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32  202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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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출판 동향]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대하는 독일 출판계의 자세

 

 

 

박소진(그래픽 디자이너, KPIPA 독일 수출 코디네이터)

 

2022. 5.


 

최근 유럽 국경에서 발발한 전쟁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독일 출판계를 대표하는 기관인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Börsenverein des deutschen Buchhandels)는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선포한 날, 독일 출판협회 평화상 위원회(Friedenspreis des deutschen Buchhandels)와 함께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두 기관은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분노하며, 러시아 국민과 그들의 대통령에게 유럽의 평화와 자유를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크라이나는 평화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는 이웃 국가 폴란드의 독서 진흥 위원회가 우크라이나의 도서를 구매하여 이를 폴란드로 이송할 자금을 위한 기부 활동을 지원하였다. 기부금은 도서 구매 및 배송에 쓰이고, 우크라이나의 어린이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분배될 예정이다.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의 대표이사 페터 크라우스 폼 클레프(Peter Kraus vom Cleff)는 우크라이나의 출판 업계 동료들이 5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도서전 참가 준비는 제쳐둔 채, 자신과 직장 동료, 가족을 보호하고, 중요한 예술 작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으며, 국가,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큰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소식을 공유하였다. 폼 클레프는 이들을 지지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써 독일 서점들이 서점 내부와 쇼윈도에 우크라이나 관련 도서들을 소개하고, 출판사들은 우크라이나 작가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국기 등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미지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공유하여 분명한 신호를 전해야 한다고도 전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유럽 출판인 연맹(Federation of European Publishers) 또한 ‘우크라이나는 창의적인 유럽 공동체의 일원으로, (연맹은) 이들과 연합하고, 지지하며, 유럽에서 열리는 도서전에서는 러시아 국가관을 운영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유럽 출판인 연맹의 차기 회의에는 우크라이나 출판사들과 서적상들이 주빈으로 초청되며, 앞으로의 구체적인 행동 사안들에 대하여 토론할 예정이다.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가 제작한 우크라이나 지지용 포스터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가 제작한
우크라이나 지지용 포스터
(출처: https://www.boersenverein.de/politik-
positionen/frieden-fuer-die-ukraine/
)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하거나 서점 쇼윈도에 사용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지지용 이미지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하거나 서점 쇼윈도에 사용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지지용 이미지
(출처: 독일 출판 서적상 협회(Börsenverein)
https://www.boersenblatt.net/news/literaturszene
/wir-bewundern-euren-mut-230847
)

 

올해에도 취소된 라이프치히 도서전을 대신하여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행사들 또한 우크라이나 지지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며, ‘연대에의 문학 행사’를 개최했다. 3월 17일에 라이프치히 독일 문학 협회(Deutsches Literaturinstitut Leipzig)에서 열린 ‘종이로 만든 다리(Eine Brücke aus Papier) 낭독회’에는 독일과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함께 참가하였으며, 누구나 무료로 방문할 수 있었다. 이틀 후인 19일에는 라이프치히에서 유럽의 문화 분야 종사자들과 지식인들이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는가?(Neuordnung Europas?)’ 프로그램을 통하여 현 상황과 이 전쟁이 유럽의 문화 및 지식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이 행사는 라이브로 스트리밍되었다. 한편, ‘뮌헨 문학의 집(Literaturhaus München)’에서는 온·오프라인으로 우크라이나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한 명인 옥사나 사부슈코(Oksana Sabuschko)의 데뷔 소설 『우크라이나식 성교에 대한 현장 연구(Feldstudien über ukrainischen Sex)』와 함께, 정치와 모국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잊혀진 비밀의 박물관(Museum der vergessenen Geheimnisse)』, 『고뇌의 행성(Planet Wermut)』, 『공포에 대한 긴 이별(Der lange Abschied von der Angst)』을 소개한다. 현장 방문과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은 모두 무료로 진행되었지만 기부도 가능했다. 기부금은 뮌헨 시가 자매 도시인 키이우와 우크라이나인을 지원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스투트가르트에서도 전 러시아 특파원이자 우크라이나 전문가인 역사가 칼 슐로겔(Karl Schlögel)이 독일어권 국가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작가 및 관련자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와 서로의 글을 나누었다. 이웃 나라 스위스의 ‘바젤 문학의 집(Literaturjhaus Basel)’에서도 우크라이나 작가 두 명과 동유럽 전문가가 대화를 나누며, 대화 후에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인 세르게이 로스니차(Sergei Loznitsa)의 영화 〈마이단(Maidan)〉이 상영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2013년 키이우의 마이단 광장에서 벌어졌던 시민 혁명의 모습을 공유했다. 본 행사의 입장권을 통한 모든 수익은 우크라이나 원조에 사용되었다.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도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는 지속된다. 베를린 소재의 트라반텐 출판사(Trabantenverlag)는 2월 27일에 ‘전쟁에반대하는시’라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누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쟁에반대하는시(#AntiKriegsLyrik) 해시태그와 함께 시 형식으로 표현하여 공유할 수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만드는 목소리를 모으기 위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파비안 레오나드(Fabien Leonhard)는 모인 시 중 몇 편을 선별하여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작년에 같은 형식을 통해 락다운을 주제로 1,400여 편의 시를 모았으며, 일부를 출간한 바 있다. 시를 쓴 인물들 중에는 유명한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시태그 #전쟁에반대하는시 프로필 이미지 스크린샷


해시태그 #전쟁에반대하는시 프로필 이미지 스크린샷
(출처: https://www.boersenblatt.net/news/instagramprojekt-antikriegslyrik-229459)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흐름만큼이나 러시아를 제재하는 세계적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네슬레, 테슬라, 삼성, 도이체 텔레콤 등 자동차, 소매, 식품, 오락, 기술, 재정, 테크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러시아에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2022년 3월 10일 기준)

 

이에 더하여, 네 명의 유명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전 세계의 문학 관련 협회에 ‘러시아 도서에 대한 세계적인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러시아의 침공 때문에 우크라이나 출판 업계 종사자들은 본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러시아 출판업 관련자들 또한 같은 상황이어야 공정하다는 의견이었다. 우크라이나 문학 협회와 펜(PEN)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북 아세날(Book Arsenal) 등도 전 세계에 러시아 도서와 출판사를 공동 배척해달라며 목소리를 내었다.

 

독일에서는 러시아인에 대한 적대감이 일부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독일 출판계는 문학과 예술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독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익 대표 단체(IG Meinungsfreiheit)’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만,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요구한 ‘러시아 도서에 대한 세계적인 보이콧’에는 응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의견을 발표하였다. ‘독일은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가능성을 통하여 러시아를 제재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독일 출판계가 우크라이나 도서를 후원하는 데에 모든 힘을 다하겠지만 러시아 도서에 대한 완전한 보이콧에 대한 요구는 ‘매우 놀랍다(erschreckend)’’고 표현하였다. ‘표현의 자유 이익 대표 단체’의 대변인인 마깃 케털레(Margit Ketterle)와 미햐엘 렘링(Michael Lemling)은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의 자유를 가져야 하며, 작가의 국적이나 출판사의 소재는 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다. 또한, ‘독일 서점에서 소개되는 러시아 도서는 푸틴의 프로파간다나 전쟁 옹호와는 관련이 없으며, 문학과 예술의 자유는 전쟁 시기에도 도구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반하여 보이콧을 호소한 우크라이나의 문학 협회와 작가들은 ‘러시아의 이야기’는 푸틴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러시아 도서에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러시아의 일부이고,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주권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에서의 전시를 취소한 프랑스의 마티스 미술관의 결정에 대하여 중국의 환구시보는 ‘예술 교류는 정치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마티스 미술관의 결정에 대하여 비판하기도 하였다. 독일 사회는 각 개인의 의견을 말할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전쟁 옹호자이건 전쟁 비판자이건 그야말로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공개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다. 때문에 ‘표현의 자유 이익 대표 단체’는 위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러시아에서도 전쟁에 대하여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러시아 아동 도서 작가들과 삽화가들도 푸틴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어 전쟁을 종결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부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무자비하게 대응하는 러시아 내부 상황을 생각하면 이들의 목소리는 마음을 울릴 정도로 용감하며 감동적이다. 이에 대하여 독일어권의 작가들과 삽화가들 또한 그들의 공개서한에 같은 뜻을 표하였고, 12개의 독일 작가 협회와 232명의 독일 작가 및 삽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발표하였다. 또한, ‘러시아는 전쟁에 반대하는 선을 긋는다(Russian Scribes Against the War)’ 공개서한에도 약 1,600명의 러시아 출판계 종사자가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서명했다. 이들의 성명은 ‘우리, 즉 러시아 출판사들, 서적상들, 편집자들, 번역가들, 비평가들, 삽화가들, 디자이너들, 식자공들, 교정자들, 인쇄자들, 도서관 사서들은 러시아의 연방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에 반대한다. … 전쟁은 범죄이며, 인간의 삶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전쟁은 멈춰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었다.

 

뉴스 통신사 로이터가 덧붙이기로는 ‘러시아에서 행해지는 모든 형태의 시위나 항의는 팬데믹 관련 조치라는 명목으로 불법이 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침략에 항의하는 수천 명의 러시아 시민들이 구금되었다’고 전하였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연일 뉴스에 우크라이나가 중점적으로 보도되자 독일 독자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독일 출판 분야 전문지 ‘뵈어젠블랏(Börsenblatt)’은 우크라이나 소설 10편을 추천하였다. 그중 두 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바 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Andrej Kurkow)의 『회색 벌(Graue Bienen)』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양봉을 하며 모든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는 한 양봉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벌들을 안전하게 키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샤 마리아 잘츠만(Sasha Maria Salzmann)의 『인간의 모든 것은 훌륭해야 한다(Im Menschen muss alles herrlich sein)』는 변환의 시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삶의 방향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고르바초프의 체제 개혁 정책, 독일의 현재 모습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 문학과 실용서를 전문으로 다루는 뒤셀도르프 소재의 서점 비바부체(BiBaBuZe)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분쟁의 배경을 알려주는 실용서 추천 목록을 전하였다. 목록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전선에 보내진 여성들의 실화를 담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Der Krieg hat kein weibliches Gesicht)』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부패한 정부에 대항한 ‘예우로마이단(Євромайдан)’ 시위부터 친러시아 분리파나 내부 정세에 밝은 기자들이 쓴 도서들이 포함되었다.

 

독일 출판계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이 오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출판계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관련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며 대응하고 있을지에 관심이 간다. 이 슬픈 계기를 통해 아직 한국에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 작가들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로벌 출판 동향〉 출처

https://www.kpipa.or.kr/export/businessView.do?board_id=140&article_id=130342&pageInfo.page=&type_id=&search_cond=&search_text=&list_no=229

 

 

 

 

 

[글로벌마켓 리포트]에서는 미국·유럽·아시아·중남미 등 13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KPIPA 수출 코디네이터’가 현지 출판 시장 정보를 매월 정기적으로 수집하여 전합니다. 보다 더 자세한 리포트는 ‘출판수출지원-글로벌수출동향’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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