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32  2022.05.

게시물 상세

 

그림책 출판사 ‘윤에디션’의 낯섦과 새로움

 

 

 

최덕규(그림책 작가, 윤에디션 제작부장)

 

2022. 05.


 

그림 그리는 것이 전부였던 필자가 얼떨결에 윤에디션의 제작부장이 되었다. 시작은 김윤정 작가의 『롱롱폴드아웃북』(이하 『롱북』)이었다. 『롱북』은 여러 번 접혀 있는 그림을 손으로 펼치면 생각지도 못한 그림으로 변신을 거듭하게 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5번 접힌 종이 3장으로 구성되었고 접힌 3장의 종이가 병풍에 나란히 붙어있는 듯한 독특한 제작 형식의 그림책이다. 기존의 제본 공장에서는 취급하지 않았기에 아는 편집자를 통해 제작 업체를 소개받았다. 200부를 제작했고, 1권당 2만 원에 작가 이름을 걸고 SNS에 올렸다. 과연 누가 선뜻 사줄까 싶었는데 몇 시간 만에 200부가 전부 소진되었다.

 

고군분투한 첫 독립출판물의 가능성을 맛본 값진 경험이었다. 작가의 품값을 떠나서 배송비를 부담하며 1만 원에 제작해서 2만 원에 파는 것이 과연 수지 타산이 맞는 장사였을까? 제작부장으로서 돌이켜보게 된다. 제작비용을 낮추고 제작의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제작 업체를 알아보았다. 『롱북』은 인쇄소를 거쳐 종이 모양을 따내는 톰슨 업체 그리고 접어주고 풀칠해서 합본하는 수작업 제책 업체와 하드커버 제작 업체, 케이스를 만들어 줄 패키지 업체까지 각각 독립적인 업체를 거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20년에 멕시코에서 먼저 『롱북』이 스페인어판으로 출간되었다. ISBN도 받지 않은 채 독립출간으로 만들었던 『롱북』은 여전히 국내에서는 정식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롱롱폴드아웃북』 작품 이미지


『롱롱폴드아웃북』 작품 이미지

 

김윤정 작가의 대표작인 『엄마의 선물』 또한 본문의 종이 창문에 투명 필름이 붙어있는 형식이다. 종이 인쇄물과 필름 인쇄물이 합쳐져 수작업으로 목형의 창문 종이를 떼어내며 제작된다. 『엄마의 선물』 1,000부를 만들기 위해 제지 업체에 발주를 넣었고, 인쇄소와 톰슨 업체를 거치고 제본 업체를 거쳤다. 그런데 과정을 거칠 때마다 여분의 종이가 1~2백 장씩 들어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1,000부를 넣어서 업체 몇 곳을 거치니 500여 부가 되었다. 결국 제작 원가가 2배 가까이 들어갔다. 1만 원의 책을 3만 원에 팔려고 했는데 2만 원의 제작비가 든 셈이다.

 

『엄마의 선물』을 애타게 기다리던 독자와 서점의 연락이 쇄도했다. 그 당시 품절 상태여서 책이 중고로 7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엄마의 선물』을 구하기 힘든 독자들은 도서관의 책을 반납하지 않고 돈으로 물어주었다고 한다. 서점에 손해를 보며 2만 원에 보내줄 수는 없었다. 이후 서점의 공급률을 맞추기 위해 책 가격을 올려달라는 서점의 요청을 거부하며 3만 원의 책값을 고수하였고, 스토어를 통해 적게 팔더라도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작가의 작품이 전부이기에 적은 종수로 더디고 느리지만 지속 가능한 지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출판사의 규모나 가능성에 한계가 분명해졌다.

 

모든 책은 인쇄와 제본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설비 공정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제작 형식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직접 제작하게 된다. 기존의 제작 설비를 이용하지 못하니 완성도와 제작 일정, 제작비의 부담이 커진다. 자동으로 수월하게 만들어지는 흔한 책이 아니기에 판매와 반품, 위탁이란 제도가 있는 유통 채널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독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기 위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지속적인 판매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책의 특별함을 담은 띠지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띠지에 받는 분의 성함을 넣어주었다. “이 책이 ○○○ 님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되는 그림책이길 바랍니다.” 책을 받아본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스토어에 생생한 리뷰가 쌓이기 시작하였다. 본인을 위해 구매한 책에서 주변에 선물해주기 좋은 책으로 거듭나게 되며 지속적인 판매가 이루어졌다. 책을 직접 판매하면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하게 되니 다음 작품을 해낼 수 있는 힘이 되었고, 스토어 판매를 통해 다양한 독자의 니즈를 직접 접하게 되는 즐거움도 생겼다.

 

재구매가 늘어나며 독자들은 이름 석 자에서 만족하지 않고 원하는 문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출산을 앞둔 딸에게 선물한다며 “우리에게 온 특별한 인연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에게 “○○의 큰 세상을 응원하고 사랑해.”라는 엄마의 마음을 전하는 문구, “함께했던 이십대를 추억하며 ○○에게”처럼 의미심장한 문구까지 접하며 윤에디션의 책이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지 몸소 체험하게 됐다.

 

인상 깊었던 띠지 문구


인상 깊었던 띠지 문구

 

한편 도서관이나 학교에서는 『커다란 손』의 케이스나 띠지 서비스를 번거로워 한다. 같은 그림책이어도 판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독자층도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 작가가 직접 만들고 사인을 해서 판다는 특별함이 선물용으로 자리 잡은 윤에디션만의 매력인 것이다. 물리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많이 팔기보다는 한 권이라도 제대로 팔려는 작가의 고민이 만들어낸 방식이다. 서점이나 유통사를 끼고 거래하는 것은 직거래부터 어음까지 다양한 방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판매로 띠지 서비스도 가능해지고 서점 거래가 없으니 수금부터 관리도 수월해졌다. 출판관계자라면 무모하다고 했을 일이었다.

 

윤에디션은 창작, 디자인, 제작, 판매 모든 과정을 작가가 직접하고 있다. 기존 출판사 중에는 작가가 출판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윤에디션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제작하지 않으며 오롯이 김윤정, 최덕규 작가의 작품만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 사인본에, 띠지에는 책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주고, 책마다 고유한 인지 번호가 부착되어 있다. 인지를 붙이는 것은 작가의 인세를 정산하는 예전 방식이다. 작가가 곧 출판사인데 인지의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판매자의 입장일 뿐 책을 받아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제품마다의 고유번호가 있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수작업에 가까운 판매 방식과 3만 원의 가격을 생각하면, 저렇게 해서 얼마나 팔 수 있을까 싶다. 책의 고급화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다.

 

2018년 8월 윤에디션 스토어를 오픈하면서 정식 출간한 첫 그림책 『빛을 비추면』은, 2018년 하반기에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총판, 서점 판매 없이 출판사 스토어 단독 판매로만 현재까지 15,000부를 훌쩍 넘겼다. 어떻게 알아보고 구매를 하는지 책에 발이 달렸다는 말이 실감났다. 이는 윤에디션 스토어에 2,000개가 넘는 리뷰가 달리며, 서울국제도서전 윤에디션 부스에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린 이유였다. 빠르고 저렴한 자동화 제작 공정과 판매 유통 채널의 다각화로 전국 어디서든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기존 출판시장의 잘 갖춰진 시스템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위한 책의 목적에서도 벗어나 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서길 고집하고 있는 윤에디션. 박리다매의 대량생산 판매방식이 아닌 한계가 분명한 윤에디션만의 가능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빛을 비추면』은 2018년 3월 순천그림책도서관의 ‘우리는 그림책 가족’ 전시와 그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출간 이전에 샘플 도서를 들고 참가한 도서전에서 전 세계 출판관계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으나 선뜻 제작을 맡겠다고 나선 출판사는 없었다. 빛을 비춰야만 하는 번거로움으로 서점에서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새로움을 갈망하는 독자의 반응과는 달리 출판사는 새로움보다는 기존의 제작과 형식에 안주할 뿐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에 필자가 직접 제작을 알아보게 되었다. 책장 뒷면에 빛을 비추면 드러나는 환상적인 그림책 『빛을 비추면』은 그렇게 윤에디션의 이름을 알리며 출간되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빛을 비추면 반짝이는 별이 빛나게 되고 도시의 창들에 환하게 불이 켜진다. 지쳐 돌아가는 아빠의 무거운 발걸음에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 식탁에는 가족의 따뜻한 온기가 집안을 감싼다. 그렇게 빛을 비추는 행위와 의미가 절묘하게 맞물려 우리 삶에 빛이 가지는 의미를 확장해간다. 봄의 따뜻한 빛은 생명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빛은 꿈을 꾸게 만든다. 종이책의 물성을 십분 살린 내용과 형식이 절묘하게 맞물려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빛을 비추면』은 따뜻한 의미에 공감하며 마술사의 쇼를 보는 것 같은 신기함과 즐거운 상상에 독자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선물용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윤에디션 부스에서 『커다란 손』 사인회 진행 모습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윤에디션 부스에서 『커다란 손』 사인회 진행 모습

 

연이어 들려오는 수상 소식으로 작지만 단단한 윤에디션이 되고 있다. 작년 롯데출판문화대상에서 상금 2천만 원의 본상을 수상하였다. 롯데출판문화대상은 국내 출간물 중에서 장인정신과 사회적 의미가 큰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대상 상금 5천만 원의 규모가 큰 공모전으로, 4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올해 『커다란 손』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논픽션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상금은 없지만 국제적 권위가 큰 상으로 해외 출판사의 저작권 수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손』은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 삶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빨이 빠지고 걸음이 힘들어지며 부축해드려야 하고 옷을 매만져드려야 하는 늙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글 없이 묵묵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렇게 전 세계 시장에서 먼저 알아봐주었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수상식에 참석을 했다. 『커다란 손』을 보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프랑스 남성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요,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해주지 못한 채 그와 눈만 마주쳤다. 언어의 한계 속에서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삶을 관통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윤에디션은 낯선 출판사다. 독자 입장에서 인터넷 서점과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하기 어렵다. 검색이 수월치 않은 고객은 윤에디션 스토어를 찾아오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출판계의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는 윤에디션은 평생 10종~20종 이상의 책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산자 우위의 윤에디션은 판매의 채널을 단순화하며 작가의 창작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당장 서점에 넣어서 얻을 수 있는 판매량과 매출을 포기했다. 그 어느 때보다 책이 흔해진 세상에서 작품에 대한 기대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윤에디션만의 고육지책이다. 한편으론 윤에디션의 그림책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후대에 이어질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남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 윤에디션은 작가브랜드를 만드는 매니지먼트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윤에디션은 그렇게 낯선 출판사로 새로움을 즐기고 있다. 인문학적 깊이와 함께 종이의 물성을 살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보이려하고 있다. 책장 뒷면에 빛을 비추면 모습이 드러나는 그림책 『빛을 비추면』, 필름을 넘기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그림책 『엄마의 선물』, 그리고 손 모양의 케이스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커다란 손』까지 독특한 제작과 완성도 높은 내용으로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독립출판계의 샛별 같은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상은 신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경쟁하듯 시간에 쫓기며 바삐 사는 세상이다. 그에 비해 작가는 더디고 느리다. 머뭇거리며 삶을 되새김질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직업적 특성이다. 최신 핸드폰도 2년이면 구형이 되는 세상에서 『빛을 비추면』이 출간된 지 햇수로 5년째인데 이제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작가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낸 숙제를 풀기 위해 삶을 되새김질하며 의미를 찾아 더딘 시간 속을 헤매고 있다. 그런 절실한 마음으로 창작에 매진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큰 힘이 되는 상도 받았다. 새로운 작품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독자의 기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윤에디션이 우뚝 서 있다. 그림책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짧은 시간에 한 권을 볼 수 있다. 전 연령을 유혹하며 선물용으로 자리 잡은 윤에디션만의 그림책에 대한, 다음 작품에 거는 기대가 한껏 높아가고 있다.

최덕규

 

최덕규(그림책 작가, 윤에디션 제작부장)

윤에디션의 제작부장을 맡아 종이책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매력적인 그림책을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로 『커다란 손』이 볼로냐 라가치 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빛을 비추면』으로 제4회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여름이네 병아리부화일기』로 제20회 창비 좋은어린이책 기획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mycat0307@naver.com
https://smartstore.naver.com/yunedition

 

人사이드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