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17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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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중국]
출판편집자 생존의 새로운 대안

 

 

 

김택규(숭실대학교 중어중문과 겸임교수)

 

2020. 12.


 

 

2019년 10월 18일, 베이징 《신경보》(新京報)의 웹진 《서평주간》(書評週刊)에 실린 기사 〈도서 편집자 생존 보고서〉에는 전 남자친구가 편집자였다는 베이징의 한 여성이 편집자 동호회 사이트에 올린 글이 인용되었다.

 

 

그 사람은 월급 4,000위안(한화 약 68만 원)에 996(아침 9시 출근, 저녁 9시 퇴근, 주 6일 근무)였어요. 매일 야근하느라 나와 같이 있을 시간도 없었고 나는 SNS를 업데이트하며 그 사람이 책 파는 걸 도와줘야 했어요. 나는 그 사람과 사귀고 나서야 이 세상에 그렇게 가성비 낮은 일이 있다는 걸 알았죠. 명문대 석사 학위도 있고, 영어도 잘하고, 어려운 책과 영화도 산더미처럼 봤고, 문학적 소양도 높은 사람이 매일 힘들게 원고를 고치고, 기획을 하고, 이벤트를 열고, 마케팅까지 하는데도 한 달에 4,000위안밖에 못 받았죠. 간혹 베스트셀러나 터져야 1,000위안 밑으로 보너스가 나왔어요.

 

 

중국은 2019년 1인당 GDP가 10,261달러에 불과해 아직 한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긴 하지만 대도시 베이징의 1인당 GDP는 23,773달러에 달한다. 그래서 저렇게 저임금에 시달리는 고학력 출판 노동자는 극히 일부의 현상이 아닐까 추정하며 ‘봉급계산기(工資計算器)’라는 중국 전문 사이트에서 ‘출판 편집자’를 키워드로 관련 데이터를 찾아보았다. 2020년 전국 3,696명의 출판 편집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그 데이터는 중국 편집자의 평균 월급이 5,230위안(한화 약 89만 원)임을 알려주었다. 근무 연차별 평균 월급은 신입이 4,870위안(약 83만 원), 1~3년 차가 5,590위안(약 95만 원), 3~5년 차가 7,000위안(약 119만 원), 5~10년 차가 6,890위안(약 117만 원)이었다. 그리고 금액별 퍼센티지를 보면 2,000위안 이하는 1.6%, 2~3,000위안은 3.5%, 3~4,500위안은 24.4%, 4,500~6,000위안은 35.8%, 6~8,000위안은 23%, 8,000~10,000위안은 7.8%, 10,000만~15,000위안은 3.5%였다. 따라서 위 인용문 속 남성 편집자의 월급 4,000위안은 평균보다 모자라긴 하지만 비율상 2번째로 많은 3,000~4,500위안 구간에 속하므로 단지 ‘일부의 현상’으로 치부할 만큼 드문 사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3기 전국인터넷편집자자격연수반 교육 현장


2010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3기 전국인터넷편집자자격연수반 교육 현장

 

사실 지난 20여 년간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중국 출판업 전체 매출은 공식 데이터상으로 매년 소폭이라도 상승해왔다. 하지만 현장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그것과 정비례로 종이책 출판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한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출판 편집자의 생존 조건도 열악해지기만 했다. 이런 모순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2018년 3월, 웹진 《창업자》(創業者)에 실린 〈전통 도서 편집자에게는 또 다른 생존의 길이 있다!〉라는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사는 먼저 출판 통계 전문업체 카이쥐안(開卷)의 「2017년 중국 도서 소매시장 보고서」의 데이터를 인용해, 2017년 중국 도서 소매장 시장 규모가 803억 2천만 위안(약 13조 6,54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55% 성장했고, 실제 판매 종수도 8.19% 성장한 189만 3,600종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숫자들 뒤에는 더 많은 위기가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

 

 

2017년 신간 종수는 204,000종으로 2016년의 210,200종보다 감소했다. 이와 함께 2017년 51.70%의 도서 판매가 베스트셀러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 절반이 넘는 시장 매출을 전체 종수 중 1%밖에 안 되는 베스트셀러를 판매해 얻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잔인한 사실은, 연간 판매량 10권 미만의 도서가 전체 도서 종수의 45.19%를 차지하고, 연간 판매량 5권 미만의 도서가 전체 도서 종수의 34.5%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광시(廣西)사범대출판사에서 나온 『밥 딜런 시집(1961~2012)』(전 8권, 2017)


광시(廣西)사범대출판사에서 나온 『밥 딜런 시집(1961~2012)』(전 8권, 2017)

 

신간의 감소와 극소수 베스트셀러 위주의 매출 구조는 곧 영향력 있는 저자와 해외 저작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 국영 출판사, 민영 출판사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다. 게다가 위 기사는 “최근 10년간 신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첨언했으며, 앞의 〈도서 편집자 생존 보고서〉에서는 대형 민영 출판사 기획자의 입을 빌려 “20세기 초반만 해도 판매 부수 10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가 쉽게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5만 부 이상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여 베스트셀러 규모 축소까지 지적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관련 작품을 예로 들어보면, 전에 밥 딜런의 책을 만든 적이 있는 한 편집자는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날 밤, 마침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며 도시락을 먹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그 소식을 접하곤 젓가락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날 밤 그는 곧바로 인쇄소로 달려가 증쇄를 맡기고 그곳에서 밤을 샜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벼락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것은 중국에서도 이미 10년 전의 전형적인 현상이 돼버렸다. 모옌과 앨리스 먼로의 책은 잘 팔렸지만 최근 몇 년간 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평범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조차 갈수록 외면받으며 베스트셀러의 문턱에 오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2013년 개관한 중국 최대의 도서관인 광저우 도서관. 소장 도서는 843만 3천 권이다.


2013년 개관한 중국 최대의 도서관인 광저우 도서관. 소장 도서는 843만 3천 권이다.

 

아무래도 중국의 출판 통계와 출판 현장 사이의 괴리는 중국 출판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교재와 정부 출판 사업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인구 증가와 교육 수준의 제고로 인해 정규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성인 교육 수요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교재 출판은 여전히 증가세이다. 또한 정부의 독서 정책 강조로 각급 학교와 지역에 크고 작은 도서관이 지어지면서 공공조달을 통해 많은 책이 구입되고 있다. 사실 이렇게 발생하는 매출은 일반 독자를 상대하는 단행본 출판사들과는 무관할 수밖에 없다. 중국 내에서 교재와 공공조달 도서는 인민교육출판사, 고등교육출판사 등 소수의 국영 출판사와 신화(新華)서점 계열의 유통사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단행본 출판이 이렇게 위축되는 환경에서 중국 편집자들은 본인의 생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물론 환경이나 전망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조건에서 좋은 책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집자도 있을 것이다. 또 현실에 지치고 실망한 나머지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가지려는 편집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아가 지금까지 쌓아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 영역을 찾아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을 것이다. 과연 그런 영역이 있을까?

 

출판 통계 전문업체 카이쥐안의 블로그에 2017년 9월 21일 한 편집자가 “출판계의 구인 광고에는 왜 돈 얘기가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보면 그런 영역이 있는 것도 같다. 그 편집자는 유명한 지식공유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전 동료의 부탁을 받아 “월급 3,000~5,000위안, 향후 월급 상한선 없음”이라는 조건으로 3~5년차 편집자 구인 광고를 편집자 동호회 사이트에 올렸다. 그런데 그를 비롯한 그 광고를 본 여러 편집자들의 반응은 “이 정도 연차의 편집자한테 봉급을 이렇게 많이 준다고?”였다. 그들은 그렇게 좋은 구인 조건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일주일 뒤, 그 지식공유서비스 업체의 면접을 통과한 사람이 광고를 올린 편집자에게 장문의 메시지로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알려왔다.

 

첫째, 우선 발견한 사실은 편집자의 능력이 본디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종이책 출판 영역에 있던 사람은 인터넷 지식공유서비스 영역에서도 활약할 수 있습니다. 지식공유서비스의 핵심도 콘텐츠이고 이 부분은 종이책 출판 영역에 있던 사람의 강점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쪽은 자본도 있고 기술도 있지만 콘텐츠를 파악하는 우수 인재를 길러내기는 어렵습니다.
셋째, 높은 급료로 인해 지식공유서비스 영역이 종이책 출판업 인재를 급속히 흡수할 것이며 종이책 출판업은 이를 거의 막지 못할 것입니다.넷째, 현재 출판 메커니즘으로는 이미 좋은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종이책 출판이 직면한 최대 위기입니다.

 


중국 최대의 지식공유플랫폼 즈후의 홈페이지


중국 최대의 지식공유플랫폼 즈후의 홈페이지

 

이 메시지를 받은 편집자는 마지막으로 결론짓길, “지금은 편집자에게 가장 좋은 시대이며, 더욱이 이 시대는 막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막 시작되었다”라고 한 이유는 위의 글이 써진 것이 2017년이고, 위의 글에 언급된 ‘지식공유서비스’가 유료화와 투자 유치를 통해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한 시점이 2016년이기 때문이다. 이 신생 산업을 주도하는 업체로는 지식공유플랫폼 즈후(知乎), 온라인강연업체 더따오(得到), 종합오디오플랫폼 히말라야FM 등이 있고 이들과 경쟁하는 업체들도 무수히 많다. 그리고 즈후와 히말라야FM은 2020년 나란히 200억 위안(약 3조 4,000억 원)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았고 더따오의 시장 가치는 2019년에 100억 위안(약 1조 7,000억 원)을 돌파했다.

 

 

공교롭게도 앞에서 언급한 기사 〈전통 도서 편집자에게는 또 다른 생존의 길이 있다!〉에서 권하는 ‘또 다른 생존의 길’ 역시 ‘지식유료서비스’이다. 이 기사는 2018년에 발표되었으므로 위의 편집자가 쓴 글보다 1년 뒤이고 지금 2020년에 이르러서는 중국 지식공유서비스업의 덩치가 훨씬 더 커졌다. 그리고 그만큼 더 많은 ‘편집자’가 필요해졌다. 고객이 주문한 전문 분야 지식을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도, 강연 녹취물이나 저서를 강연 텍스트로 각색하는 것도, 소설을 오디오크리에이터 낭독용 대본으로 만드는 것도 편집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밖에 콘텐츠의 발굴, 기획, 마케팅 전 분야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요구되므로 이 신흥 산업 분야에서 편집자는 ‘높은 몸값’에 상응하는 활약을 펼칠 수 있다. 출판사에서 노하우를 쌓은 베테랑 편집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처럼 오늘날 중국 출판 편집자에게 지식공유서비스 분야는, 본인의 취향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능력과 경험을 모두 활용해 생존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제2의 활동 영역으로 떠오른 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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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에서는 웹진 〈출판N〉의 해외통신원들이 현지 최신 동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합니다.

김택규(숭실대학교 중어중문과 겸임교수)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숭실대학교 중문과 겸임교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교 대학원과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중국어 출판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번역가 되는 법(유유)』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중톈 중국사(글항아리)』, 『죽은 불 다시 살아나(삼인)』, 『암호해독자(글항아리)』 등 5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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