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7  20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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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중국]
광저우 프랜차이즈 독립서점 1200북숍

 

 

 

김택규(중국어 번역가,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2019. 11.


 

국내에서 이른바 ‘독립서점’이라고 하면 보통 거대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주인의 독특한 취향과 전문적인 컨셉트에 따라 운영되는 지역의 작은 서점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우리처럼 독립서점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기는 하지만 의미는 사뭇 다르다.

 

우선 ‘독립’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국가 체제’, 더 자세히 말하면 국영 프랜차이즈 서점조직인 ‘신화서점’(新華書店)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 중국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의 오프라인 도서유통을 전부 신화서점이 담당했다. 1996년이 돼서야 비로소 민간인이 서점을 차려 운영하는 것이 법률로 허용되었다.

 

두 번째로, 중국의 독립서점은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일부 카테고리의 책들만 진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흔히 문학, 사회과학, 철학 위주여서, 상하이의 지펑(季風)서점, 베이징의 단샹제(單向街)서점 등 많은 독립서점들은 주로 소재 지역 지식인들을 위한 ‘인문학적 공공 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4, 5년 사이에 막대한 민간 문화자본이 투자됨에 따라 중국의 독립서점은 성격이 크게 바뀌어 체인화와 복합문화공간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팡숴(方所)서점, 시시포(西西佛)서점, 다중(大衆)서국, 옌지유(言几又)서점 같은 대형 독립서점들이 앞다퉈 대형 쇼핑몰마다 지점을 내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점포 내 도서 진열 면적이 절반도 안 된다. 도서보다는 문구, 생활용품과 식음료로 고객의 방문을 유도하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일견 독립서점의 진화인 듯하지만 달리 보면 지역의 인문학적 공공 공간으로서의 본래 기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필자가 방문한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의 프랜차이즈 독립서점 1200북숍은 중국 서점업계의 그런 추세에 기본적으로 부응하면서도 독립서점 본연의 가치는 저버리지 않은 독특한 업체였다.

 


1200북숍 로고



1200북숍 류얼시 사장


1200북숍 로고(왼쪽), 1200북숍 류얼시 사장(오른쪽)

 

인구 1500만의 대도시 광저우에 위치한 1200북숍은 명문 화난이공대(華南理工大) 출신의 젊은 건축 디자이너 류얼시(劉二囍)가 2014년 7월에 문을 열었다. ‘1200북숍’은 그가 타이완 유학 시절, 장장 1200킬로미터의 타이완 도보 일주 여행을 해낸 것을 기념해 지은 이름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2014년 초 타이완에서 돌아오자마자 중국 SNS 위챗에서 24시간 서점을 열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했고, 30명으로부터 무려 120만 위안(한화 약 2억 원)의 창업 자금을 모금했다.

 

당시 그는 서점의 주주가 될 그 30명에게 배당금 수익을 얻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서점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광저우의 지역 문화에 기여하는 데에만 만족하라고 미리 설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24시간 서점이어야 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계 최초의 24시간 서점은 타이완 청핀서점이며 류얼시 역시 그 서점을 방문해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4시간 서점은 어둠이 깔린 뒤, 그 도시에 등불과 머물 곳을 제공하죠. 일종의 위로이자 보호이기도 하고요. 타이베이에 그런 정신적인 등대가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광저우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 티위동로점(體育東路店) 한 곳에서 시작한 1200북숍은 현재 광저우 내에만 6곳의 점포가 있는데 그중 24시간 서점은 4곳이다. 나머지 2곳은 대형 쇼핑몰 안에 있어서 24시간 운영을 하기 힘들다. 1200북숍은 공통적으로 서점 내에 ‘무료 독서 코너’와 ‘카페 코너’를 두고 있으며, 밤을 새려는 고객은 양쪽에 다 머무를 수 있다. 물론 카페 코너에 앉아 있으려면 식음료를 구입해야만 한다.

 

그리고 따로 ‘소파방’이라는 작은 방을 마련해, 미리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내 허락을 얻은 여행객을 재우기도 한다. 이런 서비스는 류얼시 사장의 다음과 같은 경영 철학에서 비롯한 것들이다. “우리 1200북숍은 낮에 번 돈으로 밤에는 온정을 베푸는 서점으로서 인문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미까지 갖춘 장소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서점도 사업인 만큼 손해를 보며 무한정 ‘인간미’를 베풀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히도 류얼시 사장은 적절한 입지 선정과 지역 특성에 맞는 다원화 경영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계속 수익성을 유지하고 지점을 늘려가고 있는 듯했다.

 

우선 1200북숍의 모든 지점은 기본적으로 인구 유동량이 많은 시내 중심가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예를 들어 티위동로점은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 끄트머리의 소규모 3층 건물에 있었고, 중신후가점(中信後街店)은 대형 쇼핑몰 지하의, 후미지긴 해도 면적은 꽤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본 부족으로 중심가 대형 건물의 1층에는 못 들어가도 어떻게든 일정 규모 이상의 트래픽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를 구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

 

서점의 다원화 경영에 대해서도 류얼시의 철학은 확고했다.
“중국의 요즘 서점들은 보통 도서, 문화상품, 식음료, 이 3가지를 다 팔고 있습니다. 1200북숍은 한걸음 더 나아가 ‘3+X’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각 지점의 위치와 고객 집단의 성격에 따라 정해지는 테마가 바로 X입니다. 이 X는 술도 될 수 있고, 음악도 될 수 있고, 영화도 될 수 있고, 디자인도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1200북숍 지점들은 일반적인 도서, 문화상품, 식음료 외에 음악(라이브하우스), 숙박, 심야식당 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1200북숍 티위동로점 역시 식당을 겸하고 있었다. 세 개 층 중 1층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밤에는 맥주와 칵테일도 파는 듯했다. 이런 다원화 경영을 추진하려면 막대한 인테리어 비용을 감수해야만 하는데, 인테리어 공사는 본래 건축디자이너인 류얼시 사장과 그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맡았다. 심지어 서점의 의자와 테이블, 책꽂이까지 그들이 손수 제작한 듯했다.

 

가장 감명을 주는 것은 역시 서점의 본령인 북 큐레이팅이었다.
“우리 서점은 인문학 서점을 표방하고 있어서 무협소설이나 교재, 자기계발서는 팔지 않습니다. 문학, 사회과학,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상대적으로 디자인, 예술, 생활 방면의 책을 더 들여놓는 편입니다. 물론 베스트셀러도 좀 있지만 되도록 배제하려 합니다.”

 

티위동로점에 진열된 책들을 보니 그의 설명에 수긍이 갔다. 1200북숍의 도서 선정과 구매를 담당하는 스태프들은 꽤 유능한 듯했다. 중국 인문서 전문 기획자인 필자의 눈에도 꽤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이 신간과 구간을 가리지 않고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추천도서 코너에는 류얼시 사장이 직접 쓴 『서점의 온도』를 비롯한 3권의 저서가 쌓여 있었다. 사실 1200북숍의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은 그의 저서와 SNS 계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1200북숍이 지역 커뮤니티와 맺고 있는 강력한 결합력이었다. 필자가 방문한 1200북숍의 두 지점은 무료 독서 코너와 카페 코너 모두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손님은 대부분 20-30대 젊은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책과 노트를, 또 일부는 노트북컴퓨터를 펴 놓은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광저우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쇼핑가의 한 모퉁이에서 1200북숍은 젊은이들이 머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장소인 듯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7시, 그 젊은이들 중 다수가 티위동로점에서 열린 심야 좌담회에 참석했다. 1200북숍의 고정 프로그램인 이 좌담회는 매주 광저우 현지의 문화인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다.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SNS에서 생중계도 한다. 나는 그날 유유출판사 조성웅 대표와 함께 각기 류얼시 사장의 저서 『서점의 온도』 한국어판의 역자와 출판사 대표의 자격으로 그 좌담회의 손님이 되었고 밤 10시까지 청중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역시 젊었고, 책과 문화와 1200북숍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서점과 독자의 결합이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광저우 이외 다른 도시에도 1200북숍의 지점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어느 청중의 질문에 류얼시가 했던 답변이 떠오른다.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만약 다른 도시에 지점을 낸다면 제가 매일 그곳에 가보기는 힘들겠지요. 지금 제가 매일 우리 서점 6곳을 돌아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언제나 현장에서 우리 서점과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1200북숍 매주 심야 좌담회 현장



왼쪽부터 통역 이선 교수, 역자 김택규, 출판사 조성웅 대표 - 1200북숍 체육동로점 『서점의 온도』 이벤트


1200북숍 매주 심야 좌담회 현장(왼쪽), 왼쪽부터 통역 이선 교수, 역자 김택규, 출판사 조성웅 대표 - 1200북숍 체육동로점 『서점의 온도』 이벤트(2019.10.19)(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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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에서는 웹진 〈출판N〉의 해외통신원들이 현지 최신 동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합니다.

김택규(중국어 번역가,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1971년 인천 출생. 중국 현대문학 박사. 숭실대학교 중문과 겸임교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중국 저작권 수출 분야 자문위원. 출판 번역과 기획에 종사하며 숭실대학교 대학원과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중국어 출판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번역가 되는 법 / 유유〉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중톈 중국사 / 글항아리〉, 〈죽은 불 다시 살아나 / 삼인〉, 〈암호해독자 / 글항아리〉 등 50여 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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