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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5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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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대선 때마다 책을 내는 이유
출간 정치로 보는 대선 풍경

 

 

 

이혜인(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2021. 9.


 

정치의 계절은 이미 시작됐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벌써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의 상당 부분을 연일 정치인의 화제 발언이 채운다. 방송 뉴스는 물론 예능, 유튜브 채널에서까지 대선 후보를 꽤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선 후보가 직접 쓰거나 후보에 대해 쓴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깃발, 약속, 진심, 운명…. 비장하고 결의에 찬 제목을 한 대권 주자의 책들이 매대를 채웠다.

 

사실 정치인의 책은 출판계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상품은 아니다. 책 자체의 재미보다는 의미와 명분을 추구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어렵고, 자칫하면 책을 내는 출판사에 정치색이 덧입혀질 수 있어 출간 자체를 조심하는 출판사도 많다. 요즘은 유튜브 같은 SNS 홍보 채널도 많기 때문에 책을 통한 홍보 효과도 떨어진다. 하지만 정치인의 책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책은 정책 비전을 차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료이자, ‘글’이라는 정제된 수단으로 자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장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2012년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의 생각』처럼 큰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읽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영역이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출판계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어떤 책을 내고 있으며, 얼마나 팔릴까? 그리고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올해 상반기 대선 주자들의 책 판매량과 출간 방식 등을 통해 대선 풍경을 그려봤다.

 

대체로 저조한 판매량 속 『추미애의 깃발』이 판매량 1위

 

어떤 후보의 책이 가장 잘 팔리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교보문고의 책 판매량을 들여다봤다. 여론조사 10위권 내에 자주 오르내리고 언론에서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후보 11명(박용진, 안철수, 유승민, 윤석열, 이낙연, 이재명, 정세균, 추미애, 최재형, 홍준표, 황교안) 책의 올해 상반기(2021년 1월 1일~8월 5일) 판매 순위를 교보문고로부터 받았다. 해당 인물이 직접 썼거나 부제에 해당 인물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대상으로 집계했다. 여론조사에서 10위권 내에 자주 오르는 주요 대권 주자 중에서도 윤석열 전 검찰 총장만 본인이 참여한 책을 내지 않았고, 대부분의 주자는 자서전이나 대담집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추미애 후보의 책 『추미애의 깃발』이 판매량 집계 1위, 같은 당 이낙연 후보의 『이낙연의 약속』이 2위를 기록했다. 그 뒤에는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전 검찰 총장 관련 책이 연이어 있다. 3·4·6위에 윤석열 전 검찰 총장 관련 책 『구수한 윤석열』, 『윤석열의 진심』, 『윤석열의 운명』이 올라 있다. 10위권 내에는 5위 『초일류 정상국가』(황교안), 7위 『수상록』(정세균), 8위 『이재명, 한다면 한다』, 9위 『별의 순간은 오는가』(윤석열 평전), 10위 『박용진의 정치혁명』 등이 들어와 있다.

 

정치인들의 책들 ⓒ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 경향신문 이석우 기자

 

판매량 순위는 교보문고로부터 이보다 한 달 전인 7월 5일에 받아봤던 것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순위가 6위에서 5위로 한 계단 올라서는 변화만 있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대선 후보 관련 도서가 전반적으로 판매량이 많지 않으며, 순위 간의 판매량 차이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교보문고는 개별 책의 판매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책의 판매 순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1, 2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론가들은 “책의 판매량은 지지도보다 핵심 팬덤의 형성 여부가 좌우한다”고 입을 모아 분석한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구매까지 이어지지는 않고, 팬덤(핵심 지지층)이 형성돼 있을 경우에 잘 팔린다”며 “열성 팬덤일수록 출간 직후 판매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8월 9~10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했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9%로 6위다. 하지만 『추미애의 깃발』은 지난 7월 1일 출간된 후 5일 동안의 판매량만으로 대선 후보 책 판매량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다.

 

판매량 3·4·6위를 차지한 윤 전 총장도 열성 지지층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윤 전 총장의 책은 후보 자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구매하는 이가 많아 판매량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다른 후보에 비해 정치 경력이 짧은 데다가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정한 것이 이달 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사람들이 윤 전 총장에 대해서는 ‘검찰 총장을 하다가 탄압을 받아 정치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정도는 아는데, 그 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 전 총장이 직접 쓰거나 참여한 책이 없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정책 이슈보다 활발한 정치 논쟁… 씁쓸한 풍경

 

대선 국면에서 눈에 띄는 출판 동향 중 하나는 대선 후보가 아닌 ‘장외 인물’의 책이 주목을 받는 현상이다. 올해 가장 화제가 된 정치 관련 도서를 물으면 아마 『조국의 시간(한길사)』이라고 답할 사람이 10명 중 8명은 될 것 같다. 『조국의 시간』은 지난 5월 31일 출간된 직후 바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한 달 넘게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종합 순위 1위를 지켰다. 책은 2019년 8월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후 겪은 일들과 괴로웠던 심정을 토로하고, ‘검언(검찰·언론) 유착’과 ‘검언정(검찰·언론·야당) 카르텔’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은 출간 3주 만에 30만 부가 넘는 판매 기록을 세웠다. 초반의 거센 판매 열기는 조금 누그러졌지만, 아직까지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2019년 10월에 장관직을 내려놨지만, ‘조국’이라는 키워드를 둘러싼 정치 이슈는 대선 국면에서 주요 정책 의제들보다도 훨씬 뜨거운 이목을 받고 있다. 그 점은 책 판매량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조국의 시간』의 ‘맞불’ 격으로 나온 책인 『무법의 시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판매량이 꾸준히 높다. 『무법의 시간』은 일명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저자인 권경애 변호사(법무법인 해미르)가 저자로, 조 전 장관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조국의 시간』 판매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책 역시 지난 7월 9일 출간된 이후로 꾸준히 높은 판매량을 기록해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초반 한두 달의 판매량만 가지고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비교적 지지도가 낮은 대선 주자들의 책이 정치·사회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쓴 『대한민국 금기 깨기』와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희숙 의원이 쓴 『정치의 배신』은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에서 각각 5위와 10위에 올라 있다. 두 책은 각각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84위·180위로 200위권 안에 들어 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김 전 총리는 관료 시절부터 어떤 정책에 대해서 단순히 찬반 정도가 아니라 총론적으로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며 “경제 정책을 비롯해 사회적 현안에 여러 가지 인사이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수요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연설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날카롭게 파고들며 비판을 한 ‘경제통’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김 평론가는 “집권당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개혁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윤 의원의 책을 읽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대정신 보여주는 책 없어 아쉬워

 

‘정치인 책’이라고 하면 출판 기념회 용도의 문집 같은 책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허나 대선 후보 정도 되면 책을 만드는 데 많은 공력을 들인다. 엄격, 근엄, 진지한 분위기를 덜고 독자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요새는 후보가 일기처럼 1인칭 시점의 평어투로 쓰는 책은 거의 없다. 대화하듯 풀어 쓰는 에세이 형식이나 대담 형식이 선호된다. 『이낙연의 약속』은 이 전 대표와 언론인 출신인 문형렬 작가의 대담집이다. 『추미애의 깃발』도 추 후보가 김민웅 전 경희대학교 교수와의 대담을 정리한 형식으로 쓰였다. 정세균의 『수상록』은 청소년 도서를 연상케 하는 쉬운 문투의 에세이 형식을 취했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이 대히트를 친 후에 구어체 대담 형식은 정치인 책의 바이블처럼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유튜브로 유명인의 일생을 검색해볼 수 있는 시대에, 대선 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책을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책”이라며 “준비 작업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책은 단순 홍보 목적이 아니라 정치인 본인의 삶을 보여드리는 수단이다. 유튜브나 방송은 트렌디하거나 빨라야 하고, 타깃층이 정확하게 없다는 한계가 있는데 책은 명확한 타깃층이 있다. 후보 본인에게 정말 관심이 가고 궁금할 때 바로 집어 들어서 해부하듯이 그 사람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책이다. 또 아무래도 책만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는 대선 후보의 책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나왔던 『문재인의 운명』과 『안철수의 생각』은 가장 많이 거론되는 정치인 책이다. 『문재인의 운명』은 대략 30만 부, 『안철수의 생각』은 대략 75만 부가 팔렸다. 『안철수의 생각』은 판매량도 높지만 후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던 시기에 그 관심을 정확히 포착해 책으로 풀어낸 기획의 승리이기도 하다. 당시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안철수 교수(현 국민의당 대표)의 과거 행적보다도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정책 지형도’를 궁금해했다. 안 대표가 첫 책을 냈던 김영사와 청년 멘토링을 주제로 책을 준비하던 중에 주제와 형식을 바꿔서 내겠다고 출판사에 제안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지금의 『안철수의 생각』이 나오게 됐다.

 

장은수 평론가는 “정치인의 책은 담고 있는 시대정신과 가치가 중요하다”며 “그런데 이번 대선 후보의 책 중에는 제목만 보더라도 이렇다 할 가치를 보여주는 책이 없다”고 말했다. ‘깃발’, ‘약속’, ‘진심’이 후보의 가치관을 또렷하게 보여준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두루뭉술하다. 정치인 책의 경우 이름 있는 출판사가 달라붙어서 제대로 기획을 하지 않는 출판계 분위기도 대선 후보 책이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김민하 평론가는 “지금은 본인이 주장하고 싶은 총론적인 정견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책보다, 지지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책이 많은 것 같다”며 “선거 전략의 일환을 뛰어넘어서 정책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거나 총괄적인 프레임을 제시하면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정치인 책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이혜인(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문화부에서 출판 및 학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재밌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hye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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