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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2  202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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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천그루숲 백광옥 대표,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그곳에 출판사는 없었다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3. 04.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 본고에서 ‘1인 출판사’는 대표 포함 5인 미만의 출판사를 말함.

 

오래전부터 SNS로 몰래 ‘눈팅’해오던 곳이 있었다. 교육회사에서 출판 브랜드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강사의 책을 내고, 심지어 또 ‘왜 이렇게 재미나게 출판을 하는 거야’ 싶었던 그곳! 정체가 궁금했던 천그루숲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 상수역 근처의 어느 골목, 그런데 출판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주소는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도대체 어디지? 두리번거리다가 1층이 여기밖에 없으니, 똑똑, 일단 두드려봤다. 혹시 여기가 천그루숲 맞나요?

 

천그루숲 백광옥 대표

천그루숲 백광옥 대표

 

 

 

2016년에 창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백광옥 대표님은 천그루숲 창업 이전에도 출판 일을 하셨나요?

 

백광옥  네, 1994년 5월에 ‘새로운제안’이라는 출판사를 4명이 함께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에 퇴사하면서 고민되더라고요. 이제 나이도 들고, 출판을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3년 정도 했으면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나 싶었죠. 그런데 당시 몇몇 저자들이 그러더라고요. “출판사가 아니라 당신을 보고 계약을 한 거다, 그러니 이후 책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으니 이게 또 운명인가 해서 8월부터 다시 1인 출판을 본격적으로 한 거예요.

 

 

 

이전 출판사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백광옥  저는 기획자이자 편집자로 출판 일을 시작했어요. 전공은 회계학인데, 좀 특이하죠? 대표가 되면서 관리 업무를 주로 했지만, 그러면서도 1년에 2~3종 정도는 계속 편집했던 거 같아요.

 

 

 

천그루숲 창업 초창기부터 따님인 백지수 팀장님이 합류하신 건가요?

 

백광옥  아니요. 출판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가기에 약간 암울한 요소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자신 없기도 했고요. 다만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기획이나 편집, 책들이 진짜 내 힘으로 됐는지 조직의 힘으로 됐는지 한번 검증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1인 출판을 시작했던 거죠. 그때 백 팀장은 학생이었어요. 1인 출판을 하다 보면 책 만드는 것까지는 어떻게 하겠는데, 마케팅이나 홍보는 되게 어렵잖아요. 서점 영업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한데, 홍보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특히 SNS 마케팅이 중요한데, 전 직장에서는 대부분 다른 친구들이 해줬던 거라 저한테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SNS 교육받으러 다니고 그랬죠. 그렇게 배워서 막상 SNS를 할 줄은 알게 되었는데 디자인이 안 되잖아요. 한 번 올렸는데 백 팀장이 그걸 보고 ‘안 되겠다. 좀 도와줘야겠다’ 해서 아르바이트로 디자인을 도왔어요.

 

그러다가 저희 책이 한 10~15종 정도 나왔을 무렵, 2년쯤 되었을 때 제안했죠. 마침 백 팀장이 졸업할 시점이어서 ‘내가 해보니 이 일이 진짜 괜찮다. 저자들과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겠다’ 싶어서 이야기했어요. “아빠랑 같이 한번 해볼래? 아빠가 잘 만들 테니 네가 한번 열심히 홍보해봐” 그랬더니 의외로 쉽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천그루숲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천그루숲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대학 졸업 시점에 바로 합류한 거네요. 백 팀장님은 현재 기획도 함께 하시잖아요?

 

백지수  대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 외 시간은 대부분 아버지 회사에서 보냈죠. 원래는 마케팅만 생각하고 아버지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아무래도 출판을 좀 더 젊고 감각 있게 해야겠다 싶었고, 그게 비단 마케팅뿐만 아니라 기획 영역으로도 확장된 거예요. 젊은 저자들을 섭외하거나 시의성 있으면서 젊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기획하면 홍보까지 더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해서 기획 일을 시작했고, 2년 정도 된 거 같아요. 그렇게 현재는 6년 차가 되었네요.

 

 

 

가족이 함께 일하면 좋은 점, 또 불편한 점도 있을 거 같아요.

 

백지수  일단 저희는 역할 분담이 굉장히 선명하게 돼 있어요. 대표님은 책을 만드시는 역할이고, 저는 기획해서 목차까지 정리하고, 그 책을 잘 파는 역할을 하죠. 특히 대표님은 본인 경력을 살려 전문성을 갖춘 직무이고, 저는 젊은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는 직무라서, 둘의 화합이 좋아요. 또 저는 이게 제 회사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래도 다른 일반 직장인보다는 좀 더 열심히 하게 되죠. 대표님이 쌓은 저자들과의 신뢰가 저한테까지 오는 부분도 꽤 큰 장점이라고 봐요. 참고로 저희는 저자들과의 관계나 신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출판사예요.

 

한편으로는 꼭 가족이어서라기보다 업무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도 있죠. MZ세대와 영 포티(Young Forty)세대 간 차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대인데, 대표님은 오래 이 일을 하셨으니 사람과의 관계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죠.

 

백광옥  당연히 직원들이 대표 눈치를 많이 보겠지만, 의외로 대표도 직원들 눈치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백 팀장과는 부녀지간이니 그런 부분은 편해요. 또 제 경력이 꽤 되지만 그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디자인을 보는 눈이 좀 올드(old)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백 팀장이 젊은 감각으로 채워주고 허심탄회하게 의견도 나누니까, 저자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백 팀장이 말한 세대 간 간극은 저도 많이 느껴요.

 

 

 

가족이 함께 사업체를 운영한다고 하면 어떤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아무런 준비도, 역량도 없이 그저 가족이라서 함께한다면 ‘갸우뚱’ 하지만, 천그루숲처럼 출판에 뜻이 있고 재능 있는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거라면, 전 긍정적으로 봐요.

 

백광옥  보통 출판사 대표들이 실무를 하는 경우는 많이 없잖아요. 위에서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희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서로의 업무 영역이 명확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 경영의 단점이 나오긴 어려운 구조죠. 다만 늘 긴장감을 가지고 경계해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출판사의 규모가 커지고 직원들이 많아졌을 때 누군가는 불편하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최대한 양보하고, 백 팀장이 직접 사람을 뽑아 자기와 파트너십을 맺게끔 하는 게 답이 아닐까 싶어요.

 

백지수  저희는 전형적으로 의사소통 구조가 톱다운(top down, 위→아래)이 아니라 완전 보텀업(bottom up, 아래→위) 형식이에요. 출판이 콘텐츠업이다 보니, 빠르고 유연하면서 또 트렌드에 밝아야 하잖아요. 그걸 젊은 사람들이 기획해서 위로 올리면 결정권자들이 이를 존중하고 판을 깔아줄 수 있는 문화여야 하는데, 2세 경영의 대부분 문제는 톱다운 형식이 너무 강해서인 거 같아요. 대표님과 제가 각자 역할 분담만 확실히 되면, 사람들이 흔히 우려하는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백광옥  제가 대표가 아니라 실무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음)

 

 

 

천그루숲 출판사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백광옥  출판에 처음 입문했던 20대 초반에 나름대로 개인적인 목표를 세웠어요. 기왕에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니 책 1,000종은 한번 만들어봐야 하지 않나 하고 말이죠. 지금 보면 황당무계한 꿈이었죠. 여하튼 전 직장에서 한 600종 정도는 관여했던 거 같아요. 창업하면서 제 목표와 우리 조직이 가는 비전을 어떻게 연결시킬까 고민하던 찰나에, 한 시집에서 “한 알의 도토리가 모여 천 그루의 울창한 숲을 만든다”라는 구절을 발견했어요. 제가 만든 책 한 권, 한 권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천그루숲에서 ‘도토리 군단’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백지수  출판사명이 천그루숲이니까 저희는 저자분들이랑 책을 ‘도토리’라고 불러요. 지혜의 도토리들을 하나씩 심어서 지혜의 숲을 만들겠다는 메시지인 거죠. 대표님이 출판사를 처음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저자들 간 네트워크거든요. 저희 저자 대부분이 강사인데, 서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조가 되면, 우리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봤어요. 그러다 보니 저자들끼리 주기적으로 술 모임도 생기고, 1년에 두 번씩 1박 2일 소풍을 가기도 해요. 도토리들이 서로 친해지고 자주 모이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도토리 군단이야?’ 하게 된 거예요. (웃음)

 

강의 업계에서는 천그루숲 저자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걸로 좀 유명하더라고요. 저희랑 소풍 가고 싶어서 출간 계약하신 저자분도 실제로 계시고, 이 커뮤니티를 굉장히 좋게 봐주셔서 출판사의 아주 큰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광옥  우리 저자들이 다 젊고 보석 같더라고요. 그래서 연결해주면 서로 성장하는 데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했어요. 저자들끼리 나이에 상관없이 친해지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니 기쁩니다.

 

천그루숲 저자 모임 모습1

 

천그루숲 저자 모임 모습2

천그루숲 저자 모임 모습

 

 

 

처음부터 계획하에 강사들을 저자로 모신 걸까요?

 

백광옥  의도하진 않았어요. 지금 약 60종 정도 출간되었는데, 대부분이 저자의 첫 책이더라고요. 그런데 또 강사들이 우연히 많았어요. 그들끼리 커뮤니티가 끈끈해지니까 나중에는 그들이 계속 주변 강사들을 소개해주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책을 냈는데, 책 잘 만들었고, 이걸로 내가 이만큼 성장했어’ 하니까, 주변 강사분들이 ‘나도 거기서 책 내야겠다’ 하는 거죠.

 

 

 

우연치고는 굉장한 행운이네요. 그래서 천그루숲이 국내 기획서가 많았군요. ‘생긴 지 얼마 안 된 출판사 같은데 번역서는 별로 없네?’ 하고 의아했거든요.

 

백광옥  제가 창업하면서 세운 원칙이 하나 있었어요. ‘외서는 안 한다!’ 물론 외서가 몇 권 있긴 하지만, 그건 저희와 협업하는 기획자가 함께 만든 거예요. 투고 원고도 원칙적으로는 안 봐요. 저희가 강사들과 많이 만나니까 아무래도 트렌드에 좀 밝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게 내년에는 화두가 될 거라더라, 이런 거 괜찮은데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 나눠요. 예를 들어 내년 화두가 ‘돌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혹시 주변에 돌봄에 관해 관심 많은 사람이 없는지 물어요. 특히 요즘에는 백 팀장이 저희 기존 저자들보다 더 젊은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분들의 동력을 끌어내더라고요. 책을 절대 안 낼 거 같은 사람도 가능성을 찾아낸다고나 할까요.

 

 

 

원석 같은 저자를 찾아 발굴하는 일은 출판사들이 꼭 해야 하지만 이런저런 일에 치여 잘 하지 못하는데, 커뮤니티를 통해 열심히 하고 계시는군요. 저자로서의 가능성은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백지수  기존에 책을 많이 냈던 저자들과 하는 기획은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고, 콘텐츠가 있는데 출판은 생각지 못한 분과 함께하는 걸 재밌어 해요. 그래서 트렌드 관련 모임에 자주 나가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고, 그분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SNS로 많이 찾아봐요. 이 사람이 해당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해왔는가, 또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가, 이렇게 세 가지를 봅니다.

 

 

 

책을 처음 써보신 분들의 책을 내는 게 쉽진 않잖아요. 강의가 좋아서 출간 계약은 했는데, 막상 책을 쓰려고 하니까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원고 받아내는 게 엄청난 능력이라고들 하잖아요. 초보 저자를 쓰게 만드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요?

 

백광옥  아까도 낮에 저자분이 오셨는데, 저희는 어쨌든 계속 옆에서 응원해요. “할 수 있다. 원고의 퀄리티는 크게 생각하지 말고 A부터 Z까지만 한번 써보자. 여기서 멈추면 평생 책 안 나온다” 하면서 동기부여하고, 그래도 힘들어하면 백 팀장이 단체 카카오톡방을 만드는 거죠. (웃음) ‘나를 좀 강제해줘’ 하는 저자들이 의외로 많아요. 어떻게든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분들이니까, 자기를 도와달라고 출판사에 많이 부탁하시더라고요. 클라우드에 원고 공유하고 “오늘은 이만큼밖에 못 썼어요” 하면 저희는 “내일은 분발하세요” 해요.

 

백지수  처음 기획 단계, 그러니까 책을 왜 써야 하는지, 천그루숲에서 왜 내야 하는지 설득하는 과정에서부터 저자와 친하게 지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욕망으로 이 책을 내고 싶은지가 보이거든요. 그걸 알면 중간에 설득하기 좋아요. 책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동력을 잃을 때가 있잖아요. ‘내가 이걸 왜 시작했나. 당장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이걸 통해 내가 얻는 게 뭐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분을 좀 쌓아놓은 상태라면 ‘이제 이것만 하면 뭘 할 수 있다’ 같은 설득이 먹히거든요. 제가 좀 집착적이에요. (웃음)

 

 

 

개인적인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주인의식과 열정이 없으면 그렇게 하기 어렵죠.

 

백광옥  외서나 투고 원고라면 그만큼은 못할 거예요. 백 팀장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능성으로 보고 하는 거잖아요. 인연을 맺은 사람이기에, 이 사람을 위해 우리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천그루숲은 큰 글자 책도 내더라고요. 작은 출판사에서 이렇게 큰 글자 책까지 계속 함께 내는 경우는 많이 못 본 거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백광옥  처음에는 큰 글자 책에 좀 심드렁했어요. 도서관 납품용 아니냐, 그걸로 벌면 얼마나 더 벌겠냐 싶었죠. 그런데 우연히 기사를 하나 봤어요. 큰 글자 책이 노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한테도 큰 도움이 된다고요. 평생 보지 못했던 책을 큰 글자 책 덕분에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그 기사를 보고, 꾸준히 함께 내고 있어요.

 

 

 

제작비 부담은 없으신가요?

 

백광옥  큰 글자 책을 대신 만들어주는 곳이 있어요. 데이터를 보내면 알아서 제작하고 납품해주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품이 그렇게 많이 들진 않더라고요.

 

 

 

저는 판형을 따로 만들어 각각 인쇄하는 줄 알았는데 대행업체에 통으로 맡기는군요. POD 출판 형식으로 말이죠. 오늘 또 하나 배우네요. 감사드려요. 큰 글자 책을 만드는 이유를 들어보니, 천그루숲이 하는 일에는 늘 ‘사람’이 있네요.

 

백지수  대표님이 항상 저한테 강조하시는 게 있어요. 절대로 이 책을 마케팅하면서 저자가 상처받거나 혹은 싼티 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흔히 마케팅 측면에서 후킹(hooking)한 표현들 많이 쓰잖아요. 저도 마케터이다 보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조금 자극적으로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솔직히 띠지에는 좀 더 세게 써도 되지 않나 싶은데, 대표님은 저자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어도 책 주제와 관련 없는 내용이면 넣지 못하게 하세요. 그러면서 늘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성장해야 우리도 성장한다” 말씀하시죠. 그래서 마케팅할 때도 저자의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런 마케팅이 장기적으로 저자는 물론, 독자들과도 신뢰를 쌓는다고 보고요. 그래서인지 저자분들도 엇나가지 않으세요.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책 내는 과정에서 대표님이 항상 말씀하시거든요. 저자분들도 책 이외 다른 활동을 할 때도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아야겠구나, 한 번씩 더 인지하시는 거 같고, 그래서 저희 저자분들은 다 잘되셨어요.

 

 

 

보통의 출판사라기보다 매니지먼트 같아요. 저자 브랜딩을 함께 해주시는 거잖아요. 우리 출판인들이야 책 내는 품에 비해 수익이 적으니까, 가끔 자조적으로 출판을 바라볼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책의 힘은 커요. 저자가 책을 내는 과정에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데 천그루숲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자, 그럼 이제 바이더북 회사에 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언제 만드신 거죠?

 

백지수  바이더북은 책을 2차 콘텐츠로 제작하는 회사예요. 2020년 8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고, 책을 좀 더 쉽고 재밌고 가볍게 볼 수 있게 교육 영상으로 만들고 있어요.

 

 

 

책을 2차 콘텐츠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백지수  책 한 권 만드는데 품이 많이 들잖아요.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들 고생하는데 시장에 내놓고 안 되면 확 사라져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어요. 내용이 분명히 좋은데 왜 안 팔릴까 싶을 때, 전하는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고민이 많았어요. 대표님은 항상 저한테 2차 저작권 활용을 잘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원래도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었거든요. 더 다양한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 보니 영상 만드는 것까지 나아간 거죠.

 

언젠가 데이터를 보니 서점에 판매되는 것만큼 도매상을 통해 B2B로 책이 꽤 나가더라고요. ‘대체 어떻게 나가는 거지?’ 하고 들여다봤더니 기업 교육용으로 책이 활용되고 있었어요. 우리 저자 중 강사가 많으니까 책을 강의로 만들면, 출판사도 저자도 수익성이 더 좋아지겠다 싶어서 바로 시도했어요. 감사하게도 저자분들이 다들 응원해주시면서 함께해주셨어요.

 

 

 

북 러닝(Book Learning)인 셈이네요. 다른 출판사들과도 협업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백지수  저희 책으로 영상을 만들어서 유통사를 통해 지금은 기업 교육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이렇게 PD님도 고용해서 조금씩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다른 출판사 책들도 저희가 영상으로 제작해주게 된 거죠.

 

 

 

책의 요약본처럼 핵심만 골라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백지수  맞아요. 그래서 이제 책을 책 자체로 생각하지 않고 콘텐츠 관점에서 자꾸 보려고 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니까요.

 

 

 

2023년 1월에 라이터스룸(Writer's room)도 선보였는데, 어떤 브랜드인가요?

 

백지수  라이터스룸은 원래 영화계에서 쓰는 말이에요. 작가들끼리 모여서 시나리오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공간을 뜻하죠.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갈 때쯤 독자들을 너무 만나고 싶었어요. 대표님은 저자와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저는 기획자 입장에서 독자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제 예상과 달라서 우리가 미래 지향적으로 기획을 하려면 독자들과 친해져야겠다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진정한 커뮤니티로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전문가 집단을 항상 꿈꾸거든요. 그게 천그루숲 저자들의 모임을 대변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한테까지도 확장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출판사를 이전하면서 1층으로 오신 거군요.

 

백지수  네. 라이터스룸에서는 저자끼리 티타임이나 술자리도 자주 하는 편이고, 2주에 한 번씩 저자와 독자 10명 정도가 모여서 ‘라이터스 디너’라는 행사도 해요. 와인도 마시면서 식사도 하고 책에 담지 못했던 내용, 혹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예요. 그걸 통해서 독자는 저자와 더 친해졌다고 느끼고 ‘찐팬’이 되는 거죠. 독자들도 이 행사를 좋아하지만, 저자분들이 굉장히 보람을 느끼더라고요. 사실 이렇게 가깝게 독자를 만날 일이 별로 없잖아요. 자기를 보러 멀리서 와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 책 냈지’ 경험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공간도 출판사명이 아닌 라이터스룸이라고 간판을 낸 거죠. 출판사에 한정 짓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난 주말에는 이곳에서 꽃꽂이 클래스도 했고, 다음 주에는 와인 클래스도 열어요.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실험해보고, 그런 실험들이 잘 되면 출판물, 더 나아가 다른 사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봐요. 어쨌든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걸 콘텐츠화하는 게 제 일이니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공간과 브랜드가 필요했어요. 그게 라이터스룸이에요.

 

 

 

실은 아까 오면서 출판사를 못 찾아서 한참 헤맸거든요. 쇼윈도만 얼핏 보고 출판사일 거라고 아예 생각을 못 했어요. 라이터스룸, 멋진 브랜드예요! 당장 대단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시너지 효과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출판 기획자로서의 삶, 제대로 즐기고 계신 거 같아요.

 

백지수  출판기획자 일이 제 성향과 잘 맞아요. 일반적으로 기업은 고객층을 특정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매번 만드는 상품의 타깃도, 고객의 니즈도 달라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다만 답이 없기도 하니까 고민될 때도 많아요. 타깃에 따라서 성과가 다르니까 어렵죠. 하지만 책이 딱 나왔을 때 물성이 주는 즐거움도 되게 크고요. 저자들의 첫 책을 만들었을 때가 가장 즐거워요.

 

『당신은 이미 브랜드입니다』(김영욱, 천그루숲, 2022)는 제가 정말 아끼는 책인데, 저자가 4년 동안 알고 지냈던 분이었어요. 지금은 40만 유튜버인데, 영어 강사라서 그동안 영어책만 내셨어요. 무명 시절부터 성장해왔던 걸 계속 지켜보면서, 영어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람의 성장 과정, 어떻게 하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자기 이야기를 전하고 팬덤을 만들 수 있는가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제안했어요. 저자의 기존 콘텐츠와 완전히 다르게 접근해서 기획한 거죠. 그래서 만드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출간되었을 때 그 뿌듯함은 진짜 엄청났고,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로서의 삶은 참 재밌고 행복해요.

 

 

 

출판에 미래가 없다 여기고 떠나는 분들도 많은데,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까지 행복해지네요.

 

백광옥  활자를 만지는 사람들한테는 선한 영향력이 있어요. 상업적으로 버텼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이지,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저자들, 그러니까 현명하고 좋은 사람들을 항상 만날 수 있고 그런 분들과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요.

 

또 지금 1인 출판을 하시는 분들이 출판사에서 더 일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나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제대로 준비하고 기획력을 갖춰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아이템을 갖고 나온다면, 금전적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업종이라고 봅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한테는 진짜 한번 최선을 다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왼쪽부터 천그루숲 백광옥 대표,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왼쪽부터 천그루숲 백광옥 대표,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마지막으로 출판계 동료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백광옥  책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지 말고 저자의 가치를 온전히 담은 콘텐츠로 잘 만들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에게 오래 읽히도록 말이죠.

 

백지수  제가 지금까지 성장해온 배경에는 마케터 모임이 있거든요. 사수가 없어서 힘들었던 시절에 동료 2명과 함께 모임을 시작했고, 연대의 힘으로 제가 얻은 게 참 많아요. 그래서 힘들수록 우리가 만나서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교류할 기회가 많았으면 합니다. 혹시 함께하고 싶은 마케터가 있다면, 저에게 메일 주세요.

 

 

 

제조업을 뛰어넘어 오늘날 출판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미래의 출판사는 원천 콘텐츠로서의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커뮤니티여야 하지 않을까. 천그루숲, 그곳은 출판사였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출판사는 아니었다. 그곳에 (보통의) 출판사는 없었다.

 

 

백광옥 대표
1994년 출판계에 들어와 첫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30년 차 에디터로서 천그루숲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ilove784@naver.com
https://www.facebook.com/ilove784

 

백지수 기획·마케팅팀장
도서출판 천그루숲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책을 기획, 마케팅하고 있습니다. 종이와 더불어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00jisu@gmail.com
https://www.youtube.com/@100jisu
https://www.instagram.com/100_jisu

 

김세나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다정하게.
booksseny@gmail.com
https://cafe.naver.com/publilancer
https://www.facebook.com/publilancer
https://www.instagram.com/publil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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