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6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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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조선시대 먹방과 요리책 문화를 찾아서

 

 

 

김정미(시나리오 작가)

 

2019. 09.


 

바야흐로 먹방 시대다. TV 리모콘을 누르면 수많은 채널의 태반이 음식에 관련된 방송을 내보낸다. 맛집 소개부터 많이 먹기를 경쟁하는 프로그램. 음식 만들기. 여행가서 먹는 이야기. 음식과 건강 등등. 음식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서점에서는 어떨까? 방송 탓인지, 서점에도 음식에 관한 책은 너무나 많다. 기존의 요리책부터 음식의 역사,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에 대한 정보성 책, 한식부터 서양식, 중식, 일식, 전 세계 음식에 이르기까지 책에서 다루는 음식 이야기도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러한 폭발적인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의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에 사람들이 먹는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먹는 문제는 사실 인류의 출현 이전의 문제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자양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먹는 문제는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다만 먹는 것을 자연 상태 그대로 취하지 않고 거기에 무언가를 가미해 맛을 더 끌어 올리면서, 먹는 문제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본능의 단계를 넘어 음식이라는 문화에 도달한다. 지구상의 생명 중에서 인간만이 음식문화란 것을 가지고 있다. 인간만이 맛에 대해 고민하고 그 맛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쩌면 음식문화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문화가 아닌가 한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속한 사회가 고차원적으로 문화 발전을 이루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음식, 즉 먹는 문제를 넘어서 식재료를 가지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한 음식문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지금까지 전해졌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인류가 생긴 이래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류 문명, 혹은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음식 또한 문화로서 인류와 함께해 왔다.

 

우리 조상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한반도에 인류가 존재한 이후부터 음식문화는 면면히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겼을 것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조상들의 음식문화를 기록으로 살펴 볼 수 있는 방법은 조선시대에 거의 국한되어 있다. 유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들은 시대의 강물 속에 잠기고 만 것이다. 하여 이 글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음식에 관한 대표적인 몇 권의 책을 통해 과거 조상들의 음식문화를 살펴보려 한다. 제목을 붙이자면 ‘조선시대에도 먹방이 있었을까?’라고나 할까?

 

 

 

조선시대의 먹방, 음식문헌

 

‘먹방’의 원래 의미는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에서 유래했지만 최근에는 방송 외에도 음식에 대한 사람의 행위를 뜻하는 말로도 확장됐다. 말하자면 음식문화 전반을 일컫는 속어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먹방’을 알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현재로서는 문헌이다. 조선시대 이전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의 음식문화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도경』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조선시대 이전에도 쓰여졌을 것이라 짐작만 하는 본격적인 음식 관련 문헌은 현재로서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조선시대 음식 관련 문헌은 왕실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실록을 비롯한 중앙의 공식적 문헌 외에도 민간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음식에 관련된 개인의 문집이나, 조리서 등이 꽤 많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전(現傳)하는 조선시대 요리 문헌의 저자는 대개가 남성들이었다. 한문을 읽고 쓸 줄 알며 유교 제례와 접대 문화를 주관했던 남성 성리학자들이 음식에 대한 관심과 정보를 한문으로 개인문집에 남기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의관(醫官)들도 질병 치료의 방편으로 섭생을 중시해 음식 관련 책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우리 조상의 가장 오랜 음식 관련 문헌은 세종 때부터 세조 때에 이르기까지 꽤 오래 궁중 어의를 지낸 전순의(全循義, 생몰 미상)가 쓴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이 문헌은 발견 당시 이야기부터 꽤 극적이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음식 조리서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2001년 청계천의 헌책방 폐지더미 사이에서 이 『산가요록』이 홀연히 발견되면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음식조리서로 등극했다.

 

정확히 말하면 실제로 발견된 책은 1450년경 전순의가 쓴 『산가요록』을 최유준이라는 사람이 필사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의 배경이 조선 초기이고 필사본 말미에 전순의가 쓴 것을 최유준이 필사했다는 기록이 정확히 남아 있어 책의 제작년도는 명확하지 않으나 내용만은 1450년 전순의가 쓴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산가(山家)에서 필요한 것을 기록했다(要錄)’는 뜻을 담고 있는데, 전순의는 어의(御醫)였지만 궁중 생활이 아니라 산골 생활, 즉 서민의 삶에 필요한 생활정보를 망라해서 적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앞부분의 내용이 거의 멸실되었고 다만 조리서 부분이 완벽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 초기 민간의 식생활, 즉 ‘먹방’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전순의는 이 『산가요록』과 함께 1460년 세조의 명으로 『식료찬요(食療纂要)』라는 책도 썼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 중심을 둔 식이요법 책이니 음식 관련 책이자 의학서라고 할 수 있다. 『식료찬요』의 서문에도 밝히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맛을 추구하기 위해 먹기보다는 음식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 전반에 흐르는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통한 ‘웰빙 라이프’를 추구했던 셈이다.

 

전순의는 신분이 매우 미천했지만 신기에 가까운 의술로 오랫동안 어의 자리에 있었고 세조 때에는 당상관 자리까지 올라갔다. 궁중어의였지만 민간의 삶을 잘 알고 있고 민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산가요록』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것도 출신이 산가(山家) 즉, 산골에 있었던 때문 아닌가 한다.

 

비록 『산가요록』에 현전 최고의 음식조리서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민간의 음식문화와 조리법을 정리한 책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안동 지방 양반이었던 김유(金綏, 1481~1552)가 1540년경 쓴 책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 중앙 무대였던 한양이 아니라 지방의 식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수운잡방』의 기본 내용은 유교문화 속 안동 양반사회의 필수조건이었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宾客)’, 즉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할 때 필요한 음식을 정리해두고 있다. 남성 양반의 관점에서 음식으로 유교의례를 행할 때 필요한 음식을 정리한 것이라 다소 의례성이 강하기는 하나 제례 외에 접빈객을 위한 음식들은 당시 안동 양반사회에서 향유한 음식문화, 즉 ‘먹방’을 가늠하게 한다.

 

이외에 17세기인 1611년 허균(許筠, 1569~1618)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요즘으로 말하면 각 지방 맛 탐방 서적이나 지역 맛집 소개 방송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책 제목은 ‘도살장 대문을 보면서 입맛을 다신다’라는 뜻인데, 허균이 유배생활 중 맛없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잘나가던 시절 팔도를 돌아다니며 맛보았던 산해진미를 떠올리며 마음 가는 대로 쓴 책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역의 향토 명물과 별미 음식에 관한 진정한 ‘먹방’의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에 접어들면 실학자들 중심으로 음식 관련 책들이 꽤 쓰였는데, 이는 19세기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조선시대 음식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침서들이 되고 있다.

 

 

 

여성이 한글로 쓴 조리서

 

앞서 살펴본 남성들이 쓴 몇 가지 대표적인 음식 문헌들은 대개 음식을 이용해서 건강을 돌보거나 혹은 제사를 지내거나 손님을 접대할 때 필요한 음식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이들 남성 의관이나 유학자들이 음식을 직접 조리했을지도 모르지만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기에 실제 이들이 남긴 문헌 속 음식에서는 실생활에서 먹은 음식의 조리 과정이나 의미를 구체화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안 살림을 돌보고 가족의 일상을 책임지는 일은 안주인에게 대개 맡겨졌는데, 가부장적 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이런 현상이 더욱 강했다. 그래서 사실상 음식을 조리해 식솔을 거두어 먹이는 일은 거의 여성의 영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여성의 영역 속에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기록이 분명 이전 시대에도 있었으련만, 현재 전해지는 여성이 쓴 음식조리서로 가장 오래된 책은 17세기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쓴 『음식디미방』이다.

 

내륙의 안동에 친정을 두고 바닷가 영해에 시집을 갔다가 다시 내륙인 영주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안동 장씨(安東 張氏) 장계향은 안동과 그 일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안주인이었다. 그녀가 쓴 『음식디미방』은 남성들이 쓴 다소 피상적인 음식 문헌에 비해 매우 구체적으로 음식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이를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지시하고 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레시피북인 셈이다. 『음식디미방』에 있는 음식들은 대개 17세기 안동 지역 앙반가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들이었기에 당시 경상도 지방의 사회상과 경제, 주요 산물과 향토 별미 등을 두루 알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한글로 쓰였다는 점이다. 실제 장계향은 당시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불릴 만큼 한문과 성리학에 능통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음식디미방』을 한글로 썼다. 양반가라 하여도 여성에 대한 교육이 남성에 비해 확실히 부족했던 시대였던 만큼, 장계향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여성들이 이 책을 쉽게 참고하고 이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그 대상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양반가의 여성부터 아마도 이들이 거느렸던 여성 하인이나 노비 등에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음식디미방』에 이어 실제로 많이 이용된 양반가의 레시피북으로는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쓴 가정생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포함된 〈주사의(酒食議)〉 부분이다. 〈주사의〉는 『음식디미방』과 마찬가지로 한글로 쓰여 있다. 한글인 이유는 아마도 장계향의 집필 의도와 유사할 것이다. 빙허각 이씨는 18세기 한양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소론 가문인 서씨 집안의 며느리로 살았다. 『규합총서』의 〈주사의〉 부분에 나오는 음식의 조리법은 18~19세기 한양 명문가의 음식문화를 알려주는 ‘먹방’인 셈이다. 빙허각 이씨가 51세에 쓴 『규합총서』는 바야흐로 실학의 시대였고, 한양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보니 많이 읽히고 필사되어 20세기 초까지 여성들의 가정생활 참고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은 오늘날과 똑같지는 않다. 오늘날 ‘한식’이라 부르는 음식의 원형과 같은 음식도 있지만, 이것은 어떤 음식이었을까 싶은 음식도 있고, 조리법이 낯선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와 똑같지 않다고 지금 우리가 ‘한식’이라 부르며 먹는 음식은 ‘한식’이 아닌 것일까?

 

조상들의 음식문화와 오늘날의 음식문화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재료와 내용은 달라졌지만 밥과 국에 반찬을 먹는 형태의 음식문화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조선에도 시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음식의 형태나 재료, 조리법이 달랐던 것을 보면 음식문화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달라지며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부대찌개가, 아구찜이 조선시대 레시피북에 없다고 한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져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으면 그게 바로 한식이고, 예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한반도의 ‘먹방’을 이어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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