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27  20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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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박 홍의 사소한 감정

 

 

 

안성학(KPIPA 미국 코디네이터, 미국 파피펍 대표)

 

2021. 11.


 

지난 9월, 타임지에서 2021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씨가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다. 올해 발표된 100인에는 윤여정 씨 외에도 다른 한국인들이 포함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계 2세들이다. 이 중에는 윤여정 씨와 같은 영화에 출연한 스티븐 연(Steven Yeun)과 시인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그리고 인권 운동가 신시아 최(Cynthia Choi)가 있다.

 

캐시 박 홍은 지난해 초 미국에 사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의 자전적인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 An Asian-American Reckoning)』를 출간했다. 이 에세이는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도 폭력을 경계하는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자기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은 이 에세이가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작가이며 연기자인 알리 웡(Ali Wong)은 타임지에 실은 자신의 글에서 ‘캐시 박 홍의 에세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미국 내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아무도 논의하지 않았던 사회문제를 조명했다’며,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을 더욱 경계하고맞서 연대해야 하는 시기에 나온 도서’라고 극찬했다.

 

타임지에 실린 캐시 박 홍


타임지에 실린 캐시 박 홍

 

캐시 박 홍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이후 미국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 과정을 마치고,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Iowa Writer’s Workshop)의 MFA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은 뉴욕에 거주하며, 뉴 리퍼블릭(New Republic)의 시 편집자이자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에서 창작 과정(Creative Writing MFA)의 시 프로그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는 2002년 푸시카트 문학상(Pushcart Prize)을 수상한 『번역하는 Mo'Um(Translating Mo'um)』과 2006년 버나드 여성 시인상(Barnard Women Poets Prize)을 수상한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 그리고 2012년에 출간된 『엔진 제국(Engine Empire)』이 있다. 이 외에도 시(Poetry), 퍼블릭 스페이스(A Public Space), 뉴욕타임스,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 맥스위니스(McSweeney's), 배플러(The Baffler), 예일 리뷰(Yale Review), 더 네이션(The Nation), 보스턴 리뷰(The Boston Review) 등에 시가 게재되었으며,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 더 가디언(The Guardian),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및 뉴욕타임스 메거진에 기고해 왔다.

 

2016년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윈덤-캠벨 문학상 시 부문(Windham–Campbell Literature Prize in Poetry) 수상자였고, 2020년에 출간된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로 2020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자서전 부문(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for Autobiography)을 수상했고,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또한 2020년 타임지의 최고의 논픽션 도서 10권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그레타 리(Greta Lee)와 A24에 의해 TV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캐시 박 홍은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 및 국립 예술 재단 펠로우십(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Fellowship)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을 위한 글과 옹호 활동으로 2021년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리스트에 선정되었다.

 

캐시 박 홍은 타임지의 100인 선정 발표 이후 트위터를 통해 “시인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 시인들은 타임지의 100인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고, 내가 표지에 실렸다.”고 자신의 심경을 담담히 밝혔다. 자신의 에세이에서도 ‘백인도 흑인도 아니고, 백인에게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는 아시아인은 미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그에 따른 승진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StopAAPIHate

 

캐시 박 홍이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감정’을 알렸다면, 다른 한편으로 현장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 있다. 캐시 박 홍과 함께 올해 타임지의 100인에 선정된 신시아 최(Cynthia Choi)이다. 한인 2세인 신시아 최는 이민자들의 인권 보호 단체인 “긍정적인 행동을 위한 중국인(Chinese for Affirmative Action)”의 공동 대표이며,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 중지(Stop Asian American Pacific Islander Hate)”단체를 공동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21년 타임지 올해의 100인에 선정된 Stop AAPI Hate 공동 대표들


2021년 타임지 올해의 100인에 선정된 Stop AAPI Hate 공동 대표들

 

이 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모두 9,081건의 증오 범죄 발생 보고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 중 4,548건이 2020년에 발생했고 4,533건이 2021년에 발생했다. 그중 언어적 괴롭힘이 전체 신고의 63.7%를 차지했고, 고의적인 회피가 16.5%, 신체적 폭행이 13.7%, 침을 뱉는 행위가 8.5%를 차지했다.

 

여성이 신고한 건수는 전체의 63.3%에 이르렀고, 전체 신고의 11.0%는 직장 내 차별과 서비스 거부, 운송 금지 등의 인권 침해였으며, 온라인상의 괴롭힘도 8.3%를 차지했다.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감정들

 

저자는 출생과 함께 딸이 부여받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모두 7편의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저자는 인종차별을 다루면서 자본주의 미국에서 소외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이민 1세 부모 아래 자란 1.5세와 2세는 학교에서부터 접하는 백인 우월주의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지며 자라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영어 사용이 원활하지 않은 부모가 자신을 방어하고 옹호해주리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고 아이가 오히려 부모를 보호하며 통역까지 맡는 가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이런 상황에 익숙할 것이다.

 

미국에서 유태인이나 흑인에 관한 도서는 많은 반면 아시아인에 관한 도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 중 일부는 다른 소수 집단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대중의 눈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아시아인의 독특한 조건이다.’라고 말하며,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의 현실을 전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집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미국의 부촌으로 이사하는 비백인의 대부분이 아시아인 사업가나 의사들이고,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는 아시아인의 수가 너무 많아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아시아인 입학자의 수를 줄이는 아시아 학생에 대한 역차별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아시아인의 성공담을 확대 보도하는 것이고, 많은 수의 아시아인들은 다른 미국인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거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들의 고통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그 누구도 이들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

 

소외된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트윗


소외된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트윗

 

지난해 6월에 진행된 예일 리뷰(Yale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사소한 감정”에 대해 ‘놀랍도록 지속적인 카타르시스가 없는 감정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인은 성공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자신은 실패자처럼 느껴지고, 이런 사소한 감정이 겉으로 표출되면 백인들이 생각하는 인종적인 적대감, 질투, 우울함, 호전적인 감정으로 해석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경험이 사회에서의 착시현상과 같은, 현실과 비례하지 않을 때 나오는 과잉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인종이나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부각해, 인종적 트라우마를 사회가 아닌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으로 정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과 자본주의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이와 같은 트라우마에 갇히면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고착화된 현상은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무력한 개인과 지속적인 구조적 불평등’에서 생겨나는 감정과 같은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민족적 감정인 ‘한’을 미국에 사는 자신의 사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동안 백인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문학 양식은 백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대부분의 책과 영화는 백인의 의식을 통해 걸러지고, 결과적으로 작가와 예술가 등 다양한 문화 생산자가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쓰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없도록 제한한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쓴 비백인은 무시당한다. 그래서 저자는 유색인종의 경험을 중심으로 쓰려는 시도를 했다. 미국의 인종 다양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유색인종의 인구 비율이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의 인종 문제는 흑백의 이분법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백인이 수적으로 주류에서 비주류로 바뀌기 시작했고, 2050년에는 유색 이민자가 주류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에세이였다. 자신의 에세이에서 멈추지 말고, 그동안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또는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길 바란다는 저자의 메시지처럼 앞으로 더 다양한 비주류의 목소리가 서점에 진열될 것으로 보인다.

 

 

 

안성학(KPIPA 미국 코디네이터, 미국 파피펍 대표)

미국 아마존의 자회사인 오더블과 킨들 코믹솔로지에서 디지털 오디오북과 코믹북의 글로벌 콘텐츠 제작팀을 이끌었고, 지금은 한국의 도서와 웹툰, 웹소설 등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콘텐츠를 미국 및 해외시장에 번역, 출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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