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6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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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읽는 우리 시대 언어]
혼자의 발견

 

 

 

정유라(다음소프트 대리)

 

2019. 09.


 

 

 

혼자라는 상황

 

혼밥, 혼술, 혼영, 혼행, 혼족, 혼라이프,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 …. ‘혼’을 앞세운 단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인구 구조와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이 1인 중심으로 변하면서 ‘혼자’는 이제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키워드가 됐다. 소셜미디어상에서도 사용 빈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data_1: 혼자 언급량 변화 (10만 건당 빈도)


data_1: 혼자 언급량 변화 (10만 건당 빈도)

 


data_2: 혼자 vs 같이 연관 속성 비교 top 20


data_2: 혼자 vs 같이 연관 속성 비교 top 20

 

‘혼자’는 책임, 의무, 부담, 눈치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 관계에 대한 의무, 배려를 위한 눈치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메뉴 걱정 없는 혼밥, 주사 부담 없는 혼술, 남 시선에 개의치 않는 혼행처럼, 혼자는 행동의 의미를 가볍게 한다. ‘혼자’의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심만 한다면 타인에 대한 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을 ‘혼자’의 시대라 단언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로 연결되는 사회관계의 가능성이 사실상 무한대인 이 시대에 온전한 ‘혼자’란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 클릭 하나로 그 전화번호부 몇 권만큼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연결의 가능성은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부를 넘어 10만, 팔로워 100만 팔로워로 확장될 수 있다. 1,000만이나 1억 명도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모두를 연결하겠다는 야심찬 기술 혁신 덕분에 부지불식간에 사방으로 이어진 우리는 이제 상시 접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혼자’를 택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물리적인 나 홀로의 상황은 이전보다 빈번해졌지만 온전한 혼자만의 진정성 있는 경험의 시간은 더 희귀해졌다. 밥, 영화, 여행 따위를 혼자 즐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친구와 카톡을 하고, 인스타그램 속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의 생활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유튜브로 타인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VLOG)를 감상한다. 상황적으로는 분명히 혼자인데 언제나 어딘가에 접속돼 있고 누군가의 일상에 연결돼 있다.

 

혼밥의 장소로 소문난 식당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혼자 묵묵히 밥을 먹는 사람 중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켜고 타인의 삶에 눈길을 준다. 작은 화면 속 콘텐츠는 ‘타인’이 추천해주거나 ‘사람들의 리뷰를 바탕으로 한’ 것일 확률이 높다. 점점 연결과 접속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면서 이제 행위와 상황만을 뜻하는 ‘혼자’의 개념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이상의 다른 차원의 혼자를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물리적 '혼자'에서 정신적인 '혼자'로

 

완벽한 혼자는 어려워졌지만 좀 더 성숙한 혼자는 가능하지 않을까. ‘같이’엔 없지만 ‘혼자’에만 더불어 등장하는 속성인 ‘정신’과 ‘성장’은 상황으로서의 혼자와는 다른 의미 맥락을 보여준다. 혼자가 화두가 된 이후, 혼밥, 혼술은 이제 특별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어색함을 극복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행동을 할 수 있는 ‘혼자력’을 키워간다. 경험치가 상승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제거하고 혼자력이 만렙(게임에서 최고 등급)이 된 사람들은 새로운 단계의 ‘혼자’를 원한다. 바로 ‘정신적인 혼자’다.

 

행위로서의 혼자가 정신적인 혼자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혼자의 시간은 확보되었지만 고독은 확보할 수 없었다. 범람하는 연결과 관계 속에서 혼자의 가능성을 몰수당한 지금, 더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이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타인과의 접속을 끊어내고,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너무 많은 소음과 소란, 너무 많은 타인의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세계를 만나는 시간. 내 영역에 묻어 있는 타인의 시선과 목소리를 긁어내고, 나 자신의 서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발을 들이는 시간이야말로 혼밥이나 혼술보다 더 오롯한 ‘혼자의 경험’이고, 남이 아닌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려는 시도이며, 따라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혼자’의 시간이다.

 

질문에 답하는 법이라곤 검색밖에 모르는 요즘, 사색을 통해 나 자신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혼자력’을 키우는 법뿐이다. 타인이라는 검열이 없는 곳, 타자에 대한 궁금증을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돌리는 것,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시간,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든 인간의 성숙을 위해서는 필수 요소이며 혼자를 지켜내기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할 준비물이다.

 

 

 

태도로서의 '혼자' :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이제 ‘혼자’에 대한 담론은 물리적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태도로 확장되어야 한다. 타인과 밖을 탐색하느라 만나지 못한 나 자신과 내 세계를 들여다보려면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혼자의 시간을 대하는 제대로 된 태도가 중요하다. ‘혼자’에는 있고 ‘같이’에는 없는 ㅇㅇ히 로 끝나는 부사는 우리가 추구하는 ‘혼자’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가 그런 단어들이다. 이 시대에 가장 결여된 세 가지 태도기도 하다.

 


data_3: 혼자 vs 같이 연관 부사 비교 top 20


data_3: 혼자 vs 같이 연관 부사 비교 top 20

 

홀로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누릴 수 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이 세계를 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홀로 있음’의 경험이다.

 

홀로 있음이 타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나와 만나는 경험으로 진화한다면 혼자의 의미는 더 풍부해질 것이다. 능동적 태도로 보낸 홀로 있음의 시간은 우리의 내면을 보다 견고하게 단련시키고, 그 견고함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시 세계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주변을 다감하게 마주할 수 있다. 눈치가 아닌 배려, 부담이 아닌 공감을 느끼는 ‘함께’의 순간은 건강한 혼자를 통해 가능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태도로 홀로 있음을 누리기를 바란다. 온전히, 완전히, 가만히.

정유라(다음소프트 대리)

다음소프트 연구원. 학사과정으로 경영학과 불문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으로 문화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쉽게 감명 받고 그 이유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것이 취미이다. 소셜 빅데이터에 나타난 라이프 스타일의 현재와 변화를 고객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그것을 왜곡 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직업을 통해 스스로가 조금 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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