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20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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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번역가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노승영(번역가)

 

2021. 4.


 

아직도 번역가가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번역가의 일상은 그야말로 ‘일상’이요―“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1)―번역가의 삶은 괄호를 채우는 삶이다. 내가 번역가의 일상에 대한 글을 의뢰받은 것은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세종서적, 2018)이라는 에세이를 냈기 때문일 텐데, 저 책이 번역가 박산호 씨와의 공저임을 아는 사람은 제목이 ‘번역가 모 씨의 일’과 ‘번역가 모 씨의 일’을 합친 말이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저 제목에 영감을 줬을 것이 틀림없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일일’은 ‘一日’, 즉 ‘하루’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 소설가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다채로운지!). ‘번역가의 일기’라는 것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번역’만큼 불가능한 것이고 나는 지금껏 시도해본 적조차 한 번도 없지만, 괄호를 채우는 삶의 실상을 보여드리기 위해 오늘부터 며칠 동안 일기 비슷한 것을 써보도록 하겠다.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

 

2021년 3월 10일(수)

『약속의 땅』 (291)쪽부터 (298)쪽까지 번역. 『저 아래 서왕모』 (2)장 전반부 퇴고.

2021년 3월 11일(목)

『약속의 땅』 (298)쪽부터 (305)쪽까지 번역. 『저 아래 서왕모』 (2)장 후반부 퇴고.

2021년 3월 12일(금)

『약속의 땅』 (305)쪽부터 (312)쪽까지 번역. 『저 아래 서왕모』 (3)장 전반부 퇴고.

 

나에게 어제와 오늘은 괄호 안의 숫자만큼만 다르다. 여덟 시쯤 작업실에 출근하여 野翁夜翁(해님, 달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양이 자매)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우고 화장실을 비우고 진공청소기를 돌린 다음 걸레질을 하고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을 달걀 두 알을 삶은 뒤에 컴퓨터를 켜서 번역을 시작한다. 그다음은 위의 일기에 적은 것처럼 책 한 권을 번역하고 다른 책 한 권을 퇴고한다(짬짬이 달걀을 먹고 커피를 두 잔 내려 마신다). 밤 9시쯤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에 이레씩 똑같은 일정을 반복한다.

 

내 삶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미건조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저녁도 있었고 주말도 있었고 취미도 있었고 재충전도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2019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 이론』을 작업한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가 들어왔다.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신작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과 『저 아래 서왕모』 두 권을 번역해달라는 것이었다. 『끈 이론』 옮긴이 후기에 썼듯 월리스의 문장은 번역자를 시험에 들게 하고 다만 악의 길에 빠지게 하는 몹쓸 문장이다.2) 번역하는 내내 이런 책을 내게 떠안긴 출판사를 원망했다. 문장을 어떻게 풀어낼지 막막할 때마다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고도 자기들은 두 다리 쭉 뻗고 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이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나중에 편집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따위로 번역해놓고 밤에 잠이 오냐?’). 그런데 매일 좌절감에 시달리다가 어느덧 마지막 문장을 끝내는 순간(“천재는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감은 전염되며 형태가 다양하다. 힘과 공격성이 아름다움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광경을 가까이서 보기만 해도 영감과 (찰나의 필멸자적인)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왠지 다른 책보다 조금 더 뿌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제는 어떤 책도 거뜬히 번역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책을 선뜻 맡은 것은 이 때문이다.

 

 

2) “월리스의 전략은 여러분 두뇌의 처리 용량을 초과하는 문장을 써서 과부하를 일으킴으로써 비판적 독해에 필요한 연산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배배 꼬인 문장을 해독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한 여러분의 두뇌는 달콤한 것을 갈구하기에 (곁에 마카롱과 흑당밀크티가 없다면) 월리스의 달짝지근한 다음 문장을 게걸스럽게 흡입한다. 월리스의 불순한 의도를 뻔히 아는 나로서는 한국 독자들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고 경고하고 싶지만, 그의 문장을 번역하다 보면 나도 그만 몽롱해져 번역자의 본분을 잊고 만다. (그의 기나긴 영어 문장을 기나긴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하면서 사디스트적 쾌감을 느꼈다는 말까지는 차마 못 하겠지만.) 세상에 정의라는 게 있다면, 번역자가 힘들었던 만큼 독자도 힘들어야 하지 않겠는가.”(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끈 이론』, 알마, 2019, 228쪽)

 

오산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로 분류되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의식의 흐름 기법, 자유 간접 화법, 상상을 초월하는 만연체를 구사하는 작가로, 국내 출간된 전작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가 그나마 정상적인 소설의 꼴을 갖추고 있었고, 내가 맡은 두 책은 저자가 ‘어디 이래도 읽을 수 있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문체 실험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이었다. 계약할 때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2020년 6월부터 9월까지, 『저 아래 서왕모』를 10월부터 12월까지 번역해서 넘기겠노라 장담했는데 어림도 없는 만용이었다.

 

일단 작업 분량부터 예상과 어긋났다. 나는 번역을 의뢰받으면 영어판 전자 원고를 입수하여 단어 개수를 바탕으로 한국어판 원고지 매수를 유추한다(그동안 했던 작업들의 영어판 분량과 한국어판 분량을 비교했더니 영어판 단어 개수에 0.015를 곱하면 얼추 한국어판 원고지 매수와 비슷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3,000매로 예상되었다. 난이도를 감안하여 번역료를 기존 원고보다 조금 높이 불렀기에 생계에 지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최종 원고를 넘긴 뒤 출판사에서 산출한 한국어판 분량은 200자 원고지 2,613매였다. 매당 번역료가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내가 얼마를 손해 봤는지 알 것이다.3)게다가 만연체에는 번역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3) 만연체를 구사하는 저자를 만나면 번역자는 두 번 운다. 한 번은 까다로운 문장과 씨름하느라 울고 또 한 번은 원고 매수가 예상보다 적게 나와서 운다. 후자의 이유는 원고의 분량을 원고지 매수로 산정하는 한국 출판계의 독특한 방식 때문인데, 원고지에 글을 쓸 때는 문단이 끝날 때마다 행갈이를 하기 때문에 그 행의 나머지 칸은 빈칸인데도 원고 매수에 포함된다. 이렇게 하면 원고지 매수로 실제 책의 분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 문단이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만연체는 공으로 얻어걸리는 빈칸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작업에 투입한 시간에 비해 결과물의 양이 적다. 작업 시간은 원서의 단어 개수에 비례하므로 만연체를 상대하는 번역자는 번역 시간은 오래 걸리고 번역료는 적게 받는 이중고를 겪는다. 나야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려서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다른 번역가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만연체의 경우는 기존 번역료의 1.2배를 요구한다”라는 문구를 머릿속에 새겨두시길.

 

영어는 주절과 종속절의 위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한국어는 “내일 비가 오면 출근하지 않겠다.”라는 문장을 “출근하지 않겠다. 내일 비가 오면.”으로 바꿀 수 없지만 영어는 “If it rains tomorrow, I’m not going to work.”라고 써도 되고 “I’m not going to work if it rains tomorrow.”라고 써도 된다. 이제 저 문장의 앞뒤에 다른 문장들이 있고 문장과 문장이 모두 쉼표로 연결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문장의 형태만 가지고는 if 절이 앞 절에 연결되는지 뒤 절에 연결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두 문장이 결합하여 하나의 문장이 되면 각각의 문장은 ‘절’이 된다). 이 때문에 절과 절의 관계가 파악될 때까지 문장을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소화되지 않은 채로 문장을 꾸역꾸역 욱여넣다 보면 배탈보다 무서운 뇌탈에 걸리기 십상이다.

 

뇌탈이란 뇌에 과부하가 걸려서 사고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데―원래 있는 용어는 아니고 내가 방금 만든 말이다―체한 것과 같아서 제때 풀어주지 않으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번역자 중에는 일하다가 갑자기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SNS를 하거나 과자나 아이스크림이나 단 커피를 섭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 뇌탈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이다. 뇌는 지적 활동과 감정 활동 둘 다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과도한 지적 노동으로 두뇌 에너지가 고갈되면 의욕도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다.4)

 

 

4)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 2018) 131쪽 참고.

 

하지만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약과였다. 문장이 까다롭긴 해도 스토리가 일관되게 전개되는 장편소설이어서 일단 흐름을 파악하면 순조롭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아래 서왕모』는 단편 열일곱 편을 모은 소설집이어서 장이 바뀔 때마다 인물이며 배경이며 모든 것이 리셋되어버리는 탓에 예열을 실컷 해도 얼마 달리지 못하고 다시 차를 세워야 했다. 구조 분석부터 첩첩산중인 원문의 까다로움, 몇 개 안 되는 한국어 연결어미를 다채롭게 구사해야 하는 고충, ‘일본어 → 영어 → 헝가리어 → 영어 → 한국어’5)의 과정을 거치며 소실된 의미들을 유추하고 복원해야 하는 어려움 등을 해결하다 보면 수시로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번역하면서 SNS를 끊게 된 사연은 다른 매체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6) 그렇게 해서 “차분하고 여유로워”졌어도 이번 책에는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결국 일상을 극도로 단순화하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5) 이 책에는 일본 사찰의 의식을 다룬 소설이 몇 개 있는데, 추측건대 저자는 일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자료를 헝가리어로 옮기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이는 일종의 번역을 통해 소설을 쓴 듯하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저자의 권위는 헝가리어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번역자는 저자의 ‘오역’을 바로잡아야 할까? 이것은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성격과는 맞지 않기에 다른 기회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6)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뉴스레터 《독서IN》에 실린 「차분하고 여유로워지려면」(재런 러니어,『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글항아리, 2019 서평). https://www.readin.or.kr/home/bbs/20007/bbsPostDetail.do?postIdx=11252

 

내 논리는 이렇다. 지금 하고 있는 번역 작업보다 신나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문장이 막힐 때마다 그것으로 도피하여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괴롭더라도 번역에서 사소한 즐거움이나마 억지로 짜낼 수 있도록 현실을 더 괴로운 곳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SNS와 더불어 넷플릭스 시트콤, 음악, 독서 등 번역보다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즐길 거리를 모조리 포기했다. 이젠 뇌탈에 걸렸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섯 평(17.8제곱미터)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거나 창밖으로 고봉산과 대북 전파 차단용 철탑과 화단에 남은 씨앗을 뒤지는 까치와 아파트 단지를 오가는 주민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다.

 

자극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과 더 섬세한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마약, 당, 탄수화물, SNS처럼 수동적이고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것들은 자극이 커질수록 쾌감도 커지기에 갈수록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이에 반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자극은 작디작은 차이,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사소한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낄 수 있기에 강한 자극이 필요하지 않다. 이를테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해석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는 것과 같다.

 

나는 쾌감의 원천을 모두 차단당했기에 이제 번역 작업에서, 내 눈앞의 원고에서 쾌감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예전엔 번역이 끝나면 내 원고를 서둘러 읽으며 오타나 어색한 문장만 고쳐서 출판사에 넘기기 바빴는데, 지금은 영어 원고를 다시, 마치 내가 독자인 것처럼,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영어판 번역자 레이첼 미코스(Rachel Mikos)에게 물어본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그녀는 오틸리 물젯(Ottilie Mulzet)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알고 보니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도 그녀의 번역이었다(미코스와 물젯이 동일인이라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그녀의 답장을 읽으면 ‘어쩜 이렇게 자신이 텍스트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을까’라고 감탄하게 된다(다른 번역자에게 내 한국어판 원고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나도 그녀처럼 준(準)저자의 권위를 가지고 답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더 단단하고 풍성해진 텍스트 이해를 바탕으로 내 원고를 읽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역시 이 책의 번역을 맡지 말아야 했어.’ 하지만 내가 영어 원고를 읽으면서 느낀 재미와 감동을 한국어판 독자에게 최대한 전달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구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번역가의 일상만큼 무상(無常)한 일상이 있을까? 어쩌면 맨 위에 쓴 일기를 이렇게 고쳐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1년 3월 10일(수)

금융 위기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오바마가 월 스트리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무릅쓰고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골머리를 썩인다. 백악관 보좌진은 팀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부하 검사 해결책에 회의적이지만 딱히 나은 방안이 하나도 없으니 이대로 기다려보는 수밖에. 이 와중에 AIG는 1,700억 달러 이상의 정부 자금을 지원받은 주제에 직원들에게 1억 6,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들끓는 국민 여론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하나.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과 결혼하여 왕후가 된 바빌로니아인 와스디는 페르시아 제국을 통틀어 가장 미인이었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경탄과 시샘만 받을 뿐. 그녀는 아후라 마즈다 신에게 제사 드리러 가면서 백성들의 환호를 즐긴다.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민중의 힘을 빌리고 싶은 걸까?

2021년 3월 11일(목)

금융 기관들뿐 아니라 3대 자동차 제조사도 위태롭다. 포드는 금융 위기 직전에 채무 재조정을 실시한 덕에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GM과 크라이슬러는 이대로 두면 도산할 게 뻔하다. GM에는 추가 지원을 하고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에서 인수를 타진하고 있으니 정부가 중개해보기로 한다. 국가 경제는 대통령의 결정보다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과 경기 순환에 더 큰 영향을 받지만, 사람들은 경제가 좋아지면 대통령 덕이라고 생각하고 나빠지면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가 2008년에 당선된 것은 부시 행정부에서 터진 금융 위기의 어부지리인 측면도 있다. 연준의 부하 검사 예비 보고서가 나왔는데, 금융 기관들이 민간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정부의 도움을 조금만 더 받으면 회생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고비는 넘겼나 보다. 만취한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과 제국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서 왕후 와스디를 부른다. 왕후관 말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축하연에 모인 모든 귀족과 지방관 앞에서 미모를 과시하라는 것이다. 왕의 어머니인 모후 파리사티스는 눈엣가시인 와스디를 제거하려고 와스디가 오만방자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와스디는 몹쓸 병에 걸려 왕 앞에 나설 수 없는데.

2021년 3월 12일(금)

미국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련과 중국, 그 위성 국가들만 상대하면 되던 냉전 시대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독불장군처럼 굴 수 없다. 무력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테러 위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게다가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독재를 후원하고 국민을 탄압한 전력이 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에다 이름도 무슬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바마가 백악관에 들어앉아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많다. 젠겐지의 아미타여래좌상은 유명한 보물이지만 수 세기를 지나면서 훼손되었다. 간신히 복원 비용을 마련했으니, 불상을 복원 전문 기관인 미술원으로 보내기 위해 발견식(불상 안에 들어 있는 성물을 끄집어내어 불상의 신성을 일시적으로 제거해 운반할 수 있도록 하는 의식)을 거행할 차례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주지는 걱정이 산더미다. 과연 발견식과 개안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2021년 3월 13일 일기에는 괄호가 없다. 오늘은 번역 작업을 잠시 중단했기 때문이다(이유가 궁금한 사람은 여러분이 지금 어떻게 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시길). 다행히 글쓰기는 번역 못지않게 괴로운 작업이어서, 원고를 다 쓰고 퇴고까지 마치고 나면 미련 없이 번역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451쪽짜리 『저 아래 서왕모』와 751쪽짜리 『약속의 땅』만 끝내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크리스토퍼 해드네기의 『휴먼 해킹』이 어떤 책이냐에 달렸다.

 

* 필자는 이 에세이를 계기로 온라인 번역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 왔다. 그의 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pf.kakao.com/_CeYpK또는 카카오톡 친구 검색창에서 ‘약속의 땅(오바마 자서전)’ 검색.
http://pf.kakao.com/_qxfvYK 또는 카카오톡 친구 검색창에서 ‘저 아래 서왕모’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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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영(번역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 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라고 생각한다. 박산호 번역가와 함께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을 썼으며, 『당신의 머리 밖 세상』, 『헤겔』, 『마르크스』, 『자본가의 탄생』,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 『트랜스휴머니즘』, 『나무의 노래』, 『노르웨이의 나무』, 『정치의 도덕적 기초』, 『그림자 노동』,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홈페이지(http://socoop.net)에서 그동안 작업한 책들에 대한 정보와 정오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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