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0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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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깨어남

 

 

 

전병근(북클럽 오리진 지식 큐레이터)

 

2020. 05.


 

"이 백색 실명이 영혼의 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2020년. 숫자에서부터 뭔가 비상한 아우라가 느껴지던 새해엔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 하나둘 착실히 실행에 옮길 각오도 충만했다. 계획표의 맨 앞 칸에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묵직한 것이 날아들어 이토록 모질게 박히기 전까지는. 4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 때만 해도 사람들은 AI가 인간의 직업을 빼앗아 가면 어쩌나 걱정했다. 이듬해 김정은과 트럼프가 말폭탄의 수위를 높여갈 때는 이러다 정말 핵전쟁의 화염에 휩싸이는 건 아닌지 마음 졸였다. 연이은 여름의 살인적 폭염과 하염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를 접했을 땐 기후변화가 인류의 마지막 재앙인줄로만 알았다. 그랬는데, 새로운 재난의 왕이 이렇게 도래할 줄이야. 이름도 위엄한 코로나다. 중국 우한에서 꿈틀대던 초미세 바이러스는 급기야 세계를 통째로 삼켰다. 100일 만의 일이다. 유발 하라리가 경고한 인류 위협 삼종 세트를 차례로 실감하고도 빠진 것이 있었다니.

 

사실은 이 역시 예고된 것이었다. 늘 그렇듯 예고란 나중에 복기를 해보고서야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뒤늦게 조회수가 치솟은 2015년 3월 테드 강연을 보니 빌 게이츠는 카산드라처럼 콕 집어 예언한다. 인류 최대 위협은 핵무기나 전쟁이 아니라 왕관 모양의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라고. 그런데도 인류는 핵 억제에는 엄청난 돈과 자원을 투입하면서 방역에는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에볼라 발병 때의 국제적 실패를 예로 든다. 조기 경보를 울릴 전염병학자가 부족했고, 관련 정보가 부족했으며, 대응 의료팀이 부족했고, 사람들에 대한 사전 교육도 부족했다. 다행히 에볼라는 공기로 전파되지 않고, 감염자가 곧바로 몸져누워 전파력이 낮아 도시로 퍼지지 않았기에 피해가 아프리카 3국에만 그쳤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그런 운이 따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에볼라로 경각심을 얻었고(그랬던가?), 지금 우리에겐 더 발전된 의료/통신 기술이 있다. 지금까지 전쟁에 대비해온 것만큼만 해 나가면 된다고 희망의 메시지까지 건넨다.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한다. 그다음엔? 잊었다.

 

유독 빌 게이츠만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연구자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반복해서 예고된 재난이었다. 이럴 때 우리는 곧잘 ‘인재’라 부른다. 그 사실을 이번에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서 알았다. (2013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2017년 가을 우리말로 번역됐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감염병의 약 60퍼센트가 동물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질병이다. 인류가 동물과 공생한 것은 오래된 일인데 왜 지금 이 난리인가. 콰먼은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만큼 쉬운 비유로 설명한다. 가서 나무를 흔들어보라. 그 안에 있던 뭔가가 떨어지지 않겠나. 인간의 저돌적인 환경 교란이 유행병을 촉발했다는 얘기다. 바이러스들은 수백만 년간 자연적인 숙주와 함께 공진화해왔다. 서로 일종의 합의에 도달한 후에는 숙주 집단 내에만 머물렀다. 그 균형을 깨고 생태계를 교란하면 바이러스는 다른 데로 튈 위험이 커진다. 그 확장의 기회를 몸소 제공한 것이 바로 인간이다. 가만있는 벌집을 찾아가 들쑤셔 놓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 믿고 있다가 크게 당한 셈이다. 인재가 확실하다.

 

그러니까 화근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이 된다. 생태학자들이 보기에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심각한 돌발변수(차마 ‘질병’이라는 언명에 동조하지는 않겠다)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대발생(개체의 단기 급증)’이다. 콰먼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류는 거의 모순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몸집이 크고 수명도 길면서 터무니없을 정도로 수가 많다. 이제 와 어쩌란 말인가. 콰먼은 이런 불편한 말이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거나 우울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아마 상당수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보다 현명한 행동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쓴다. 집단행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조금이라도 다른 개인의 분별 있는 행동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그런 소수의 독자가 그래도 얼마간 있을 것이다. 그런 실낱같은 기대에서 작가는 한사코 쓰고 출판사는 잘 팔리지도 않을 것 같은 책을 줄기차게 낸다.)

 

그의 말대로 사피엔스의 보다 현명한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책을 펼쳐 읽는다. 덕분에 게이츠와 콰먼 둘 다 중요하게 언급한 스페인독감의 진상에도 눈을 뜰 수 있었다. 20세기 초 유럽을 강타한 1차 세계대전에 관해서는 마르고 닳도록 들었으면서 같은 시기 전 세계를 휩쓴 대역병의 참상은 왜 이토록 몰랐을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쉴레뿐 아니라, 널리 애송되는 ‘미라보 다리’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도 그 희생자였다. 지금껏 전해지는 그의 흑백 사진을 보면 군복 차림에 빡빡 민 머리는 흰 붕대를 두르고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자원입대했던 그는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 돌아왔건만 1918년 독감에 쓰러져 세상을 떴다. 38세. 말 그대로 비명에 갔다. 독감은 지구를 돌고 돌아 당시 5억 명, 그러니까 세계 인구 3명에 1명꼴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3월 4일 발병이 공식 확인된 이래 1920년 3월 잠잠해질 때까지 5천만에서 1억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1차 세계대전(1천 7백만 명)과 2차 세계대전(6천만 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죽음을 낳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최악의 대재앙이 세계대전의 기억 아래에 꼭꼭 묻혀 있었다. 우리는 (대개 승자 편에서) 온갖 전쟁 기념일은 성대히 치르면서도 역병의 고난과 희생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두고 어떤 미국 작가는 돌림병 때 서로가 보였던 수치스런 행동들을 잊고 싶어서일 거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도 알래스카 원주민 유피크족에게는 좋지 않은 일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여기는 묵약의 관습이 ‘날룽구아크(nallunguaq)’라는 동사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양차 대전 사이의 문학을 ‘바이러스 모더니즘(Viral Modernism)’이라 명명한 영문학자 엘리자베스 오트카는 전쟁 중의 죽음은 영웅적 희생으로, 병으로 인한 죽음은 불명예스런 굴복으로 여겨온 남성적 시각에서 원인을 찾는다. (전쟁과 전염병 같은 재난에 관한 기억과 망각의 집단 심리는 사람과 사회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연구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기념과 기억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한반도도 스페인독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서반아감기’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상륙한 것은 1918년 가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9월 23일부터 평북 강계군에 유행성 감기로 300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특징은 머리와 밑관절 등이 몹시 아프더라”라고 처음 보도했다. 이어 “9월에 이미 서울에 환자가 나타났고 10월에 전국적인 유행이 절정에 달해 공사립학교와 사숙은 휴학, 각 관청과 단체에서는 시무를 보지 못했다. 11월 들어서는 개성군의 경우 다른 때의 7배의 사망률을 보였고, 충남 서산 지역은 8만 명의 인구 중 6만 4천 명이 질병에 걸렸으며 매일 100명 이상 150명씩 사망하여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일반 농가에서는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다.”라고 전했다.

 

1919년 3월 조선총독부 발표에 따르면 조선 인구 1,705만 7,032명 가운데 환자는 755만 6,693명에 사망자는 14만 527명이었다. 당시 3.1 운동으로 인한 사망자(지난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7,500여 명이 살해됐다고 말했다.)보다 훨씬 많았다. 하마터면 그중에 김구 선생도 포함될 뻔했다. 백범일지 끝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 일생에 제일 행복은 몸이 건강한 것이다. 감옥생활 오 년에 하루도 병으로 쉰 날은 없었고, 인천감옥에서 학질로 반 일을 쉰 적이 있을 뿐이다. 병원이라고는 혹을 떼노라고 제중원에 일 개월 동안, 상해에 와서는 서반아 감기로 이십 일 동안 입원하였을 뿐이다.” 무쇠 같아 보이는 그가 이십 일을 입원했을 정도라고 하니 병세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독립 염원을 가슴에 안고 있었던 그였기에 병마도 이겨냈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나는 3.1 독립만세운동과 독감을 관련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야 독감 환자와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전국에서 집단 시위가 일어난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물론 총독부의 방역 소홀 내지 실패로 인해 불만이 더 커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른 한편 그것이 뜻하지 않게도 전염병 확산에는 기름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저려온다.

 

이렇듯 참혹한 돌림병이 역사의 곳곳에서 중대한 영향을 주었음에도 우리는 왜 몰랐던가. 몰랐다기보다 지나쳤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역병의 일상성과 치명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사실 주변에 많다. 얼마 전 개봉된 리메이크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도 성홍열에 걸린 가난한 이웃을 돕다가 감염으로 숨지는 장면이 나온다. 불교는 사람의 네 가지 고통으로 생로병사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역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은 대개 가장 취약한 자가 가장 처연하게 세상과 작별하는 방식이다. 그런 것에 대비하고 돕는 것이 공동체의 가장 기본 되는 책무임을 동서의 고전들은 되풀이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런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나의 경험이란 내가 주의(attention)를 기울이기로 동의한 모든 것이며, 나의 삶이란 내가 주의를 기울인 것의 총합이라고 했다. 문제는 우리의 주의가 값비싼 자원이라는 데 있다. 대표적인 감각기관인 눈부터가 둘뿐이다. 시선조차 골고루 분산하기 어렵게 돼 있다. 시선 이상의 마음의 눈, 관심도 한곳으로 쏠리기 십상이다. 대개는 지독한 근시성이어서 곧잘 눈앞의 것에만 시선을 뺏긴다. 인지심리학에서 농구 시합 중의 고릴라 실험은 유명하다.

 

스페인독감만 해도 세계 전역에 걸쳐 그토록 넓게 번지고 오래 반복되고 인명 피해가 컸던 것은 당시 참전국들이 전시 보도통제로 공중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승리가 우선이었던 정부들은 병을 막기보다 소문을 차단하는 데 급급했다. 그나마 중립을 선언한 스페인의 언론들이 잇따른 괴질에 ‘주의’를 기울이고 공론화한 결과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정작 첫 발병국이었고 희생도 막대(50만 명 사망)했던 미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라로 기념되고 기억되었지 세계적 재앙의 온상이었음은 잊혔다. (주목할 사실은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베르사유 협상 도중 스페인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집중력을 잃으면서 협상이 졸속으로 끝났고, 그로 인한 불만들이 누적된 끝에 나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미국은, 앞서 게이츠가 지적했듯이 방위산업에는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지만 방역사업에는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요즘 우리는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전시의 국민동원과 선무공작을 위해 발달한 대중매체와 전파 기술이 그 후로도 국가의 정치적 목적 혹은 기업의 상업적 목적의 홍보와 광고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는 24시간 우리의 시선과 주의를 뺏고 잡아두려고 경쟁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던져져 있다. (팀 우의 『주목하지 않을 권리』를 보라.) 요즘은 TV의 오락(그리고 오락 비슷한 많은 교양) 프로는 물론 뉴스조차 점점 시선 끌기에 치중한다. 언젠가부터 먹방은 재난(소비)방송으로 바뀌었다. 거리의 상점이 줄줄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스크린 미디어의 시청률은 덕을 본다. 사람들이 재난 장면에 쉽게 빠져드는 것을 두고, 작가 돈 드릴로는 소설 『화이트 노이즈』에서 정보 폭주로 지력이 감퇴한 상태에서 대재난만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법이라고 썼다. 매일 코로나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스포츠 경기나 주식 시황처럼 실시간으로 보도되지만 숫자가 주는 공포감만 더할 뿐이다. “평상시에 이 도시에서 일주일에 몇 명이나 사망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카뮈의 『페스트』) 사람들은 방 안에서도 스크린을 보며 배달 음식을 즐기고 갖가지 원격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겹겹의 포장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 쌓여만 가고, 온라인 중계와 배달로 매출이 소리 없이 뛰는 플랫폼 기업들은 조용히 웃음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찍이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우려한 것도 인류의 좁디좁은 안목이었다. 그는 발암물질이 퍼져 나가는 것은 방치한 채 (기적적인 치료법이 발견될 거라 생각하고) 암 치료에만 매달리는 인류의 태도를 탄식했다. 암을 ‘정복’하려고만 할 뿐, 암을 유발하는 조건은 외면한다는 말이었다. 카슨은 화학적 발암인자가 우리 세계에 들어오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좀 더 좋은 편한 생활을 구하는 데서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경제 일부와 생활양식이 이 같은 무서운 화학약품의 제조와 판매를 요구하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여행해 온 길은 훌륭한 고속도로로서 우리는 여기서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실은 지금까지 속고 있었다. 그 길의 끝에는 파멸밖에 없다. 또 다른 길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가진 않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길이며 또 우리 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유일한 기회이다.” 그가 호소한 것은 생의 짜임새 전체에 대한 시선(의 회복)이었다.

 

코로나의 공식 명칭에는 19라는 수가 따라붙는다. 인류의 확장 일변도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바이러스의 일련번호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럴 때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의 아우성에는 아랑곳없이 앞으로 질주하는 고속철이 떠오른다. 이 열차의 앞쪽 사람들은 한 번씩 닥치는 전염병도 취약자를 솎아 내기 위한 어떤 기제로 여기는 듯 태연하다.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영화가 참담하게 보여줬듯이 한곳으로 달리는 기관차와 객차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시장의 자유만을 소리 높여 외치던 어느 호기로운 지도자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인 남녀, 가족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회가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는 아프게 실감하고 있다. 사회적 격리와 경제 제동이라는 자발적 징벌에 처하고서야 모든 것은 연결돼 있으며, 그 연결은 모두에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는 우리에게 지극한 파르마콘, 그러니까 독을 앞세운 약, 저주로 다가온 축복일지도 모른다. 부디 그랬으면 한다. (무고한 희생자와 애쓰는 방역자들께는 이런 은유에 용서를 구한다.) 천형 같은 이 고립과 차단의 시간이 관성적인 삶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잠시 내려와 가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개인이나 가족, 사회가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누가 되었든지 갖추어야 할 일상의 기본 요건이 무엇이며 함께 우선 노력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찬찬히 헤아려 보는 시간 말이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이고 곧 지나가 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고 썼다. 이 길고 긴 어둠의 터널도 언젠가는 통과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조급해하기보다 (생활 여건과 여력이 취약할수록 더 그럴 것이다. 사회가 이들을 우선해서 도와야 함은 물론이다.) ‘코로나-이후’의 모습을 지금부터 치열하게 상상하고 계획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펼쳐 들고, 로버트 스키델스키 부자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를 읽는 이유다.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지금의 내가 한사코 책에 매달리는 것은 나 역시 “말이나 글을 이치에 맞게 할 수 있으면 실제 상황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에서다. (엘레나 페란테의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에서 인용)

 

잠자코 있던 바이러스를 흔들어 깨운 것은 우리였다. 이제 우리가 선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전병근(북클럽 오리진 지식 큐레이터)

북클럽 오리진 지식 큐레이터로 번역과 저술, 가끔 강의와 강연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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