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5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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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출판 마케터가 정보와 영감을 얻는 하루 루틴

 

 

 

구환회(교보문고 도서 MD)

 

2020. 10.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TOP 100: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들이 지금 무엇을 듣는지도 수시로 확인 필요.”

(『마케터로 살고 있습니다』 중)

 

나는 2000년대 말 지금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0년 차를 살짝 넘긴 출판 마케터였던 2019년 12월, 내 MD 경력에서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 ‘2010년대 10년의 시간’을 회상해 보았다. 회사 안에서 일하고 회사 밖에서 책 읽은 것만 기억이 났다. 이는 출판 마케터로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출판 마케터를 포함한 모든 마케터는 세상의 이슈와 대중의 관심사를 초밀착 모니터링하고 실시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출판은 역사가 긴 전통 산업인 동시에 세상의 목소리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첨단 산업이다.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책’이다(올해 봄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코로나 관련 서적을 생각해 보자). 책을 잘 만들고 많이 팔려면 빠르게, 넓게, 깊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마케터이면서 도서 MD인 나는 국내 점유율 1위 음원 사이트의 연간 1위 곡을 몰라서 ‘배 어디서 타다 오셨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결말까지 본 마지막 드라마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2010)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배달 어플을 이용해 본 적도 없다.

 

 


배달 어플 포스터


그게 바로 나다

 

‘내가 읽고 있는 책 밖에,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밖에는 재미있는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이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다행이다. 이 글은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과표에 넣기로 한 다짐의 기록, 혹은 많이 파는 마케터에게 필요한 ‘문화 감성/지성’을 높이는 하루 루틴 기획안이다. 그리고 ‘올해의 마무리’보다는 ‘내년의 준비’에 초점을 맞춰 세 달 일찍 세우는 2021년 새해 계획이다.

 

 

 

#1 (토요일에는) 신문을 읽겠다.

 

 


방문에 붙여 놓았던 ‘츠타야’ 기사


방문에 붙여 놓았던 ‘츠타야’ 기사

 

‘하루 24시간 휴대폰과 컴퓨터로 접하는 게 신문 기사인데 무슨 소리지?’ 싶을 것이다. ‘종이신문’ 읽기를 말한 것이다. 포털 사이트, SNS,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접하는 기사는 이미 한 번의 편집과 선별 과정을 거쳐 노출된 뉴스다. 반면, 종이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차례대로 훑으면 보다 전체적이고 균형감 있는 기사 읽기가 가능하다. 남들은 그냥 지나쳐도 나에게만은 의미 있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신문을 구독하지는 않고 토요일에만 세 종류의 일간지를 편의점에서 사서 읽는다. 도서관 정기 간행물실 이용도 추천한다. 주말판은 내용이 풍부하고 논점과 시각도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북섹션이 있다(「한겨레」는 금요일이다). 이때 책 광고도 참고한다. 최근 책을 낸 저자의 인터뷰를 주말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토요일 아침 모바일 서점 실시간 베스트에 낯선 책이 올라와 있으면, 모 신문에 기사가 실린 영향일 때가 많다.
연말 ‘올해의 책’ 결산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같은 지면에서 ‘올해의 영화’, ‘올해의 음반’ 특집을 진행하지는 않는 것을 보면 책·출판을 챙겨주는 건 신문밖에 없다.

 

 

 

#2, #3 (겉핥기라도) 웹툰, 웹소설을 보겠다.

 

‘성장’과 ‘젊은 독자’. 현재 출판·콘텐츠 업계에서 이 단어가 기사에 사용되는 유일한 산업은 웹툰과 웹소설이다. 모바일로 먼저 소비된 웹툰과 웹소설이 단행본으로 묶여 서점에서 폭발적인 판매를 보이는 경우도 자주 목격한다.
종이책을 다루는 입장에서 이러한 성공의 요인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감이라도 잡아 보고자 처음으로 도전(?)해 본 웹소설은 문법이 낯설어 계속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웹툰은 웹소설보다는 조금 더 친숙했다. 다만 인기작을 다 읽기는 어려웠다. 이동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매주 대표작 위주로 한 작품씩 보고, 새로운 월요일이 되면 끊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재미가 붙어 업데이트 시간에 맞춰 보게 된 작품도 있었다. 한동안 중단했던 이 ‘1주 1편’ 감상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번에는 웹소설까지 추가해서.
이렇게 초반부만 읽으면 재미없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독자가 열광하며 읽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또한 나름 괜찮은 방식이다.

 

 

 

#4 (하이라이트만이라도) 드라마를 보겠다.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


『보건교사 안은영』 책으로 볼까, 드라마로 볼까.정답은 언제나 ‘둘 다’.

 

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예로 알 수 있듯이 나에게 드라마는 ‘백지’나 다름없는 영역이었다. 외국 드라마는 더 심각하다. 하지만 책 관련 일을 한다면, 특히 문학 분야 담당자라면 드라마를 보지는 않아도 알기는 해야 한다. 본편보다 재미있는 PPL, 책 광고가 많다. 특히 드라마 대본집, 포토에세이, 소설은 팬들의 인기 소장템이다. 물론 최고의 드라마는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다.
꼭 책 판매와 연결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폐인을 양산하는 대세 드라마가 지닌 스토리와 연출의 힘은 언제나 한 수 배우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최소 열여섯 시간 이상 들여야 하는 전편 정주행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출퇴근길에 유튜브 하이라이트로 드라마를 즐긴다는 팀 동료가 생각났다. 고민이 해결됐다. 이제는 “〈대장금〉이 요리 드라마지?” 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5 (퇴근 길 버스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끄고) 영화를 보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맞이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영화를 보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집이든 극장이든 영화가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쏟아졌다. 자연스레 영화와 멀어졌다. 그러다 소설 분야를 맡으면서 다시 영화와 친해져야 할 필요가 생겼다. 소설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스크린 셀러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2010년대 판매 데이터를 뽑았을 때, 직전 동기간 대비 영화 개봉 후 판매가 20배 이상 증가한 원작 책도 있었다. 또한 영화는 문학, 음악과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예술, 대중문화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올해 초, 지난 10년 동안 놓쳤던 2010년대 영화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 앙케이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국내외 영화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주요 영화제 수상작, 좋아하는 평론가의 추천작, 지인 추천작 중에서 골랐다. 회사가 파주이기 때문에 유달리 긴 퇴근길을 보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6 (국내외 최신) 음악을 듣겠다.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결과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결과

 

“BTS가 다섯 명이야? 왜 책이 다섯 권이 나왔지?”
지난 6월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담은 책 『GRAPHIC LYRICS』 시리즈(전 5권)가 나왔을 때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다. 곁에서 ‘서점 직원이라면 대표적 문화 아이콘 그룹의 멤버가 몇 명인지는 아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몇 년 전 이벤트 배너에 ‘OOH-AHH하게’라는 말이 왜 들어간 건지 이해하지 못 했던 기억이 떠올라 말을 아꼈다.
음악은 항상 듣지만 최신 음악을 잘 몰랐다. 우습지만 몇 년 전 ‘마케터라면 멜론 1위 곡 정도는 알아라’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그래야 하는구나 했다. 지금은 표지에 등장해 잡지를 완판시키는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정도는 안다. 일 년 중 결과가 가장 궁금한 시상식 중 하나는 ‘한국대중음악상’이다. 최근에는 플레이리스트에 빌보드 싱글차트를 새롭게 추가했다.
음악 업계에 있어서는 부정적 현상일 수 있지만, 음악은 접근성이 좋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곡이든 들을 수 있다. 음악 듣기는 책 읽기와 함께 하기에도 어울린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는데 그 안에 소개된 음악을 모른다면 확실히 느낌이 살지 않을 것이다.

 

 

 

#7 (‘공부 7 vs 휴식 3’ 비중으로) 유튜브를 보겠다.

 

요즘 초등학생은 네이버나 구글이 아닌 유튜브에 검색한다. 이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관심 주제를 유튜브 영상을 이용해 무료로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유튜브는 독서 몰입을 방해하는 방해자일까? 하지만 이와 함께 출판 시장에서 유튜브(유튜버)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유튜버가 추천했거나, 유튜버가 광고했거나, 유튜버가 쓴 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한다. 서점 MD도 매일 아침, 전날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신규 진입한 책이 보이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는지 먼저 검색해본다. 특히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다른 분야도 이를 따를 것이다. 지금 ‘저자와 독자’의 관계는 ‘스타와 팬’의 관계와 유사해지고 있다. 스타, 즉 인플루언서가 유튜브로 몰리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내가 유튜브에 들어가면 알고리즘은 주로 ‘지금 외국에서 난리 난 OOO 반응 TOP 10’ 같은 썸네일의 영상을 자동 추천한다. 앞으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책으로 묶기에도 좋은 양질의 지식 교양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도록 구독 목록을 정비할 생각이다.

 

 

 

#8 (지금처럼 계속) 라디오를 듣겠다.

 

 


KBS 라디오 한민족방송 <문화 공감>


KBS 라디오 한민족방송 〈문화 공감〉

 

코로나19가 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줄은 몰랐다. 감염병 위기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2월, 질병관리본부 브리핑과 코로나 뉴스 속보를 듣기 위해 집에서 하루 종일 KBS1 라디오(97.3MHz)를 틀어 놓았다. 그리고 어느덧 속보보다 정규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지금은 본방송을 못 들으면 다시 듣기로 챙겨 듣는다.
라디오에서 말은 줄이고 음악이나 많이 틀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말이 많고 정보가 쉴 새 없이 흘러 다니는 편이 좋다. 편안하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까지 똑똑해지는 기분이 든다. ‘게스트’가 라디오의 핵심인 이유다. DJ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스튜디오에 매일 수많은 초대 손님이 다녀가는데, 그들은 자신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라디오를 들으면 그전에는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전문가의 지식과 언변을 짧은 시간 동안 효과적으로 훔칠 수 있다.
책과 연관성도 매우 높다. 책 소개 전문 프로그램도 있고, 책 소개 코너를 고정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 외 많은 프로그램의 인기 초대 손님은 화제의 신간을 낸 저자다. 저자의 소개를 직접 듣다 보면 그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애청 프로그램 중 하나만 추천한다면 《문화 공감》을 꼽고 싶다. 요일별로 매일 다른 장르의 문화,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국악, 미술, 공연, 뮤지컬 등 평소 거리감을 느꼈던 분야에 친근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다. 초대손님이 무려 김오키다.

 

 

 

#9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많아도) 책을 읽겠다.

 

 


퇴근 후 책 읽는 시간


퇴근 후 책 읽는 시간

 

책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루틴이다. 책을 읽지 않고 ‘내용’이 아닌 ‘정보(저자 정보, 판매량, 화제성 등)’만으로 실행하는 기획과 영업의 한계는 뚜렷하다. 나는 담당 분야인 소설과 함께 비즈니스 분야를 주로 읽는다. 소설은 다시 한번 한국소설, 외국소설, 세계문학, 장르문학으로 나눈 뒤 비즈니스서와 함께 다섯 개 카테고리의 책을 번갈아 읽는 편이다. 이 패턴의 회전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상기한 것처럼 세상에는 책 외에도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긴 해야 하는데 잘 안 하게 되는’ 다이어트와 비슷한 것으로 느낀 적 있는 것은 나만 경험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출판인이 전문성을 강화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그 답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게다가 세상에는 아직 읽지 않은 재미있고 좋은 책이 너무 많다.

 

 

 

#10 (셀프 연재하듯) 기록을 하겠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멈추면 조금 아쉽다.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옮겨 정리하면 머리에 더 분명하고 오래 남는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유튜브, 개인 메모장까지. 채널은 어디든 좋다. 장문이든 한두 문장이든 분량 또한 중요하지 않다. 생각의 정제를 거쳐 나온 글을 꾸준하게 기록하는 것이라면. 지금 내 계획은 그동안 미뤄왔던 최애 작가와 책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하루 루틴


일관성 있는 하루 루틴

 

영화, 웹툰, 드라마야 재미있으니 보는 것이고, 음악은 좋으니까 듣는 것이지 숙제하듯 챙겨 보고 듣는 사람이 있을까? 글을 쓰면서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반대로 (출판) 마케터가 위 루틴을 잘 즐길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당신은 ‘덕업일치’를 이루었나요?” 지금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서점 동료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위기와 사상 최장의 장마를 지나 이제 2020년의 한 분기만을 남겨 두고 있다. 지금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시대다. 앞날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하지만 사전에서 ‘자비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2021년은 올해보다 최소 1그램 이상은 나은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더 밝아질 새해에 더 재미있게 일하기 위한 나만의 루틴을 당장 만들어 보자. 지금 시도하고 바로 그만두더라도, 아직 새해가 아니니까 작심삼일 예외가 가능하다.

구환회(교보문고 도서 MD)

교보문고에서 도서 MD로 일하고 있다. 현재 담당 분야는 소설이다. ‘먹방’을 보면 먹고 싶은 것처럼, 읽으면 뭐라도 읽고 싶은 욕망이 싹트는 ‘책방’ 장르의 글을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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