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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6  202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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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지와인 김보경 대표
가장 예쁜 호박을 만드는 재주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3. 08.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 본고에서 ‘1인 출판사’는 대표 포함 5인 미만의 출판사를 말함.

 

업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에 출판 동료 이야기가 묻어 나온다. 그럴 때 자주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지와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보경 대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인플루엔셜 출판본부장을 거쳤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 일했겠는가.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공통되게 느낀 바가 있었다. 모두가 그의 능력을 ‘리스펙’했고, 동료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으며, 그에게 감사해했다. 그때마다 난 생각했다. ‘역시 사람이 느끼는 건 다 비슷하구나.’ 함께 일한 적은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나도 그에게 청탁받아 원고 한 꼭지를 쓴 적이 있다. 그때 초고를 검토하고 그가 피드백을 해줬는데, 그게 얼마나 적절했던지 초고를 다 뜯어고쳤던 기억이 난다. 에디터에게도 에디터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래서 그와의 인터뷰가 더 기대되었다. 그는 어떻게 일해 왔고, 어떤 마음으로 출판하고 있을까.

 

지와인 김보경 대표

 

 

 

올해 출판 경력이 몇 년 되셨죠?

 

29살에 출판을 시작했습니다.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었어요. 원래 출판사는 안 가려고 했어요. 출판사에 계신 분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도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못 하면 너무 속상하잖아요. 제가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 IMF가 터졌어요. 취직할 데도 없었고, 대학에서 너무 배운 게 없는 것 같아서 대학원에 갔어요. 연세대학교 비교문학과 대학원은 협동과정이라 보통 다른 데보다 한 학기 정도가 더 길어요. 또 제가 좀 게을러서 대학원을 오래 다녔습니다. 원래는 언론사에 가고 싶어 했죠. 기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원 다니면서 프리랜서 작가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지금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황해문화〉가 있듯, 그때는 〈당대비평〉이라는 계간지가 있었어요. 연구자들의 글이 딱딱한 편인데, 〈당대비평〉은 그걸 하나하나 다듬어서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글로 내보내는, 편집력이 강한 계간지였어요. 거기에서 몇 번 리라이팅(Re-Writing)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때 저를 좋게 봐주셨던 거 같아요. 〈당대비평〉이 삼인출판사에서 생각의나무로 옮겨가게 됐는데, 그때 전담 에디터를 뽑았거든요. 거기서 제안을 받아 학술계간지 편집위원으로 출판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단행본 출판으로는 어떻게 넘어오게 되셨나요?

 

당시 생각의나무는 김훈의 『칼의 노래』(2001), 김하인의 『국화꽃향기』(2000) 같은 베스트셀러가 많이 나오는 출판사였고, 출간 종수도 많았어요. 계간지만 할 수 없고, 생각의나무에서 나오는 단행본도 함께 해야 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그게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계간지 외에 단행본도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잘 몰라서 실수도 엄청 많이 했죠. 나이만 많고 편집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수 없이 그냥 혼자 다 했어요.

 

그렇게 2년 반 정도를 했는데, 〈당대비평〉이 폐간되었어요. 〈당대비평〉은 굉장히 좋은 잡지였습니다. 〈창작과 비평〉, 〈황해문화〉 등 기라성 같은 계간지가 많았지만, 그 못지않게 열성 독자들도 많고, 서점에서 판매량도 많았어요. 그게 자부심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정기구독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게다가 출판사가 어려워지니 맨날 원고료, 외주비가 밀렸어요. 그걸 보면서 좋은 물건인데 안 팔리고 결국 문을 닫게 되는 건 제가 파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이 일을 계속할 거라면 출판 산업이 뭔지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일해야겠다고. 그때 마침 웅진씽크빅이 출판 부문에서 문학팀을 만드는데 오겠냐고 해서 가게 되었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가 아니라 문학 분야로 간 게 좀 의외네요.

 

당시 주변 분들이 다들 그런 이야기를 하셨죠. 〈당대비평〉을 만들면서 제가 만난 저자는 주로 서동진, 김두식, 이상길, 박노자 같은 젊은 필진들이었어요. 그분들과의 네트워크 말고는 다른 단행본 분야의 저자는 거의 알지 못했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오길 바라는 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웅진으로 간다고 하니까 출판계 선배들이 조금 섭섭해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웅진은 단행본 출판사라기보다는 학습지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특별히 개성이 강한 브랜드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저는 무색무취한 출판사에 가서 산업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웅진은 오너의 개성이 강한 회사가 아니잖아요. 오너의 철학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어요.

 

 

 

웅진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학교에서 국문학과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니 평소 해외 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일본 문학 시리즈나 중국 당대문학 시리즈도 기획하고, 국내 문학 작가도 많이 만나러 다녔어요. 이사카 코타로(伊坂幸太郎)라는 작가를 널리 알린 책이 바로 『사신 치바』(2006)인데, 그걸 기획하고 만들어서 회사 사람들 모두와 함께 열심히 밀었습니다. 또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문학 덕후들에게 유명한 작가 옌롄커(阎连科)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8) 라인업 기획도 했죠.

 

제가 웅진에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 웅진이 대대적으로 단행본 사업을 키우면서 임프린트 시스템이 도입되었어요. 많은 에디터가 인문, 논픽션, 실용 등 각각 브랜드를 가지고 들어왔죠. 그때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가 따로 생겨났고, 장기적으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문학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인문교양팀으로 옮겼습니다. 현재 어크로스 김형보 대표가 당시 주간으로 계신 팀이었어요. 그때 교양서 만드는 일을 ‘빡세게’ 배웠죠.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시절 김보경 대표의 모습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시절 김보경 대표의 모습

 

 

 

보통은 한 분야로 쭉 하다가 성과를 내서 대표가 되는데, 여러 분야 책을 내다가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자리까지 올라간 거네요.

 

네, 아마 제가 웅진에서 가장 여러 분야의 팀을 거친 편집자일 거예요. 웅진에서의 편집자 시절은 배울 게 많았습니다. ‘저 사람만큼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좋은 에디터들이 정말 많았어요. 당시 제가 상사로 모셨던 이수미 본부장님, 이영미 주간님부터가 훌륭한 에디터이셨고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경험이 성장할 때를 함께하는 거잖아요. 웅진 단행본본부의 가장 좋은 시절을 제가 경험한 거죠.

 

30대 중반이었고, 어느 정도 결정권은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완성되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조직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참고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회사 인트라넷만 들어가도 정보의 바다였죠. 지금은 길벗에 계시는 김민기 상무님한테 기획에 관해 배웠어요. ‘기획하는 에디터’가 뭔지 가르쳐주는 멘토를 많이 만나 어리바리한 애가 그나마 밥벌이를 할 수 있었죠. (웃음)

 

그렇게 웅진지식하우스 대표가 됐을 때 굉장히 감사했어요. 저는 무명 저자를 베스트셀러 저자로 만드는 게 진짜 출판의 묘미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성공을 해내는 출판사였어요. 탄탄하게 구간을 쌓아가는 브랜드였죠. 그런 브랜드를 총괄하면서 후배들과 함께 선배들이 만들어왔던 브랜드를 또다시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인플루엔셜도 어찌 보면 웅진처럼 처음 시작하는 단계부터 함께 하신 거죠?

 

웅진지식하우스 대표가 되면서 제가 아는 경험치가 적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이 브랜드를 더 키워야 하는데, 나는 의외로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어요. 웅진은 모든 게 시스템으로 갖춰져 있잖아요. 물론 임프린트 대표는 경영을 책임지니까 굉장히 무섭고 살 떨리거든요. 수익이 안 나면 바로 팀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잠을 거의 못 자고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전체가 구조조정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잖아요.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듭니다. 그때 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습니다.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다 경험치 자체가 너무 낮아지지 않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더 험난한 시장에 나가서 바닥부터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인플루엔셜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습니다. 당시 인플루엔셜은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郎)·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 2014)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급성장하고 있었는데, 출판 시스템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구간도 기획물도 없었어요. 그래서 도리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다시 출판본부를 만들어가는 일을 했습니다.

 

지와인 로고와 띠지 이미지

지와인 로고와 띠지 이미지

 

 

 

인플루엔셜을 나와 지와인을 창업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인플루엔셜은 기존에 없던 출판 기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곳이에요. 회사의 출발이 강연 에이전시이기도 하고, 출판에 이어 ‘윌라’라는 플랫폼 사업도 운영합니다. 그러니까 서비스업, 제조업, 플랫폼 사업이 함께 있는 기업 모델을 만든 거예요. 윌라 사업의 시작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죠. 같이 성장하는 기쁨이 컸고, 좋은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출판만 맡는 게 아니라 콘텐츠 사업 전체를 바라보는 위치로 자꾸 이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출판에서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어요. 전 오래 일하고 싶은데, 뿌리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창업했습니다. 사실 저는 출판이든 뭐든 단 한 번도 제가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럴 리가요! 직접 진행하시는 유튜브 채널 “김보경의 책 읽을 결심”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책에 관해 누구보다 흥미롭게 이야기하시고, 진행도 매끄럽게 잘하셔서 말이죠. 처음에는 지와인 출판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시작하신 줄 알았는데, 업로드된 영상들을 보니 정말 순수하게 시청자가 ‘책 읽을 결심’을 하도록 독려하시더라고요. (웃음)

 

출판 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콘텐츠는 사람에게서 나오잖아요. 사람과 말과 글이 점점 가까워지고 직접 독자들과 소통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데, 제가 독자들과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와인을 알려보려고, 유명 유튜버가 돼보려고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게’ 노력해보려고 시작한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읽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보거든요. 대중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유튜브 콘텐츠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좀 무거운 사람이니까 그런 유튜브는 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만화책 이야기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라서요. 버벅거리긴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게 기쁘더라고요. 이런 기쁨이 있으면 책도 계속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유튜브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정비 중인데 잘해봐야죠.

 

유튜브 채널 “김보경의 책 읽을 결심” 캡처 이미지

유튜브 채널 “김보경의 책 읽을 결심” 캡처 이미지

 

 

 

지와인을 운영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어떤 일이든 정보의 양이 줄면 안 되고, 특히 출판사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중요해요. 제가 워낙 누군가를 관찰하는 걸 좋아하니까 혼자 출판사를 운영해도 사람에 대한 정보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 못 했는데 오산이었죠. 온라인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을 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옆에서 직접 보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 정보의 양이 확 줄어드는 게 어려움이었어요.

 

한편 작은 출판사가 처음 성장할 때는 발행종수가 많아야 해요. 그런데 제가 웅진에 있으면서 발행종수를 늘렸다가 단행본 사업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걸 봐서 두려움이 있었어요. 특히 웅진지식하우스에서 3,000부를 못 파는 책을 만들까 봐 신경을 많이 쓰던 버릇이 있어요. 그게 저의 한계이자 제가 넘어야 할 허들이기도 하죠. 예전에는 몇 십만 부짜리 책을 만들기보다는 3,000부 미만으로 판매된 책이 하나도 없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창업 초기에 너무 보수적으로 책 발행을 꺼리고 안전지향적으로 운영했죠. 내놓는 게 없으면 얻는 게 없잖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지와인 운영 초기의 패착이었던 거 같아요.

 

아까 유튜브를 하게 된 계기와도 연결되는데요. 저는 생각보다 부끄러움도 잘 타서 저를 드러내는 일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김보경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 습관을 좀 버려야 되겠다고 요즘 생각해요.

 

 

 

대표님 개인 SNS에 정작 본인이 만든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서 의아하긴 했어요.

 

출판 자체가 여러 사람의 협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제가 방송이나 잡지로 일을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이 책은 내가 만든 거야’라는 생각이 덜해요.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취재작가로도 일했었는데, 만들 때 보면 수많은 사람이 몇백 분을 찍어서 몇 분짜리 콘텐츠를 만들잖아요.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 한 사람의 재능만 들어간 게 아니라는 거죠. 저는 좋은 편집자는 개인기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관찰자로서 서로를 잘 연결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결국 저자가 중요합니다. 편집자로서 자부심은 높지만, 좋은 저자가 없으면 결국 출판이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와인 발행인으로서, 혹은 20년 차 기획편집자로서, 책을 만들면서 지키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원고를 많이 손보는 편인데, 그래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저자 스스로 원고를 고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욕심이 나도 저자의 개성까지 무너뜨리는 편집을 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렇게 하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좋은 저자를 계속 못 만들죠. 서툴러도 각자의 개성이 독자를 끕니다. 개성이 없는 콘텐츠에 사람들은 질려요. 교양서는 특히나 평평한 책인데, 모든 저자가 똑같은 문장에 비슷한 얘기만 하면 사람들이 계속 책을 읽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욕심이 난다고 해서 내 책에 맞지 않는 카피를 쓰거나, 내 저자의 개성까지 무너뜨리는 편집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개성을 잃지 않게 고치기 위해 고민을 더 많이 해야겠군요. 그 미묘한 선을 잘 지키며 편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송작가나 구성작가가 하는 일도 매우 의미 있지만 그 일을 ‘에디팅(editing)’이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에디팅은 어쨌든 가치를 발굴하는 일이거든요. 고유성이 있어야죠. 그 고유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저자 인터뷰를 많이 하고 저자를 설득하는 과정도 많이 거쳐요. 자기가 뭘 잘하는지 모르는 저자도 많으니까요.

 

지와인의 대표 도서 『K 배터리 레볼루션』(박순혁, 2023)

지와인의 대표 도서 『K 배터리 레볼루션』(박순혁, 2023)

 

 

 

출판 편집자로서 만든 책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요?

 

제가 에디터로 성장하면서 잘해낸 숙제 같은 책이 기억에 남아요. 그중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09)를 꼽을 수 있겠네요. 워낙 유명한 저자의 책이니 사실 어떻게 만들어도 많이 나갈 거라고 예상하지만, 이게 독서기잖아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생각의길, 2015),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돌베개, 2021) 같은 원고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만들면 소품이 아니라 오래 사랑받는 책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소개된 책들이 다 고전이고 절판된 책들이잖아요. 기존의 유시민 책과 다르게, 유시민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었으면 이렇게 못 만들었을 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요.

 

정도언 교수님의 『프로이트의 의자』(지와인, 2023)도 그런 책입니다. 정도언은 무명 저자였고, 그때 주변에서 ‘김혜남 선생님 책’처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김혜남의 책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 에세이 독자들이 『프로이트 의자』를 좋아할 리 없거든요. 호박은 가장 호박다울 때 예쁜 거지, 호박에 줄을 그어서 수박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가장 예쁜 호박을 어떻게 만들지 에디터는 많이 생각해야죠.

 

두 책 모두 어떤 모양이 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원고였습니다. 제가 만들지 않았어도 잘 나갔겠지만 내 방식으로 만들어서 완전히 달라졌다는 자부심이 있죠. 에디팅이 뭔지 스스로 교재가 되는 책이에요.

 

『청춘의 독서』, 『프로이트의 의자』

『청춘의 독서』, 『프로이트의 의자』

 

 

 

지와인에서 책을 만들 때, 독자가 이 저자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독자에게 이 책이 유의미한가를 중요하게 보시는군요.

 

‘지식(知)과 사람(人)을 가깝게’라는 지와인의 신조처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더 가깝게, 그 사람이 그 지식을 얻었을 때 더 기쁘게 해야 하는 일이 에디터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터에게는 좋은 게 왜 좋은지 아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능력만 있으면 실패해도 계속 도전할 수 있어요. 내가 만든 책이든, 남이 만든 책이든, 왜 이 책을 독자들이 좋아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면 언제나 새로운 에디팅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대표님의 ‘좋은 걸 알아보는 능력’은 비단 콘텐츠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적용되는 거 같아요. 함께 일하셨던 동료들이 한결같이 대표님을 믿고 지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사실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비결이 따로 있으신가요?

 

저는 사람마다 각자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장점들이 빛을 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자리를 찾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독자로서는 학술서를 좋아하지만, 만드는 재주는 또 딴 데 있더라고요. 아마 제가 학술지 편집자를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잘하는 일은 좀 다른데, 그걸 찾아내고 가장 좋은 위치에 놓아주면 스스로 알아서 노력해요. 그런데 보통 조직에서는 원하는 틀이 있고, 거기에 사람을 자꾸 맞추려고 해요. 기회도 줘보지 않고,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죠. 그런데 조직이 수많은 면접을 통해서 일단 그 사람을 뽑았잖아요. 뭔가 특별한 게 있어서 뽑았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도록 모든 조직이, 특히 상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출판업에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요. 출판이 전도유망한 직종이라서 기라성 같은 능력자가 오는 데가 아니잖아요. 들어온 사람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하잖아요. 우리 미래를 위해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하고요.

 

그리고 자존감이 낮은 에디터가 어떻게 저자를 이끌고 편집을 하겠어요? 서로 그 자존감을 키워주고 동기를 잘 부여해줘야죠. 제가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진짜 칭찬’할 곳을 찾는 재주는 있더라고요. 그리고 누구나 다 하는 쉬운 칭찬은 안 하려고 했어요. 베스트셀러가 나왔다고 해서 누구 하나에게만 잘했다고 쉬운 칭찬을 하면 쓸모없는 경쟁심이 생겨요. 베스트셀러의 탄생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결합되어 있잖아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각자가 기여한 바를 잘 발견해주어야 하고, 또 ‘운’은 그냥 운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에 출근해서 8시간 가까이 일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어딘가에 투여하고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그 사람의 인생을 함께 의미 있게 만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했어요. 다만 제가 일을 못하거나 안 하는 거는, 절대 눈 뜨고 못 봐준다는 건 함께 일한 친구들은 다 알죠. (웃음)

 

 

 

그렇다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대표님의 장점, ‘에디터 김보경이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게 지와인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는데요.

 

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게 있긴 해요. “김보경은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드는 것을 잘한다”라고. 쉬운 콘텐츠를 잘 만든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실 그런 능력이 없어서 애를 먹어요. 다만 조사 몇 개 고쳤을 뿐인데 어려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거나, 자기는 잘 모르는 분야의 내용도 덤벼들어 쉽게 만들어 버린다고 해요. 예를 들어 『심미안 수업』(윤광준, 2018)은 지와인의 첫 책인데요. ‘미적 감각’을 책으로 키우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쉽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 책은 제목부터 먼저 생각했고 그 제목을 떠올렸을 때 이미 목차도 다 나와 있었고 윤광준 선생님이 쓰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민형 교수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인플루엔셜, 2018)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도 수학이 사람들에게 상식 수준에서 누구나 읽을 만한 분야로 열릴 거니 수학 교양서를 만들고 싶었죠. 그런데 그 방향이 “어려운 수학을 쉽게 알려줄게요”는 아니었어요. 정수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인간의 어떤 사고를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김민형 교수님이 한국에 와서 만났고, 녹취해서 만들었어요. 『심미안 수업』, 『수학이 필요한 순간』 등은 다 인터뷰로 만든 책들이에요. 전문적인 지식이지만 곧 보편화될 지식을 잘 설명하는 저자가 있고, 그걸 끄집어내고 싶은 에디터가 만나서 함께 하는 거예요. 윤광준 선생님은 맨날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시는 분인데요. 예술이 엘리트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만하게 대하는 시대가 코앞에 와 있으니, 그걸 좀 더 빨리 당겨주고 싶은 마음이 저자한테 있고 저한테도 있어서 함께 만든 거죠.

 

『심미안 수업』, 『수학이 필요한 순간』

『심미안 수업』, 『수학이 필요한 순간』

 

 

 

대표님이 만든 책들을 보면 특히 제목과 부제를 잘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군요.

 

아,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다행이네요. 한겨레교육에서 ‘제목 짓기’라는 수업을 했었습니다. 이번에 그걸 온라인 강의로도 제작해서 곧 오픈한다고 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웃음)

 

 

 

그렇다면 대표님이 보시기에 기존의 전문지식이 상식, 즉 교양이 되는 방향으로 교양서 시장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변할 거라고 보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있죠. 기본적인 것을 계속 잘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철학, 역사 등 항상 반복되는 기존의 교양을 새롭게 만드는 방향이 있고, 또 하나는 교양의 영역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 교양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발굴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한테는 나도 이 정도는 알고 싶다는 욕망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다 있어요. 그걸 유튜브와 다르게 나무위키와 다르게, 더 깊은 만족감을 어떻게 줄 것인가 고민하면 되겠죠.

 

 

 

교양서 만들기가 훨씬 더 어려운 시대가 된 거네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민주화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흐름이 한때 교양서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정보의 민주화, 대중화가 아니라 어떤 정서적 만족감, 신뢰감, 연대감 이런 게 중요하죠. 내가 달라진다는 고양감, 꿈, 동기부여, 공유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걸 각자의 에디팅으로 해내는 거죠. 대중서라고 해도 100만 명에게 읽히겠다는 것보다는,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서로 묶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니까요.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교양서 공식이 예전과 달라지겠군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과거에는 베스트셀러든 스테디셀러든 평준화된 독자들을 대상으로 평평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열광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 정보가 너무 많아져서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판단하기 힘들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먼저 열광하는 발화점을 강하게 만드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어요. 예전에는 발화점을 만드는 일보다는 이걸 어떻게 뿌리느냐에 더 많이 신경 썼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발화점을 계속 두들겨서 어떻게 강렬하게 타오르게 할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하더라고요.

 

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이렇게 된 지 꽤 됐어요. 교양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예전에는 1~10위 책들이 다들 교차해서 ‘이런 책들이 유행이구나’ 싶었는데, 이제는 ‘도대체 이게 1위부터 10위에 같이 있을 수 있을 만한 책인가’ 싶잖아요.

 

 

 

작은 출판사들이 하기 어려운 방식일까요?

 

출판사의 크기는 상관없다고 봅니다. 요즈음 유튜버 책만 팔린다고들 하잖아요. 신호를 주고 강력하게 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기지가 지금 유튜브라서 그런 거지, 옛날에는 파워블로거 책이 팔렸듯이 지금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책이 팔리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미 검증했고, 살 준비가 되어 있고,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았잖아요. 모아놓은 기지가 있는 것들이 빨리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어느 시대에나 공식적인 성공 방식이었는데, 그게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된 거죠. 그 방식을 잘하는 데 출판사의 크기는 변수가 아니라고 봐요.

 

김보경 대표의 일하는 모습

김보경 대표의 일하는 모습

 

 

 

마지막 질문입니다. 10년 뒤 지와인, 혹은 김보경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지와인을 계속 운영하고 있긴 할 텐데, 어떤 모습일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예상이 안 돼서 좋아요. 뭔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더 재밌는 거 같고요. 앞으로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보려고요. 그래서 에디터도 뽑고 마케터도 뽑을 예정인데, 오면 실망하겠지만 허명(虛名)이라도 확인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많이 지원해주세요. (웃음)

 

 

 

이야기를 마치고 그에게 혹시 인터뷰 관련하여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을 듣고 나는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인터뷰는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 그는 자기 이야기가 독자와 가장 가깝게 닿을 수 있는지, 지(知)와 인(人)을 여기서조차 그려보는 것이었다. 그가 숱한 저자를 교양서 저자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독자가 저자에게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끌어내는 에디터였기에 가능했구나, 새삼 다시 깨달았다. 호박을 무조건 수박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가장 예쁜 호박으로 만드는 그의 재주가, 이토록 탐났다.

 

 

김보경 대표
20년 차 에디터로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인플루엔셜 출판본부장을 거쳐 현재 지와인 출판사 대표를 하고 있다.
kyrie1975@naver.com, books@jiwain.co.kr
https://www.facebook.com/bogyoung.kim.98
유튜브 “김보경의 책 읽을 결심”: https://www.youtube.com/@decisiontoread

 

김세나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다정하게.
booksseny@gmail.com
https://cafe.naver.com/publilancer
https://www.facebook.com/publilancer
https://www.instagram.com/publil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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