 동안 마케터와 상무로 일했다. 2009년 한국출판인회의 올해의 출판인 ‘마케터상’을 받았다. 2013년 전라북도 장수로 내려왔다. 숨은 ‘실세’ 장수댁의 격려를 받으며, 내일을여는책 ‘대표노동자’로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다.
wan-doll@hanmail.net
https://blog.naver.com/dddoll

 

백창민

백창민 북헌터 대표

책을 좋아해 ‘책사냥꾼’이 되었다. 전자책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출판 분야를 넘나들며 일했다. 책생태계 중심으로 글쓰기, 말하기, 만들기를 하고 있다.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과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bookhunter72@gmail.com
https://www.facebook.com/book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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