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47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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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할 생각만 하면 “나 지금 되게 신나!”

 

 

 

이승주(BC 에이전시 수출 전문 에이전트)

 

2023. 09.


 

한국 소설을 향한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관심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 출간되며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윤정은, 북로망스)는 4월에 영국에서 열린 런던도서전에서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에 소개된 이후, 치열한 선인세 경쟁을 통해 영국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에 무려 ‘10만 달러’라는 선인세를 받고 수출됐다. 펭귄랜덤하우스의 대중소설 전문 임프린트 더블데이(Doubleday)를 총괄하고 있는 부사장급 에디터 제인 로손(Jane Lawson)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보니 가머스(Bonnie Garmus)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2022)를 성공적으로 론칭한 에디터로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업마켓 소설(Upmarket Fiction, 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에 위치하면서 두 분야 독자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는 고급 대중소설)을 출간해 왔다. 그가 영미 시장에 소개한 책들 가운데는 신카이 마코토(新海 誠)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2013), 아오야마 미치코(靑山 美智子)의 『도서실에 있어요』(2020) 등이 있다.

 

제인 로손은 런던도서전에서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소개받자마자, 자신이 영미 시장에 소개하는 첫 번째 한국 소설로 이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런던도서전이 끝나자마자 영미권 계약을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과 펭귄랜덤하우스가 얼마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 대단한 열정을 가졌는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파격적인 선인세를 제시해 결국 입찰에 성공했다. 그리고 영미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진출은 물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세계적인 출판 그룹인 펭귄랜덤하우스가 가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영국뿐 아니라 북미 등 다양한 영어권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이 책을 홍보하겠다면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

 

한국 소설의 높아진 위상

 

얼마 전 영국 펭귄랜덤하우스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영미 시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북미 시장의 판매권을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인 다이얼프레스(Dial Press)에 넘기겠다는 소식이었다. 영국 펭귄랜덤하우스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의 미국 판매권을 넘기면서 놀랄 만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영어권 계약만 총 ‘25만 달러’에 육박하는 선인세로 계약이 최종 성사되었으며, 영국 및 유럽, 아시아권에는 더블데이(Doubleday)가,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은 다이얼프레스(Dial Press)가 각 시장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책을 출간하고 홍보할 예정이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영미판 계약 체결에 이어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브라질, 포르투갈, 러시아, 튀르키예 등 다양한 유럽어권과도 계약이 체결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의 저작권을 해외 시장으로 소개하면서 경험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해외 주요 에디터들 사이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주요 한국 작품의 저작권 계약 소식이 공유되고 있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에디터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여러 언어권의 출판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자신이 발굴하거나 저작권 계약을 추진 중인 책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한 작품이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학 작품이나 콘텐츠가 지닌 엄청난 잠재력이나 가치를 선인세 또는 계약금의 금액으로만 따질 수는 없지만, 그동안 한국 작가들이 해외 진출 자체에 의미를 두고 선인세를 받지 않거나 지나치게 낮은 조건으로 계약해 왔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최근 1~2년 사이에는 정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문학은 이제 세계 출판 시장의 주요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와 비슷하게 특정 공간에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는 내용을 담은 힐링 소설인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클레이하우스, 2022),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유영광, 클레이하우스, 2023),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 팩토리나인, 2020), 『책들의 부엌』(김지혜, 팩토리나인, 2022),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나무옆의자, 2021) 등도 영미권을 비롯한 다양한 언어권으로 수출 계약이 완료됐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J. K. 롤링(J. K. Rowling)의 『해리 포터(Harry Potter)』(1997) 시리즈를 출간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 블룸스버리(Bloomsbury) 출판사에서 영미권 계약을 체결해, 올 10월 출간을 앞두고 있다. 블룸스버리는 한국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흔, 2018)의 영미판을 2022년 6월 출간했는데, 영미판은 출간 후 6개월 만에 10만 부 판매를 돌파하고, 영국 〈선데이 타임즈(Sunday Times)〉 베스트셀러 10위에 선정된 바 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블룸스버리 내에서 하반기 최대의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블룸스버리 측은 출간을 준비하면서 〈북셀러(The Bookseller)〉와 같은 영향력 있는 해외 출판 잡지에 적극적으로 출간 소식을 알리는 등, 벌써부터 다양한 홍보를 펼치고 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영미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의 경우도 국내 출간 전부터 해외 출판 관계자의 관심을 주목시킨 흥미로운 수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한국 작가의 데뷔 소설이 국내 시장에 출간되기 전에 이미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은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증명한다.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은 현재 영국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프랑스, 대만, 인도네시아 등과 저작권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여러 언어권에서 계속해서 저작권 계약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책들의 부엌』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책들의 부엌』

 

 

해외 출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

 

한국 소설이 최근 들어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힐링 소설’은 지난 런던도서전에서 주목할 만한 출판 트렌드로 꼽힌 ‘업마켓 소설’에 가장 최적화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업마켓 소설이란 순문학과 대중문학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장르로, 다양한 독자층에 포용력이 있는 고급 대중소설이다. 한 작품 속에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 SF 등이 결합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의 나열도 아니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그래서 마치 독자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 기시감을 주는 이야기가 작품 속에 펼쳐진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상처를 마치 빨래하듯 깨끗하게 빨아 지워준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한국 독자들뿐만 아니라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소설 속 각 인물이 지닌 상처는 현실의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마치 자신의 고민과 상처를 나누는 듯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꿈 백화점에서 꿈을 사고파는 기발한 설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국의 힐링 소설은 상상을 판타지적인 요소로 풀어내는 업마켓 소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힐링’이라는 마음을 울리는 찐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의 힐링 소설이 지닌 ‘치유와 회복’ 그리고 ‘공감’이라는 요소는 팬데믹 시대를 지나온 현대인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이전과는 또 다른 종류의 시련과 아픔, 그리고 거리 두기와 격리를 통한 고독감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어지럽고 힘겨운 세상 속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싶은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최근 한국의 힐링 소설이 세계 출판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이라고 판단한다. 그동안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 문학의 분야가 스릴러류의 장르 소설이었다면 이제는 힐링 소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으며, 더욱더 다양한 한국 문학이 국제적 관심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최근 한국 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해외 편집자들은 “그동안 한국 문학이 영화 〈올드보이〉 또는 〈기생충〉을 떠오르게 하는 장르적 특색이 짙다고 느껴졌던 반면, 새롭게 유행 중인 다채로운 힐링 소설을 통해 또 다른 한국 문학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비단 힐링 소설만 해외 출판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청소년 소설 『아몬드』(초판 창비, 2017)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은 손원평 작가의 장편 소설 『튜브』(창비, 2022)는 일본을 포함해 스페인, 폴란드,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언어권에서 수출 계약이 체결되며 전작의 인기를 이어 나가고 있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9)는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폴란드, 멕시코, 터키, 아랍,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에 저작권이 수출되고, 뒤이어 출간한 장편 소설 『밝은 밤』(문학동네, 2021)은 일본, 중국, 태국, 대만, 터키, 아랍 등지에 소개되었다.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은 일본, 중국, 스페인, 프랑스 등으로 계약된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 해외 여러 에디터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은 이제 전 세계 출판 관계자들에게 ‘가장 주목할 만한 이야기의 보물 창고’로 인식되고 있으며, 분야와 장르를 막론하고 세계 여러 나라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BC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에서 출간된 도서들

BC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에서 출간된 도서들

 

 

지속가능한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지속가능한 저작권 수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한국 문학에 쏟아지는 관심을 단지 유행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많은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외 시장 진출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당장 중요한 것은 ‘양질의 번역’이다. 한국의 소설을 영국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파트너 에이전트는 “영미권 에디터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양질의 영문 샘플 번역과 독자 리포트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조언한다.

 

“샘플 번역은 해당 장르 소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번역가에게 맡겨야 한다. 이야기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소설의 앞부분 10,000자와 결말을 담고 있는 뒷부분 5,000자 정도를 포함하는 것이 좋다. 에디터가 충분히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번역의 질이 너무 중요하다. 번역가의 수상 내역 및 번역 작품 이력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책의 줄거리뿐만 아니라 책의 분위기와 책이 주는 메시지를 잘 파악한 ‘독자 리포트’도 편집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큰 무기가 된다.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독자 리포트는 기획 회의에서 에디터의 관심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영문 소개 자료와 샘플 번역 원고의 양이 늘고 있지만, 사실상 에디터의 도서 검토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료들이 상당수다. 지루한 줄거리 위주의 소개 자료, 정확한 셀링 포인트를 담아내지 못하는 시놉시스, 기계 번역을 통해 작성하여 정확하지 못한 샘플 번역 등, 호감도를 상승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호감도를 반감시키는 자료들이 난무하는 현상에 대한 해외 에이전트의 지적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가오는 10월 18일부터 22일까지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이 열릴 예정이다. 6월부터 쏟아진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미팅 제안으로 인해, 30분 단위 일정표는 이미 빈칸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지난 도서전에서는 저작권 에이전트로서 저작권 수입을 위한 미팅을 하기 위해 여러 부스를 찾아다녔지만, 올해는 한국관 내에 한국 문학 수출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고, 한국 작품에 관심이 있는 해외 주요 출판 관계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어떤 상차림을 내놓을까? 이번에는 어떤 한국 작품이 해외 출판 관계자들의 눈과 귀를 활짝 열게 만들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있다.

 

이승주 BC 에이전시 수출 전문 에이전트

BC 에이전시에서 저작권 수출 전문 에이전트로 활약 중이다. 장르 불문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면 다양한 해외 출판사와 즉각적으로 공유한다. 기계를 수출했던 전 회사에서 책을 수출하는 현 회사로 이직한 후에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조이(Joy)’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만큼 즐겁고 보람차게 한국 책을 해외 여러 나라로 소개하는 중이다. 주요 저작권 중개 작품으로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등이 있다.
lsj85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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