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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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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자의 시선]
일간 이슬아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영경(경향신문 기자)

 

2019. 05.


 

세계는 구독 중이다. 월정액을 내면 무제한 스트리밍 영상을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성공은 ‘구독’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시켰다. 월정액을 내면 매달 한 번 면도날 4~5개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미국 스타트업 ‘달러 쉐이브 클럽’, 월 1만원을 내면 뉴욕 맨해튼의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후치’도 성공을 거뒀다. 볼보는 요즘 “차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Car’)”란 광고를 내보낸다. 매월 700~850달러를 내면 원하는 차종을 골라 번갈아가며 탈 수 있다. 이른바 ‘구독경제’의 시대다.
구독의 원조는 신문과 잡지 같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였다. 하지만 이들이 독자를 잃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구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소비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서시장의 축소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출판계도 구독 모델을 도입했다.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등에서 먼저 시작한 구독제는 월정액을 내면 모든 전자책을 볼 수 있게 했다. 이어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기존 서점 업체도 뛰어들면서 출판계에도 ‘구독 모델’이 번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서 콘텐츠 다양성 부족 등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보이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독자와 시장으로부터 그렇게 ‘핫’한 반응을 얻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내 서점의 ‘무제한 구독제’를 논할 생각은 없다. 교보문고까지 경쟁에 뛰어든 것은 지난 3월이어서 벌써부터 성패를 논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고 싶은 건 서점 업계의 구독제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무명 작가에 가까웠던 개인이 어떤 플랫폼의 도움도 없이 이메일 하나로 구독자를 모집하고, ‘셀프 연재’에 성공한 사례다.

 

 

 

독자와의 직거래의 예외적 성공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미지 출처: 일간 이슬아 네이버 블로그)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미지 출처: 일간 이슬아 네이버 블로그)

 

지난해 여러 가지 출판계 이슈들이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일간 이슬아’의 예외적 성공이었다. 화려한 등단도, 뚜렷한 작품도, 한마디로 ‘뭣도’ 없었던 신인 작가가 배짱 하나로 글 한 편당 500원에 독자를 모집했고, 놀랍게도 성공을 거뒀다.
“태산 같은 학자금 대출! 티끌모아 갚는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등의 문구를 내건 구독자 모집 광고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동병상련’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일간 이슬아’는 월 구독료 1만원을 받고 월·화·수·목·금 주5일 어김없이 수필을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매일같이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이야기들을 써낸다는 게 보통의 일이 아닌데 그는 해냈다. 6개월 동안 이어진 연재 끝에 학자금 2500만원을 모두 갚았다.
그는 지난해 말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와 ‘일간 이슬아’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출간했다. 독립 출판한 〈일간 이슬아〉는 동네 서점 등을 통해 유통되다가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1만4000부를 찍었다. 독립 출판물뿐 아니라 일반 서적으로서도 쉽지 않은 판매고다. 그는 내친김에 독립출판사 ‘헤엄’을 설립하고 대표가 됐다. 지난 4월부터 다시 시작한 ‘일간 이슬아’ 연재에는 지난해 1.5배의 독자가 구독 신청을 하고 입금했다.
보통 ‘등단-문예지 청탁-출판’으로 이어지는 문학 출판의 수순을 깨고 그는 독자적인 독자 모집으로 독자를 확보하고, 출판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정도면 그를 ‘예외적 성공’의 케이스로 꼽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며, 좀 과장해 말해보자면 ‘독립출판계의 넷플릭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변화하고 확장되는 ‘일간 이슬아’

 

이슬아는 지난 4월부터 그의 성공의 토대가 된 ‘일간 이슬아’ 연재를 재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간 이슬아’의 변화다. 그는 다양한 성격의 글들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터뷰 코너를 신설했고, 책 소개, 만화 소개, 다른 작가들의 글을 함께 보낸다. 여전히 80%의 콘텐츠는 이슬아가 직접 쓰는 글들이고, 그의 주특기인 소소한 일상과 가족과 친구들 이야기도 여전하지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글들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일간 이슬아’는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과거 ‘일간 이슬아’가 20대 여성의 솔직하고도 재기발랄한 삶, 그의 어머니 복희와 아버지 웅이 등 가족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자아냈다면, ‘일간 이슬아 시즌 2’에선 그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수필’이란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 코너, 책 이야기 코너 등에선 사회적 이슈나 인물들을 다루며 “이슬아에겐 이런 면모도 있어요”란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이슬아는 “변화한 성격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기존에 조금 가볍고 ‘달달한’ 글들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조금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세월호 같은 사회적 주제를 건드렸을 때 반응이 갈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 발로 구독 신청을 하고 입금한 독자들인 만큼 충성독자 비율이 높아 재구독률이 높은 편이다. 이슬아는 “지난해엔 개인 이슬아의 재주를 보여줬다면 이번엔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다른 작가들 글도 소개하는 ‘작은 문예지’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간 이슬아’는 변화하고 확장하고 있다.

 


<일간 이슬아> 구독자 모집 이미지 (이미지 출처: 일간 이슬아 네이버 블로그)



<일간 이슬아> 구독자 모집 이미지 (이미지 출처: 일간 이슬아 네이버 블로그)


〈일간 이슬아〉 구독자 모집 이미지 (이미지 출처: 일간 이슬아 네이버 블로그)

 

 

 

확장되는 ‘독자 직거래’ 모델

 

‘일간 이슬아’의 성공은 이슬아 자신에게만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다른 작가들에게도 일종의 ‘영감’과 ‘가능성’을 보여줬다. 작가들이 직접 독자를 모집하고 글이나 그림 등 콘텐츠를 보내주는 ‘직거래’가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문보영 시인의 사례다. 문보영은 지난해 말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해 독자들에게 월 1만원의 구독료를 받고 주2회 이메일로 보냈다. 첫 글과 마지막 글은 직접 우편으로 부쳤다. 그는 ‘시 수업 일기 딜리버리’ ‘태국 일기 딜리버리’와 같이 주제를 달리하며 연재를 했고, 지난 4월엔 김승일 시인과 함께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승일 시인의 글, 문보영 시인의 글, 또 두 사람이 함께 쓴 글 등이 주 3회 독자들에게 건네졌다. 문보영은 또 ‘문보영의 오만가지’라는 제목으로 시, 소설, 일기, 만화 등 다양한 글을 실어 책자 형태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1인 문예지’를 구독할 독자 모집에 나섰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또한 직접 독자 모집에 나섰다. 이다는 5월에 ‘일간 매일마감’을 창간했다. 지난달 SNS를 통해 직접 독자 모집에 나서며 “예술 노동자 이다가 월화수목금 신선한 매일 마감을 배달합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그동안 페미니즘적 웹툰과 일러스트를 많이 그려왔던 이다는 ‘일간 매일마감’에서 에세이와 웹툰, 여행기 등을 선보이며 또 동료 작가들의 글도 소개한다.
작가들이 직접 독자를 모집하고,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등단 제도와 문단 구조에 갇히지 않는 재능 있는 작가의 독자적 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독자를 직접 찾아 나서고,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영리하게 포착해 공급하고 있다. ‘일간 이슬아’의 경우 애인과의 사랑 이야기, 피임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동시에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누드 모델을 하기도 했던 이야기를 통해 20대 젊은 세대가 처한 아픔도 함께 그려냈다. 독자들은 그가 매일같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혹돼, 매일같이 메일함을 열어본다.
지난 4월, ‘일간 이슬아 시즌2’가 시작될 때, 나도 구독신청을 했다. 바빠서 열어보지 못한 날도 많지만, 몰아서 읽는 재미도 있다. 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잔잔한 여운 속에 그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일간 이슬아’ 4월 연재가 어느덧 끝나고 5월 연재가 시작된다. 이제 나는 그녀의 어머니 복희와 아버지 웅이,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격도 알고, 그들 가족이 빚어내는 소소한 일상과 불협화음들이 빚어내는 다정한 이야기에 익숙하다. 그의 친구들도 점차 알아가고 있다. 나처럼 ‘일간 이슬아’에 낚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들 어떤가. 하루 500원에 이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이영경(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문학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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