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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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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점의 시대』를 쓴 강성호 작가
지식과 문화의 중심, 서점의 역사를 찾아서

 

 

 

〈출판N〉 편집부

 

2023. 05.


 

서점을 생각하면 예쁘고 그리운 기억이 떠오른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림책이 가득한 진열대를 살펴보던 기억, 방과 후 친구들과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고심 끝에 집어 들던 기억,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상대를 기다리며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들춰보던 기억… 이처럼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 공간이다. 그렇다면 시대별 서점의 모습은 어땠을까? 또 앞으로 서점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까? 이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서점의 시대』(나무연필, 2022)를 쓴 강성호 작가를 만났다. 한국의 서점 문화사를 연구한 강성호 작가에게서 서점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성호 작가

 

 

〈출판N〉에 강성호 작가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년에 『서점의 시대』라는 책을 선보인 강성호입니다. 전라남도 순천에 살면서 틈틈이 몇 권의 역사책을 썼습니다. 아내와 함께 골목책방을 3년 가까이 운영했을 만큼, 책과 서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하다보니까 근래 몇 년간 독서문화사와 관련된 두 권의 책을 집필했어요. 지금은 전라남도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순천에서 3년간 책방 ‘그냥과보통’을 운영하시기도 했는데요. 직접 서점을 운영하시면서 좋았던 점이나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 서점을 운영해보신 경험자로서 동네서점 운영이 어려운 이유와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해 어떤 지원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서점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제가 종종 강연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서점은 책보다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해야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겠더라고요. 책 한 권 구매하지 않고 무례한 말들을 쏟아내는 손님들이 더러 계시는데, 아마도 동네서점을 운영하신 분들은 한 번쯤 겪어봤을 고충이라 생각해요. 대신 저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30대 중반의 시절을 찬란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멋진 동네친구들도 사귀고, 동경하는 작가님들을 직접 뵙기도 하고, 저희 부부가 운영하는 공간을 매개로 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광경 등을 경험했으니까요.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정말 필요한데, 이건 예산을 세우고 정책을 마련하는 쪽이든 소비자로서 책을 구매하는 분이든 지원과 전략에 앞서 ‘의지’의 문제이지 않나 싶어요.

 

 

 

2022년 출간하신 『서점의 시대』는 우리나라 서점 역사에 관한 최초의 책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책을 통해 “한 시대 문화의 중심에는 서점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서점부터 전문서점,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까지 ‘서점’을 통해 변화한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역사학자로서 어떤 계기로 ‘서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7년에 『고서점의 문화사』(이중연, 혜안)라는 책이 나왔어요. 제목 그대로 고서점의 역사를 다룬 책인데, 이 책이 없었더라면 서점의 역사를 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크게 빚진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어릴 때 아지트가 되어준 동네서점이라든가 20대 중반에 경험한 헌책방 순례 등이 『서점의 시대』를 쓰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다만 직접적인 계기는 골목책방을 운영할 때 생겼어요. 독립서점 열풍이 불면서 서점에 관한 에세이가 정말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정작 이 열풍의 좌표가 어딘지를 알 수 없더라고요. 마치 갑자기 생긴 것처럼. 그런데 역사를 공부하면서 세상에 갑자기 나타나는 건 없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궁금했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서점’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결국 『서점의 시대』는 목마른 사람이 판 우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제일 궁금했기에 직접 쓰게 된 것입니다.

 

『서점의 시대』

『서점의 시대』

 

 

책을 집필하시면서 서점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모으고 조사를 진행하셨을 텐데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으신가요?

 

책을 쓰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초창기에 종이를 판매하던 지물포(紙物鋪)가 서점의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근대서점의 등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인 것 같아요. 어쨌든 서점은 종이라는 물성을 다루는 장소인 만큼, 종이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곳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1920년대 중반 전주에서 김운영이라는 여성운동가가 운영한 ‘민중사서점’의 사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능한 한 중앙뿐만 아니라 지역 서점의 역사도 다루어보려고 노력했고 여성이 운영한 서점도 써보고 싶었는데, 그런 점에서 민중사서점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사례였습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민중사서점을 좀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어요.

 

 

 

예로부터 책이 있는 곳에는 ‘지식’이 있었고, 그 지식을 찾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점을 연구하신 역사학자로서 책의 가치를 담는 공간인 서점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이 세상에 책이 존재하는 한 서점도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해도 신체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은 아날로그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서점의 패러다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어요. ‘제1의 서점’이 책들을 진열하고 하염없이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서점이라면, ‘제2의 서점’은 서점의 적극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모색합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대학가 앞에 자리한 사회과학 서점은 대표적인 제2의 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3의 서점’에 해당하는 독립서점은 수동성과 운동성을 넘어서 서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버렸어요. 제1의 서점이 책을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만 판매했다면, 제2의 서점은 지식의 매개자라는 정체성을 정립했습니다. 제3의 서점이 방점에 둔 건 상품과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삶에 대한 어떤 태도가 공간에 깃들어 있어요. 그게 명확하게 나타나는 게 생태, 페미니즘, 성소수자 등을 주제로 한 북 큐레이션입니다. 앞으로 서점의 미래는 공간 구성과 북 큐레이션에서 사람의 삶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출간하신 책들을 보면서 책과 독서 문화에 대해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가 새롭게 등장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데요. 책과 서점, 독서 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신가요?

 

제가 목표로 삼고 있는 건 독서문화사 3부작입니다. 2021년에 나온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오월의봄)이 ‘독자’에 관한 책이라면, 『서점의 시대』는 책을 사고파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세 번째 책의 주제를 결정하지 못했어요. 최근에 전주 청년몰에 있는 책방 토닥토닥에서 강의를 하다가 ‘한국르포문학사’에 대한 구상을 슬쩍 꺼냈는데, 책방지기 분이 엄청 환영하시더라고요. 한국 근현대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르포르타주(reportage)를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서점의 시대』에서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주제들을 하나씩 논문으로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마지막으로 〈출판N〉 웹진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동네서점을 차리고 싶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고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게 결코 섣불리 결정한 일은 아니지만, 저는 어떠한 형태로든 자기 공간을 만들어두는 건 좋은 시도라고 봐요. 저랑 아내는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많은데, 서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마음을 모은 경험이 참 좋았어요. 자기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취향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인생에서 값진 경험입니다. 동네 아지트가 늘어나는 만큼 취향의 공동체가 많아지는 멋진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혹여나 서점을 운영하게 된다면, 제가 쓴 책들을 팔아주시면 더 좋고요.

 

 

강성호 작가
전라남도 순천에서 아내와 함께 골목책방 ‘그냥과보통’을 운영한 적이 있다. 독서문화사에 관심을 두고 몇 권의 책을 냈다. 현재는 지역사에 관심을 두고 사라져가는 도시의 화석들을 아카이브하고 있다.
ccmcompose@hanmail.net
인스타그램: @archivehonam

 

〈출판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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