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25  202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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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출판 산업의 팬데믹 대응

 

 

 

배동선(KPIPA 수출코디네이터)

 

2021. 9.


 

인도네시아 도서 시장은 대체로 몰과 쇼핑센터에 입점한 대형 서점들이 신간 도서를, 시장통에 있는 서점에서 중고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2020년 3월 2일 현지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후 3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 2개월 넘게 몰들이 폐쇄되면서 오프라인 서점들도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간신히 영업을 재개한 후에도 서점 손님들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2021년 6월 델타 변이가 주도한 감염 폭발로 7월 3일부터 8월 10일까지 다시 한 달 남짓 문을 닫으면서 그간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발생 추이(2021년 8월 12일 현재)1)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발생 추이(2021년 8월 12일 현재)


 

 

1)
출처: 인도네시아 방역 당국 홈페이지 https://covid19.go.id/peta-sebaran

 

코로나19 상륙 11개월 만인 2021년 2월 3일 누적 확진자 1백만 명, 약 5개월 후 6월 21일 2백만 명, 다시 1개월 후인 7월 22일 3백만 명을 넘기며 감염 확산에 가속도가 붙었다. 7월 이후 전국적으로 강력한 이동 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모양새지만 8월 12일 누적 확진자는 이미 380만 명에 육박했고 열흘 넘게 하루 1,500명을 넘나드는 사망자를 내고 있다.

 

타격과 피해

 

팬데믹 기간 동안 전체 출판사의 58.2%가 50% 이상, 29.6%가 30~50%의 매출 감소를 겪었다. 오프라인 서점 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중소 규모 출판사들은 팬데믹 초창기부터 자금난을 겪으며 크게 흔들렸다. 국가도 도서 구입 규모를 줄여 2020년 71.4%의 출판사들이 교육부나 기타 정부 부처, 국립 도서관으로부터 도서 주문을 받지 못했다.

 

한편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입 서적 전문 서점 악사라(Aksara)의 끄망 소재 본점과 스나얀 플라자(Senayan Plaza)에 있는 일본계 키노쿠니야(Kinokuniya) 서점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2020년 12월 말과 2021년 3월 말 각각 문을 닫은 것은 서점 산업을 직격한 팬데믹의 위력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서점 체인들은 2010년대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며 여러 지점을 냈다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팬데믹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이들 서점이 문을 닫자 주요 고객을 이루는 자카르타 중산층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오프라인 서점 시대가 몰락해 간다는 정서가 한때 고조되기도 했다. 악사라 서점은 끄망 지역에 일부 흔적만 남긴 채 현재는 온라인 서점으로 변모했다.2)

 

 

2)
악사라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 https://aksara.com/

 

여러 개의 출판사와 신문사를 보유한 꼼빠스-그라메디아 그룹(Kompas-Gramedia Group)의 현지 최대 서점 체인 그라메디아는 전국 주요 몰과 쇼핑센터에 120개 서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 2020년 10월 자카르타에서 가장 목이 좋은 따만 앙그렉몰(Mall Taman Anggrek) 지점 임대 연장을 하지 않고 철수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 이는 출판업계의 대기업조차도 팬데믹에 고전하고 있다는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중소 규모의 오프라인 독립 서점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20년 12월 문을 닫은 악사라 끄망점


2020년 12월 문을 닫은 악사라 끄망점

 

그런 와중에 도서의 불법 복제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54.2%의 회원사들이 온라인에서 불법 복제되어 거래되는 자사 출판물을 발견해 보고했다. 실제로 또코페디아(Tokopedia), 쇼피(Shopee), 블리블리(Blibli), 부까라빡(Bukalapak)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서조차 불법 복제된 도서가 판매되는 것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서 출판 산업의 대응과 변화

 

팬데믹이 도서 산업에 가져온 가장 분명한 변화는 산업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마지막 오프라인 도서 행사는 2020년 3월 자카르타 인근 BSD 지역에서 개최된 빅 배드 울프 북바자(Big Bad Wolf book bazaar)였고 이후 거의 모든 도서 행사들이 온라인에서 열렸다. 현지의 대표적인 도서 이벤트인 인도네시아 국제도서박람회(IIBF)도 2020년 9월 28일~10월 7일 기간 동안 제40회 행사를 비대면으로 개최했다.

 

온라인을 통한 도서 홍보와 다수의 웨비나, 작가와의 온라인 만남도 확대되어 백세희 작가, 정문정 작가, 『샤인』을 출간한 소녀시대 출신 제시카 정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하루 출판사(Penerbit Haru)와 그라메디아를 통해 온라인에서 현지 팬들을 만났다.

 

오프라인 도서 매출이 멈추면서 디퍼블리시(Deepublish), 부꾸끼타(Bukukita), 부까부꾸(Bukabuku), 그롭마트(Grobmart) 등 온라인 서점 또는 도서 중심의 온라인 쇼핑몰들이 급속도로 활성화되었다. 그라메디아, 미잔(Mizan) 그룹 같은 대형 출판사들은 물론, 중소 규모의 출판사들 역시 자체 온라인 서점을 개설 또는 확대하거나 앞서 언급한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과 손잡고 도서 할인 판매 행사를 하는 등 온라인 의존도를 더욱 높여갔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자책(e-book) 수요도 크게 늘었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관리하는 국가도서원(Perpustakaan Nasional-Perpusnas)에 2020년 한 해 동안 총 14만 4,793개의 ISBN이 발급되었는데 이는 2019년의 12만 3,227개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2020년 ISBN 중 전자책은 2만 2,050개였으며 올해엔 5월까지 이미 1만 3,019개의 전자책 ISBN이 발급되어 이 추세대로라면 작년 물량을 간단히 넘어설 전망이다. 전자책 출간이 늘어나는 것은 예전처럼 전자책 전문 출판사들이 추가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 출판사들이 디지털 도서 출간을 늘렸기 때문이다.3)

 

 

3)

 

출판과 판매 방식에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2020년 하반기부터 기존의 출판 계획을 전면 수정하거나 보류하고, 확실하게 매출이 보장되는 유명 작가의 작품 출간에 주력했다. 『82년생 김지영』 번역본 출간을 담당한 그라메디아 편집자 줄리아나 탄(Juliana Tan)은 한국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의 경우 한류를 타고 현지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한국 아이돌이 추천한 한국 내 베스트셀러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고 밝혔다. 또한 프리오더(pre-order)를 보다 광범위하게 운영해 자금 회전율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2020년 3월 처음 오프라인 서점 영업이 중단되고 출판사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그라메디아는 문을 닫은 서점에 직원들을 출근시켜 전화 판매 주문 배달 서비스를 시도했고 미잔 그룹은 재택근무에 들어간 편집인들을 대거 온라인 도서 프로모션에 투입하기도 했다.

 

요원한 정부 지원 요청

 

일부 대형 출판사들이 기민하게 상황에 따라 변화를 모색하고 자구책을 마련해 위기 타개를 도모하고 있는 한편, 대다수의 중소 규모 출판사들이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사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가 나서서 다음과 같은 단계별 구제책을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4)

 

 

4)
출처: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 홈페이지 https://www.ikapi.org/

 

1) 구조 단계

 

교육문화부나 정부의 타 부처 또는 정부 산하 단체들의 도서 구매 활동 재개
정부조달시스템에 출판사 참여 허용해 정부 기념품으로 국산 도서 채택
공공 도서관, 학교 및 시민 독서 공원 용도의 도서 조달
은행 대출 조건 완화
도서 출판을 위한 종이, 인쇄용 잉크 및 도서 인쇄의 부가세 면제
작가 소득세 면제 방식의 세금 지원
책에 붙는 부가세 면제
도서 불법 복제와 판매 근절

 

2) 회복 단계

 

인쇄비 지원 및 작가 인세 지원 형태의 출판사 지원
출판사의 도서 마케팅 프로그램 비용 지원
학교 대면 학습 재개 전 출판 서브섹터 창의경제 종사자들의 백신 접종(이 부분은 2021년 7월까지 상당히 진행됨)

 

3) 정상화 단계

 

출판사의 도서 전시회 개최 지원
해외 지적재산권(IP) 판매를 위한 국제도서전 및 도서 에이전트 육성 지원
시장 개발 및 불법 복제 근절을 위해 IKAPI의 온라인 시장 인프라 개발 지원
불법 복제 대응팀 구축과 불법 복제범과 싸우는 저작권 보유자들 지원
도서 불법 복제 근절을 위해 지적재산권 법령의 관련 시행령 제정

 

IKAPI는 이러한 취지의 지원 요청을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해 왔고 정부 당국도 대체로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에 거의 모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1차 구조 단계의 요구 사항조차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도서 출판 산업, 서점 산업 단위의 대책은 정부 지원이 요원한 상황이므로 결국 개별 기업 차원에서 가용한 자원과 아이디어를 모두 동원해 온라인을 지향하고 프리오더, 전자책에 더욱 치중해 각자도생하고 있는 셈이다.

 

탄탄한 기반을 닦은 대기업이나 중견 출판사들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서 살아남겠지만 중소 출판사들과 영세 독립 서점들에겐 어쩌면 특단의 대책과 함께 운이 더욱 필요한 상황일 듯하다.

 


배동선

  

배동선(KPIPA 수출코디네이터)

인도네시아 27년 차 향토 작가이자 번역가.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아모르문디, 2018)』, 『막스 하벨라르(시와진실, 2019)』 공동 번역, 『Komik Horer Nusantara(Gramedia, 2020)』 스토리보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인도네시아 한인회, 2020)』 집필팀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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