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2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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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재난지원금으로 출판계를 지원하는 방법

 

 

 

김혜연(출판 편집자)

 

2020. 07.


 

 

 

누구를 위하여 알림은 울리나

 

처음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돈이 나한테 딱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부 처리가 된다는 말에 신청하지 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마음이 바뀐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는 것이니 기부보다는 사용해야 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소비’에 사용하라는 말에 솔깃했고, 결국 재난지원금 신청을 했다. 물론 약간의 금액은 기부를 하고.

 

막상 신청 절차가 완료되어 사용 가능하다는 문자를 받으니, 이게 뭐라고 마음 한쪽이 든든해졌다.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할 틈도 없이 알아서 지원금이 착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커피숍, 편의점, 식당, 심지어 술집까지 매우 신기했다. 아, 이걸 그냥 이렇게 써도 되나. 고민이 되던 찰나 트위터에서 재난지원금으로 책을 구매해야겠다는 트윗을 봤다. 야구로 연을 맺어 얼굴을 딱 한 번 본 적 있는 사이로,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는 그는 책 읽는 데 참 열심인 사람이었다. “아, 이걸로 책도 살 수 있구나.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래 결심했어, 내 취향이 아닌 너!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책 구매는 어떻게 보면 업무와 맞물리는 면이 있다.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들고 있지만, 어느 순간 생활인으로서의 나의 독서는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서의 평가나 감상이 우선이 되어버린다. 그럴 땐 책 만드는 편집자가 아닌 책 읽는 독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실제 독자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출판계를 떠난 후배도 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으로는 생활인으로도 직업인으로도 고르지 않을 책을 구매해보았다. 마침 즐겨보던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나온 스릴러 소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란 설정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영문판으로 나왔지만. 나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들 스릴러물은 보지 않는다. 무섭기도 하거니와 감정적 소모가 너무 심한 탓이다. 아이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구매한 까닭은 ‘소설 속 두 주인공의 관계가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관계와 비슷하다’와 같은 드라마 덕후의 감상 덕분이었다. 마침 드라마 블루레이 제작 선입금도 진행되는 상황이었는데, 얼핏 보니 재난지원금으로 이 책도 사고 블루레이도 구매한다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물론 인터넷 서점을 이용했을 테니 실제로 재난지원금으로 구매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려운 걸 재난지원금이 해냈습니다

 

나는 재난지원금 사용처를 검색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용처라면 먼저 지원금이 빠져나가고, 아닌 곳에서는 통장 속 내 돈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별다른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귀찮은 걸 굉장히 싫어하는 나는, 뭔가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걸 피하는 편이다. 그래서 같은 통신사를 10년 넘게 기기만 바꿔가며 이용하고 있다. 이런 나를 두고 ‘호구’라고들 칭하겠지만, 자잘한 수고로움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내게는 우선이다. 심지어 교보문고에서도 책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귀찮아 ‘바로드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니 책 구매에 대해서 말해 무엇 할까. 늘 하던 대로 했다. 재난지원금 덕분에 생활비가 충당되었으니 그만큼 남는 돈을 책 구매로 돌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취지대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네서점을 이용했으면 좋았겠지만, 공돈이 생긴 느낌이 들어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우선적으로 고르다 보니 대형서점이 좀 더 편리했다. 동네서점의 경우는 내가 원하는 책이 없을 때도 많고, 책이 두껍다 보니 들고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사용한 돈이 결국에는 책을 만든 것으로 흘러갈 테니, 언제나 영세사업을 하고 있는 출판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저자에게도. 어디서 책을 사든 그것이 누구에게든 돌아간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니 어디에서든 책이 많이 팔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행히도 SNS상에서 재난지원금으로 책을 구매했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시집을 샀다는 사람, 중고서점에 가서 만화책을 잔뜩 샀다는 사람, 동네서점에 가서 아이 책을 구매했다는 사람. 독립서점을 이용해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맘카페에서는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는 서점이 어디냐고 묻는 글들도 꽤 많이 보였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된 데에는 동네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도 있었는데, 그 어려운 걸 재난지원금이 해낸 느낌이랄까. 지원금 덕분에 비싼 소고기로 가족들과 잔치했다는 사람도 많은데(실제 통계도 외식하고 장 보는 데 많이 썼다고), 이 기회에 책으로 플렉스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예전과는 다른 일상, 예전과는 또 다른 시장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이 있다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 서점 매출이 늘었다고 하는 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에 갈 수 없으니 아무래도 온라인 구매가 많았던 모양이다. 대신 오프라인 서점이 너무나도 썰렁하다. 이런 시국이지만 업무상 또는 개인적 필요에 의해 서점에 종종 가는 편인데, 광화문 교보문고만 해도 예전에 비해 사람이 너무 줄어 매장 안 독서 의자에 자리가 남아돌 정도였다. 비단 서점뿐 아니라 광화문 광장 자체에 사람이 그리 없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다만 장르의 편중화가 심해져 온라인 서점의 매출도 아동서와 재테크서 비중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인터넷 서점 순위만 봐도 그러한 경향이 많이 반영된 듯 보인다. 그나마 최근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다룬 전망서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 안 되는 것보다 낫지 싶어 위안을 삼는다. 어쨌든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니까. 일단 살고 볼 일이다.

 

문제는 온라인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그것을 과연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고전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전체 파이가 얼마나 커졌느냐 하는 점일 텐데, 출판시장 전체적으로는 판매량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몰렸다는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휴관 중인 도서관도 많아서 도서관 구매 분량도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와중에 출판시장을 위협하는 변수가 또 등장했다. 바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OTT 시장이다.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가 필요한 시대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넷플릭스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입자 수가 1500만 명 이상 늘었으며, 한국의 경우 최근 회원 수가 33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하철 안에서도 넷플릭스나 유튜브, 네이버 캐스트를 보는 사람이 허다하다. 친구들뿐 아니라 업계 사람들도 만나면 “넷플릭스에서 그거 하던데 봤어?”라는 게 인사일 정도다. 심지어 하도 넷플릭스를 끼고 살다 보니 책 읽는 게 재미없어져서 고민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출판계에 입문한 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인데, 그게 처음으로 실감되던 때가 스마트폰 출시 이후였다. 나이키의 라이벌이 닌텐도였다던가. 책의 라이벌은 이제 스마트폰이구나 했는데, 이제는 한층 더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난 느낌이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책도 이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밀리의 서재’ 같은 책 구독 서비스도 생기고, ‘윌라’ 같은 오디오북 서비스 제공 플랫폼도 생겼다. 네이버에서도 오디오클립 채널을 통해 오디오북 서비스를 하는 등 오디오북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작년 한 해 오디오북 관련한 투자 문의도 많았다고 한다. 종이책 시장에서는 다소 외면 받았던 장르 소설의 경우는 전자책 바람을 타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전자책으로 인기를 얻은 후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콘텐츠’를 원한다. 그것도 쉽고 재미있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 언젠가 어떤 모임에서 책 소개해주는 유튜브를 본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 따로 책 읽을 시간은 없는데, 마치 내가 읽은 것처럼 필요한 부분만 딱딱 짚어 요약 정리해주니까 그렇게 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분명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있는 듯하다. 다만 매체의 특성상, 그것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영상물처럼 빠르고 직관적이지 않은 면이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일 뿐. 물론 팝콘 무비처럼 기분 전환용이나 시간 때우기용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책은 읽고 생각하고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다못해 소설을 본다고 할지라도 저마다 소설 속 광경을 영화감독처럼 그려볼 테니까 말이다.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그걸 각색한 영상물에 대한 평가가 저마다 갈리는 이유가 각자 상상 속에서 그렸던 영상과는 아마 매우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세상, 일단 지르고 봅시다

 

그런 면에서 재난지원금을 리디북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많은 것에 반가웠다. 주변에 (편집자가 아닌) 일반 리디북스 가입자가 많은 편인데, 다들 사용이 되는지 알아본 모양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느끼는 법인지, 책을 보는 사람들은 확실히 책을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안 된다는 말에 실망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은 만큼 책값으로 대치한다고 하면 손해 본 느낌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니 책을 사는 데 있어서 지원금 사용처를 알아보는 게 귀찮아서, 동네서점에 가는 게 귀찮아서,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몰라서 등의 이유로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서관이 휴관 중이라서 책을 구매했다는 웃픈 사연도 있는 마당에.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 선생이 최근 독서론에 관한 책을 내셨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어차피 사두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읽는다.
요즘엔 사두지 않으면 서점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미 전자책으로 다섯 번이나 본 중국 무협로맨스 소설도 구매했다. 전자책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내가 사두면 종이책은 남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죽어도 책은 남는다고 했는데, 구매한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어도 내가 산 그 책은 남는다. 이럴 때는 새삼 ‘종이책’의 위력을 깨닫는다. 아직 종이책을 구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 집값이 떨어지는 게 제일일지 모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집 인테리어를 망치는 일등 주범은 공교롭게도 책이다. 그걸 그나마 상쇄시켜주는 게 넓은 집이기에, 책 읽는 사람은 넓은 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책을 사는 것은 부동산을 사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진짜 집을 사기란 좀 힘들겠지만, 그렇게 책으로나마 우리는 마음의 집을 조금씩 넓혀간다.
책을 사는 것이든 부동산을 사는 것이든,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오디오북이든, 돈이 생겼다면 중요한 건 시간이나 거리가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세상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돈 생겼으니 책이나 한번 질러볼까?” 하는 마음이면 어떨까. 그 마음이 실행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이익이 돌아갈 것이고, 그 돌아간 몫으로 누군가는 생활을 이어가며, 또 다른 책이 세상에 나올 것은 분명한 이치니까 말이다.

김혜연(출판 편집자)

인플루엔셜 출판사업본부 편집1팀 팀장. 책이 좋아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편집자가 되었다. 늘어만 가는 책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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