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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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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랜 세월 인간의 친구가 되어준 책, 그 본연의 가치
-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

 

 

 

2020. 08.


 

수많은 미디어 매체의 등장으로 어려워지는 출판계 가운데, 출판인의 긍지와 자부심, 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제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출판인이 있다. 책이란 인류 문명의 우물이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첨단매체라고 말하는 그, 바로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이다. 그가 가진 출판과 책에 대한 철학,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까지, 책을 사랑하는 김흥식 대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김흥식 대표

 

 

 
 〈출판N〉에 김흥식 대표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대표님 소개와 인사말을 부탁드립니다.

 

 

책 장수이자 번역가이자 저자이자 출판 기획자인 김흥식입니다. 요즘처럼 책 읽는 일이 희귀한 시대에 출판과 책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 일은 늘 행복하고 기쁩니다. 지면으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차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면보다는 지면을 즐기니 이 또한 아름다운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해문집’은 어떤 출판사인지 소개를 부탁드리며, 서해문집이 갖고 있는 비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서해문집은 그 고리타분한 이름에서도 느끼실 수 있듯이 고전과 역사 분야 책을 출간하면서 독자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요즘에는 책 욕심이 많아져서 온갖 분야의 책을 출간하고 있지만 그 출발과 중심에는 고전과 역사, 그리고 인문학이 있습니다. 서해문집은 특별한 비전은 없습니다만, 도서관 서가에서 서해문집 책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책, 그리고 30년, 아니 300년 후에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한 올씩이라도 매듭지을 수 있는 책을 내는 것이 꿈입니다.

 

 

 
 대표님께서 출판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 때 술을 못하고 당구도 못 쳐서 온종일 도서관에서 지냈는데요. 그렇게 3년쯤 지내다 보니 “이렇게 환희에 찬 경험을 안겨주는 책을 모든 이웃들에게 전해주며 살아야겠다.” 하고 다짐했죠. 그러한 다짐 끝에, 평생 책을 만들면서 살고 있으니 참 행복합니다. 물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준 세상과 독자 여러분이 계시다는 것이 더욱 감사한 일이지요.

 

 

 
 31년 동안 출판사를 이끌 수 있었던 동력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이 세상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물론 책을 읽는 일은 기본적으로 ‘즐거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읽는 즐거움이 점점 확장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더 큰 즐거움을 낳잖아요. 그러니 책을 만드는 일은 세상 어느 일보다 즐겁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오늘도 저를 설레게 합니다.

 

 

 
 대표님께서 쓰신 책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몇 권 소개해주세요.

 

 

오늘날에는 국민 고전이 된 『징비록』을 처음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 2003년의 일입니다. 그때는 『징비록』이라는 고전을 아는 분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느냐면 책을 출간하고 한 달쯤 지나서 “유성룡 선생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책을 출간하고 난 이후부터 점차 알려지더니 급기야 드라마로까지 제작되더군요. 한 권의 고전을 온 국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징비록』이 속한 ‘오래된 책방’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고전 편집에 사진과 그림, 지도 등을 삽입해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고전 읽기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고전이 출간될 때 그래픽 자료를 넣지요. 그런 독자 지향적 작업을 선구적으로 행한 것에 대해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초등학생들의 위인전 정도로 알려져 있던 안중근 의사의 삶과 업적을 재구성해낸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도 자랑스러운 책입니다. 제 개인적인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올해의 청소년 역사서’로 선정해주셔서 참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징비록』,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징비록』,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5월 20일에 ‘5월시 동인 시집’을 내셨는데, 이 시리즈를 기획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오늘날 도서관이라고 하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보면, 그곳의 주인공인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서관은 인류 문명을 수집-보관-전파-전승-창조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책 또한 인류 문명 그 자체요, 그 안에 문명을 담아 동시대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나아가 후세대에 전승함으로써 또 다른 문명을 창조하는 매개체요, 우물이지요. 우연히 ‘5월 광주’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동시대를 기록한 ‘5월시 동인지’가 우리나라 그 어느 도서관에도 전질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국회도서관에도 없더군요. 그래서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격동기를 대변했던 시 동인지들, 예컨대 5월시나 반시, 시와 경제, 목요시 등을 찾아보았더니 단 한 종류도 전질이 구비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의 문화적 작업 수준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시대를 기록하고 전승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먼저 5월시 동인분들에게 취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꺼이 응해주셔서 이렇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른 ‘책’과 ‘출판’이 사회 전반적으로 끼치는 영향력은 어떤 것일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출판광고를 개관한 책인데요, 그 책을 만들면서 다시 확인한 것이 책은 그 시대를 기록하고 대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막막한 미래 대신 현실에 몰두하고 있는 사실은 요즘 출간되는 책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기성세대들은 젊은 시절에 거대 담론, 즉 역사나 사회, 민주화 같은 개념에 몰두했습니다. 그건 그 시대가 미래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은 절대 수천 년 전에 탄생한 종이 매체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책이 어떤 형태를 띠건 책은 인류의 모든 문명, 즉 첨단으로부터 전통, 정치로부터 예술, 나노기술, 코로나19에 이르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첨단매체입니다. 그러니 책이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는 정체된 사회일 뿐입니다.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


『광고로 보는 출판의 역사』

 

 

 
 코로나19 이후 준비를 위해 ‘전 국민에게 도서 배포’ 의견을 광고로 내셨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동결시킬 무렵 저는, 어쩌면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문명을 반추하는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바깥출입이 어려워지자 많은 분들이 집 안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나 유튜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편중의 정도가 문제인 것이죠. 온종일 미드를 보거나 먹방을 보는 시민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이 잊고 지내던 ‘책의 참된 가치’를 모두가 누리면 어떨까 싶어서 광고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출판을 위해 정부의 어떤 지원 정책이 필요할까요? 정책과 별개로 출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늘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출판계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출판사가 행하는 업무의 절반이 상업적 활동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정부를 대신해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전통, 종교, 민속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출판계가 하는 그 절반의 일을 정부가 인정하고 후원해야지 ‘무엇을 도와주세요.’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5천만이 넘는 국민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책을 제외하면 최소한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들은 1천만 정도의 인구밖에 되지 않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출판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은 정부에서 대다수의 민족문화 관련 도서 출판을 책임져야 합니다. 스스로 출판을 하건 출판사의 도움을 얻건 말이지요.
출판사들도 출판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온갖 중복 출판으로부터 시작해 미디어에 노출된다고 하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행위는 출판인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출판인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출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독자가 출판을 장사가 아니라 문화라고 여기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출간되지 못한 수많은 고전이 있습니다. 또 출간은 되었지만 시민들 곁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고전들은 더 많고요. 그런 고전들을 널리 알리는 일에 더욱 몰두하고 싶습니다. 덧붙여 책이라고 하는 물리적 존재를 오늘날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더 아름답고 더 실용적이며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출간하는 방법도 모색하고자 합니다. 책을 출간하고 독자를 기다리는 시대에서 책이 독자를 찾아가는 시대로 변한 것은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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