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46  202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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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자책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
해외 도서관에 전자책의 상호대차 권리를 허(許)하라

 

 

 

이효경(워싱턴대학 한국학 사서)

 

2023. 08.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자책 이용이 급속도로 활발해진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해외에서도 한국 전자책 공급에 대한 관심이 날로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라는 특수성 때문에 한국 전자책을 이용함에 있어 부딪히게 되는 장애가 적지 않다. 이 기회를 통해 해외에서 한국 전자책을 이용함에 있어 어려운 점들을 함께 고민해 보고, 더 나아가 해외의 대학도서관에서는 전자책을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모범적 모델 방안들을 소개해 향후 한국 전자책의 세계화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전자책은 온라인 전자 자료의 형태로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국가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조선왕조실록』의 디지털화를 비롯해 한국의 고문헌 사료들이 차례차례로 전자 자료로 구축되고 있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무료로 제한 없이 이러한 자료들에 자유롭게 오픈 액세스(open access)해 한국학 연구에 이용한다. IT(Information Technology)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지식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여실 없이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단행본 위주로 상업 출판된 일반적인 전자책에 국한해 해외 도서관의 구체적인 이용 사례를 짚어보고자 한다.

 

워싱턴대학의 수잘로 도서관 열람실(Suzzallo Library Reading Room)

워싱턴대학의 수잘로 도서관 열람실(Suzzallo Library Reading Room)(출처: University of Washington Libraries)

 

 

필자가 근무하는 워싱턴대학 도서관의 경우 주로 교보문고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개별적으로 구입해서 이용하고 있다. 다양하고 방대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교보문고의 전자책을 선택하는 데에 가장 유력한 근거로 작용했다. 하지만 교보문고의 전자책을 이용하기 위한 별도의 로그인 정보를 이용자가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의 번거로움은 이용자들에게 넘어야 할 높은 장벽 중의 하나다. IP 주소(Internet Protocol address)로 일괄적으로 접속하는 전자저널처럼 액세스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전자책 이용에 걸림돌이 된다.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듯 로그인 방식으로만 열리는 전자책 액세스는 해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낯선 방식이다. (물론 한국 전자책 중에서도 북레일(BookRail)이 제공하는 전자책처럼 IP 주소로 접근이 가능한 전자책이 있긴 하나, 콘텐츠 양에 있어서 교보문고의 방대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도서관 이용자에게 불친절할뿐더러 도서관 당국에서조차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일부 도서관에서는 한국 전자책의 구입 승인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한 로그인 방식이 아니고서는 달리 다양한 콘텐츠의 한국 전자책을 이용할 방법이 없기에 필자는 대학 당국을 간신히 설득해 가까스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해외에서 한국 책을 이용하는 이용자 수는 극히 적다. 로그인 관리가 실행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일일이 승인해주는 절차를 한국학 사서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부담은 전자책의 수서 자체를 꺼리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 내 대학도서관의 경우, 구입한 학교의 전교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로그인 정보를 자동 생성하기에 로그인 관리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다르다. 매우 극소수에 불과한 한국 책 이용자를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보문고의 전자책 이용만을 위한 로그인 정보 자동 생성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시스템적인 문제를 떠나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이라서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전자책의 첫 셋업 과정에서 로그인 문제를 간신히 해결하고 나면, 반갑지 않은 새로운 문제에 또 한 번 봉착하게 된다. 컴퓨터에서 접속할 때 특정 운영 프로그램에서는 액세스가 불가능하다는 맹점이다. (IBM PC에서만 액세스가 가능하고 Apple에서는 불가능한데 해외 학생들의 상당수가 Apple의 제품을 쓰고 있어서 접근성에 있어 문제가 된다.) 게다가 교보문고의 전자책을 위한 뷰어를 설치해야만 오픈이 자유롭다. 해외에서 사용하는 전자책은 대부분 온라인상에서 뷰어 없이 열리거나, 대중적인 PDF 파일 형식으로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바로바로 열린다. 이에 비해 한국 전자책은 한두 과정을 더 거쳐야 하는 매우 불편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참을성 없는 이용자는 이쯤에서 접근 자체를 포기하기 다반수다. 대신 한국의 전자책이 모바일상에서 최적화되어 있다는 장점은 언급할 만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모바일 접속이 보편화된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노트북이나 데스크톱을 통해 전자책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라 여전히 극복해야 할 문제로 남는다.

 

이용자들에게 이런 저런 주의사항을 모두 설명해줘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한국 전자책 자체를 소개하는 일이 꺼려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이용자의 수요 덕분에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자책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도서관 당국의 전자책 사랑도 이용자에 못지않다. 이제는 전자책이 도서관 정책상 기본적인(default) 구입 형태가 되었다. 종이책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전자책이 든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갈수록 부족해지는 서고 문제 때문에 전자책은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체 방안이다. 물리적 생명이 제한되어 있는 책의 보존을 위한 관리뿐만 아니라 대출 반납으로 생기는 분실과 서고 관리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인력도 줄일 수 있어 도서관으로서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그러나 전자책에는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종이책처럼 도서관 간의 상호대차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도서관에서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매년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 전자책도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해외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버지니아 주의 대학도서관 컨소시엄(Virginia’s Academic Library Consortium, VIVA)1)이 4개의 출판사를 대상으로 전자책 전부를 도서관 간에 상호대차할 수 있도록 협상을 체결한 케이스이다. 참여한 출판사는 브릴(Brill), 옥스포드대학 출판사(Oxford University Press), 테일러 & 프랜시스(Taylor & Francis), 와일리 출판사(Wiley)다. 일부 자료에 한해 제한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도서관의 상호대차 권리(Interlibrary Loan Right)를 협상 문서에 분명하게 명시하고 실용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해외 도서관에서는 비슷한 시도들이 점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빅텐 대학도서관 연합체(Big Ten Academic Alliance, BTAA)2)에서는 전자책의 상호대차를 위한 특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시범적으로 펜실베니아주립대학, 위스콘신대학, 미네소타대학 등에서 총 8개에 달하는 계약서에 전자책 상호대차를 허락하는 문구를 넣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일개 대학으로서는 코네티컷대학 도서관3)의 사례가 돋보인다. 앞서 언급한 브릴, 테일러 & 프랜시스, 와일리 출판사를 비롯해 데 그루이터(De Gruyter),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게일(Gale), 세이지(Sage) 등 여러 출판사와 동일한 협상을 거쳐 전자책 전부를 2019년부터 상호대차해 활발히 서비스하고 있어서 많은 대학도서관의 모범적인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일어나고 있는 전자책의 상호대차를 위한 빠른 움직임의 근저에는 “도서관에서 서비스하는 전자책은 개인이 구매해 이용하는 전자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시각이 깊게 깔려 있다. 이는 도서관의 존재 이유라 말할 수 있는 책 공유의 개념을 상기시킨다. 즉 누구나 자유롭게 빌려보고 돌려볼 수 있는 것이 도서관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임을 강조하고 어필해, 출판사들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전자책의 새로운 대안은 오픈 액세스로 전자책을 출판하는 것이다. 책 출판 시점에서부터 아예 오픈 액세스로 출판함으로써 상호대차의 장벽을 완벽히 제거하는 방식이다. 오픈 액세스 저널처럼 단행본도 오픈 액세스로 구축하자는 매우 혁신적인 출판 방식이다. 그 일례로 MIT 대학출판부에서는 ‘D2O(Direct to Open)’4)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오픈 액세스 단행본을 출판하고 있는데 방식은 간단하다. D2O 프로그램은 참여하고자 하는 도서관으로부터 일정의 지원금을 받아 출판 비용을 충당한다. 그 대신 참여 도서관에 자료를 자유롭게 오픈해준다. 2021년에 시작해 무려 265개의 도서관으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받아 80종의 오픈 액세스 전자책을 출간했다. 이 중 50종의 책은 오픈한 지 10개월 안에 176,000번의 이용 횟수를 기록했다. 비슷한 사례로 도서관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오픈 액세스 전자책을 출간한 사례도 있다. 2012년부터 시작해 3,700종 이상의 책을 출간한 놀리지 언레치드(Knowledge Unlatched, 다국적 상업 출판사 와일리가 소유한 오픈 액세스 서비스 제공업체)가 그러하다. 상호대차를 통한 도서관 간 자료의 공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도서관이 직접 나서서 공동 출판으로 대항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반영인 셈이다.

 

위에 소개한 사례들은 필자가 소속해 있는 ‘북미 한국학 컬렉션 컨소시엄(Korean Collections Consortium of North America, KCCN)’5)의 14개 대학도서관에서 전자책 상호대차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했던 내용의 일부이다. 이 과정에서 올해 초 한국 전자책 대표 3사와 협의를 갖고, 컨소시엄 소속 대학도서관 내에서의 전자책 상호대차에 관해 논의를 추진했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한국 출판사들의 협력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종이책으로는 자유로웠던 도서관 간의 상호대차가 전자책이기에 불가능해지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종이책과 동일한 개념으로 전자책도 이용한다. 다시 말해, 도서관에서 소장한 책의 종수에 맞춰 이용자 수가 제한되는 원리가 온라인상에서도 그대로 전자책에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대차를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자관 이용자이든 타관 이용자이든 도서관 이용자에게 빌려주는 것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책이 쉽게 전송된다는 점에서 저작권을 침해하고 불법 전송될 우려를 하는 것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안전하게 실행되고 있음에도, (전송할 때 이메일로 하지 않고 보안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를 들어 Odyssey, Electronic Delivery Utility(EDU), Article Exchange, VCU FileLocker 등을 이용한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려 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항변을 좀 더 이어가자면, 도서관에서는 전자책이라고 해서 종이책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구입하지 않는다. 때로는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종이책의 최고 다섯 배에 이르는 복본(複本)을 기본적으로 사야만 하는 책들도 허다하다. 한 도서관에서 여러 카피가 필요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우리 대학의 경우에는 서고 문제로 인해 정책상 복본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해외의 대학도서관에는 실제 이용자에 비해 터무니없게 많은 부수이기도 하다. 참고로, 북미의 이용자를 총 합산해도 국내 한 개 대학의 재학생 수보다도 훨씬 적은 게 해외의 현실이다. 그뿐만이랴? 대부분의 도서관이 상호대차가 가능하다고 해서 타 도서관의 모든 자료를 대여해서 보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토록 공유가 보다 합리적인 환경임에도 상호대차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전자책으로 대체될 도서관의 미래는 역행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상만으로도 암울해진다.

 

책은 연구의 최종 산물이자 지식의 집적이다. 책의 궁극적 목적이란 여러 사람들에게 연구 결과를 알리고 공유해서 더 좋은 연구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이 점을 상기해 볼 때, 연구 중심의 출판물을 내는 국내의 대학출판부 또는 학술서적 출판사부터라도 해외의 모범적 사례를 따라 생각의 전환을 시도해보기를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책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외에 알리고 한국의 우수한 지적 자산을 선전하는 것에 전자책만큼이나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적극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한국의 출판사들도 이 점을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첨언 하나 더! 전자책 구입 방식의 새로운 시도이다. 이용된 자료에 한해서만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을 과감히 도입해 보자. 해외에서 전자책을 구입할 때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DDA(Demand Driven Acquisition, 수요 주도 획득) 또는 EBA(Evidence Based Acquisition, 증거 기반 수집)의 도입을 제안한다. 일정 기간 내 이용 통계를 손쉽게 낼 수 있다는 전자책의 장점을 적극 살려, 합리적인 서비스 구매 방식이 제공되길 바란다. ‘선구입 후이용’이 아닌, ‘선이용 후구입’으로 이용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우선적으로 액세스할 수 있도록 자료의 문을 활짝 열자. 도서관에는 꼭 필요한 자료만 구입해 효율적으로 예산을 관리하도록 돕자. 일정의 구독료를 내고 콘텐츠 전체를 오픈해주는 방식도 물론 나쁘지 않다. 매년 소비하고 사라지는 구독료보단 어느 정도의 장서를 매해 실질적으로 구축해 갈 수 있는 수서 방식이 도서관에게는 유리하니까. 해가 갈수록 예산의 압박을 받고 있는 해외 대학도서관에는 효율적 예산 집행을, 이용자에게는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는 진정한 윈윈(win-win)의 길을 안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1)
Virginia’s Academic Library Consortium: https://vivalib.org/va/e-book-recommendations
2)
3)
4)
5)
KCCNA(Korean Collections Consortium of North America): https://kccna.libguides.com/home

 

이효경

이효경 워싱턴대학 한국학 사서

미국에서 한국학 사서로 26년째 일하고 있다. 현재는 시애틀 워싱턴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한국 책을 수집하고 수집한 책으로 레퍼런스 서비스하는 일을 주로 한다.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유유, 2021), 『책들의 행진』(한국도서관협회, 2014), 『아를, 16일간의 기억』(북랩, 2016)의 저자이며, 브런치 작가로 “북소리”,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근육예찬”, “어서와 시애틀은 처음이지” 등의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썼다. 2022년에 출간된 『The Routledge Companion to Korean Literature』의 부록을 맡아 「한국 문학 영문 번역 리스트(A Comprehensive List of English Translations of Korean Literature)」를 정리해서 엮었다.
hkyi@uw.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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