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  201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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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독일인 여름휴가여행엔 책이 기본

 

 

 

문항심(독일어권 번역가)

 

2019. 07.


 

독일인들에게 여름이란 휴가라는 말과 거의 같다. 만나는 지인들마다 이번 여름은 어디서 어떻게 보낼 거냐고 안부 대신 묻곤 한다. 그런 이들에게 이상한 의무감 같은 것이 있나 보다. 휴가를 갈 때는 꼭 책을 챙긴다. 평소엔 잘 안 읽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져갔다가 펼치지도 않고 그대로 가져올지언정 얇은 책 한 권은 들고 나선다. 멀리 낯선 곳에서 편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행위라든가 그 잠깐의 시간 자체를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 같다.

 

휴가가 짧아 독서는커녕 여기저기 관광 다니거나 물놀이만으로도 빠듯한 한국인과는 달리, 직장 내 여건만 괜찮다면 통으로 3주를 휴가 내도 괜찮은 이곳이니, 여름에 출판 매출이 치솟는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동네 서점이나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올여름 휴가에 읽을 책 목록〉같은 것이 널렸다. Dein Buch für den Urlaub(휴가 때 읽을 책)이라는 사이트까지 있다. 여기에는 휴가용 신간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순수문학, 연애소설, 추리물, 역사물, 유머집, 오디오북 등 장르별로 세분된 것은 물론 여행목적지에 따른 읽을거리도 추천해 준다.

 

‘그리스’를 입력해 보니 그리스 신화와 관계된 꽤나 흥미로운 책들은 물론 그리스 유적지 기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책들이 줄지어 뜬다. 여행은 계획을 세우고 짐을 쌀 때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공항 창밖으로 일렬로 늘어선 비행기들을 배경 삼아 벤치에 등을 기댄 채 책장을 넘길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여행 아닌가.

 

휴가와 책의 뗄 수 없는 관계를 간파한 한 항공사는 영리한 이벤트까지 시작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토마스쿡 항공그룹(Thomas Cook Airlines)의 자회사인 콘도르항공(Condor Flugdienst GmbH)이 이맘때 여는 〈Buch an Bord〉(비행기는 책을 싣고)라는 행사다. 올해로 3년째다. 콘도르 항공은 주로 휴양지나 피서지에 취항하는 관광지 전문항공사다. 7월과 8월 중에 콘도르 항공 승객은 집 근처 서점에서 무료로 주는 스티커를 여행가방에 붙이기만 하면 체크인 때 수하물을 1킬로그램 더 실을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책 한두 권은 더 넣을 수 있다. (가방에 들어 있는 게 실제로 책인지는 당연히 검사하지 않는다.)

 


책 없으면 여행도 없다” - 콘도르 항공의 <Buch an Bord>(비행기는 책을 싣고) 이벤트 포스터.


책 없으면 여행도 없다” - 콘도르 항공의 〈Buch an Bord〉(비행기는 책을 싣고) 이벤트 포스터.

 

콘도르항공사 집계에 따르면 2016년 여름에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용자 수가 3만5000명이었는데 작년에는 2000명 더 늘었다. 올해는 더 많은 여행가방에 스티커가 붙어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실제로 수하물 서비스는 받지 않고 여행가방에 스티커만 붙이고 여행을 떠난 사람이 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선전 효과로 이만한 게 있을까? 공항에서 여행가방에 붙은 예쁜 스티커를 보고 사람들은 저게 뭐지? 하며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스티커를 붙인 여행가방


스티커를 붙인 여행가방

 

콘도르 항공사는 수화물 서비스 마케팅을 소셜미디어와도 연계했다. 페이스북에서는 추첨을 통해 항공권과 함께 자그마치 30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선물하고, 인스타그램에서는 본인이 읽은 책 사진과 함께 행사명을 해시태그로 붙여 올리면 추첨해서 도서상품권을 준다.

 

콘도르 항공의 이 행사는 독일 서적유통연합회에서 주관하는 〈Jetzt ein Buch!〉(지금 당장 책 한권)이라는 캠페인의 하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콘도르 항공 스티커를 무료 배포하는 이유도 고객을 한 번이라도 더 서점에 들르게 하기 위함이다. 독일 서적유통연합회는 오프라인 서점 활성화를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할 뿐 아니라 페이스북에도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현재 4만5000명이 넘는 구독자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들의 포스팅을 보면 아기자기하고 정겹기 그지없다. 관리자인 서적유통연합회측이 각종 책에 관한 명언들로 만든 어여쁜 그림이나 참신한 배너들을 부지런히 만들어 올리는가 하면 회원들은 책에 관한 사소한 단상이나 각종 경험담, 자랑 섞인 사진들을 올리며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읽고 싶은 책이 금세 몇 권 생긴다.

 


콘도르항공의 <Jetzt ein Buch!>(지금 당장 책 한권) 캠페인의 여러 포스터 중 하나.<br> “딱 한 단락만 더 읽고....”라고 중얼거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남자의 모습이 나와 있다.


콘도르항공의 〈Jetzt ein Buch!〉(지금 당장 책 한권) 캠페인의 여러 포스터 중 하나.
“딱 한 단락만 더 읽고....”라고 중얼거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남자의 모습이 나와 있다.

 

근래에는 여행 때도 전자책 리더를 챙겨가는 경우가 느는 추세다. 간편한 단말기에 책을 여러 권 새로 채워 넣으면 마치 냉장고에 며칠 동안의 먹을거리를 그득 채운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렇지만 한가롭게 앉아서 빳빳한 책장을 넘길 때의 바삭거리는 느낌과 탄탄하고 반질거리는 겉표지가 한 손에 착 감길 때의 럭셔리한 기분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여행사인 오포도(opodo.de)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이 여행 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독서가 상위권에 들었는데,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느린 세상에 익숙한 독일인이라서 그런가 싶다. 오직 내용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편리한 전자책이든 아니면 한 권의 책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자체만으로 완전체를 이루는 직육면체의 물건이든 상관없다. 굳이 콘도르 항공이 아닌, 어느 저가 항공사라도 좋으니 이번 여름에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 책장을 넘기는 작은 호사를 나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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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항심(독일어권 번역가)

독일어 번역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공부하고 대학도서관에서 일한 뒤 지금은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살면서 독일어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소설 및 인문서 등 다양한 책을 번역했고 지금도 열심히 작업 중이다. 독일어권 작가들이 좀 더 재미있는 책을 많이 써서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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