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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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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김종신, 정다운 감독

 

 

 

 

2022. 7.


 

어떤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장소를 우리는 ‘도시’라고 부른다. 전 세계를 둘러보면 특색 있는 도시야 얼마든지 존재하겠지만, 그중 책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는 파주출판도시가 유일하다. 지난 4월, 세계 유일의 책을 위한 생태 도시인 파주출판도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건축 전문 영화영상제작사 ‘기린그림’의 김종신, 정다운 감독이 함께 제작한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는 출판계와 건축계가 만나 구축한 파주출판도시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에는 ‘공동성’이라는 기준 아래 ‘미래 세대를 위한 책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순수한 희망과 치열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 때문일까. 파주출판도시를 잘 알고 있던 사람도, 모르던 사람도 영화를 보고 나면 멀지 않은 시점에 파주를 방문해 직접 두 눈으로 영화와의 교점을 짚어보고 싶어진다. 영화를 통해 파주출판도시 구축의 위대한 여정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의 김종신, 정다운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부터 김종신, 정다운 감독

왼쪽부터 김종신, 정다운 감독

 

 

 

〈출판N〉에 김종신 감독님, 정다운 감독님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건축 전문 영화영상제작사 ‘기린그림’을 운영하고 있는 정다운, 김종신 감독입니다.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를 함께 제작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입니다. 제목을 ‘위대한 계약’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위대한 계약’은 출판인들의 꿈과 건축가들의 이상을 실현시킨 ‘파주출판도시 1단계 건축설계 계약’을 칭하는 공식 명칭입니다. 처음에는 계약서에 진짜 ‘위대한 계약’이라고 적혀 있는지 몰랐고, 수사적으로 부르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 실제로 ‘위대한 계약’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영화를 준비하며 계약 내용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아, 이건 정말 위대한 계약이 맞구나’라고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통상 계약서라고 하면 각자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뺏기지 않기 위해 작성하는 것인데, ‘위대한 계약’은 출판인과 건축가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계약서였습니다. 조금은 위험하게 보이기도 하는 이 계약서가 실제로 작동되어 하나의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어서 제목으로 결정하였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경우 건축계에서의 의의도 큰 만큼, 건축과 관련된 영화를 만드는 두 분께서 관심을 가진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2008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의 한국관 주제가 파주출판도시였는데, 마침 저희 부부가 전시를 위해 파주출판도시와 관련된 건축·출판계 분들의 인터뷰 영상 기록을 맡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건축·출판계 분들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분들의 인터뷰를 담는 작업이 공부도 많이 되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이때 촬영한 인터뷰 영상이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에 담기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기록할 당시에는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질 줄 몰랐지만요. (웃음)

 

저희들은 종종 파주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행사와 축제에 참여하기도 하고, 바람을 쐬기도 했습니다. 자주 가는 만큼 관심도 많았고, 1단계 ‘위대한 계약’ 이후 영화영상회사가 입주하게 된 2단계 ‘선한 계약’을 통해 파주출판도시가 변화하는 모습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2단계 계약으로 파주에 입주한 명필름의 이은 대표님께서 저희의 전작인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시고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떨지 제안해주셨는데요. 건축과 공간을 베이스로 작업을 해왔던 저희가 보기에 파주출판도시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로 느껴졌기 때문에 영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의 경우 각각의 건축물보다 큰 덩어리로서의 공간,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 더 집중하신 것 같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통해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를 생각했을 때 ‘파주에 이렇게 멋있는 도시가 있어요’라는 것보다 파주출판도시가 담고 있는 정신이나 가치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상을 가지고 파주출판도시가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이 도시에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위대한 계약’이 바로 파주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요.

 

부제가 ‘파주출판도시’가 아닌 ‘파주, 책, 도시’인 것도 이 영화의 기획 의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희는 파주, 책, 도시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파주출판도시에서 만나 각각의 의미보다 더 큰 확장성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확장성이란 처음 이 도시를 구상하고 실현하신 분들의 마음과 가치를 뜻하고 있고요.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파주, 책, 도시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영화 포스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영화 포스터

 

 

 

책에서 표지가 책의 첫 인상을 결정하듯, 영화에서는 포스터가 그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본 파주출판도시 내 건물들의 지붕 모양을 이용한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인상적입니다. 포스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셨나요?

 

파주를 생각하면 다른 무엇보다 조화로움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어떤 도시를 떠올리면 하나의 랜드마크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파주출판도시의 경우 도시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타이틀 시퀀스에 파주출판도시 내의 건물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등장합니다. 파주출판도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멋지고 유명한 건물을 비추는 게 아니라 파주출판도시 안에 있는 여러 건물들의 지붕을 비추죠. 이 장면이 타이틀로 이어지면서 건물들의 지붕 모양이 영화 제목의 타이포그래피로 구성됩니다. 책을 상징하는 자음과 모음, 건축을 상징하는 지붕 모양으로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 책과 건축을 결합한 것이죠. 저희는 영화를 통해 위대한 계약의 의미와 파주출판도시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타이틀의 타이포그래피가 저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잘 이미지화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포스터에도 활용했습니다.

 

 

 

최근 부동산/재테크 도서들에 한국 독자들의 관심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도시와 건축에 담긴 ‘공동성’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에 파주출판도시가 시사할 수 있는 점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 ‘공동성’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표현인데요. 우리는 보통 공동의 이익, 공동의 소유 등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것들 앞에 ‘공동’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공동성’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파주출판도시를 계획하던 때에도 개발 중심적이고 개인의 이익 추구가 우선인 시대였어요. 그런 시대에 파주출판도시 구축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공동성’을 앞세우며 다른 가치를 고려할 수 있었던 건 상당히 앞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파주출판도시의 샛강과 늪지를 메우지 않고 살린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샛강과 늪지를 메워 땅이 늘면 조합원의 이익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당시 ‘위대한 계약’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그런 이익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으셨습니다. 대신에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도시여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셨죠. 더 좋은 책을 더 좋은 공간에서 함께 만든다는, 어찌 보면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합원 분들의 ‘공동성’에 대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주출판도시처럼 민간에서 ‘공동성’이라는 순수한 가치에 따라 계획을 세워 움직이고,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정부를 설득한 사례는 전무후무할 것 같아요. 파주출판도시는 구축에 참여한 모두가 순수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이익보다 공동체와 미래 세대를 우선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에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장소인 것 같습니다.

 

 

 

서울을 포함한 파주출판도시에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지역에서도 역량 있는 출판사들이 다양한 지역출판물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출판의 입지가 좁은 것은 사실인데요. 영화계와 비교했을 때, 출판계가 지역의 출판을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저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출판계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조심스럽습니다만, 독립영화를 예로 들어 의견을 드리고 싶은데요. 독립영화계가 각 지역별로 활성화되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지역만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죠. 지역마다 영상위원회가 있어서 해당 지역에서 촬영을 하거나, 제작진이 해당 지역의 출신이거나 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지원을 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저희의 경우에도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주도에서 촬영했는데 제주 지역의 영상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출판계도 중앙에서 지역출판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구상해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지역에서 그 지역만의 보석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고, 매력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낸다면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요? 통영의 ‘남해의봄날’ 같은 그 지역의 이야기를 잘 살리는 곳이 지역마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에도 충분히 다양한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그걸 잘 기획한다면 지역출판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는 도시 건설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출판 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출판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하시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이나 감상이 궁금합니다.

 

영화를 제작하며 ‘앞으로 이 도시가 어떻게 발달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 알게 된 곳이 파티(PaTI)라는 교육 기관입니다. 파티는 2013년 파주출판도시에 디자이너들이 세운 배움터(대안 학교)인데요. 파티의 학생들을 보며 파주출판도시가 앞으로 예술과 교육 도시라는 측면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파주는 북한과도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미래를 바라보며 통일을 준비하는 도시로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과 관련된 부분은 아니지만 파주에 천연기념물 같은 귀한 생물들이 그렇게나 많이 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웃음) 또 하나, 파주출판도시는 산업단지이기 때문에 실제로 거주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쉽게 하지 못했는데요. 거주하시는 분들이 파주출판도시라는 공간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시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과거 출판도시를 꿈꾸던 출판인들의 모습부터 현재의 파주출판도시가 이루어지기까지의 역사를 영화에 담으셨습니다. 앞으로 파주출판도시는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파주출판도시는 ‘위대한 계약’, ‘선한 계약’을 지나 3단계 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희는 3단계 계약을 채울 사람들이 예술가 분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예술가 분들이 파주출판도시 입주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고요. 예술가 분들이 들어와서 생동감 있게 그려나갈 파주출판도시의 모습이 저희로서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또 한편으로 파주출판도시가 지방의 소도시나 다른 산업단지의 눈으로 보면 ‘산업단지의 재생’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치가 섬처럼 동떨어져 있고, 법적인 규제도 많아 성장이 어렵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파주출판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확장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이러한 의미 있는 특징들이 다른 산업단지들에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출판N〉 웹진의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3단계 계약을 통해 예술가 분들이 파주출판도시에 들어와서 무엇을 만들어낼지도 궁금하고, 멀지 않은 통일 시대에 파주출판도시가 어떤 역할을 할지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지금처럼 파주출판도시를 아끼며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될 파주출판도시를 곁에서 지켜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주출판도시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 저희가 영화에 모두 담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웃음) 〈출판N〉 웹진의 독자 분들이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영화를 많이 관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영화 트레일러: www.youtube.com/watch?v=iTevc0M85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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