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37  202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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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엔데믹,
2022 예테보리 도서전의 익숙하고도 새로운 시작

 

 

 

오승현(출판사 글로연 대표)

 

2022. 10.


 

2022년 9월 22일부터 4일간, 제38회 예테보리 도서전이 열렸다. 위기의 팬데믹을 통과하며 2020년에는 완전 비대면, 2021년에는 대면과 비대면을 혼합하여 연 이후 처음으로 펜데믹 이전과 같이 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스웨덴에서 수도 스톡홀름 다음으로 큰 도시인 예테보리(Göteborg)는 지난 2021년, 스웨덴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에 선정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매년 열리는 도서전과 시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한 독서 진흥 사업이 자리하고 있다.1) 노벨문학상의 종주국인 스웨덴에서 문학으로 가장 인정받은 도시인 예테보리를 빛내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의 문화 행사, 예테보리 도서전이 4일간 어떻게 열렸는지 만나보자.

 

도서전 입구에서 관람객들이 줄지어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도서전 입구에서 관람객들이 줄지어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으로 도서전을 찾은 사람들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일상으로 회복된 듯 활력이 넘쳐 보였다. 11,000㎡ 크기의 스웨덴 박람회장(Svenska Mässan)에 40개국에서 온 800여 곳 이상의 전시 참가자가 저마다의 부스에서 지난 3년간 직접 선보이지 못했던 책들을 돋보이게 전시하여 눈길을 끌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흥겨운 음악과 함께 도서전이 시작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드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도서전의 개막을 알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드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도서전의 개막을 알렸다.

 

 

이번 도서전은 예년에 비해 독자와 긴밀하게 진행되었다. 2019년 이전의 도서전에서는 첫째 날인 목요일과 둘째 날인 금요일 오후 2시까지는 출판사의 저작권 트레이드를 위해 일반 독자의 입장을 제한해온 반면, 올해는 모든 일정을 독자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체 방문객 수는 82,156명으로 2019년의 86,000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예테보리 도서전의 책임자 프리다 애드먼(Frida Edman)은 “많은 작가와 방문자, 멋진 분위기의 도서전 인테리어 및 세미나 홀 등 우리가 알고 있던 도서전을 다시 만들 수 있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입구, 사인회, 세미나 등에서 대기하는 긴 줄을 보며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도서전으로 오는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개막일인 목요일(좌)과 토요일(우)의 도서전 전경

개막일인 목요일(좌)과 토요일(우)의 도서전 전경

 

 

예테보리 도서전은 매년 세 가지 주제를 정하는데, 첫째는 특정 국가, 둘째는 이데올로기, 셋째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다. 올해의 주빈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이상으로 삼았던 공존과 연대의 “우분투-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를 기치로 삼고 22명의 시인, 작가, 학자 등의 문화 관련 종사자가 참가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학과 사회 문제 및 다양한 문화를 27개의 세미나를 통해 소개했다. 초대된 작가 중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약속』으로 2021년 부커상을 수상한 데이먼 갤것(Damon Galgut)도 있었다. 이들의 대화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와 문학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오늘날 어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했다. 또한 행사에서는 ‘우분투’의 정신으로 서로에게 귀와 마음을 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문학의 미래에 더더욱 주목하게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20년의 주빈 및 주제국으로 예정된 바였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이 미뤄진 올해에 다시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

 

‘우분투’를 기치로 삼고 매시간마다 관련 세미나가 진행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탠드

‘우분투’를 기치로 삼고 매시간마다 관련 세미나가 진행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탠드

 

 

두 번째, 이데올로기 분야의 주요 주제는 ‘기후 위기’였다. 도서전 조직위 위원인 안나 린넬(Anna Linell)은 “문학은 관련 연구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감정적 수준에 도달하게 한다.”라고 하며, 이 주제가 채택된 배경에 대해 말했다. 도서전 기간 동안 관련 이벤트로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바티칸의 피터 터크슨(Peter Turkson) 추기경 등이 참여하는 25개의 세미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는 전 세계의 작가, 연구원, 정치인, 활동가들이 도서전에 초대되어 기후 위기라는 큰 문제 앞에서 함께 나아갈 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보였다. 특히 기후 위기와 관련된 책 『The Climate Book』을 출간할 예정인 그레타 툰베리는 열정적으로 여러 세미나에 참여하여 기후 위기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며 독자들로부터 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좌)그레타 툰베리가 참가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100가지 외침’ 세미나 현장 (우)‘기후 위기와 화석 연료 이후의 사회’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좌)그레타 툰베리가 참가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100가지 외침’ 세미나 현장
(우)‘기후 위기와 화석 연료 이후의 사회’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출판업계 스스로가 산업 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초로 조사해서 발표했다는 점이다. 14개의 출판사, 48개의 서점, 2개의 인터넷서점, 3개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등 연간 스웨덴 도서 판매의 80%를 차지하는 총 67개 업체가 참여한 이 설문조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 도서 산업은 2021년 기준으로 39,254톤의 CO2e(이산화탄소 환산량)를 배출했는데, 이는 스웨덴 전체 배출량의 0.08%로 다소 미미한 양이긴 하다. 650g의 책 한 권은 3kg의 감자 또는 2개의 바나나에 해당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동일하다는 결론이었는데, 이번 결과를 두고 스웨덴출판사협회 회장인 예스퍼 몬탠(Jesper Monthán)은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스웨덴에서 출판 산업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예테보리 도서전 조직위는 전 세계 유명 작가들에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항의 표지판을 작성하도록 요청하는 ‘Hope Signs(희망 표지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희망 표지판은 도서전 디지털 자료실에서 내려 받아 개인 SNS 계정이나 시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노 로고(No Logo)』의 작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만든 희망 표지판

『노 로고(No Logo)』의 작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만든 희망 표지판

 

 

세 번째, 사회적 이슈로는 ‘범죄시간(Crimetime)’이 정해졌다. ‘범죄시간’은 범죄소설을 사랑하는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위해 스웨덴의 제주도라 할 수 있는 고틀란드(Gotland)에서 2015년에 시작된 축제인데, 2018년에는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개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범죄소설이 사랑받는 북유럽의 출판 동향에 부응하여 이번에 처음으로 도서전 주제에 선정되었다. 올해 주빈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디온 메이어(Deon Meyer)2)와 영국의 엘리 그리피스(Elly Griffiths)3)를 포함한 5인의 세계적인 범죄소설 작가가 초청되었으며, 23개의 관련 세미나와 행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범죄시간 애프터눈 티(Crimetime Afternoon Tea)’, ‘범죄시간 애프터워크(Crimetime Afterwork)’ 등의 행사가 열렸다. 그중에는 작가 지망생이 스웨덴 최고의 탐정 작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범죄시간 작문 학교’ 수업도 있어 범죄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열기는 범죄소설 시상식까지 이어졌는데, 2022 Crimetime Award 올해의 명예상4)은 2003년에 데뷔해 30여 개 나라에서 작품이 사랑받고 있는 오사 라르손(Åsa Larsson)이 수상했다.

 

2022 Crimetime Award 올해의 명예상 수상자, 오사 라르손

2022 Crimetime Award 올해의 명예상 수상자, 오사 라르손(출처: 예테보리 도서전 홈페이지)

 

 

그리고 2022년 3월에 ‘우크라이나의 목소리’가 도서전의 추가 주제로 정해진 바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달하는 데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뉴스에서 제공되는 것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목표로 특별공간이 마련되고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푸틴의 범죄가 불러온 공포를 설명할 단어들이 고갈됐다.”며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세계로 소리쳐 온 우크라이나의 국민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Andrej Kurkov), 러시아 문학은 푸틴과 공범이라는 주장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작가 옥사나 자부즈코(Oksana Zabuzhko)를 비롯한 6인의 우크라이나 작가들과 언론인들이 참여했다. 세미나 개막이 “문학은 우크라이나에 목소리를 준다.”로 시작된 만큼, 이번 도서전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여성, 교육, 시적 시간 여행, 푸틴과 러시아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끔 이끌었다.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들려준 공간, 우크라이나 스탠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를 들려준 공간, 우크라이나 스탠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팬데믹 이전의 마지막 대면 도서전이었던 2019년, 한국은 스웨덴과의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초청되어 예테보리 도서전에 처음 참가했다. 즉, 2022년 예테보리 도서전은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했던 2019년 이후 최초의 대면 행사인 것이다.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19년에는 소설가 한강을 비롯한 17인의 작가들이 도서전에 함께하며 20여 개의 세미나를 통해 스웨덴의 독자들과 만났다. 작가 한강의 북토크와 세미나는 몇백 석의 좌석을 가득 채우고도 대기 줄이 한참이나 더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2020년에는 백희나 작가가 스웨덴 국민이 수여한다는 어린이문학 최고의 상 중 하나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이하 ALMA)’을 수상했다. 이러한 강렬한 인상이 2022년 예테보리 도서전을 찾는 스웨덴 독자들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까? 사뭇 기대되고 궁금했다.

 

한국관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 ‘Books From Korea’라는 이름으로 설치, 운영하였는데, 출판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출판 킬러콘텐츠로 그림책, 성인문학, 만화·웹툰, 드라마 원작 장르소설·웹툰 등 4개 분야에서 85종의 도서를 선정해 아담한 공간에서 선보였다. 한국관을 찾은 해외 독자들은 특히 그림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어의 벽이 있으니 글이 위주인 다른 책들은 표지 이미지의 흡인력이 강렬할 때 눈길을 끄는 반면, 페이지가 짧고 그림이 위주인 그림책은 그 자리에서 보기에 적합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독자들에게 순간적으로 감동을 전해주며 한국 문학을 알리기에 안성맞춤인 장르임이 분명했다.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와 ALMA를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비롯한 37권의 한국 그림책을 본 해외 독자들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며, 책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몹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한국관 전경, 그림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그림책에 많은 관람객들이 관심을 보였다.

한국관 전경, 그림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그림책에 많은 관람객들이 관심을 보였다.

 

 

진흥원은 해외 도서전에서 줄곧 현장의 독자들과 우리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해 한국의 책과 작가가 더 잘 알려질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2022년 예테보리 도서전에는 이기훈 작가가 함께했다. 이기훈 작가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파멸에 이를 것임을 경고하며 미래, 과거,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이어낸 그림책 『양철곰』, 『빅 피쉬』, 『09:47』, 이름하여 ‘욕망 삼부작’을 지난 10년 동안 완성한 바 있다. 이번 예테보리 도서전의 주제인 ‘기후 위기’와 이기훈 작가의 작품 세계가 맞닿기에 현장에서의 울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될 수 있었던 이기훈 작가의 ‘라이브 드로잉 쇼’는 일 1회, 총 3회가 진행되었는데, 평균 1시간 이상이었음에도 자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는 독자들이 많았다.

 

프랑스에서 온 독자는 드로잉 쇼에 대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흡인력이 너무 강해서 몰입하던 중에 내면의 평화가 다가왔다.”라고 했으며, 스웨덴의 한 독자는 “(어떻게 봤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 듯 생각을 하다가) 너무 감동을 받아서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른 줄 몰랐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이기훈 작가의 작품에 매료된 프랑스관 디자이너 웨브 마크(Werb Mark)는 북토크와 워크숍, 그리고 라이브 드로잉이 펼쳐진 이틀 동안 계속 참관하며 프랑스에서 이기훈 작가의 드로잉 쇼를 열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버려지는 조각 벽지의 뒷면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기훈 작가는 드로잉 쇼에서 완성된 작품 중 하나를 골라 스톡홀름에 개관을 앞둔 주스웨덴 한국문화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하태역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는 도서전 첫날에 한국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을 격려했으며, K-콘텐츠의 주축인 한국의 책이 주스웨덴 한국문화원을 통해 스웨덴 사람들에게 더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진흥원은 도서전 기간 동안 도서 홍보 및 저작권 상담에 활용된 책들을 도서전 종료 후 주스웨덴 대한민국 대사관에 기증함으로써 한국어와 한국 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아가는 데 일조한다고 한다.

 

(좌)이기훈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쇼를 보여주고 있다. (우)하태역 주스웨덴 대사가 한국관 부스를 방문해 이기훈 작가와 한국의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좌)이기훈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쇼를 보여주고 있다.
(우)하태역 주스웨덴 대사가 한국관 부스를 방문해 이기훈 작가와 한국의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예테보리 도서전의 꽃은 도서전 기간 동안 방대한 수의 세미나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올해 도서전에서는 2022년 ALMA 수상자인 스웨덴의 그림책 작가 에바 린드스트룀(Eva Lindström)의 북토크를 비롯해 320개의 세미나가 진행되었는데, 도서전 대표 주제와 관련된 것도 있지만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다.

 

2022 ALMA 수상자인 에바 린드스트룀의 세미나 현장

2022 ALMA 수상자인 에바 린드스트룀의 세미나 현장이다.
독자를 몇 살로 생각하고 그림책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1951년생인 작가는 자신이 너무 재미있어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며, 그림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매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정된 시간에 320개의 세미나가 쏟아지기 때문에 관심 있는 세미나의 시간대가 겹치면 그중 하나만 고르고 나머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19년 이전의 도서전까지는 이런 경우에 그냥 안타까움으로 묻어둬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으며 사정이 달라졌다. 완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던 2020 예테보리 도서전에서 조직위는 모든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송출하는 북페어 플레이(Book Fair Play)를 도입해 무료로 제공했다. 비대면과 대면이 복합으로 열린 2021년에는 현장 관람객의 수는 6,709명에 불과했지만 북페어 플레이에는 도서전 기간 4일 동안 약 90,000회의 디지털 스트리밍 조회 수를 기록했다. 물론 이때부터는 북페어 플레이 티켓을 유료로 판매했다. 2021년 12월 31일까지의 총 조회 수는 158,000회에 달했으며, 2022년 1월부터 이전 해의 모든 세미나는 무료로 제공되었다. 또한 몇 개의 세미나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자막을 서비스하며 세계의 독자들과 언어의 벽을 넘어 만나고 있다. 올해는 도서전 개막과 동시에 7,300개의 북페어 플레이 입장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서전이 끝난 지금도 320개 세미나 중 220개를 북페어 플레이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물론 295크로나(한화 약 38,000원)를 결제해야만 가능하다.

 

대부분의 세미나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의 세미나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세미나 홀만 아니라 출판사 스탠드마다 작가의 북토크를 들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끊임없이 행사가 이어졌다.

세미나 홀만 아니라 출판사 스탠드마다 작가의 북토크를 들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끊임없이 행사가 이어졌다.

세미나 홀만 아니라 출판사 스탠드마다 작가의 북토크를 들을 수 있는 개성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끊임없이 행사가 이어졌다.

 

 

예테보리 도서전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 길게 생존할 수 있는 묘약을 북페어 플레이에서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거진 〈북툭(Boktugg)〉지의 솔베 달그렌(Sölve Dahlgren)은 “세미나 홀을 떠날 때의 느낌은 대부분 데자뷔였다. 나는 10년 동안 거의 모든 도서전에서 거의 같은 세미나를 들었다.”라며 도서전 세미나 주제의 대동소이함에 대해 비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테보리 도서전의 ‘북페어 플레이’는 기존 세미나가 영상으로 남아 끝없이 재생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세미나 주제를 더 격렬하게 찾아 나서야 하는 임무를 스스로에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솔베는 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의 도서 판매량이 2019년에 비해 20%가 줄었다며, 30개 참가 출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 도서전 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고했다. 이런 내용을 볼 때 예테보리 도서전은 국제도서전이라고 하기보다는 스웨덴 국내 독자들에게 좀 더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스웨덴 출판시장에 2019년까지 33권의 한국 책이 번역되었고, 그 이후에도 스웨덴에서 그다지 한국 책을 번역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우리 한국의 전략은 스웨덴 출판시장에 직접 찾아가 저작권 수출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스웨덴의 독자들을 만나고 한국과 한국의 책을 보다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스며드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테보리 도서전을 대하는 자세로 적합하게 여겨진다.

 

 

1)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공예 및 민속예술, 문학, 영화, 음악, 디자인, 미디어예술, 음식 총 7개의 분야를 가지고 있으며 2020년 기준 84개국 246개 도시가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창의성을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의 전략 요소로 하는 회원 도시 간 국제연대 및 협력강화’로 도시 간 협력 촉진을 목적으로 두고 있으며, 2004년 ‘문화성을 위한 국제연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각 도시의 문화적 자산과 창의력에 기초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도시들 간의 협력과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회원 도시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발전을 장려하고, 나아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문화다양성을 제고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2)
『페닉스』, 『악마의 산』, 『13시간』 등의 작가
3)
『낯선 자의 일기』의 작가
4)
Crimetime Award 올해의 명예상은 2016년에 제정되었다.

 

오승현

오승현 출판사 글로연 대표

출판사 글로연에서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영국 Anglia Ruskin University 대학원에서 출판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논문으로 ‘Ursula Nordstrom을 통한 그림책 편집자의 역할과 역량’을 썼다.
shoh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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