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21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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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초 한옥도서관과 한옥교실을 가다

 

 

 

정선영(정수초등학교 교무부장)

 

2021. 5.


 

학교는 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아이들이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공간 세 곳을 떠올려 보자. 사람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중소도시 규모 이상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이라면 그 세 곳은 집, 학교, 학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곳으로 더 줄인다고 해도 집과 학교 정도로 압축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즐겨 듣고 부르는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는 안타까운 우리나라 학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 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네모난 학교 건물을 아무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6.25전쟁 이후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1962년 즈음, 학교는 학교시설 표준설계도에 따라 넘쳐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을 가장 빠르고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이후 1990년대 현대화시범학교 계획으로 열린교실, 교과교실, 정보화교실, 복합화교실 사업 등이 추진되며 획일적인 학교의 모습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하지만 표준건축비의 한계에 부딪혀 아직까지도 학교의 모습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전국 어디를 가나 학교의 모습은 네모의 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육의 선두 그룹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학생들에게 무한한 창의력을 키우고, 올바른 인성을 갖추라고 강요하고 있다.

 

창의력과 인성이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이러한 공간의 경직성에서 오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기존의 학교 혹은 새로 지어지는 학교 건축과 공간의 구조를 새로운 개념의 구조로 바꾸는 다양한 학교 공간 재구조화(또는 혁신)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예로 서울시교육청의 ‘꿈담교실’, ‘서울형 메이커 스페이스’, 부산시교육청의 ‘별별공간사업’, 광주시교육청의 ‘아지트(아·智·트) 사업’, 경기도교육청의 ‘미래형 마을학교 만들기 사업’ 등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규모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에 견줄 만한, 정말 색다른 학습 공간 혁신이 서울정수초등학교에서 지난 2020년에 벌어졌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의 ‘꿈담교실(5개 교실)’, ‘서울형 메이커 스페이스(2개 교실 규모)’, ‘고운 색 입히기(외벽 개선 공사)’ 사업을 모두 동시에 진행하면서… 그 혁신은 바로 학교라는 공교육 기관에 한옥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정수초 한옥도서관과 한옥교실,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많은 학교 중에서 왜 하필이면 서울정수초등학교에 한옥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을까? 아래 내용은 사단법인 한옥문화원의 계간지 〈한옥문화〉 2020년 겨울호 및 일부 언론에 기고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서울정수초등학교는 성북구 정릉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공립학교로서 1986년 4월 6일 개교한 이래 정릉을 대표하는 초등학교이다. 학교 바로 옆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적지인 정릉이 있어 한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통학에 어려움이 많아 학생이 주변 학교로 빠져나가면서 줄어드는 만큼 인근 주민들의 관심도 줄어들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인 정릉과 맞닿은 좋은 지리적 요건을 살려 한옥교실 건축을 지원받아 주민 및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전통문화와 전통미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갖도록 하고자 2018년 4월 18일, 신한옥 교육시설 구축 사업희망서를 제출했으며, 세 개의 후보 학교 중 현장답사를 거쳐 최종 후보지로 우리 정수초등학교가 선정되었다.
  이후 2019년 2월, 서울시교육청과 협동연구기관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전봉희 교수)이 신청에 동의하고 업무협약을 맺으며 시작된 것이다. 사업 정식 명칭은 “신한옥형 교육시설 실증구축”이었으며, 공동연구기관인 동양미래대학교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장필구 교수)에서 운영과 진행을 맡았고, 대연건축부설연구소(대표 김철민)에서는 설계 및 감리를, 현영건설부설연구소(대표 김호준)에서는 시공을 담당하였다.
  2019년 3월 말부터 동양미래대학교 산학협력단 주관으로 학교, 교육청, 관련 기관 담당자들이 참석하여 실증구축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였고, 9월까지 세 차례 더 이어갔다. 이와 별개로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 및 간담회(5~6월), 사용자참여협의체(이하 한옥TF팀) 구성 및 협의(7~8월), 다른 한옥 및 최신 도서관 사례 탐방(8월), 디자인 워크숍(10월)을 거쳐 11월 “신한옥형 교육시설 구축 실시협약서”를 체결함으로써 이듬해 1월 한옥TF팀의 결정인 조경 속 배치안대로 설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옥도서관 학부모 설명회(좌), 한옥도서관 상량식(우)


한옥도서관 학부모 설명회(좌), 한옥도서관 상량식(우)

 

기왓장 손글씨 쓰기 이벤트(좌), 한옥도서관 현판식(우)


기왓장 손글씨 쓰기 이벤트(좌), 한옥도서관 현판식(우)

 

  2020년 2월 14일, 터파기를 시작으로 신한옥형 교육시설인 정수초 한옥교실의 공사가 역사적인 첫 삽을 뜨면서, 같은 달 24일, 착공식 겸 ‘안전기원제’를 실시함으로써 본격적인 공사의 시작을 알렸다. 6월에는 정수의 모든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기왓장 손글씨 이벤트도 실시하였고, 7월에는 상량식, 10월에는 한옥도서관과 한옥교실 이름공모, 11월에는 현판식, 12월 준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이 함께 참가함으로써 모두가 만들어 가는 하나의 큰 축제가 된 셈이다.

 

정수초 한옥도서관과 한옥교실, 이렇게 배치되어 있다

 

서울정수초등학교 한옥 건축물은 크게 한옥도서관과 한옥교실, 그리고 두 한옥을 잇는 회랑(回廊)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옥도서관인 한솔각(韓率閣)은 ‘크다’, ‘하나뿐이다’라는 의미의 ‘한(韓)’과 소나무를 뜻하는 ‘솔’과 뜻, 음이 같은 솔(率)의 의미를 포함하여 ‘독서를 통해 힘을 길러 한국(韓國)을 이끄는(率) 사람이 돼라’는 의미를 담았다. 한옥교실인 나리재(邏理齊)는 학교의 교화(校花)인 개나리의 ‘나리’라는 소리를 땄으며, 한자로는 ‘이치(理)를 붙잡고 순행(邏)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회랑은 한솔각과 나리재를 이어주는 동시에 한옥과 큰 마당인 운동장을 구분하는 열린 공간이다.

 

지금의 도서관과 창의적 체험 교실이라는 교육적 공간의 위치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고 결정하기까지 많은 토론과 논의가 있었다. 처음 계획은 운동장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학교 건물 앞 스탠드에 이를 배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은 기존 학교 건물과는 독립되면서도 체육관(강당)과 맞붙어 이어지는 건물을 희망했고, 그들의 강력한 의사를 반영하여 현재의 조경 속 배치로 설계를 변경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러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있었기에 북한산과 북악산 자락이 배경이 되는 전통적 한옥 경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수초 학교 및 한옥교실 전경(좌), 정수초 한옥도서관 및 한옥교실(정면)(우)


정수초 학교 및 한옥교실 전경(좌), 정수초 한옥도서관 및 한옥교실(정면)(우)

 

한옥도서관(한솔각: 韓率閣)(좌), 한옥교실(나리재: 邏理齊)(우)


한옥도서관(한솔각: 韓率閣)(좌), 한옥교실(나리재: 邏理齊)(우)

 

정수초 한옥도서관,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공교육 기관으로 처음 들어온 한옥, 이 아름답고 멋진 선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다. 돌이켜보면 2018~2019년은 신청 및 계획의 기간이라 볼 수 있고, 2020년은 계획한 것을 실제로 구축한 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21년 올해는 이를 교육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 정수교육의 한 축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대유행 사태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정답은 아닐지라도 묘책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기본적인 용도가 ‘독서’와 ‘도서 보관 및 유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교 도서관이라면 책을 꽂아둔 책꽂이가 있고 그 옆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정수초 한옥도서관인 한솔각은 처음 계획했던 스탠드 구조를 살리는 것을 학교 구성원들이 강하게 원했기 때문에, 조경 속 배치안으로 설계를 바꾸면서도 그 구조를 한솔각 내부에 그대로 유지했다. 이는 한옥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간 구성이지만,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또한 계단 사이는 책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스탠드형 책꽂이 옆의 계단은 1층 평평한 공간과 2층 서가(書架)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스탠드형 책꽂이에는 큰 계단처럼 높낮이가 생겨 의자처럼 앉아 청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1층 아래 창가 쪽 평평한 공간에는 빔프로젝터와 스크린, 음향 시설을 설치해 수업 및 강의, 작은 공연이나 행사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옥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하는 학생들


한옥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하는 학생들

 

한옥도서관에서 도서관 이용 방법 교육을 받고 도서를 대출, 반납하는 학생들


한옥도서관에서 도서관 이용 방법 교육을 받고 도서를 대출, 반납하는 학생들

 

1층은 소규모 발표회나 행사의 장소로, 2층은 학부모 독서 동아리(카페)로 활용하는 모습


1층은 소규모 발표회나 행사의 장소로, 2층은 학부모 독서 동아리(카페)로 활용하는 모습

 

정수초 한옥교실,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한옥도서관인 한솔각이 본채라면 한옥교실인 나리재는 별채라고 볼 수 있다. 이 별채를 한옥교실로 부르기로 하자. 별채는 팔작지붕인 본채와 달리 어찌 보면 맞배지붕을 가진 단출한 형태의 방 한 칸짜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나 용도 면에서 본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나리재는 전통적으로 ‘채’라는 개념의 도서관과는 완전히 독립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

 

이곳은 본채에서 읽은 책들을 들고 와서 함께 이야기하는 토론의 장으로 쓰일 수 있다. 정상적인 등교수업이 가능한 상황이 되면 매주 한 학급당 1회씩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학부모 독서 동아리처럼 학생 독서 동아리를 운영할 수도 있는데, 현재 정수초에서는 매주 수요일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며 ‘속닥속닥 북클럽’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본채와 별채 사이 작은 뜰은 전통놀이 공간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체육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작은 뜰에서는 야외전통놀이를, 나리재 안과 마루에서는 실내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한옥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공간의 열림이라고 할 수 있다. 별채인 나리재 안에 앉아서 사방의 모든 창을 열고 운동장이나 뒤뜰을 바라보면 안과 밖의 공간이 막히지 않고 마루와 창을 통해 이어져 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 이는 현대식 건축물에서 느끼기 힘든 장점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한옥교실을 예절교실, 서예교실, 국악교실 등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먼 훗날 이곳에서 멋진 갓을 쓴 선비가 책을 읽거나 수묵화를 그리고, 한복 입은 명창은 그 옆에서 국악에 맞춰 창을 부르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산책 겸 학교를 둘러보다가 나리재 툇마루에 걸터앉아 운동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서너 명의 저학년 아이들이 달려와서 자연스럽게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또한 공간의 열림이라는 한옥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한옥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하는 학생들


한옥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독서하는 학생들

 

한옥교실에서 전통놀이를 하는 학생들


한옥교실에서 전통놀이를 하는 학생들

 

“선생님? 우리 학교 한옥은 꼭 궁궐 같아요. 다른 학교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해서 저도 모르게 우쭐해져요.”

 

독서토론 활동을 막 마치고 나온 또 다른 고학년 학생에게 물어보았다.
“한옥에서 공부하니까 좋아?”
“그럼요. 집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음… 이 소나무 향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아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학교라는 공간으로 들어온 한옥이 서울정수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분명 큰 선물이라고 확신한다. 한옥이 주는 심미적 감각을 이들은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물인 한옥이 모든 학교에 들어서기에는 예산이나 관리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발판이 되어 언젠가 학교 전체를 한옥으로 짓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정수초등학교 한옥교실 및 한옥도서관 홍보 동영상

 

정선영(정수초등학교 교무부장)

서울정수초등학교 교사(교무부장)로 서울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체육학 석사, 美 West Chester University와 연세대학교에서 교육측정평가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2019년 교육부 파견 교사로 말레이시아한국국제학교 개교 요원으로 활동하고 그 공로로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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