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22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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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하여
- ‘편집자 공부책’의 완간을 기념하여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2021. 6.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9년 1월 22일 저녁, 일군의 사람들이 한 출판사의 강당을 빼곡히 채웠다. 서울출판예비학교 편집자 과정 책임교수인 이옥란 선생의 『편집자 되는 법』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편집자들의 집담회 자리였다. 이 책은 편집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감당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룬 책이었기에 경력이 많지 않은 편집자를 대상으로 집담회 참가 신청을 받았다. 놀랍게도 신청 페이지에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마련한 공간이 협소해 200여 명 가운데 수용 가능한 70여 명을 뽑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신입 편집자와 편집자 지망생이었다. 패널로 참여한 김진형, 김보희 편집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고, 사회를 본 박태근 MD는 출판인을 겨냥했던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에서 보고 들은 편집자의 다양한 경험을 나눴다.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는 묘한 열기를 띤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집담회를 알리는 이벤트 페이지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과 참여자들이 질문하고 경청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뭔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것을 ‘교류와 경험’이라 부르겠다. 내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데다 파고드는 성향이 강한 편집자들은 모이는 데 익숙지 않다. 교류는 필자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경험이라면? 먼저 겪은 선배 편집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걸 후배들이 참고할 수 있다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도 해 볼 수 있고, 그 경험으로 동료나 선후배 편집자들과 ‘교류’를 해 볼 마음이 더러 날 수도 있지 않을까?

 

행사를 마친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두 실무 편집자와 의논을 했다.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간단히 대화로 처리하면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경력 편집자의 경험을 담은 책을 내면 어떨까요?”
“취지도 좋고 우리는 많이 배우기도 하겠지만 이런 책이 과연 팔릴까요?”
“손익분기점만 넘기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팔리면 됩니다. 우리가 속한 업계가 나아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책이니 유유에도 남는 책이 될 테고요.”

 

시리즈를 알리고 팔기 위하여

 

“경력 편집자들의 경험을 담는 건 좋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으로 담을까?”
머리를 모았지만 여러 경력 편집자의 경험을 한 권에 담아내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 선수들인데, 자신들이 만든 책 이야기만 해도 몇 권은 나오지 않을까? 궁리 끝에 서점 분류를 따라 분야별로 ‘선수’를 고르고 해당 분야의 선수 편집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경험을 각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모든 분야를 다 손대긴 어려웠다. 유유가 감당할 수 있는 분야만 추리기로 했다. 그렇게 추린 것이 인문교양, 사회과학, 역사, 과학, 에세이, 문학, 경제경영, 실용 여덟 개 분야였다. 어쩌다 보니 편집자가 저자가 되어 자기 일을 이야기하는 책을 여덟 권이나 냈다. 지금 생각하면 간덩이가 살짝 부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일은 저질렀으니 저자(편집자)들이 애쓴 노고에 값하려면 뭐든 해야 했다. 여덟 권을 전부 알리고 팔려면 시작부터 달라야 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해 보기로 했다. 펀딩 받은 돈을 제작비로 쓰려는 목적보다는 기획 거리를 찾기 위해 텀블벅을 자주 방문하는 편집자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적은 수라도 초기 판매를 확보하자는 의도였다.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관계자를 찾아가 자문을 구한 결과, 권수가 많아 한꺼번에 펀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두 번에 걸쳐서 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펀딩 받는 시기에 따라 여름 펀딩과 겨울 펀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먼저 준비된 대로 여름에는 문학책, 경제경영책, 역사책, 실용책을, 겨울에는 인문교양책, 에세이, 사회과학책, 과학책을 선보이기로 했다. 2020년 9월에 문학책과 경제경영책 두 권을 동시에 냈고 이후 10월에 역사책, 11월에 실용책을 출간했다. 12월 한 달은 쉬고 1월부터 매월 인문교양책, 에세이, 사회과학책, 과학책을 순서대로 냈다. 저자들이 성실하게 원고를 쓰고 마감일을 엄수했기에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만한 일정은 아니었다. 담당 편집자들은 선배 편집자들의 원고를 편집한다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펀딩 일정에 맞추어 책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펀딩을 준비한 담당 편집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책 만드는 일은 재미있지만 매번 새롭고 어렵지요. 이제는 좀 익숙해지고 실력이 붙을 때가 됐는데, 여전히 버벅대고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헷갈립니다.

  “아, 제목 어떡하지? 생각이 안 나.”
  “글은 재밌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
  “이번 책은 완전 신세계! 책 처음 만드는 기분이야.”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잘 만들 수 있을까요? 눈에 띄는 책, 화제의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편집의 기본이야 어떤 책을 만들든 비슷했지만 제목을 정하고 목차를 구성하고 독자를 찾는 등의 세밀한 작업을 시작하면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접근 방식이나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일이라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서로의 다른 점을 아는 것이 책 만드는 편집자에게 큰 공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에세이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법과 경제경영책 독자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법은 아마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실용책을 기획하는 법과 문학책 저자를 찾는 법도 다를 겁니다. 역사책 편집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직접 만들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울 거예요. 철학자의 원고를 살피는 방식과 사회학자의 글을 만지는 방식 역시 비슷한 듯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뭐가 다르고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대답해 줄 선배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묻고 싶었지만, 이 모든 걸 다 잘하는 편집자를 찾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특정 분야 책을 꾸준히 만들며 그 분야에서만큼은 탁월한 이력을 쌓아 온 선배들을 찾아갔습니다.

  “문학책 편집은 무엇이 다른가요?”
  “경제경영책 기획은 어떻게 하시나요?”
  “역사책을 잘 만들려면 어떤 공부를 하는 게 좋을까요?”
  “실용책에서 편집자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요?”

  이렇게 묻고 얻은 각 분야 편집의 노하우를 각각의 책에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고 싶어 하는 편집자들을 위한 책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담은 책들이었기에 ‘편집자 공부책’이라는 시리즈 이름을 붙였다.

 

편집자가 저자가 되는 일에 관하여

 

분야별 선수 편집자를 어떻게 섭외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그 시간이 길진 않았다. 숨어 있는 고수들이야 많겠지만 그분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아는 편집자 중에서 잘 쓸 만한 분의 목록을 추렸다. 여러 훌륭한 편집자들이 물망에 올랐고, 한 분씩 섭외해 나갔다. 정중하게 사양한 분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는 조금은 수줍지만 기쁘게 수락해 주셨다. 써 주십사 제안하는 자리에서는 아래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드렸다.

 

“책이 많이 팔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출판계의 동료와 후배에게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책이니 꾸준히 조금씩 팔릴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장 잘 쓸 적임자입니다.”

 

애쓴 만큼 팔리기가 쉽지 않은 책이라는 사실은 제안받은 편집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읽을 독자가 많지 않은 책이니까. 그럼에도 다들 군말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우리는 공들여 만든 책으로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은 의외라 해도 많이 팔고도 싶었긴 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편집자는 한 권의 책이 태어나는 데 영화 한 편의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감독이 주목받는 데 비해 편집자는 숨은 조력자로 남는 경우가 많다. 늘 텍스트를 가까이하고 책을 사랑하는 편집자 가운데는 빼어난 글솜씨를 지닌 이가 많다. 책 읽기를 숨 쉬듯 하는 데다 저역자의 글을 독자들이 잘 읽어 내도록 다듬고 바로잡는 게 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좋은 저자가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절실하게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지닐 것. 다른 하나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온 주제가 있을 것.

 

활발하게 책을 낸 저역자 중에는 편집자 출신이 꽤 있다. 『개념어 사전』 같은 좋은 인문교양서는 물론 번역서까지 여러 권 남긴 고 남경태 작가나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정세랑 소설가가 우선 떠오른다만 찾아보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또 샛길로 빠지는가 싶은데, 편집자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보고 듣고 겪는 자기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가치가 있고 함께 사는 이 공동체에 얼마나 필요한 작업인지 동료 시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편집자라는 일이, 수행하는 역할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편집자 공부책’을 만들면서 편집자들이 얼마나 훌륭한 잠재 저자인지 또렷하게 깨달았다. 팔인팔색!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알뜰살뜰 담아내면서도 글에 어찌나 각자의 스타일이 잘 묻어나던지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유유의 담당 편집자들이 각별히 저자(선배 편집자)들께 감사하는 지점이 있다. 아마 저자로서는 대부분 처음이었을 텐데도 후배 편집자들이 자신들의 원고를 편집하면서 요구한 이런저런 수정을 바쁜 일정 속에서 받아주셨고, 번거로우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마감일을 잘 지켜주신 데다 책이 나온 후에는 책을 알리고 팔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셨다. 그리고 다들 저자의 입장이 되는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담당했던 저자들의 처지와 형편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책이 나온 다음에 소수의 독자(대개 편집자)와 함께 편집 이야기를 하는 북토크를 진행했는데, 각자 일하는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편집자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공감대가 형성되어 무척 좋았다는 소감도 전해 주셨다.

 

만들고 나니 이런 점이 좋더라

 

‘편집자 공부책’을 읽은 독자들이 해 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뜻깊고 보람 있었던 대목은 이제 책을 볼 때 책을 쓴 저자만이 아니라 책을 만든 편집자도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편집자가 저자와 독자를 잘 잇고 맺어 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편집자를 저자-독자라는 서클 안의 미싱링크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온전한 책의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해 주신 분도 있었다. 한 분은 책을 만드는 노동은 그간 늘 드러나서는 안 되는, 숨겨진 노동이기도 했는데, 이 노동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고도 했다.

 

요즘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의 기쁨과 슬픔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책이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편집자도 책을 만드는 직업으로서 충분히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집자 공부책’이 우리 사회에서 편집자의 위상을 제대로 평가하고 자리매김하는 데 아주 작은 불씨라도 된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시리즈가 완간되었으니 앞으로는 편집자와 편집자가 만날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고생하신 여덟 분의 이름과 책 제목을 불러 봅니다.

 

 강윤정, 『문학책 만드는 법』
 백지선, 『경제경영책 만드는 법』
 강창훈, 『역사책 만드는 법』
 김옥현, 『실용책 만드는 법』
 이진,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김희진, 『사회과학책 만드는 법』
 임은선, 『과학책 만드는 법』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을 만드느라 애쓴 담당 편집자 사공영, 전은재, 김은우 세 분께도 감사를 전한다. 힘들었죠? 그래도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요.

조성웅(유유출판사 대표)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생각의나무, 김영사, 돌베개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독립하여 유유를 차렸고 회사를 꾸린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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