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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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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공간 1]
‘독서 공간’의 미학 - 강릉책문화센터

 

 

 

2020. 10.


 

같은 책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각과 관점이 달라진다. 불편하게 쫓기듯 읽은 책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편안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읽은 책은 더 많이, 가슴 깊이 기억에 남는 법이다. 책 읽는 공간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최근 지자체와 기업체를 중심으로 책 읽는 공간 조성이 각광받고 있다. 올해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해 조성한 강릉책문화센터가 개소 소식을 알렸다. 현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휴관하고 있지만, 더욱 보강된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강릉 지역 도서·출판문화의 비전을 짓다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힐링 도시 강릉에 올해 또 하나의 힐링 공간이 조성되었다.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2019년 책문화센터 구축 사업’에 강릉시가 제1호 책문화센터로 선정된 덕분이다. ‘책문화센터 구축 사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역 거점 책 문화센터를 구축하고, 독서문화의 거점 마련과 지역 출판 및 독서문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한 사업으로, 지자체 1곳을 선정하여 책문화센터로 리모델링 설계 및 시공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독서·출판·도서관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보다 꼼꼼하게 서류, 현장, 종합심사를 통해 사업 이해도와 시설 입지조건, 성과 관리, 활성화 계획 등을 검토하여 책문화센터 구축 지자체를 공모 및 선정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7월 1일, 강릉시민에게 책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서 이용 서비스와 다양한 독서·출판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강릉시청의 바람을 담은 강릉책문화센터가 제1호 책문화센터로 지정되어 강릉시 청사 내 2층에 개소했다. 강릉책문화센터는 주말과 국가공휴일, 명절연휴를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전 연령층이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눈높이의 따끈따끈한 신간 도서들 위주로 비치되어 있다. 도서는 강릉시립도서관에서 발급받은 1개의 회원증으로 강릉책문센터를 포함한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10개 도서관의 도서를 공유(대출)하는 상호대차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도서관 차량이 매일 10개 도서관을 순회하며 신청된 책을 부지런히 싣고 날라 시민들이 원하는 책과 다양한 책을 하루라도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강릉책문화센터도 휴관에 들어갔다. 책문화센터를 방문했다 헛걸음하는 시민들을 위해, 강릉시립도서관에서 도서예약 대출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도서예약을 신청하고 강릉책문화센터나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가면 1:1로 책을 대출할 수 있다. 어떤 날에는 100권에 가까운 책이 예약되기도 하는데, 코로나19도 강릉시민들의 독서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강릉책문화센터의 입구(벽면서가)


강릉책문화센터의 입구(벽면서가)(사진 출처: 강릉책문화센터 제공)

 

 

 

친근함에 매료된 강릉시민들

 

강릉책문화센터의 개관 이후 책이 배경이 되는 공간에서의 다양한 시간과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책문화센터는 오롯이 혼자만의 독서를 위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친구 또는 모임을 만들어 지적 교류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하며,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책과 함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힐링타임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개소된 지 약 2달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릉책문화센터는 ‘친근함’을 컨셉으로 다시 찾고 싶은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히 강릉시민의 도서 인구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2016년에는 매년 독서 진흥에 앞장서는 지자체 한 곳을 선정해 책 읽는 도시로 선포하고 국내 최대 규모의 시민 참여형 독서박람회를 개최하는 ‘2016 대한민국 독서대전’의 개최지로 선정되기도 하며, 독서 인구 증진에 앞장섰다.

 

강릉책문화센터의 첫 번째 친근함은 내 집, 내 방 같은 편안한 인테리어에서 나온다. 책과 함께 놀고, 쉬며 책이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해 이용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책문화센터에 들어서면 내 집 같은 편안함으로 높은 집중력이 발휘되는 북라운지와 책놀이터를 마주한다. 책놀이터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끄는 집 모양의 어린이 독서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도서관을 불편해하는 어린 자녀, 조카와 방문하기에도 좋다. 시청 1층 로비에서 2층 책문화센터 입구로 이어지는 벽면서가는 강릉책문화센터의 시그니처이자 이용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서가 앞쪽 계단에는 방석이 마련되어 있어서 잠시 쉬었다 가기에도 좋지만, 자연스레 책 한 권 들고 앉게 되는 마성의 장소다. 벽면서가의 알록달록한 책들을 배경으로 남기는 인증샷은 강릉책문화센터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두 번째 친근함은 강릉책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도서·출판 프로그램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글을 쓰고 출판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프로그램이 참여 및 진행되기 때문에 남녀노소 모두 친근하게 책문화센터를 찾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강릉시 청사 내에 책문화센터가 들어서며 ‘공공기관은 삭막하다’라는 인식의 변화가 개선되고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건물을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삭막한 공간에서 활기가 띄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강릉책문화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김지은 주무관은 “강릉책문화센터는 꼭 책을 읽지 않고 공간을 둘러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위안이 되는 힘을 가졌다”고 말한다. 인식의 변화는 물론, 김 주무관 스스로가 민원 업무 처리를 좀 더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 좋은 변화를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자체나 기업에서 책 읽는 공간을 별도로 조성하고 있는데, 근로자 개인의 마음 안정과 회사의 업무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격이다.

 

 


북라운지와 책놀이터


북라운지와 책놀이터 (사진 출처: 강릉책문화센터 제공)

 

 

 

한 권의 과정을 담는 공간

 

강릉책문화센터는 책을 읽는 공간뿐만 아니라 출판을 위한 기초 과정을 습득할 수 있는 웹툰강의실과 컴퓨터교육실, 출력·코팅·제본을 통해 책을 만드는 POD실, 녹음실 등을 갖춘 도서·출판복합문화공간이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출판하여 한 권의 책으로 소비자를 만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1인 출판과 독립출판사 등 초기 출판 창업자들이 부담 없이 장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출판창업보육실과 작가레지던스실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을 이용하는 창업자들과 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도서·출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으로는 수강생이 직접 쓴 원고를 바탕으로 디자인 및 출판교육을 수강하고 출판과정까지 직접 참여해 보는 ‘시민출판프로그램’,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3명의 그림을 엽서로 제작하여 관내 도서관, 숙박시설, 카페, 서점 등에 비치하고, 시민 및 관광객들이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는 ‘강릉은 모두 작가다’ 프로그램이 있다. 코로나19로거리두기가 격상됨에 따라 원활한 진행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연말에 출판기념회를 통해 강릉책문화센터 내에 전시하여 많은 사람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공유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출판을 위한 기초 과정을 습득할 수 있는 웹툰 교육, 작은학교 문집 만들기, 그림책 만들기, 오디오북 만들기 등 다양한 독서·출판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강릉책문화센터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잠시 휴관 중이지만,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강릉책문화센터에 꿈과 희망의 웃음이 가득 찰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웹툰강의실(좌), 작가레지던스실(우)


웹툰강의실(좌), 작가레지던스실(우)

 


POD실(좌), 강릉은 모두 작가다 프로그램 엽서(우)


POD실(좌), 강릉은 모두 작가다 프로그램 엽서(우)


(사진 출처: 강릉책문화센터 제공)

 

 

 

강릉책문화센터 추천 도서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달, 김원희) 표지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달, 김원희)

 

부산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김원희 할머니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은 책입니다. 책문화센터에는 이틀이 멀다고 오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손에 쥔 꼬깃꼬깃한 메모지에는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이 빽빽하게 적혀있습니다. 신청한 책이 언제 도착하는지 자주 전화를 주시는데, 이상하게도 귀찮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이러한 모습이 세계 여행은 아니지만 김원희 할머니와 닮아 있습니다. 할머니도 얼마 전에 이 책을 빌려 가시더라고요 ^^
책에서 할머니의 모습은 누구나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저도 어려서는 여행 다니기를 참 좋아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우아하게 여행 다니는 노년의 모습을 꿈꾸던 젊은이였는데 여행은커녕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불혹의 워킹맘이 된 지금 이 책을 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김원희 할머니도 그런 시기를 보냈겠지요?’, ‘나도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김원희 할머니의 마음을 닮는다면 늙어가는 것도 즐겁고 괜찮을 것 같습니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설렘과 긍정적 마인드가 솟아나는 비타민 같은 책입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이병률) 표지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이병률)

 

이병률 시인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 가을 은행 같은 표지와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책문화센터에 들어올 책의 목록을 만들면서 다양한 책을 접해봅니다. 요즘은 심리학이나 자기개발서 같은 책들에 비해 시집의 출판 빈도수가 현저하게 낮습니다. 많이들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더욱 반갑게 다가옵니다. 그의 언어는 마음 한구석 묵혀 두었던 감정을 조용히 꺼내어 어루만져 주는 부드럽고 강한 힘이 있습니다.
위에서 추천한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 버렸지 뭐야〉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위로를 얻게 되는 책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가을날,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 대신 이러한 책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토닥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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