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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6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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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통해 본 한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각성

 

 

 

김성곤(서울대학교 명예교수/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객원교수)

 

2021. 10.


 

『파친코』에 나타난 재일교포의 삶

 

사람이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나는 나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낳아주는 부모이다. 그래서 조국과 부모는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평화로운 강대국에서, 그리고 부유하고 좋은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나면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겠지만, 분쟁과 전쟁에 시달리는 후진국에서, 그리고 가난하고 책임감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자칫 일생을 불우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 두 가지 복을 받지 못한 채, 질곡의 역사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태어나 보니 나라는 이미 일본에게 빼앗긴 상태였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식민지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못난 정치인들과 무능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는, 더 부유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이주해서 사는 것이었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는 바로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 한국인 교포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일본에서의 삶이 결코 순탄할 리가 없다. 오사카로 건너간 주인공 순자의 큰 아들 노아는 명문사학 와세다대학교를 다닌 최고의 엘리트로서, 일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일본인 행세를 하며 일본 여자와 결혼도 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극도의 좌절감 속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순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모세)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일찍부터 파친코 사업에 투신하는데, 이는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로 인해 다른 직장은 갖기도 어렵고, 가진다고 해도 성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만큼은 세계인으로 키워 일본 사회의 차별에서 벗어나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솔로몬을 국제학교에 보내며, 나중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인 컬럼비아대학교에 유학도 보내지만, 솔로몬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서 외국계 은행 일본 지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믿었던 일본인 상급자로부터 이용만 당하고 해고까지 당하자, 크게 실망한 그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친코 사업에 전념한다.

 

노아와 모자수와 솔로몬은 각각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세 가지 유형의 재일교포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노아처럼 현지 사회에 동화되어 현지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유형이다. 사실, 그건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인을 차별하는 사회에서는 현지인으로서 동화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동화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사람은 누구나 좌절하게 되고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된다. 더욱이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어가 모국어인 노아는 일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일본인 행세를 하게 되는데, 이 또한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포기하며 일본에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던 노아는 결국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둘째는, 모자수처럼 현지에 동화되거나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는 유형이다. 이 또한 표면적으로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그렇게 하면 현지 사회에서 괴리되고 소외된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외국 이민자에게 좋은 직장이나 출세의 기회를 주지 않는 나라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모자수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자수는 자기 아들 솔로몬만큼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기를 원하며, 외국인 학교에 보내고 외국 유학도 보낸다.

 

셋째는 솔로몬처럼 아이비리그 학력과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당당하게 살아보려고 하지만, 한국계로서의 이용가치가 다하자 결국 버림받는 유형이다. 그래서 솔로몬 역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다. 사실 솔로몬 같은 유형이 가장 바람직한 이민 2세대나 3세대이겠지만,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고, 일본에서 태어나도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는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솔로몬 역시 좌절할 수밖에 없다.

 

『파친코』가 제시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 일본 사회로의 동화에 실패하고,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지는 않고 즐기기만 하는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된다. 파친코는 야쿠자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도 받고, 한때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을 통한 북한의 돈줄이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일종의 도박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친코 표지

 

한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각성

 

『파친코』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것은 곧 정치가들이 망쳐 놓은 비극적 역사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그걸 딛고 일어서겠다는 등장인물들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자신들을 망쳐 놓은 정치인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국을 지배하고 자신들을 차별한 일본까지도 원망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진취적인 태도도 보여준다. 『파친코』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고, 한 맺힌 복수도 꿈꾸지 않는다. 비록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 장벽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는 20세기 초 제국과 식민지라는 비극적 관계로 얽혀 있다. 조선 말기에 나라를 이끌어가던 우리의 지도자들이 무능하고 세계정세에 어두워서, 일찍부터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앞서가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를 전혀 모른 채, 외국 군함에 대포 몇 발 쏘고 승리감에 취해 쇄국정책을 고집했던 흥선대원군이나, 갑신정변 때 하필이면 부동항을 찾아 남하해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무려 1년 동안이나 숨어 지낸 고종의 아관파천은 구한말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세상물정에 무지했으며, 국권 상실이 어떻게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제정세를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조상들의 어리석음을 과거의 값진 교훈으로 삼아서,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각성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들이 세계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이 잘못하면 국민이 얼마나 고통 받는가를 깨닫고 신중하고 현명하게 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물론 일본도 독일처럼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일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계속 매달려 있기 보다는, 그것을 교훈 삼아서 어두웠던 과거를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두 나라의 어두웠던 역사를 겪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는 아무런 편견이나 거리낌 없이 서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이 든 세대의 과거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도 이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당당한 선진국이 되었는데, 굳이 자꾸만 국제사회에 한국이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지도 숙고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만일 두 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이 인기 관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반일이나 반한 감정을 부추긴다면, 그것 또한 양국의 국익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도 그렇지만, 우리 또한 보수정부나 진보정부 모두 과거사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예컨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오늘날 편만한 일본 내 혐한의식의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 두 나라의 갈등 또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해방 후에 한국에 와서 일본의 첨단기술을 전수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일본의 어느 지식인은,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안타깝게도 일본인들이 그동안 한국에 대해 갖고 있었던 죄의식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동안 한국 편을 들었던 일본의 지한파나 친한파까지도 이제는 한국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라고 개탄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작은 것을 얻는 대신 큰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어 끝없이 다투는 것보다는, 두 나라가 미래에 어떤 일들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일본으로부터 과거에 대한 보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과는 가깝고 중국과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일본과의 사이가 나빠진다면 한국은 본의 아니게 균형 외교에서 벗어나 복잡한 국제관계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도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F. 케네디는 “과거와 현재만 보는 사람은 미래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고, 로버트 플랜트는 “과거는 딛고 일어서는 디딤돌이지, 갈아서 으깨는 맷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과거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거울이자 교훈이지, 복수나 한풀이의 수단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영어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과거는 과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윈스턴 처칠 역시,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파친코』에는 좋은 일본인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모자수의 친구 하루키, 모자수의 직장상사인 고로, 모자수의 여자 친구 에스코 등은 타인종과 타문화에 편견이 없는 좋은 일본인들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일반 일본인을 구분해야만 하고,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일본인과 편견이 없는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워싱턴과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워싱턴의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에게까지 증오심을 표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반미처럼 잘못된 일이 되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4대에 걸친 한 재일교포 가정의 가족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비극적 근대사를 서사시적으로 조감하며, 나라 잃은 민족의 서러움, 재일교포들이 당한 차별, 그리고 이민 후예들이 당면하는 정체성 문제 등을 성찰하고 있는 탁월한 문학작품이다. 『파친코』가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모두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래서 『파친코』를 읽으면서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한국과 일본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파친코』는 과거로 갔다가, 다시 미래로 돌아오는(back to the future) 타임머신과도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독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한일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거기에 대한 답은 분명 두 나라의 충돌이나 혐오, 또는 외교 단절이나 상호 배척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두 나라가 반성과 용서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고 미래를 향해 동반자로 나아가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란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재일교포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성곤

 

김성곤(서울대학교 명예교수/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객원교수)

김성곤은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객원교수이다.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영문학 박사이며, 컬럼비아대학교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7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센터로부터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2018년에는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초빙 석학교수로 강의했고, 같은 해에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로부터 La Orden del Merito Civil 훈장을 수훈했다.
“우호 인문학상”과 “김환태 평론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랑스러운 풀브라이트 동문상”과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탁월한 해외 동문상”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및 문학번역가이며, 이민진의 『파친코』 한국어판 해설을 썼다.
su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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