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7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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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나는 어떤 맛집이 될 것인가?

 

 

 

김정구(다음소프트)

 

2019. 11.


 

 

 

[맛집의 명과 암]

 

이른바 ‘먹방’이라 불리는 식(食) 중심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었다. 그때부터 ‘맛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급증하기 시작했고, 4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인기를 이어가는 스테디셀러 키워드다. 이제 자기만의 맛집을 알고 있다는 것은 무형의 자산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맛집 탐방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맛집만 찾아다니는 식도락 전문 모임(크루)까지 활발하다.

 


표1. ‘맛집’ 언급 추이


표1. ‘맛집’ 언급 추이

 

하지만 맛집 검색 문화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다른 산업과 유사하게 업주(혹은 회사)가 바이럴 마케팅 전문 업체에 돈을 써 SNS 상에서 거짓이나 과장된 글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다. 이제는 사람들이 자진해서 작성한 순수 맛집 정보는 그만큼 찾기 힘들어졌고, 검색 피로도도 함께 증가했다. 맛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싶어도 무수한 홍보성 게시글을 마주해야 하고, 주관적 판단에 의지해 필터링을 해야만 한다.

 

업주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는 방편으로 바이럴 마케팅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영광은 오래 못 간다. 소셜미디어에서 오가는 ‘맛집’ 이야기가 점점 가격과 분위기보다는 맛 자체를 중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 소비자들은 진정성의 가치를 알고 있으며 갈수록 중시할 기세다.

 

“블로그 맛집을 보고 주소 찾아 네비 켜고 갔지만 10개중 1개 정도 나올까 말까 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어서 비추천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방송에 나온 어떤 요리연구가 한 분 역시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젠 블로거 맛집은 가급적 안 가려 하는 1인 중 한 사람입니다.”
“을지로 쪽에 회사를 6개월 이상 다녔다면 누구나 다 알게 된다는 곳 '통일집' 참고로 50년 이상 된 데다 간지가 아주 넘쳐흐르는 허름한 간판들. 이러한 오래된 감성들이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격대가 높은 편이긴 하나 항상 자리가 없어서 웨이팅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도 가격만큼의 고기 퀄리티는 받쳐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OO맛집의 등장]

 

지난 번 글에서 다루었던 검색어 ‘푸어’와 유사하게 ‘맛집’도 의미 변화를 겪고 있다. 본래 ‘맛집’이란 음식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음식집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2018년 이후부터는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을 가진 공간을 ‘OO맛집’이라 명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표2. 주요 ‘OO맛집’ 언급 추이


표2. 주요 ‘OO맛집’ 언급 추이

 

예를 들어, 사진을 찍었을 때 분위기 있는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은 ‘사진맛집’, 운동이 즐거운 곳은 ‘운동맛집’이다. 사진의 프레임을 채우는 조명, 햇살, 빛, 풍경, 컬러 등의 공간적 요소들에도 ‘맛집’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음악, 인테리어 같은 취향 요소를 두고도 사람들은 ‘맛집’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진맛집 #젠틀몬스터펜디카페 #사진잘나옴
#거울맛집 #프리츠한센 #리빙디자인페어
#운동맛집 #헬스 #운동기구좋음
#이집 화장실 #조명맛집 14시간 비행 열심히 가봐야쥬?
#햇빛맛집 #헤이리카페 #헤이리르시앙스 #엔틱카페
#책맛집 #그림책가게 #썸북스 #somebooks

 


표3. ‘OO맛집’ 트리맵


표3. ‘OO맛집’ 트리맵

 

그 결과 맛집과는 무관하게 여겨지던 다양한 영역에서 ‘OO맛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진맛집’, ‘야경맛집’, ‘조명맛집’을 중심으로 취향, 풍경, 인테리어 등과 연관된 다양한 ‘OO맛집’으로 이야기된다. 1년 남짓한 기간에 ‘OO맛집’으로 명명된 신조어가 무려 20가지 이상 등장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신조어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수십 건의 파생어를 남기며 생존하고 있는 키워드(언어)는 생각보다 매우 적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OO맛집’을 지속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굿즈 맛집이 된 메가박스]

 

브랜드보다는 공간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확산된 ‘OO맛집’과 달리 스스로 ‘OO맛집’으로 등극한 브랜드도 존재한다. 메가박스가 그런 경우다. 전국 100개 점포에 686개 스크린을 가진 메가박스는 업계 1위인 CGV(156개 점포/1146개 스크린)와 2위 롯데시네마(120개 점포/860개 스크린)에 비해 점유율은 3위이지만, 자신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굿즈(goods)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전까지 메가박스가 품질 좋은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메가박스가 오리지널 티켓을 한정판으로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이 메가박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팝콘도 먹는데, 사진으로 찍을 것은 다 똑같은 영수증뿐’이라는 아쉬움에 메가박스는 착안했던 것. 오리지널 티켓의 두꺼운 종이 값과 약간의 인쇄비만 들였을 뿐인데, 사람들은 사진 찍기 좋은 콘텐츠(고퀄리티의 한정판 티켓)를 얻기 위해 기꺼이 메가박스를 찾았고, 인증까지 했다.

 

심지어 영화 값보다 비싼 가격에 오리지널 티켓이 중고로 거래되기도 한다. 얼마 전 개봉한 ‘겨울왕국2’ 오리지널 티켓의 경우에는 트위터에서 한 사용자가 ‘(오리지널 티켓을 가질 수 있는) 한국인이 너무 부럽다’고 언급했고, 해당 트윗은 약 13만 회 이상의 리트윗과 35만회 이상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그림1.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그림1.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그림1.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물론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의 인기가 있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타 영화관의 VIP 등급을 버리고 옮겨올 정도는 아니다. 메가박스의 점유율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CGV를 역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 관점에서 봤을 때 메가박스는 오리지널 티켓의 원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굿즈맛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에 대한 반응〉 
“메박… 왜케 열일해요..? 타 영화관 VIP 버리고 넘어왔잖아요. 앞으로 뼈를 묻겠어요 ?”
“메박 미쳤네요. 이건 소장각!”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주세요”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에는 ‘OO맛집’ 범주의 확장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이제는 헤어도 맛집이 있고, 책도 맛집이 있다. 과연 나는, 혹은 내 브랜드(제품이나 서비스)는 어떤 맛집에 속할까? 하루 정도는 ‘사진맛집’을 찾아가,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나만의 엣지(edge)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연말이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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