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9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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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장동석(출판평론가)

 

2020. 04.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하철만 타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남녀노소, 전 국민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는 것. 유치원 다니는 어린이 손에도, 70~8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의 손에도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들린 세상이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무가지일망정 신문을 읽는 이들이 종종 있었고, 그나마 드문드문 책 든 손도 만났다. 하지만 지금은 잠든 이들을 빼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 액정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지하철 안내방송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책 등이 주변 승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대략 이렇게 바뀌었다. “고객 여러분, 전동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하여 주시고 부득이 통화하실 때에는 작은 소리로 통화하여 주시기 바라며…….”

 

 

 

시에서 그림책까지, 이제 시작된 출판사 앱

 

지하철 승객들이 읽는 매체와 안내 멘트의 변화만 봐도, 과장을 조금 보태면 책과 출판은 이제 설자리가 없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 혹은 유사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물론 불황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고, 언제 활황인 적 있었냐는 지적을 놓고 보면, 오늘의 어려움은 극복 못할 어려움도 아니다.

 

출판사들도 가만히 앉아 불황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최근 변화만 보더라도, 트위터가 유행할 때는 더불어 트윗을 날렸고(지금도 날리고 있고), 페이스북이 광고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이제 그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도 각종 책들의 표지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누군가는 출판사가 변화에 둔한 조직이라고 말하지만, 그 어떤 출판사도 두 손 두 발 들고 불황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운영 체제에서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인 ‘앱(어플)’에 도전하는 출판사도 하나둘 생겨났다. 앱을 제작한 출판사들이 아직 많지는 않지만, 남녀노소 모두가 스마트폰을 소유한 세상에서, 그 가능성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나름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표주자는 미디어창비의 〈시요일 - 세상의 모든 시(詩)〉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창비는 디지털 콘텐츠를 기획·개발·제작·서비스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비의 계열사로, 〈시요일〉은 2017년 4월 첫 선을 보였다. 〈시요일〉 시작과 함께 선보인 시는 모두 3만 3,000여 편이었다. 한 신문이 “종이 시집이 사라지는 전조인 걸까”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시요일은 월 5,000원, 1년 3만 원의 사용료를 내면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유료 모델이다. 〈시요일〉에는 1966년 창립과 동시에 시집 출간에 힘을 쏟은 창비의 거의 모든 시가 담겨 있다. 창을 열면 등장하는 ‘오늘의 시’ 외에도 ‘테마별 추천시’, ‘시인 낭송’, ‘시요일의 선택’ 등에서 다양한 시와 시를 매개로 한 영상도 만날 수 있다. ‘시作!일기_나도 시인’ 코너에서는 사용자가 시를 직접 창작해 저장할 수도 있다. 2020년 2월 말 현재, 4만 3,00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36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다운로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창비의 〈시요일〉보다 먼저 시 앱을 선보인 곳이 있다. 2014년 10월 첫 선을 보인 〈문학동네시인선〉이 그것이다. 〈시요일〉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기보다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시인들의 시집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카탈로그 성격이 짙다. ‘시인 낭송 듣기’ 코너가 있어, 비록 일부지만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북이십일의 브랜드 중 하나인 아울북의 〈마공앱(마법천자문공식앱)〉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용 앱이다. 아울북은 지난해 초 『마법천자문』 시리즈 출간 17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발간했는데, 학습을 유도하는 기존 방식에 증강현실(AR) 기술을 더했다. 〈마공앱〉을 다운로드하고, 책 속 본문에 등장하는 한자를 비추면 직접 써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어린이 사용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쌤앤파커스는 특이하게 저자가 인세를 조회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해 운영한다. 2019년 12월 10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출판사로부터 받은 개별 코드를 통해 저자가 로그인하면 종이책과 전자책이 각각 몇 권 판매됐는지와 예상 인세가 얼마인지 월별로 업데이트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인세 관련 분쟁이 없지 않은 상황에서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길벗출판사도 전용 앱을 운영하고 있다. 길벗출판사의 책을 구매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앱이다. 이 앱은 2019년 3월 오픈했고 시나공 토익 동영상 콘텐츠 등을 볼 수 있다.

 

앞선 사례들이 비교적 규모가 큰 출판사들이 앱을 제작하고 운영하는 경우라면, 꿈꾸는꼬리연의 〈오디오꿈북〉은 작은 출판사가 앱을 운영하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꿈북〉은 전문 성우가 다양한 그림책을 읽어주는 형식인데, 앱을 다운로드하고 〈오디오꿈북〉 로고가 있는 책을 스캔하면 곧바로 들을 수 있다. 꿈꾸는꼬리연은 자사 출판사 책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작은 출판사들의 그림책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중소형 출판사들의 연대와 콘텐츠 홍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장밋빛 환상은 금물

 

출판사들이 앱을 직접 제작․운영하고 있지만 큰 흐름을 만든 것은 아니다. 적잖은 개발비와 운영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중소형 출판사들은 앱 제작․운영에 쉽사리 뛰어들기 어렵다. 만듦새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앱 제작과 운영이 대개 외부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재정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앱을 제작하고 운영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정 투입이 가능하다 해도 고유의 목적 없이는 제작 이후 운영이 표류할 수밖에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앱이 그런 사례다.

 

〈세계문학〉은 2013년 2월, 출시 나흘 만에 2만 건 이상 다운로드되는 등 비교적 인기를 끌었다. 이 앱을 통해 구매한 전자책은 종이책의 디자인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메모와 밑줄 긋기가 가능하고 SNS 공유도 가능했기 때문에 세계문학을 사랑하는, 특히 전자책으로 갈아타려는 독자들에게는 이만한 것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했고, 2019년 5월부터 교보문고와 리디북스 등으로 이관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선제적으로 시장에 접근했지만 비싼 가격(사용료)과 운영 미숙 등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반면 같은 유료 모델이면서도 독자 대중이 시를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시요일〉 경우 비교적 목적이 분명하고 사용료가 큰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꿈꾸는꼬리연의 경우 그림책으로 대상을 특화하고, 작은 규모의 출판사들과 연대함으로써 새로운 독자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을 눈여겨 볼만하다.

 

스마트폰은 이제 책을 포함한 출판생태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스마트폰 앱도 언젠가는 출판사들이 갖추어야 할 전략적 요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기존의 광고와 홍보 방식으로는 스마트폰을 주야장천(晝夜長川) 쥐고 사는 세대 혹은 독자들의 기호와 구미에 접근할 수 없다. 과거 사례들을 찾아보면 ‘앱’ 시장에, 단지 광고와 홍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지, 혹은 관망해야 할지 나름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출판사들은 홈페이지 제작을 서둘렀다. 당시까지 읽는 것의 대명사는 책이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 인터넷이 깔리면서 읽는 활동은 서서히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읽기 방식의 변화도 변화지만,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은 물론 출판사들까지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홈페이지 바람으로 현재 대개의 중대형 출판사들은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충분한 홍보 채널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다양한 SNS를 홍보 채널로 삼고 있는 게 우리 출판사들의 현실 아닌가.

 

현재로서는 출판사들의 앱 제작․운영에 어떤 평가와 전망을 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평가할 만한 다양하고 적절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시대가 온 만큼 잘 만든 앱이 책과 출판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는 금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앱의 존재 자체가 매출로 곧바로 이어지리라는 환상을 가진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출판사들이 스마트폰 앱을 단지 홍보 채널로서 인식한다면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혹은 앱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변화 양상을 읽어야 하고, 그 변화상 속에서 책과 출판은 무엇을 할지 예측하고 실행해야 한다. 책과 앱의 만남을 진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길은 다시 책이 무엇이며, 출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에서 찾아야 한다.

장동석(출판평론가)

출판평론가로 『출판저널』 편집장, 『기획회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계간철학잡지 『뉴필로소퍼』 편집장이다. 저서로 『살아 있는 도서관』, 『금서의 재탄생』, 『다른 생각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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