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37  202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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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출판 동향]
코로나 블루와 서점의 옐로

 

 

 

노국희(KPIPA 미국 수출 코디네이터)

 

2022. 10.


 

지난해 여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며 그동안 출입할 수 없어 기억으로만 재생시켰던 공간을 다시 찾아다니고 있다. 동네서점도 그중 한 곳으로, 당시 사뭇 달라진 공간의 물리적인 변화에 다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서점 안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들이 사라졌고, 출입문 앞에서 직원이 서점 내 인원수를 조절하면서 사람들을 입장시키고 있었다. 서점 입구에 매대를 마련하고 온라인이나 전화로 미리 구입한 도서를 찾아가는 방식으로만 소통하는 곳도 여전히 있었다. 동네의 작은 서점들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다시 문을 열어서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어떤 변화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시장의 환경은 여전히 서점의 역할과 기능을 재고하게 만든다. 출판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공공연한 기우를 뒤로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찾는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독서 인구가 증가하고 타인과의 대면 만남이 줄어든 시간에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심리학과 문학 서적을 찾아 읽게 되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낯선 동네를 거닐다 그곳 서점의 분위기에 따라 그 동네의 커뮤니티를 짐작할 수 있다. 서점 직원이 손 글씨로 깨알같이 메모한 추천사를 추천 도서 아래 포스트잇에 붙여 놓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서로 나누며 서로에게 다음 독서 목록을 권하는 풍경을 만나곤 한다. 이달의 책을 선정해 북클럽을 운영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서점의 주요 기능이 도서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에서 지역 사회 내 문화 공간의 구심점으로 옮겨가는 트렌드를 읽는다. 이벤트의 문화 콘텐츠를 채우는 방향에 따라 서점의 특색이 만들어지고 관객들은 향후 서점의 후원자가 되어 오래도록 서점이 동네의 일부로서 자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Bird & Beckett Books & Record의 외관과 콘서트 모습

Bird & Beckett Books & Record의 외관과 콘서트 모습

 

 

지난 2년 동안 온라인을 무대로 이루어지던 이벤트들이 서서히 대면 행사로 돌아오고 있다. 이전에 비하면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유튜브 채널이나 줌 화면이 대체할 수 없는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도시의 외곽 주거 지역에 자리한 ‘Bird & Beckett Books & Record’ 중고 서점의 경우, 매주 주말 영업시간이 종료되면 서가를 조금씩 밀어 옮겨 마련한 사이 공간에 뮤지션들의 무대를 꾸민다. 서른 개 남짓한 접이식 의자가 배열되는 일종의 게릴라 콘서트이다. 비정기적으로 낭독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낭독회가 끝난 후에는 참석한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오픈 마이크(open mic)’가 즉석으로 뒤따른다. 빈 종이가 관객석으로 넘어오면 이름을 적어 참여 의사를 밝히면 된다. 한 명 한 명 사회자가 호명하면 무대로 나와 자신의 습작시를 발표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이면서 모두가 작가인 이상한 열기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서점이 확장되어 가는 체험을 했다.

 

City Lights Booksellers & Publishes 시인의 방

City Lights Booksellers & Publishes 시인의 방

 

한강 작가의 영문 번역 도서(좌)와 권여선, 신경숙 작가의 영문 번역 도서(우)

한강 작가의 영문 번역 도서(좌)와 권여선, 신경숙 작가의 영문 번역 도서(우)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한가운데, 이름 그대로 오랜 등대처럼 자리한 ‘City Lights Booksellers & Publishes’의 경우, 여전히 온라인 낭독회를 유지하고 있다. 서점 외부 골목길, 50미터 남짓한 잭 케루악 골목(Jack Kerouac Alley)에서 다양한 낭독 행사를 열기 위해 조금씩 준비 중이라고 한다. 온라인 서점의 신속한 편리성과 비교할 수 없는 동네서점만의 매력은 우연성에 있을 것이다. 서가에서 책등을 살피다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게 되거나, 특정 작가의 책을 찾으러 갔다가 인접해 배열된 이름 모를 작가를 발견하게 될 때 수고와 발품에 대한 비밀스러운 선물을 받은 듯 여겨진다. 지난 연말에는 서점 앞을 지나가다 좋아하는 작가의 부고를 유리문의 작은 메모 글에서 접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책을 읽는 것으로 추모의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동네서점의 방식으로 가능한 소통의 영역이 있다. 현재 그 접점의 자리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에텔 아드난(Etel Adnan) 작가의 부고(좌), Wolfman Books 내부(우)

에텔 아드난(Etel Adnan) 작가의 부고(좌), Wolfman Books 내부(우)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자리한 ‘Wolfman Books’ 서점은 코로나19 봉쇄 초기에 문을 닫았다. 이곳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작가들과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고 이민자와 성소수자들을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던 장소였다. 지난해 1월, ‘Moments Cooperative and Community Space’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걸고 재개관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운영의 방점을 출판에서 문화 운동으로 옮기겠다는 야심 찬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관련 도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유통하며, 기존 서점 공간을 오클랜드에 기반을 둔 작가들 중 흑인과 성소수자들에게 우선권을 제공해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말에는 지역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문화 저변을 넓혀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사회의 분열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와중에 불거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의 렌즈를 내밀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미국도서관협회(The American Library Association)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학교 도서관에서 흑인 작가와 성소수자들 작가의 신간 도서를 입고하기를 꺼리는 사례가 1,579건 적발되었다고 한다.

 

Sour Cherry Comics의 외부와 내부

Sour Cherry Comics의 외부와 내부

 

 

샌프란시스코 라틴계 커뮤니티 지역에 ‘Sour Cherry Comics’라는 새로운 공간이 지난해 말부터 거리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그림책과 만화, 그래픽 노블을 중심으로 다루는 이 공간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공간 운영자의 오랜 염원을 실현시킨 곳이다. 이곳에서는 인근에 거주하는 퀴어 작가들의 소품집과 독립 출판사들이 펴낸 진보 성향의 도서들 등 기존의 다른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여성 중심의 만화 전문점’을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바느질 등의 공예 교실, 글쓰기와 드로잉 워크숍 등 지역 사회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활동들 또한 열리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Medicine for Nightmares 외관

Medicine for Nightmares 외관

 

 

남쪽으로 도보로 30분 정도 더 내려가면 ‘Medicine for Nightmares’라는 이름을 가진 서점을 만날 수 있다. 기존에 다른 이름이었던 오래된 서점이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라틴계 작가의 도서를 비중 있게 소개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낭독회를 정기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서점 뒤편에 갤러리 공간도 함께 운영하며 시각 예술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한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과의 협업도 꾀하고 있다. 이름을 듣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서점이 아닐까 싶다. ‘제대로 된 나만의 처방전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섞인 기대감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면서.

 

“독서란 위기의 순간에 하는 겁니다. 작가란 삶의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죠. 마치 친구처럼요.” 어느 유명 작가는 말했다. 대안 공간으로서의 서점의 미래를 그려본다. 다양한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도시일수록 동네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갖는 서점을 만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서점이, ‘코로나 블루’로 통칭되는 개개인의 저마다 다른 위기감들을 공간의 문턱을 지나 편안히 내려놓고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을까. 어스름이 찾아오는 저녁에 반 고흐가 서점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싶다고 말했듯이. 어둠의 한가운데에 있는 빛처럼 보일 것이라고.

 

 

 

〈글로벌 출판 동향〉 출처

https://www.kpipa.or.kr/export/businessView.do?board_id=140&article_id=131971&pageInfo.page=&type_id=&search_cond=&search_text=&list_no=289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등 1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KPIPA 수출 코디네이터'의 [글로벌 출판 동향] 보고서 중 일부를 공개합니다.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바로가기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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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희 KPIPA 미국 수출 코디네이터

SOYUZ BOOKS 대표이다. 책과 도시를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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