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50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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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읻다 김현우 대표
좋은 사람들과 고운 책을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3. 12.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 본고에서 ‘1인 출판사’는 대표 포함 5인 미만의 출판사를 말함.

 

2015년 20~30대 번역가, 편집자, 마케터, 북디자이너 등 12명이 주축이 되어 노동 공유 독립출판 프로젝트로 시작한 ‘읻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이나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를 발굴해 꾸준히 번역하여 출간하고 있는 출판사다. 내가 읻다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봤던 이유는 언젠가 읻다에 참여했던 한 편집자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왠지 모르게 용기가 안 나잖아. 동료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 용기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읻다스럽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분명한 취향으로 꾸준히 유의미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읻다를 찾아가 보았다.

 

 

읻다는 각자의 노동력과 자본을 품앗이하며 독립출판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김현우 대표님도 처음부터 발기인으로서 함께하셨나요?

 

네, 맞아요. 읻다는 저와 박술·최성웅·이주환 님이 번역가로서, 장지은·김준섭·김보미 님이 편집자로서, 김영수 님이 마케터로서, 최성경·김마리 님이 디자이너로서 함께 시작했어요. 노동 공유는 사실 달리 말하면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거였고, 그중 저를 포함하여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따로 출자금을 좀 냈었죠.

 

 

당시 “각자가 3년 동안 투자한 노동력 및 자본은 오직 책에 대한 인세 1%로 특정 시기 이후에 보상받는다.”라고 계약서에 명시하고, 모두 동의하에 출자금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출자금도 그렇고 노동력도 사실 똑같이 투여할 수 없잖아요. 프로젝트마다 성격이 다르기도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더 많이 참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각자의 양심에 맡기며 업무량과 돈을 환산하지 않고 모두 동등하게 가져가는 게 좀 신기했죠.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 무엇이 달라졌고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우선 제가 3기 대표인 셈인데(1기 대표 최성웅, 2기 대표 최성경), 제가 대표직을 맡기 직전인 2018년 봄에 읻다가 재정적으로 위기에 직면했어요. 그 상태로는 도저히 유지할 수 없었고, 어쨌든 지분을 나눈다는 건 책임도 나눠서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2기로 넘어가면서부터 이전 계약 관계는 다 말소시켰습니다. 적자였지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대표가 오로지 책임지는 걸로 하고, 참여자들에게 동의서를 받았어요. 그렇게 정리가 된 상태로 제가 회사 대표가 된 거죠.

 

저희가 처음 읻다를 협동조합이나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개인사업자로 했거든요. 가장 실수한 부분이에요.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나중에 지분 구조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현재 저희가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식회사로 만들었는데, 이 회사를 읻다 출판사와 합병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합병 이후 읻다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할 때 주식 배분 배당률을 기존 동료들과 협의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원래 읻다는 전원 합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해왔잖아요. 10여 명이 넘는 동료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고 협의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거 같아요.

 

지금은 좀 달라졌죠.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참 좋았어요. 2016년 봄에 읻다 책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전반적으로 출판 시장에 책을 만들겠다는 에너지가 지금보다는 좀 더 많았던 듯하고, 그래서 저희처럼 어떤 면에서 무모하게 시도해도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지속적으로 출간을 하고 회사가 유지되려면 출간 주기나 마케팅 등이 중요하잖아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회사 밖에서 책을 만들거나 처음 어떤 책들을 낼지 결정할 때는 전원 합의 방식이 용이했는데, 책을 좀 속도감 있게 내려고 하니 쉽지 않았어요. 출판사 일을 전적으로 맡아서 할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몇몇 동료가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읻다로 완전히 들어온 시기가 2017년이에요. 그러면서 그때 회사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과 바깥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죠. 그 시기에 수익도 나고 그랬으면 모두 즐겁게 일했을 텐데, 수익도 안 나고 회사 내부 동료들은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 힘이 들고, 외부 동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니 거리감이 생기고 했죠. 그래서 2018년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시기를 거쳤습니다.

 

김현우 대표

김현우 대표

 

 

그런 변화 속에서 3기 읻다가 시작되었군요. 어떤 이유에서 김현우 대표님이 대표직을 맡게 되었나요?

 

저는 당시에 해외 유학 중이었기에 그런 과정에 크게 휩쓸리지 않았는데요. 저는 저희가 하는 일이 참 즐겁고 좋은 결과물을 계속 내면서 하는 의미 있는 일인데 이대로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여러 이유로 운영이 어려워지니 ‘그럼 네가 한번 해볼래?’ 해서 제가 대표를 맡게 되었죠. 사실 저는 번역가로 참여하기만 했지, 출판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 이렇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네요. (웃음)

 

 

현재는 출판만 하고 아카데미는 운영하지 않는 거죠? 이전에 좋은 강사 분들을 모시고 꽤 잘 운영했던 걸로 기억해서 아쉬움이 있어요.

 

2017년 서교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강의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죠. 제가 철학 전공자라 문학 분야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는데, 외국 시를 번역하는 프로젝트가 중요했기 때문에 이 작업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말해줄 사람들이 필요했고, 작가님들께서 엄청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백은선, 서대경, 문보영, 임솔아 작가님 등 그렇게 관계를 맺기 시작한 분들과 저희 책을 좀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 중심으로 아카데미 수업을 제안드렸고, 실제로 잘되었어요.

 

하지만 아카데미는 수익보다는 읻다를 알리는 브랜딩 차원에서 진행했기에 이윤이 많이 남진 않았어요. 그때 도움 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해서 강사료도 정확하게 지급하려고 했어요. 입금도 개강일 바로 다음 날 바로 해드리고요. (웃음) 그런데 어느 날 아카데미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카데미 관련 일은 최성웅 대표가 주로 많이 진행했었는데, 그도 많이 지쳤을 거예요. 자기는 번역가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어 참여하고 회사를 만들었는데, 출판보다 강의를 더 많이 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출판에 더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아카데미의 비중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대하셨던 바는 이룬 거 같아요. 아카데미를 통해 인문과 문학을 사랑하는 ‘찐 덕후’ 독자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읻다라는 브랜드도 충분히 알렸으니까요.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비록 작은 신생 출판사지만 내로라하는 여러 저자와 책도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그럼 출판에 집중하게 되면서 읻다에 근로자로 소속되어 일하시는 분들이 따로 계신 거죠?

 

네, 3명이 상주 편집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유지되려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데, 그래도 좋은 책을 만든다는 이유로 수익이 좀 덜 나더라도 혹은 수익이 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꽤 있잖아요. 읻다 역시 저희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출과 손익분기점 등을 정확한 수치로 판단해서 책을 기획하진 않아요. 이걸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늘 고민되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 만들고 싶은 책을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출판계 위기’라는 말은 늘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출판사들의 지형 변화가 조만간 강제적으로든 자발적으로든 일어날 거라고 봐요. 대형 출판사는 IP 사업이든 뭐든 결합해서 더 커지려고 할 테고, 저희처럼 소규모 출판사는 스튜디오 형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본인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고 날 서게 만들어서 유통하는 방식으로 기획해야 합니다.

 

 

읻다가 스튜디오 형식으로 다른 출판사와 협업한 사례가 있나요?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에이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학과지성사나 난다 등과 느슨하게 협업하고 있고, 최근에는 풍월당에서 만든 한국 가곡집을 저희가 편집과 디자인을 맡기도 했어요.

 

 

그렇군요. 읻다 3기 체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고, 그 변화에서도 여전히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제가 대표를 맡고 나서 확실히 달라진 건 읻다의 색깔은 분명하게 하되 종합출판사 형태로 간다고 결정한 점이네요. 읻다에서 내년부터는 어린이책과 그림책 등 마니아뿐 아니라 전 연령대를 포괄하는 책이 나올 거예요. 그게 저희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제일 중요한 조건은 고용을 유지하는 겁니다. 1인 출판사 대표님들을 뵙게 되면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직원을 꼭 채용해서 동료와 함께하세요.”입니다. 일단 함께 일하는 감각이 좋은 것도 있고, 1명보다 2명일 때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지거든요. 저희가 해보니까 2~3명이 늘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이 2~3배 느는 게 아니라 5배, 10배 이렇게 늘더라고요.

 

독자를 세밀하게 타깃팅 해서 책을 내도 요즘 같이 불안정한 분위기에서 그게 성공하길 기대하긴 위험 요소가 많거든요. 그래서 출판에서 다른 방식의 작업들이 좀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는 종합출판사 형태로 가는 것과 해외에 한국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것, 이 두 가지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읻다의 색깔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는 동료가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자꾸 바뀌면 애초에 그 작업이 불가능하죠. 합을 맞추며 오래 함께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전처럼 완전히 전원 합의 방식은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기획은 실현할 수 있게 해주려고 노력해요. 그 조건에서 매출보다는 저자가 우리와 한 번 더 계약해서 작업할 수 있으면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자나 번역자가 이 편집자랑 한 번 더 일하고 싶다고 느꼈으면 해요. 두 번 하면 첫 작업의 경험을 딛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요. 그래서 그런 지속성 혹은 연속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고, 오래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읻다의 정체성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읻다의 동료들과 함께

읻다의 동료들과 함께

 

 

읻다에서는 서평지 〈교차〉도 만들었어요. 연 2회 발행하면서 학술서를 중심으로 국내외 여러 분야의 책을 다룬 10여 편의 서평을 매호 수록하는데, 창간과 동시에 종간 일정까지 미리 정해두셨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서평지를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 탁월한 연구자가 많고, 그들의 글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계속 있었어요. 한국 특히 인문학 연구자들이 외국어로 된 텍스트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고 소화한 다음, 한국 상황이나 외국 기준에 맞춰서 작업해요. 그런데 한국어로 쓰기 때문에 우리가 소화한 레퍼런스(reference)와 그 결과인 논문과 단행본 작업을 해외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게 너무 큰 공적 자원의 상실이라고 보는데, 어쨌건 연구자는 사회가 키우는 거라고 보고요. 그들이 계속 힘을 얻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니 ‘좋은 필자를 발굴하고 그 필자들이 좀 더 대중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다음에 본인의 학술적인 능력을 담아서 책을 내고, 그걸 번역해서 해외로 수출하면 좋겠다.’로까지 연결된 거죠. 그러면 좀 더 한국 학술 장의 외연이 넓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해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필자도 발굴해야 하고 저희랑 호흡을 맞출 수 있는지도 미리 살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을까 동료들과 함께 고민했더니, 서평지가 나오더군요. 6호까지 내겠다고 정해둔 건, 한 호를 내면 얼마가 손해일지 대강 계산해보니 6호까지는 우리가 감수할 수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한 호 낼 때마다 500만 원 정도의 손해를 예상했는데, 3,000만 원 정도는 투자할 수 있겠더라고요. (웃음)

 

 

대부분 서평지를 만드는 주된 목적인 좋은 책을 알리고 싶어서인데, 〈교차〉는 저자 발굴, 즉 서평을 쓰는 주체인 필자에 방점이 찍혀 있군요. 어찌 보면 그게 다른 서평지와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읻다’스러운 생각이고, ‘읻다’스러운 시도라고 봅니다. (웃음)

 

필자에게 청탁을 드릴 때도 독자가 그 서평을 읽고 남는 게 서평을 쓴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이미 좋은 책이라고 선정됐고 책 관련하여 호평이든 비판이든 눈이 밝은 독자는 다 알아볼 수 있어요. 오히려 더 나아가 그 필자가 쓴 다른 글을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게 저희가 서평지를 만드는 이유와 맞닿아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이죠. 저희가 번역서는 많이 냈지만 국내 저자와의 작업은 많지 않아서, 사전에 대중서 형태로 책 작업을 하려면 어떤 호흡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지 연습해보는 거죠.

 

<교차> 1~4호

〈교차〉 1~4호

 

 

논문과 단행본의 문법은 다르잖아요. 논문에 익숙한 연구자들에게 대중적인 글을 요청할 때 노하우가 있나요?

 

더 많은 독자를 만나야 하니 무조건 이해하기 쉽게 쓰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그 글을 쓰시려고 하는 분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까요. 다만 커뮤니케이션의 첫 단추를 끼울 때 최대한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걸 얼마만큼 수용해주는지 보고 ‘이 책은 어디까지 할 수 있겠다.’ 가늠해서 그때그때 맞추어요.

 

 

서평지 필자는 주로 어떻게 찾으시나요?

 

김영욱(불문학), 박민아(과학기술학), 최화선(종교학), 박동수(사월의책 출판사 편집장) 기획위원 네 분이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다른 출판사 편집장님이 기획위원을 맡아주시는 것도 특색 있고 참 좋은 인연이네요. 읻다가 여러 출판사 사람들의 공동체로 시작해서인지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라 자꾸 응원하게 됩니다. (웃음)

 

사월의책 박동수 편집장님을 모시게 된 건 전반적으로 출판계의 최근 이슈들에 능통하시기도 하고, 또 저희가 ‘편집자를 위한 철학 독서회’라고 하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독서회에 박동수 편집장님도 함께 하고 있죠. 참여자 절반가량이 민음사에서 〈한편〉이라는 서평지를 만드는 편집자들이기도 합니다. 〈한편〉이랑 〈교차〉가 나오기 전부터 있었던 모임이고, 박동수 편집장님이 기획위원으로 함께해주시면 최적이겠다 싶어서 제안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그 덕분에 책이 균형감 있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훗날 인문교양서나 학술서를 번역해서 수출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출간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네요. 최근 한국 소설이 부커상 후보에 오르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뜨거운데요. 한국 시단에서 중요한 작품을 발표해온 동시대 시인 12명의 작품 2편씩을 각각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로 번역하여 내놓은 ‘줄줄 프로젝트’도 참 의미 있어 보여요.

 

저희가 그동안 외국 시를 많이 번역해서 출간했어요. 그러다 보니 반대로 한국의 좋은 시를 외국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크죠. 좋은 시집을 내는 작은 출판사들은 국내에 많이 있으니까 변별력을 좀 가져야겠다 싶기도 했고요. 알 만한 시인들에게 출간을 제안하면 “다른 출판사와 현재 두 권 정도 계약되어 있어서 3~4년쯤 후에나 해줄 수 있다.”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그건 저희에게 너무 먼 미래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제안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매력적으로 느끼실지 많이 고민한 결과가 ‘줄줄 프로젝트’입니다. 처음에는 2개 국어 정도로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하다 보니 좀 더 다양한 외국 독자에게 가닿게 하고 싶은 욕심이 나더군요. 시인 12명 정도가 되면 앤솔로지(anthology)로 묶어도 괜찮겠다 싶어서,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대표님을 찾아가 추천을 부탁드렸어요.

 

 

‘줄줄 프로젝트’를 접한 해외 출판사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저희가 샘플북을 만들어서 작년(2022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들고 갔어요. 일단 재미있다고 하시면서 관심을 많이 보이시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반응도 이어졌어요. “그런데 소설은 없니?” 하는 거죠. 해외에서는 시집이 수입과 수출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접한 거죠. 그래서 현재는 소설 번역저작권을 수출해보고자 임경선 작가님, 조예은 작가님과 협업하고 있어요.

 

 

읻다가 번역을 바탕으로 하는 에이전시 역할도 함께하면서 출판도 시너지 효과가 나는군요. 얼마 전 독일에 다녀오신 것도 ‘줄줄 프로젝트’ 때문인가요?

 

저희가 독일의 35세 이하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번역가를 대상으로 올해(2023년) 제1회 번역 대회를 열었어요. 3월에 개최해서 9월까지 지원받아 심사해서 지난주에 베를린에서 시상식을 했습니다. ‘줄줄 프로젝트’의 연장선이고 반응도 좋아서 이제 정기적으로 베를린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러면 저희가 1년에 최소 시인 두세 분 정도 독일어 샘플을 양산할 수 있고, 내년 봄에는 소설 분야로 확장해보려고요. 그렇게 수상작 샘플로 해당 출판사는 독일에 홍보할 수 있고, 저희는 판매할 수 있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해요. 몇 년 내로 파리와 런던에서 개최하는 게 현재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독일에서 열린 제1회 번역 대회

독일에서 열린 제1회 번역 대회

 

 

아무래도 해당 언어권 번역가들이 직접 작업하면 글맛을 더 살릴 수 있으니 좋네요.

 

우리도 외서를 번역할 때 출판사에서 판권을 사서 한국인 번역가를 찾아서 번역을 의뢰하지, 외국에서 번역이 다 되어 있는 걸 확보해 출판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지금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은 납품하듯이 좋은 번역을 보내고 거기서 선정되어 출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한국 문학이 더 폭넓게 번역되고 많이 소비되려면 그 언어권 사람이 직접 번역하게 만들고 그들의 언어와 리듬으로 소개해줘야 해서, 그런 채널을 좀 만들고 싶었어요. 또 그런 사람들끼리 교류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한편 K-콘텐츠, 즉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우리 출판계에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최근에 한강 작가님도 프랑스 메디치(Prix Médicis) 외국문학상을 받으셨잖아요. 제가 만나본 해외 출판인들은 그럼 “포스트(post) 한강은 누군데?” 하고 물어봐요. 선점하고 싶은데 샘플이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검토하고 선택할 만한 샘플이 아주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죠. 번역 지원 사업을 통해서 많이 생산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해요.

 

그리고 정보라 작가님과 안톤 허 번역가님처럼 서로 호흡이 잘 맞는 작가와 번역가가 계속해서 함께 작업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해요. 수출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작품은 그렇게 짝을 지어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한국보다 외국 출판은 호흡이 길어요. 예를 들어 완역 원고가 들어가서 출간되는 데 보통 한 18~24개월 걸립니다. 책이 한 권 나오고 나서 판매하거나 유통할 수 있는 시간도 그만큼 길죠. 한국 출판계가 그런 관점에서 선제적으로 좋은 번역가들에게 좋은 작가를 소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읻다는 국내서보다는 번역서가 많은 편인데, 번역가를 섭외하고 함께 작업할 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노하우가 있나요?

 

편집자가 해당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조합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완충 장치, 그러니까 오역을 검토할 수 있는 팀을 잘 구성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번역가가 집중해서 작업을 잘했다는 전제하에, 아주 어려운 책도 편집자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으면 굉장히 많은 오역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편집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읻다의 최근 출간작 『겨울 간식집』(박연준 외, 2023), 겨울 간식을 테마로 한 소설집이다.

최근 출간작 『겨울 간식집』(박연준 외, 2023), 겨울 간식을 테마로 한 소설집이다.

 

『MBTI 테마소설집』 시리즈, 『여름 기담』 시리즈

『MBTI 테마소설집』 시리즈, 『여름 기담』 시리즈

 

 

요즈음 읻다가 독자 대상으로도 신선한 시도를 의외로 잘하더라고요. MZ세대에게 MBTI는 하나의 트렌드였는데, 읻다에서 그런 흐름에 발맞춰 최초로 MBTI 소설집을 기획하고, 또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제공한 굿즈 ‘반려돌’과 ‘MBTI 책갈피와 돗자리’가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죠. 최근에 나온 『여름 기담』(2023) 시리즈의 표지와 판형도 센스 있었어요. 저는 책이 아니라 일본 카레 상품인 줄 알았답니다. (웃음)

 

다 저희 편집자들 아이디어죠. 기존에 내던 책들이 대체로 무채색 톤이었는데, 한국 문학 팀이 합류하면서 외연도 넓어지고 새로운 기획도 많이 하고 있어요. 기발한 제안을 많이 해요. 제가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라고 팀원들에게 말했어요. (웃음) 단 두 가지는 꼭 이야기해요. “새로운 책을 할 때는 가장 멀리 가도 좋다. 대신 멀리 가면 그 사이를 채워야 한다.”라고요.

 

은유 작가님 인터뷰 산문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2023)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무조건 다 시리즈로 내고 있어요. 책끼리 연계되었으면 해서요.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도 단행본이지만 저희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책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번역서를 내고 번역가들이랑 프로젝트를 할 건데 그들이 너무 안 알려져 있는 거예요. 다양한 번역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독자에게는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집단으로 인식되었으면 하고, 연계성을 가지고 꾸준히 간극을 채워가면서 시리즈를 낼 테니, 독자가 그걸 즐겁고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읻다 부스 전경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읻다 부스 전경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된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북토크 모습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된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북토크 모습

 

 

마지막 질문이네요. 노동 공유 프로젝트로 시작한 읻다, 새로운 출판 모델을 만들어나간 유의미한 도전이었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도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동료끼리 의지해야 해요. 그 동료가 한 회사에서 매일 보는 사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출판계에 참 좋은 동료들이 많아요. 책 한 권 한 권 만들 때마다 다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 고유한 경험을 동료들과 자주 나누면 좋겠어요. 배울 수 있는 동료가 곁에 있다는 기분, 서로 느슨히 자극을 주고받는다는 감각을 느끼며 책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읻다가 만들어진 지 그렇게 8여 년이 지났다. ‘함께’라는 이름의 용기는 그 힘이 실로 대단해서 이제는 편집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야말로 작지만 단단한 출판사로 발전을 거듭했고, 느슨하게 연결되었던 이들 역시 여전히 지금도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좋다’ 혹은 ‘곱다’라는 뜻을 가진 옛 우리말 ‘읻다’처럼 좋은 사람들과 고운 책을 만들며.

 

 

김현우 대표
읻다 출판사 및 나선 에이전시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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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나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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