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8  2020.03.

게시물 상세

 

[서점 다이어리 6]
경험을 공유하다: 동네책방 ‘숨’

 

 

 

이진숙(동네책방 ‘숨’ 대표)

 

2020. 03.


 

동네책방 ‘숨’은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추억을 만들고 어른들은 영혼을 돌보는우리 동네 작은 책방입니다.

 


동네책방 ‘숨’


 

 

 

 

경험을 공유하다, 동네책방 ‘숨’

 

광주의 한 동네에서 작은 동네책방 ‘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너무 예뻐요.’ ‘나도 꼭 이런 책방을 운영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면 부끄러우면서도 으쓱해지곤 합니다. 그러다가 꼭 묻는 질문이 있어요. ‘그런데 운영은 잘돼요? 요즘 책 잘 안 팔릴 텐데…’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알면서도 매번 들을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요즘 어느 자영업이 맘 편히 대박 매출을 올리겠으며, 서점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사양 산업이고 변화가 요원하다는 것도 뻔한 현실이니까요. 더군다나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처럼 확실한 편리와 이득이 보장되는 곳이 있으니, 독자들에게 정가에 책을 구매하며 작은 규모의 동네책방을 이용해 달라는 것이 경쟁력을 갖지 않고 도와달라고만 하는 투정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속상하기도 합니다.

 

시끌벅적한 먹자골목 한 어귀에 생뚱맞게 서 있는 우리 책방을 보고 사람들은 아직도 ‘카페냐, 서점이냐’ 하며 뭐하는 곳인지 혼란스러워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날마다 변함없이 연 지 어느새 5년이 지났습니다. 그리 밝지도 않은 간판을 켜두고는 누군가 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책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 방문자의 얼굴빛을 살피고 그가 반가워할 만한 책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반가운 책을 발견한 책방에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혼자라면 좌절되었을 꿈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래서 힘겨운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고 잠깐이라도 꿈꾸던 순간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책방 ‘숨’ 내부


 

 

 

마을 사랑방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책 읽는 문화

 

2010년, ‘숨’을 처음 열 때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이 되고 싶어 ‘책으로 만나는 세상’이라는 작은 도서관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혹은 혼자서 아니면 친구와 함께 마실 다니며 들르는 동네책방-도서관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자립 운영을 위해 나름 수익을 담당해줄 북카페를 한쪽에 열었고요.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삶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 가장 큰 매개는 역시 ‘책’이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숨겨진 보물과 같은 책을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지, 갈수록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방문한 이들은 꼽혀 있는 책을 살피다 같은 관심사를 확인하고 이야기를 건네옵니다. 그 대화 속에서 때로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고 ‘숨’의 성격이 더 분명해지기도 하지요. 방문했던 한 독자는 작가인 친구의 책을 발견하고는 ‘네 책, 여기 있다.’고 바로 전화를 걸기도 하고, 꽤 나이 지긋한 여사님은 평소 읽던 책이 ‘덕후’들이나 보는 거라며 통박을 들었는데 여기서 그 애장 도서를 발견했다고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관심이 갔다며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시리즈의 신간을 발견하고는 ‘언제 나왔지?’ 하며 즐거워하는 등,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처음에는 수줍어 보였지만 책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수다쟁이이더군요. 문화기획 사업을 하는 작지만 젊은 한 회사에서는 ‘직원 복지’로 직원 모두 한 달에 한번 이상 책방에 와서 구경하고 책도 사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갑니다.

 

서점을 시작하고 나서 도서관은 열람과 특별 활동을 위한 장소이자 책과 함께하는 자율적인 쉼의 공간이 되어 갔고, 서점은 서점대로 커피를 마시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가는 공간으로서 활기가 생겼습니다. 이제 일 년에 10여 차례 이상 작가님들을 초대해 북토크를 하고 수많은 독서 모임을 열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활동하는 특별한 모임들이 책방을 거점으로 모이기도 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작당하기 위해 회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요. 삶을 살아가면서 또 마을 살이를 하면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공유하는 일은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흐름을 만들어 가는 어떤 방향을 결정짓는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경험하고 나면 그것은 이미 본래의 내 경험을 넘어서 모두의 경험이 되고 새로운 사회적 자본으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겠지요. 개인적인 활동인 책 읽기가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책방’이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책을 판매한다’는 기본적인 영업 활동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담고 싶어서입니다. ‘동네책방’에서 취급하는 ‘책’은 단순한 판매 물품 이상의 영향을 주고받는 어떤 가치와 효용을 담고 있기 마련입니다. 얼마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봉준호 감독이 시상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했지요. 동네책방에서도 이 말은 유효합니다. ‘가장 작고 개인적인 동네책방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동네책방 ‘숨’이 처음 시작할 때 즈음, 광주 지역에서 하나둘 작은 동네(독립)책방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2020년)은 15개 정도의 개성 있는 책방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SNS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공유하는 20~30대의 한 트렌드 영향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뉴트로 열풍과 이어져 있다고도 합니다. 참고서를 사려는 이들 외에도, 책 자체를 만나기 위해, 책방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특별한 문화를 경험하고자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종이책을 비롯한 아날로그 문화가 신기한 옛 추억거리로 소환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또한 책이 더 이상 ‘만 몇 천 원짜리 상품’에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지기와 대화를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책을 정하고 선물로 전달하고, 받아서 설레는 맘으로 풀어보고, 책을 읽으며 보낸 이의 맘을 헤아리는, 그 일상의 문화가 책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단지 몇 번의 클릭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과정과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고 우리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도서를 구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경제적 가치와 효용성이 아닌 문화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책을 매개로 취향을 확인하고, 친구를 사귀고,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창작 활동에 대해 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알아가고, 우리 지역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공유하며 지역 문화를 이어가는 일까지, 요즈음의 책방은 그 역할과 의미가 대단하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사실 작은 동네책방 하나 운영하면서 포부도, 생각도 너무 거창한 것 같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사는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신이 담겨 있고, 작은 일상의 사랑이 실천되며, 독특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들리고 전달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더욱 풍성하고 사람다웠으면 좋겠고, 책으로 그것을 실현해봤으면 좋겠구나 하고 바랍니다.

 

 

 

‘책 미리내’로 전하는 마음

 

동네책방 ‘숨’에 오면 특별히 눈에 띄는 진열대가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고개를 몇 번 갸웃하다가 이거 뭐예요? 하고 물어보는데 대개는 ‘책 미리내’라고 적힌 작은 안내문을 말합니다. ‘책 미리내’는 말 그대로 책값을 미리 내고 구입한 책을 맡겨두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골라 계산을 한 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은 쪽지에 적어두면, 책방지기가 리본으로 간단히 포장해서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둡니다. 얼마 후 선물을 받을 분이 방문해서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을 선물로 받아갑니다. 그럴 때면 모두들 약간은 쑥스러운 듯 그러나 무척 행복한 얼굴로 돌아가시곤 하지요.

 

‘책 미리내’의 시작은 세월호 희생 아이들을 추모하는 생일시 모음집 ≪엄마. 나야.≫(난다)부터였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중 단원고 아이들 생일이면 생일상이 차려지고 그 아이를 기억하고픈 이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희생자 아이가 직접 적은 듯한 시 편지가 읽힙니다. ≪엄마. 나야.≫는 2015년 12월 중순에 발간되었는데, ‘세월호를 기억하는 광주시민상주’로서 활동하는 한 분이 이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겠다며 미리 계산을 하고 책방에 맡겨두었고 그것이 ‘책 미리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책방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과 의미 있는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모두 였던 것이지요. 예쁜 빨간 책에 리본을 묶고 책 일부를 인용한 쪽지 글을 적어 끼워두었다가 해당하는 지인이 찾아오면 전달해드렸습니다. 책을 받으러 온 분 중에는 다른 책을 구입해 그분을 위해, 또는 다른 친구를 위해 맡겨두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본인이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님께서 전**님께 선물하셨습니다.”라는 쪽지 글을 적어 놓아두었는데, 얼마 뒤 받을 분이 다른 일로 방문했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고는 무척 즐거워했지요. 그리고 그것을 SNS에 올렸고 그 뒤로 또 몇 번의 ‘책 미리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우리 책방 한 쪽에는 리본 달린 예쁜 책들이 몇 권씩 늘 놓여 있습니다. 마치 책들로 이루어진 은하수같이 어떤 흐름이 이어지는 것 같아 참 아름다운 이들이 많구나 싶습니다.

 

‘책 미리내’로 맡긴 책을 선물로 준비하다 보면, 책을 받을 분이 누구인지, 언제 오실지 궁금해지고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방문한 손님이 ‘여기 뭘 맡겨 놨다던데요.’라며 들어서면 마치 나를 찾아온 손님인 듯 반갑지요. 책을 찾아 전달하면서 그분이 어떤 표정을 짓는 지 살피게 되고, 그 책을 맡길 때 어떤 정황이었는지 이야기해 드리기도 합니다. 책방지기가 직접 선물하는 책은 아니지만 맡겨두신 분의 마음이 되어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책들은 주고받은 분들의 말이나 행동과 함께 기억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


 

 

 

 

영혼을 돌보는 책방

 

동네책방 ‘숨’은 책이 있는 쉼터다. 책을 사거나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책이 있는 방에서 조용히 하룻밤 보내기… 삶에 지친 사람들이 원하는, 딱 그만큼의 휴식을 줄 뿐 의무도 없고 구속도 하지 않는다. 책 속 문장이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건 오직 방문자의 몫이다. (동네책방 ‘숨’에서 북스테이를 경험한 방문자의 글 중에서)

 

책, 이제 종이책은 한물 간 옛것이라고 말하지만 꼭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고민과 삶, 여러 분야의 연구와 상상한 것들이 담긴 ‘책’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이어질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각 사람의 인생과 경험이 다른 만큼 책도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고 공감하게 하는 물증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과 물질이 주인이 되고 편리와 이득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책’은 더욱 존재해야 하고 그 책을 함께 보고 공유할 수 있는 ‘책방’ 역시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동네’가 사라지고 ‘단지’만 남는 시대가 온다 해도, 나는 여전히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저 마다 삶의 이야기가 책의 어느 구절, 어느 문장을 통해 공명하며 영혼을 흔드는 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그래도 된다고 서로 안심하며 계속 그 길을 나아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당장은 변할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인 사회의 여러 면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어도 언젠가는 우리가 꿈꾸는 일들이 이루어질 거라는 바람을 간직할 수 있도록 확인시켜주고 싶습니다. 겨우 작은 동네책방 하나 운영하는 것이지만, 교회 옆 오두막에서 평생 종치기로 살았던 권정생 선생님처럼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가슴을 치는 종소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그 매개자가 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책아이콘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동네책방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전국 80여 개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단체입니다. ‘동네책방’은 전국 각지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며, 단행본 도서를 주로 취급하는 작은 서점입니다. 여기서 ‘작은’의 의미는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 자본과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조금 더디더라도 함께 천천히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진숙(동네책방 ‘숨’ 대표)

광주광역시 수완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숨’은 도서관과 서점 카페로 이루어진 마을 사랑방입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회원 책방으로 지역의 책 문화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人사이드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