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2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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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점가의 새로운 유행 ‘공유형 서점’이 뜬다

 

 

 

이상훈(〈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2024. 03-04.


 

일본 도쿄의 서점거리, 진보초(神保町)

 

일본 도쿄 진보초(神保町)에는 세계 최대 고(古)서점 거리가 있다. 1913년 대형 화재로 잿더미가 된 폐허에 간다(神田) 여고 교사였던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 일본 지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와나미 문고의 그 이와나미다.)가 열었던 헌책방이 성공을 거두며 현재 약 180개 이상의 헌책방이 자리를 잡았다. 이후 최근 몇 년 동안은 새로운 형태의 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공유형 서점’이다. 공유형 서점이란, 매달 일정액을 내고 서점 안에 있는 책장 한 칸을 빌려 운영하는 것으로 책장마다 판매자가 다르다. 소규모인 데다 대중적인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멀어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나만의 서점을 운영한다는 의미가 있어 흥미를 끈다.

 

대표 공유형 서점, ‘네코노혼다나(猫の本棚)’

 

도쿄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유형 서점으로 ‘네코노혼다나(猫の本棚)’를 꼽을 수 있다. 진보초역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면 파란색 가게가 나오는데 ‘고양이의 서가’라는 서점 이름에 맞게 고양이 입간판이 책방 앞에 놓여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세 벽을 둘러싼 170여 개의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책장마다 이름표가 붙어있는데 이름도 내용도 모두 다르다. 서점 가운데는 별도로 책을 전시할 수 있는 팝업 테이블과 그 위로 큰 샹들리에가 눈에 띈다. 공간을 실내디자인 및 실내장식으로 꾸미는 공간플래너 출신인 점주와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히구치 나오후미(樋口尚文) 씨가 함께 오래된 소품들을 어렵게 구해 꾸며놨다고 한다. 히구치 감독의 영향인지 영화 관련 책장도 많았다. 검열과 터부에 저항하는 문제작 〈감각의 제국〉(1976년) 같은 작품으로 일본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오시마 나기사(大島渚·1932∼2013) 감독 장서 코너를 마련해 주목받기도 했다.

 

‘네코노혼다나’는 가입비 1만 1,000엔(약 10만 원)에 매달 이용료 4,400엔(약 4만 원)을 내면 책장 하나에 3개월 이상 빌릴 수 있다. 책장에 붙은 이름표만큼이나 책장을 채운 개성도 다양하다. 본인이 읽었던 책, 추천하는 책뿐만 아니라 손님에게 전하는 메모, 액자, 인형 등 소품도 놓여 있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보기 드물고 오롯이 주인의 성향과 취향이 담긴 책장이다. 평범한 이름부터 영화감독, 배우, 소설가 등 유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작은 서점을 채우고 있다.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공유형 서점 ‘네코노혼다나’의 입구(좌)와 내부(우) 모습

일본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공유형 서점 ‘네코노혼다나’의 입구(좌)와 내부(우) 모습

 

 

점점 퍼져나가는 ‘공유형 서점’ 인기

 

도쿄에서 성공한 공유형 서점 열기는 지방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요미우리〉 신문에서는 일본의 옛 수도 교토에 문을 연 ‘코모레비(こもれび) 서점’이라는 공유형 서점을 소개했다. 70㎡ 규모의 서점에는 40개 안팎의 책장에 각 주인이 진열해 놓은 책이 꽂혀 있다. 월 임차료는 2,000~3,500엔 정도로 진보초보다는 조금 저렴하다. 매출액의 90%는 책장을 빌린 주인이, 10%는 가게가 가져가는 구조다.

 

일본 수도권 치바시에 있는 ‘이토나미(いとなみ) 서점 2.5’도 공유형 서점이다. 도저히 가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8㎡ 규모의 초소형 가게다. 책장 25개를 놓고 각 책장의 주인들이 자신이 고른 책을 꽂아 두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된 93세 할아버지가 집안에 넘치던 소설을 이곳에 내놓은 뒤 ‘93세 책방’이라는 간판을 붙이기도 했다. 지역 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나만의 책장을 갖겠다는 사람들의 신청이 쇄도했다. 애초 20개였던 선반을 5개 늘렸지만, 여전히 대기자들이 많다고 한다.

 

서점 소멸 위기 속 새로운 발견

 

세계적으로 ‘독서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책 읽는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 OTT 등 책을 대체할 만한 것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의 여파와 아마존닷컴 등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며 오프라인 서점도 사라지는 추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2만 2,000개가 넘었던 일본 서점은 2022년 8,600여 곳으로 약 60%가량 줄었다. 진보초 역시 10년 전에 비해 고서점이 30%가량 줄었고, 특히 지방 서점들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깊어지는 서점 소멸 위기 속에서 공유형 서점은 새로운 발견이다. 물론 공유형 서점이 갈수록 규모가 작아지고 있는 일본 도서 산업을 부흥시킬 수준은 아니다. 책장을 빌릴 주인들도 여기서 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재테크, 자기계발서 등 일본에서도 ‘팔리는 책만 팔리는’ 현상이 강해지는 가운데, 개성 강한 독서 문화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새로운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 공유형 서점은 특히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기 시작한 2022년부터 일본 전국에서 본격적으로 퍼지며 도쿄에만 10곳 넘게 생겼다. 공유형 서점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가 등장했고 주요 신문과 TV에서도 연일 소개되고 있다.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공유형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선다. 서점이나 도서관 기능을 넘어 ‘내가 읽던 책을 나누고, 타인이 공유해준 책을 접한다.’는 새로운 공유 경험이 더해졌다. 책장 주인마다 자신만의 책장을 만드는 재미와 이를 보는 이용객들 사이의 취향 공유가 어느 순간 소통으로 이어진다. 과거 헌책방과도 차별화되었다. 공유형 서점은 다 읽은 책들을 자신의 이름(때로는 익명이지만)을 걸고 소개한다. 라디오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DJ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책을 매개로 자신의 취향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을 함께 체험하는 것이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공유형 서점 마니아들은 오히려 이렇게 숨어 있는 취향 공유를 매력으로 꼽는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를 중심으로 공유형 서점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SNS를 통해 서점의 팬들은 새로운 혹은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를 업로드하고, 책장 주인은 ‘나만의 서점’을 공유하며 자신의 ‘지식 즐기기 자랑’을 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스레 책방 주인들의 교류 모임으로 이어졌다. 많은 공유형 서점에서 책방 주인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팔 수 있을지도 논의하지만 주인 각자의 책장 콘셉트와 지향점을 공유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나누는 ‘책 마니아 모임’을 갖는다. 책을 보는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자신이 소개한 책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형 서점에 가면 수십만 권의 책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형 출판사들이 큰 자본을 들여 펼치는 마케팅 무대에 더 가깝다. 발간 후 1~2개월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구석 책꽂이에 1, 2권만 남기고 대부분 반품되는 게 현실이다. 수량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차분히 책을 읽어보며 고를 만한 여유는 느끼기 어렵다. 그나마도 대형 서점에서 책 판매 공간은 줄어들고 커피숍, 문구 판매장, 스마트폰 판매장 등이 서점 안에서 점점 덩치를 키우고 있다. 이 정도면 책이 조연이고 커피와 문구가 주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공유형 서점의 주연은 여전히 ‘책’ 그 자체다. 공유형 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나도 모르는 나의 흥미’를 탐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온 지 오래돼 상업 서점에서 잊힌 책도, 절판된 지 오래돼 그런 책이 나왔는지조차 잊힌 책도 취향이 맞는 주인을 만나면 책장 한 편을 차지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주인이 꾸민 책장을 만나면 계속 그 책장을 찾게 되지 않을까. 물론 수익적인 면에서 공유형 서점이 갖는 한계점은 분명히 있지만 서점의 본질인 ‘책’에 집중하고 사람들의 ‘취향 존중’과 ‘다양성’을 교류하는 장소로서 공유형 서점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취향을 공유하고 다차원 소통이 이뤄지는 공유형 서점이 기존 서점, 도서관과 함께 새로운 책 향유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상훈

이상훈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대학에서 영문학과 정치외교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2003년 기자를 시작해 문화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책의 나라’ 일본에서 틈만 나면 서점을 찾아 더듬더듬 일본어책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현실을 비교 분석한 『브로큰 레버리지』(책들의정원, 2024)를 썼다.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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